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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불법사찰’ 판가름, 정보수집 목적·직무범위 여부에 달렸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11. 28. 05:35

‘판사 불법사찰’ 판가름, 정보수집 목적·직무범위 여부에 달렸다

등록 :2020-11-27 21:57수정 :2020-11-28 02:37

 

[뉴스분석]
사찰이다 vs 아니다...‘재판부 사찰’ 문건 논란

 

사상 초유의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배제 조처에 대한 검찰 내 반발 여론이 거세지는 가운데 27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가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배제의 핵심 근거로 제시한 ‘재판부 분석’ 문건의 적법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검찰에서 판사의 개인정보를 수집한 행위가 ‘불법 사찰’인지, 직무 수행을 위한 정당한 ‘정보 수집 활동’인지를 두고 논쟁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이 문건이 법무부 주장대로 ‘불법 사찰’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검찰의 설명대로 공소 유지를 위한 ‘정보 수집’인지를 명확하게 가르는 법적 기준은 없다. 판례마다 사찰의 목적과 의도 및 방식, 사찰기관의 직무범위와 당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고 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국가정보원을 통해 공직자를 불법 사찰해 직권남용으로 기소된 사건에서 1심 재판부는 정보 수집의 ‘목적’이 정당한지를 판단 근거 중 하나로 삼았다. 교육감들이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임직원들의 동향을 파악한 사례에서 재판부는 “정부 교육정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특정인에 대한 비리 첩보를 수집해 그에게 불리하게 이용하려는 의도를 가졌다”거나 “실질적으로 문화예술계 정부 비판 인물·단체에 대한 지원배제 기조를 관철하기 위해” 사찰을 한 것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법무부도 재판부 분석 문건이 만들어진 의도와 목적에 불법성이 있기 때문에 불법 사찰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추미애 장관은 지난 26일 대검에 윤 총장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수사를 의뢰하면서, “(문건에는) 각 판사들의 ‘주요 판결’ 분석 등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향으로 악용될 수 있는 민감한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고, 실제로 검찰에 불리한 판결을 한 판사가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는 이유로 공격당하기도 하는 등 악용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윤 총장 쪽은 26일 해당 문건을 스스로 공개하면서 ‘공소유지 대응 차원의 업무 자료’라고 주장했다. 윤 총장을 대리하는 이완규 변호사는 “변호사들도 담당 사건의 재판과 관련해 재판부 성향을 파악한다. 검사들도 마찬가지로 그런 내용을 알 필요가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또 다른 관건은 정보 수집이 해당 기관의 ‘직무범위’에 포함되는지 여부다. 국가기관 대 기관으로서, 소송 수행자인 검찰이 사법부 판단을 받는 과정의 하나로 법관의 개인정보를 수입한 것인지, 국가기관인 검찰이 판사 개개인에 대한 사적 정보를 수집한 것인지에 관한 판단 문제이기도 하다. 문건에 나온 “증인신문 시 적극적으로 직접 심문” “증거채부 결정 등에 있어 변호인 주장을 많이 들어주는 편” 등의 세평은 공소유지 과정에서 참고할 만한 내용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 판사의 주요 정치적 판결과 학력, 가족관계를 기재하거나 조국 전 장관 등의 사건을 심리하는 김미리 부장판사를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고 하거나 사법농단 재판부의 한 배석판사에 대한 세평에 “행정처 (20)16년도 물의야기법관 리스트 포함”이라고 적은 부분 등은 재판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정보라고 보기 어렵다.

 

국가기관 사이에서 개인정보를 수집한 문제를 다룬 판례 자체는 드물다. 다만 국가기관이 개인을 사찰한 민간인 사찰 사건에서 대법원은 “공권력의 사적영역 침투 행위를 금지하는 게 원칙이고, 법률에 따라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일반 국민의 알 권리와 무관하게 동향 감시를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비밀리에 수집했다면 이는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취지다.

 

추 장관은 27일 낸 입장문에서 △개별 검사가 의견을 나누는 차원을 넘어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이 검찰총장의 지시에 따라 만들었고 △판사들의 많은 판결 중 특정 판결만 분류해 이념적 낙인을 찍고, 모욕적 인격을 부여했으며 △비공개 개인정보 등을 담은 사찰 문서를 작성·관리·배포하였다는 점을 들어 징계청구와 수사의뢰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문건을 만든 수사정보정책관실의 업무 권한과 법관 정보 내용이 통상적인 직무범위 밖에 있다는 것이다.

 

반면 문건을 작성했던 고양지청 성상욱 검사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의 업무범위를 규정한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을 정보 수집의 법적 근거로 제시했다. 해당 규정을 보면 “수사정보와 자료의 수집 분석 및 관리에 관해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보좌하기 위하여 수사정보담당관을 둔다”고 되어 있다. 성 검사는 수사정보에 “공판 중인 사건 관련 정보도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판사들의 시각은 엇갈린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사찰이라고 하려면 도청·탐문 등의 불법성이 있어야 하는데, 문건에 나온 내용 대다수는 언론 등에서 검색이 가능한 내용이다. 세평도 동기들이 말해주는 수준”이라고 평했다.

 

반면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재판과 관련된 정보도 아닌 세평까지 수집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관행적으로도 잘못된 것인데 그에 관한 (검찰의) 문제의식이 없는 것 같다”며 “사법농단 사건 때 법원이 인사상 필요로 만든 리스트도 직권남용이라고 했다. 외부 기관이 판사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고 짚었다.

 

장예지 옥기원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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