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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수 칼럼] 민주당, 칼자루와 칼끝을 동시에 쥐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7. 3. 02:33

[박찬수 칼럼] 민주당, 칼자루와 칼끝을 동시에 쥐다

등록 :2020-07-01 13:57수정 :2020-07-02 02:39

 

1936년 11월 미국 대선을 며칠 앞두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 연설에서 “(지금까지) 미국은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일하지도 않는 정부’로 인해 고통받았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 연설에서 ‘정부’를 ‘국회’로 바꾸면 지금 우리의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다.

6월29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열린민주당 등 의원들이 미래통합당이 불참한 가운데 상임위원장 선거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35년 만에 처음있는 일.”

 

더불어민주당이 21대 국회 18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차지한 29일 오후, 온라인에 뜬 통신사의 속보 기사 첫 대목은 이렇게 시작했다. 1988년 13대 국회 이후 이어져온 여야의 상임위원장 배분 ‘관행’이 30여년만에 끝난 건 놀라운 일이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1987년 체제 이후 우리가 이룬 의회 운영의 원칙을 깡그리 무시해 버렸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하지만 국회 법사위원장 문제로 촉발된 이런 상황이 ‘의회 운영 원칙’을 뒤흔들 정도로 경천동지할 사안인지엔 의문이 든다. 그렇게 사이좋게 오순도순 여야가 상임위원장을 나눠 가졌지만, 국회의 법안 처리율은 18대 44.4%, 19대 41.7%, 20대 국회에선 36.6%까지 떨어졌다. 기본 임무인 입법을 제대로 하지 않는 국회가 ‘원칙과 관행’을 따지는 건 국민들 보기엔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냉정하게 돌아보면, 지금의 상황은 여당인 민주당이 4월 총선에서 180석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의석을 얻었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지난 20대 국회가 ‘사상 최악’이었다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별로 없다. 공직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안을 놓고 여야가 육탄전까지 벌이는 ‘동물 국회’를 연출했고, 극한 대립 속에 법안 심사는 실종돼 ‘식물 국회’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4·15 총선은 이런 무책임한 국회에 대한 국민의 매서운 질타이고, 그 책임이 야당인 미래통합당에 더 있다는 냉정한 심판이다.

 

그러니 민주당으로선 어느새 입법 프로세스의 비토 지점(veto point)이 되어버린 법사위원장을 포기할 수가 없다. 반대로, 미래통합당 역시 십수년 관행으로 자리잡은 ‘야당 법사위원장’을 양보하긴 어렵다. 열성 지지자뿐 아니라 당장 소속 의원들의 비판을 원내 지도부가 견뎌낼 도리가 없다. 차라리 18개 상임위원장 모두를 민주당에 주고 나중에 책임을 물을 기반을 마련하자는 주장이 명분이나 실리 면에서 더 나을 수 있다. 다만 이 전략이 성공하려면, 국회를 외면해서 국민의 외면까지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공직선거법을 한번 보라. 민주당이 사력을 다해 통과시킨 선거법은 편법의 극치인 위성 비례정당을 양산하며 또다시 개정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미래통합당이 국회를 멈춰세우고 극한 투쟁을 벌이지만 않았다면, 잘못된 결과의 책임을 온전히 민주당이 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의 18개 상임위원장 차지를 ‘협치의 파탄’으로 볼 게 아니라, 현 정치 상황에서 여야 모두 나름대로 차선의 선택을 한 결과로 보는 게 타당하다. ‘협치’란 자리를 나눠갖는 게 아니다. 유럽에서 연립정부가 정권 참여 정당에 각료를 배분하는 건, 정책 조율의 성과를 높이기 위한 것이지 자리 배분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상임위원장 배분이 ‘협치’의 윤활유 역할을 할진 모르나, ‘협치’의 본령은 아닌 이유다. 따라서 민주당은 앞으로 상임위 운영과 입법 과정에서 미래통합당에 훨씬 더 손을 내미는 게 필요하다.

 

지금 국회의 세력분포는 민주당엔 칼자루를 쥔 것과 같다. 176석이란 숫자로 벼린 날카로운 칼을 손에 넣었지만, 동시에 칼 끝도 잡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리한 날에 손을 베지 않으려면, 다수 국민을 위해 정확하게 자제하면서 칼을 써야 한다.

 

4월 총선 결과는 2017년 ‘광장의 촛불’에 담긴 염원의 또다른 분출이다. 시민들이 바라는 사회·경제 개혁입법을 추진하는 데 좌고우면해선 안 되는 이유다. 그러나 이 칼을 민주당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쓰려 하는 순간, 칼자루는 순식간에 칼끝으로 변할 것이다. 검찰개혁 입법 추진과 직접 관련이 없는 윤석열 검찰총장 사퇴 문제가 민주당에서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건 그런 예로 비친다. 검찰총장 임기제를 폐지할 게 아니라면, 이런 사안에 칼을 쓸 일은 아니다.

 

1936년 11월 미국 대선을 며칠 앞두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 연설에서 “(지금까지) 미국은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일하지도 않는 정부’로 인해 고통받았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 선거에서 루스벨트의 민주당은 대통령과 상하 양원 모두를 압승하며 반세기 가까운 ‘민주당 시대’의 길을 텄다. 그 연설에서 ‘정부’를 ‘국회’로 바꾸면 지금 우리의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다. 국민 목소리를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일하지도 않는 국회를 정말 바꿔낼 수 있느냐에 민주당 미래가 달렸다.

박찬수 선임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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