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최말자씨 재심 기각, 이것이 ‘사법 정의’인가
등록 :2021-02-18 18:04수정 :2021-02-19 02:41
성폭행하려는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은 최말자씨 사건을 보도한 당시 기사들.
56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는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은 최말자(75)씨가 정당방위를 인정해달라며 재심을 청구한 데 대해 법원이 18일 기각 결정을 내렸다. 지금의 상식과 기준으로 볼 때 최씨는 당연히 무죄다. 하지만 시대의 덫에 갇힌 기소와 재판으로 덧씌워진 유죄의 주홍글씨를 끝내 벗어던지지 못하게 된 것이다. 법원은 ‘재심의 법리’를 따랐다고 설명하지만 이것이 법적 정의에 부합하는지 깊이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법원의 논리는 간단하다. 현행법에서 재심 사유로 규정한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새 증거의 발견’이나 ‘수사 과정에서 검사 등의 직무에 관한 죄의 증명’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법원은 “재심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청구인의 용기와 외침이 헛되이 사라지지 않고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 공동체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커다란 울림과 영감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현행법의 한계를 탓하며, 나름대로 재심 청구의 의미를 인정한 셈이다.
이 사건에서 유무죄를 가른 핵심은 사실관계 자체보다는 그것이 정당방위에 해당하느냐는 법적 판단이었다. 그 판단이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됐다는 점은 현재로선 다툼의 여지가 없다. 다시 말해, 무죄를 입증할 새로운 증거나 조작된 증거의 발견에 비견할 만한 상황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법원이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해 재심 청구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는지 큰 아쉬움이 남는다. 만약 그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면 입법을 통해서라도 최씨처럼 과거의 명백한 법리 적용 오류로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재심 기회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법적 안정성을 해친다는 반론이 있겠지만, 모든 과거사 사건이 그렇듯이 과거의 오류를 묻어버리는 것은 오히려 법질서에 대한 신뢰를 해칠 수 있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새로운 기준을 선포함으로써 당대의 법적 안정성을 이룰 수 있다.
최씨는 지난해 재심을 청구하면서 “사법이 변하지 않으면 우리 후세까지 나 같은 피해가 이어질 수 있겠다는 절박한 생각에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시대적 한계와 경직된 법을 이유로 무고한 개인에게 평생 유죄의 굴레를 안고 살아가도록 하는 게 정의일 수는 없다. 이는 국가폭력에 다름 아니다. 평생 억울함을 안고 살아온 최씨의 용기 있는 문제제기에 우리 사회가 책임 있는 답을 내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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