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퇴한 윤석열, 정치권 진출은 ‘검찰 중립’ 부정이다
등록 :2021-03-04 18:59수정 :2021-03-05 02:13
논의 시작 단계 중수청, 사퇴 명분 안 돼
정치적 계산 따른 준비된 수순으로 비쳐
사퇴 빌미 준 여권도 겸허히 되돌아보길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사퇴한 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떠나며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전격 사퇴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 총장의 사의를 수용하고, 검찰 인사로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갈등을 빚었던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표도 수리했다. 여당 일각에서 추진 중인 수사·기소권 완전 분리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가 윤 총장의 사퇴 이유다. 윤 총장은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윤 총장의 이런 인식은 실제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검찰총장이 임기 도중 사퇴할 이유가 될 수 없다. 벌써부터 윤 총장의 대통령선거 출마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은 ‘검찰의 중립성’을 뿌리째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스럽다.
검찰의 수사·기소권 독점으로 인한 폐해는 우리 사회에 누적돼왔고, 궁극적으로 권한 분리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은 윤 총장 자신도 동의한 바 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할지는 사회적 논의를 거쳐 입법부가 정할 몫이다. 더구나 수사·기소권 분리는 이제 논의가 시작되는 단계다. 검찰도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입장을 표명하고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 여권도 검찰의 의견까지 들어 충분한 검토를 거치겠다고 한 상황에서 총장이 사퇴까지 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윤 총장의 사퇴를 보면서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게 아니냐는 의심마저 든다. 윤 총장은 “앞으로도 제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명시적인 언급은 없지만 사실상의 정치활동 선언으로 받아들여진다. 윤 총장은 검찰총장으로선 이례적인 언론 인터뷰로 주목을 끈 뒤 이틀 만에 공개적인 사퇴 선언을 했다. 전날에는 국민의힘의 지지 기반인 대구를 방문했다. 노회한 정치인을 뺨치는 행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수사·기소권 분리를 쟁점으로 한껏 부각시킨 뒤 사퇴 명분으로 활용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윤 총장은 “검사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것은 부패한 것과 같다”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해왔다. 그런 그가 임기 도중 사퇴하고 정치에 뛰어든다면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현직 때의 권한 행사가 정치적 고려로 이뤄졌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고, 향후 검찰의 행보에도 정치적 불신이 드리울 수밖에 없다. 검찰의 신뢰성에 치명타다. 수사·기소 분리를 떠나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기 위한 대대적 수술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여권도 그동안 정교하지 못한 방식으로 검찰개혁을 추진하면서 윤 총장에게 사퇴의 빌미를 주고 국민들의 피로감을 키운 점을 겸허히 되돌아봐야 한다. 검찰개혁은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진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개혁에 대한 저항에는 단호히 대처해야 하지만, 국민적 지지를 넓히는 데도 더욱 힘써야 한다. 청와대는 검찰 안팎에서 두루 신망받는 인사를 후임 총장으로 신속히 임명해 검찰 조직을 안정시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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