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에 대한 성경적 고찰
십일조문제는 한국교회에서 오래 전부터 논란이 되어왔던 문제입니다.
날이 갈수록 논란이 증폭되는 추세에 있는 실정입니다. 이에 대하여 두 가지 주장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십일조를 당연히 드려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이들은 십일조를 드릴 이유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이 문제는 반드시 신앙생활의 기준인 성경으로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이 문제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지금부터 성경의 가르침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십일조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창세기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다음의 성경말씀을 보십시오.
(창 14: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이것이 성경에 최초로 나오는 십일조에 관한 기록입니다.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준 것입니다. 멜기세덱이 누구입니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창 14:18). 이것은 아브람이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린 것을 가르쳐 줍니다.
다음의 성경말씀을 보십시오.
(창 28:20-22)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이 말씀에서 야곱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린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십일조를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께 드렸을까요? 틀림없이 멜기세덱 같은 하나님의 제사장에게 드렸을 것입니다.
이 때가 언제입니까? 율법이 만들어지기 수백 년 전입니다. 따라서 십일조는 율법과 관계없이 하나님께 드려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십일조와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첫 열매입니다. 첫 열매 역시 율법과 관계없이 아담 이후로 계속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다음의 말씀을 보십시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창 4:3-4)
첫 열매가 말라기 3:8에서는 헌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신실한 성도들은 모든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러므로 첫 열매 역시 율법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율법은 세 종류로 나누어집니다. 도덕법과 의식법과 재판법입니다. 이 세 가지 법 중에서 만고불변의 법은 도덕법뿐입니다. 의식법과 재판법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폐지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지금 우리가 율법에 금지된 돼지고기를 먹기고 하도, 주일에 일을 해도 돌로 쳐죽이지도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십일조와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율법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시행된 만고불변의 도덕법입니다. 이것이 신자가 하나님을 공경하는 윤리요 도덕이기 때문입니다. 이 윤리와 도덕은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와 첫 열매를 의식법으로 생각하여 신약시대에는 폐지되었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한편 어떤 이들은 신약성경에 십일조를 내라는 말씀이 없기 때문에 신약시대에는 십일조를 안 내도 되며 감사헌금을 드리면 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성경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주장일 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신약성경에는 십일조를 드리라는 명령이 기록될 필요가 없는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은 성도들이 십일조이상을 드리던 시대 즉, 자신의 전 재산을 드리던 시대에 기록된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그 때의 신앙생활 모습을 다음과 같이 증거해 줍니다.
(행 4:32-35)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
(고후 8:1-5)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이와 같이 신약성경이 기록될 시대에는 모든 신자들이 자신의 재산을 내놓아서 주님과 이웃을 섬겼습니다.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성도 섬기는 일에 진력하였습니다. 아무도 자기 재물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성도들에게 십일조를 드리라고 할 필요가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 십일조에 대한 강조가 없는 것입니다.
신약시대 성도들은 중간에 믿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이들은 십일조와 첫 열매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난 후에야 십일조와 첫 열매가 있으며, 이것들을 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신자들은 언제부터 십일조와 첫 열매를 드려야 하는 것일까요?
어떤 이들은 십일조와 첫 열매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누구든지 교회에 나오자마자 이것들을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반면 어떤 이들은 새신자가 믿음이 자란 다음에 드리게 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다음의 성경말씀이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줍니다.
(행 14: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모든 족속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지키지 않는 것을 묵인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볼 때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묵인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나 첫 열매는 그것을 드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부터 드리게 하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신자가 이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하나님처럼 묵인하는 것이 옳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헌금과 십일조의 차이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것으로 정해 진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헌금은 자기 마음대로 정해서 드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헌금을 드리기 싫은데도 억지로 드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인색한 마음이 들면 헌금을 드리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진노하시지 않습니다. 다음의 성경말씀을 보십시오.
(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행 5:3-4)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이처럼 헌금은 자기가 결정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일조와 첫 열매는 다릅니다. 십일조와 첫 열매는 율법제정 이전부터 하나님의 것으로 정해진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들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세금을 반드시 내야 하듯이 십일조와 헌물 역시 반드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기뻐도 드려야 하고, 드리기 싫어도 반드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반론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십일조가 율법제정 이전부터 시행되었던 것이므로 지금도 시행해야 한다면, 율법제정 이전부터 시행되었던 짐승제사나 할례도 지금 시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에 대한 저의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할례나 짐승제사는 구원과 관계된 의식이었습니다. 따라서 할례나 제사는 구원자 예수님이 오심으로 더 이상 시행하지 않아도 됩니다. 실체가 왔는데 그림자를 붙들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이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구원과 관계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기본도덕 내지는 기본예절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받습니다. 햇빛과 공기와 같은 것들은 값을 따질 수도 없이 가치가 큰 것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것들 중에서 여덟 아홉은 우리보고 쓰고 그 중에 한 두개만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이것마저 드리기를 아까워한다면 커다란 배은망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십일조와 첫 열매는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어떤 목회자들은 자신이 십일조 강조를 하지 않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물론 처음 믿는 사람에게 십일조를 강조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바울도 처음 개척을 하였을 경우에는 십일조를 강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신앙확립이 된 후에도 목회자가 십일조 강조를 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목회자들은 주님의 뜻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으므로 천국에서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입니다. 다음의 성경말씀을 보십시오.
(마 5:19-20)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십일조와 첫 열매는 만고불변의 도덕법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마땅히 해야할 도리입니다. 이 점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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