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칼럼] 홍수 / 김훈
등록 :2020-08-09 22:06수정 :2020-08-10 07:25
폭우가 내린 8일 오후 경남 하동군 화개장터 일대 마을이 물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서울 중랑천은 장마 때마다 물이 넘쳐서 동부간선도로를 위협한다. 나는 소년 시절에 이 중랑천의 홍수를 여러 번 보았다. 중랑천과 그 18개 지류 언저리에는 무허가 판자촌이 들어서 있었다. 장마 때는 이 판자촌 동네가 물에 쓸렸다. 집이 무너진 파편과 양재기, 소쿠리, 이부자리, 개, 닭, 돼지가 떠내려왔다. 재래식 변소들이 넘쳐서 분뇨가 파도치며 흘러왔다.
부서진 지붕 위에 올라타서 떠내려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물가에 나온 사람들을 향해 옷을 흔들며 소리쳤다. 그 소리는 물가에 들리지 않았지만 그가 소리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널빤지 위에 올라앉아서 떠내려가던 개도 물가 사람들을 향해 짖었다. 떠내려가는 사람들은 강폭이 넓어지는 금호동 쪽으로 흘러갔다. 거기서부터는 한강 본류다. 물가에서 사람들은 사나운 물 저편으로 멀어져 가는 사람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다들 속수무책이었다.
나는,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라고 나의 무력함을 나 자신에게 설득함으로써 편안해졌다. 그리고 내가 그 재난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우연을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내 눈앞에서 벌어진 사태가 객관화된 풍경으로 인식되었다.
재난은 구경거리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재난을 객관화해서 떼어내려는 마음의 충동은 결국 그 마음을 폐허로 만든다는 것은 한참 더 자라서 알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 때도 그 같은 마음의 충동이 집단적으로 일어났던 것이 아닌가 싶다. 수해를 당한 사람들의 고통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내 소년 시절의 중랑천을 생각했다.
김훈 ㅣ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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