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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시대의 어른’ 채현국 선생의 삶을 돌아볼 때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21. 4. 5. 08:21

[사설] ‘시대의 어른’ 채현국 선생의 삶을 돌아볼 때다

등록 :2021-04-04 18:32수정 :2021-04-04 21:47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효암학원 이사장인 채현국 선생이 2일 별세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 대구에서 태어난 선생은 대학을 졸업하고 1961년 <중앙방송>(현 한국방송) 피디로 입사했으나 3개월 만에 그만뒀다. 방송을 권력의 선전도구로 삼으려는 박정희 군사정권의 부당한 제작 지시를 거부하고 사표를 던졌다. 선생은 부친을 도와 강원도 삼척의 광산업체 흥국탄광을 운영하며 사업가로 크게 성공했다. 1970년 소득세 납부 실적 전국 2위에 올랐다. 그러나 1972년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 이후 기업을 정리하고 재산을 동업하던 친구들과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선생은 2014년 1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국회가 해산되고 유신이 선포되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정치인은 아니지만 군사독재를 무너뜨리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해왔는데, 이제 더 이상 탄광을 할 이유가 없겠다고 결론 내렸다”고 사업을 접은 이유를 말했다.

 

선생은 박정희 정권에 맞서 싸우다 도피 생활을 하던 민주화 인사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민주화운동 단체에 자금을 지원하는 등 반독재 투쟁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을 도운 부친의 삶을 이어간 것이다. 하지만 선생은 “난 도운 적이 없다. 도움이란 남의 일을 할 때 쓰는 말이지, 난 내 몫의 일을 했다. 내 일을 한 것이다”며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 자신이 일군 부를 사회를 위해 기꺼이 내놨으면서도 겸손하고 담백했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것이다.

 

선생은 1988년 효암고등학교와 개운중학교를 둔 효암학원의 이사장으로 취임해 줄곧 무급으로 일해왔다. 선생은 “남을 밟고 1등 하라는 학부모가 되지 말고, 부모가 되라”고 강조했다.지금 우리 사회는 ‘물질 만능주의’가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간과 공직사회 가릴 것 없이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부의 대물림이 당연시되는 것은 물론 불법·편법까지 서슴없이 동원된다. 너나 할 것 없이 재산을 불리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형국이다. 반면 다른 한편에선 코로나19 충격 등으로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가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다. 선생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그렇게 고생해서 일군 사업인데, 아깝지 않으냐?’는 질문에 “자기 개인 재산이란 게 어딨나? 다 이 세상 거지. 공산당 얘기가 아니다. 재산은 세상 것이다.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니다. 이 세상 것을 내가 잠시 맡아서 잘한 것뿐이다. 그럼 세상에 나눠야 해. 그건 자식한테 물려줄 게 아니다”고 말했다. 당시 인터뷰가 널리 회자되면서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줬다. 선생이 평생 고위 공직에 오르거나 세속적인 명성을 쌓은 일이 없는데도 ‘이 시대의 어른’으로 존경받은 이유다. 선생이 남기고 떠난 삶의 의미를 우리 모두 깊이 돌아봐야 할 때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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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989579.html?_fr=mt5#csidx86e0d0d74c91969b861df314a38562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