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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람_칼럼 읽는 남자] 이 가을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 임인택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9. 18. 07:37

[칼람_칼럼 읽는 남자] 이 가을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 임인택

등록 :2020-09-16 17:15수정 :2020-09-17 02:40

 

임인택 l 여론팀장화제가 집중되는 편인 정치경제 칼럼을 제외하면, 9월 들어 외부 전문 칼럼의 가장 빈번한 소재는 단연 폭력의 기억 내지 생리였다. 독자청중들은 감지가 어려웠을 텐데 적이 의아했다. 땅끝 산사에 나흘 머물며 처마 아래, 달마산 위, 두륜산 가련봉 옆에서 가을이나 마중했던 휴가 직후의 그 칼럼들엔 피멍만 있던 게 아니었다. <한겨레>가 포착 못 한 징후라도 있는 걸까.

 

“어려서 아버지에게 많이 맞았다” “맞다 맞다 맞아 죽을 거 같아 도망친 적도 있다”는 김민식 피디가 정신적 아버지를 책에서 구했다는 말도, 뭍사람들로부터의 무차별 폭행, 살인을 경험한 이래 낯가림이 커졌다는 강우일 주교의 제주 분석도, 재현의 기술로 가없이 폭력성을 자극하는 비디오 게임(의 생산자들)의 비윤리를 짚은 손아람 작가의 글도, 공히 폭력은 잊힐 수 없고 그럼에도 기억되는 일만으로 소임을 끝내진 않는다는 진리를 담지한다.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가 숱한 폭력사건들을 관찰하면서도 가장 끔찍한 범죄는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라고 쓴 것도 지난주다. 그가 소개한 한 사례는 폭력의 보편적 경로를 관통한다. “처음에는 통상적인 훈육으로 시작되어 일정 기간 이후 도구를 사용하는 폭행으로, 폭력적인 습벽은 결국 먹이지도 입히지도 재우지도 않는 잔혹행위로 이어졌다. 나중에는 피해 아동의 의식이 혼미해져 혼절하기에 이르러도….” 아동학대가 가정에서만 이뤄지진 않는다. 남자중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다. 학교 정문을 향해 무단횡단하던 친구를 선생님이 붙들었다. 학교 앞 도로가 넓으니 위험해 보였을 거다. 남자 선생님은 걱정이 되었던지 제자, 아니 아이의 멱살을 잡고 귀싸대기를 끝도 없을 것처럼 내려 붙였다. 정말이지 오줌을 지려도 됐을 풍경이었다. 초등 4년 때 물건을 ‘훔치려고 했다’는 급우의 이파리만한 뺨을 갈기는 여자 선생님의 기억과는 또다른 양상이었다. 인과가 일정치 않은 갖가지 폭력들을 보고 경험하며, 학교는 폭력으로 판서하여 질서라 읽히는, 하여 구성원들에게 폭력을 내면화시키기 바쁜 달아날 수 없는 공간이었다.당시 어느 교사가 “삶이란 얼마간 굴욕을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는 길”이란 시구라도 차라리 읊어줬다면, 가령 나는 덜 비열해졌을지도 모른다. 매를 피하려고 자습서를 펴고 착한 척 성실한 척을 하고, 무엇보다 더 대우받는 동급생들을 시기하고 그렇지 않은 이들을 경멸했으니까.폭력이 내면화할수록 제 존엄은 짓밟히고, 끝내 제 세계를 파괴하기도 한다. 2019년 2월 미국 공영라디오방송(NPR)의 보도를 보면, 그 나라 학교 총기난사(4명 이상 사망한 경우로 정의했다)만 1999년 콜럼바인고교 사건 이후 11건으로 134명이 숨졌다. 연구마다 모수는 다른데 가해자의 상당수가 가정에서 물리적·심리적 학대를 경험했고, 4분의 3가량이 학내 괴롭힘을 당했으며, 절반 정도가 마지막 방아쇠를 자신에게 당겼다.초·중 시절의 폭력 학습이 유용했다면, 법칙인 양 “미친개”가 어디든 있었다던 고교와 깡패 출신도 만나야 했던 군대를 그나마 견딜 수 있게 해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소년 시절 폭력이 더 지독하게 기억되는 까닭은 그 경험이 내게 어떤 자국을 내(고 있)는지 충분히 자각하거나 여전히 예상하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그 시절로부터 학교는 이제 무척 달라졌을 것이다. (아니, 달라졌을까, 스무살 고명현씨가 고교 시절 체벌과 욕설 따위 일상의 폭력을 회고하며 이달 왜 학생인권조례가 제주도의회를 통과해야 하는지를 주장한 지난 10일치 ‘왜냐면’ 투고를 보면, 알 수 없다. 조례 반대 시위도 있었다는데 그나마 지난해 경남도에서 있었던 조례제정 반대를 위한 삭발·혈서 시위까지는 아녔던 모양이다.) 가정도 달라질 것이다. (아니, 달라질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 뒤인 2015년 스무살도 못 되어 사라진 아이들을 전수조사해 호명하려고 아동학대 탐사보도를 했었다. 내 아이를 더 사랑해야지, 학원에만 처박지 말아야지, 지켜줘야지… 참사 뒤 눈물로 새긴 어른들의 각오가 채 사라지지 않은 때였으나 아이들은 그해도 올해도 그저 죽어나갔으니, 알 수 없다.) 홍은전 작가는 어느새 어려서 도축되는 짐승의 처지와 사람의 도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니 그 세계조차 언젠간 달라지겠다. (아니, 아니다,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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