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목사 창세기·사도행전강해설교

[스크랩] (제33강) 책망받은 베드로! (행 11:1-16)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25. 12:28

(제33강)         책망 받은 베드로! (행 11:1-16)

 

  10장은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 가서 복음을 증거할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때부터 초대교회 선교의 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복음이 준비된 베드로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고넬료를 구원하시려고 베드로를 보낸 것입니다. 그때 모든 것은 성령께서 역사 하셨습니다.
  성령 님의 계시는 동시성입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에 집에 가라'는 성령 님의 계시를 받고 있는 동안, 고넬료 역시 사람을 베드로에게 보내어 '그를 청해 오라'는 성령 님의 계시를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계시의 동시성과 확실성을 설명해 주는 사건입니다.
  사실 우리가 성령 님의 능력이나 역사를 한 두 마디로 설명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 이유는 성령의 능력과 역사가 너무나 크고 놀랍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 님이 하시는 일은 굳이 하나로 요약하여 말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영혼의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능력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하여 예수님을 믿게 할 뿐 아니라 능력을 주셔서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 영혼을 구원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왜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해야 합니까? 무엇 때문에 교회가 전도를 표어로 내어 걸고 영혼 구원을 노력해야합니까?
  ①영혼이 구원받아야 참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죽어버린 인간은 껍질이지 참 사람이 아닙니다. 짐승과 사람 사이에 다른 점은 인간만이 영혼을 가진 영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영혼이 없는 존재는 하나님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짐승들의 세계에는 예배가 없습니다.
  영혼은 크게 둘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산 영혼이고 다른 하나는 죽은 영혼입니다. 산 영혼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영혼이고, 죽은 영혼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지옥 가는 영혼입니다.
  ②영혼이 구원받아야 모든 것이 바로 되기 때문입니다. 요3서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갈구하노라" /할/ 그 사람의 영혼이 잘되면 만사가 잘 됩니다. 반대로 그 사람의 영혼이 잘못되면 만사가 잘못됩니다.
  ③성경이 말하는 영혼의 특징이 있습니다.
  ⑴영혼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겔18:4절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이유는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창2:7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코에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어 주신 것은 사람 밖에 없습니다.
  짐승의 왕이 되는 사자에게도, 호랑이에게도, 새 중에 왕이라는 독수리에게도 생기를 불어넣은 일은 없습니다. 오직 사람에게만 생기를 주셨습니다.
  ⑵영혼은 불멸하는 것입니다. 마10:28절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혼불멸사상은 하나님이 영혼을 만드셨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영혼은 지옥에 들어가 영원토록 고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⑶한 영혼은 온 천하보다 귀합니다. 마16:26절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사실 천하를 얻기가 힘들지만 천하를 얻으면 뭐합니까? 영혼은 천하보다 귀중한 것입니다. 돈 때문에 영혼을 죽이지 마십시오.
  ⑷영혼과 육체는 분리됩니다. 우리는 흔히 죽은 사람을 말할 때, 혼이 떠난다고 합니다. 창35:18절 "그가 죽기에 임하여 그 혼이 떠나려할 때에" 몸이 땅에 묻힐 때, 영혼도 함께 묻히는 것이 아닙니다. 몸은 땅에 묻혀 썩지만 우리의 영혼은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모든 육체는 죽으면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영혼은 두 군데로 나누어 들어갑니다. 구원받은 영혼은 천국으로 들어갑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은 지옥으로 들어갑니다. /믿/
  ④영혼구원은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입니다. 즉 전도는 하나님의 뜻이며 명령입니다. 막16:15-16절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마28:18-20절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할/
 
  오늘 본문을 보면 세상이 이럴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베드로가 성령의 인도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전도를 해서 고넬료와 그 가족 일가친척이 다 은혜를 받았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임을 증거 할 때 고넬료 가에 성령 님이 임했고, 방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소문이 예루살렘까지 퍼졌는데 베드로가 선교 여행을 다 마치고 돌아오니 유대인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당신은 왜 이방인의 집에 가서 식사를 하고 전도를 했느냐?'고 따집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전도한 일에 대하여 욕하고 비판하고 달려듭니다.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2절을 보면 '힐란'했다고 기록합니다. 이 말은 '조롱했다'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실컷 하나님의 일을 하고도 욕먹고 조롱당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카톨릭에서 말하는 베드로의 절대권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천주교에서 말하는 대로 베드로가 교황이 있다면 감히 베드로에게 어떻게 그렇게 따질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말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황이란 제도는 카톨릭에서 만들어 낸 것이지 성경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총감독도 있고 목사도 나옵니다. /할/ ◀제목소개!▶

 

  베드로는 책망을 받고도 자기를 변명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시켜서 한 일이요, 성령께서 감동하셨으므로 된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결과를 보라고 말합니다. '생명을 얻은  회개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전도한 것이 당연한 것임을 그 열매를 통해서 증거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무는 그 열매를 보면서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과나무는 사과 열매를 주렁주렁 열어야 하고, 감나무는 감이 주렁주렁 열어야 하듯이 사람은 생명열매를 열어야 합니다(전도). /믿/
  오늘 본문은 베드로의 전도의 장애물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제거하며 선교의 문을  열어 가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마귀의 계략과 방해도 있지만 19절을 보면 전도가 급속도로 일어나 안디옥에서 크리스천이란 이름까지 얻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먼저 1-3절까지는 판단과 비판받는 베드로에 대한 내용입니다.

 

  ▶1절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베드로에 의해서 고넬료 가정에 구원의 복음이 전파된 것은 새롭고 놀라운 일입니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무할례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성령님이 그들에게 강림하였다는 소식을 교회와 유대인 사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할례 받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구원받을 수 있고, 이방인들은 구원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복음을 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방인이 복음을 받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했다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소식은 급속히 퍼져나갔습니다.

 

  ▶2-3절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난하여 가로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곽선희 목사님의 설교 집에 보면 우리 한국 기독교사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서울 '연동 교회'에서 장로투표를 했는데, 백정이던 사람이 장로에 피택이 되었습니다. 당시 백정이면 상놈 중에 상놈인데 장로에 피택이 된 것입니다.
  얼마나 축하할 일입니까? 얼마나 신앙 인품이 뛰어났으면, 양반이 가득했던 그 연동교회에서 그 많은 양반들 제쳐놓고 장로로 피택이 되었겠습니까? 초대교회는 정말 대단했고 멋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경하할 일을 이루어 놓고도 교회가 두 동강이 나버렸습니다.
  이미 자리잡고 있던 양반 장로님들이 일어나 연동교회를 뛰쳐나가 버렸습니다. '양반이 체통이 있지 어떻게 백정과 당회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운 교회가 윤 보선 대통령이 몸담은 '남대문 교회'입니다.
  본문도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베드로를 통하여 이방 사람 고넬료에게 복을을 전한 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사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사실은 기뻐하고 감사하고 그 일을 감당한 베드로를 격려하고 칭찬하고 수고했노라고 대접했어도 성이 차지 않을 일인데 베드로에게 와서 오히려 '힐난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할례자'들은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이고, '힐난'했다는 말은 잘못을 들어 '꾸짖고 비난했다'는 말입니다.
  이 무리 중에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유언에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명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를 힐난한 것입니다.
  또 3절을 보니 '그 집에 돌아가 식사한 것'을 가지고 따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러합니다.
  ⑴유대 민족의 전통에 어긋난 것으로 보았습니다. 유대인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상종을 하지 않습니다. 유대인이 이방인을 얼마나 멸시했으면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이 예수께 말하기를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요4:9)라고 했습니다.
  ⑵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들과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민 들에게 부정한 것을 먹지 못하도록 하여 이방인들과 구별시켜 주신 것입니다(레11장). 그래서 베드로도 처음에는 이들 보자기에 담긴 부정한 것을 금하신 것입니다. 
  ⑶율법을 어긴 것으로 보았습니다. 무할례자들에게 세례를 베푼 것입니다. 유대 민족이 이방인과 구별되는 외적인 증거가 할례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백성이 된 징표로 할례를 받게 했습니다(창17:10).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에게 세례를 베푼 격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할례자들은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⑴그들은 낡은 전통을 붙잡고 있습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의 핵심은 놓쳐 버리고, 껍질만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천주교가 예배의 의식만 중요시하고 말씀을 놓쳐 버리는 것과 유사합니다.
  ⑵부정한 것을 먹지 못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부정한 삶을 멀리하고 금하라는 것입니다. 되새기는 것처럼 뉘우치는 회개하는 삶이 없는 죄악을 청산하고, 갯벌에 묻혀 있는 더러운 삶을 청산하고, 부정한 것을 탐하는 양육강식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 없이 정결한 고기만 먹는다고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⑶할례를 행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계약의 백성임을 인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이젠 예수 안에서 피 흘리는 행위가 청산된 것입니다. 이제 그와 함께 죽고 함께 살므로 그와 연합하여 새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예수님 생전에도 죄인 집에, 세리 집에 들어가 먹었다고 해서 바리새인들에게 공격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행위는 유대교 전통에 위반되기 때문입니다. 할례 받은 자들은 베드로가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준 것보다도 그들과 함께 음식 먹은 것을 더 따졌습니다. 유대교는 전통을 더 따졌기 때문에 이것을 율법에 금지된 조항이 아니라 랍비들의 유전에 의하여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 들어가 먹은 것은 그들의 관습에 저촉되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과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따지는 이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복음을 믿기는 믿었으나 무엇인가 율법을 지켜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율법 뿐 아니라 유전을 많이 만들어서 사람의 노력으로 하나님을 만족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믿음 이외의 어떤 불순물은 절대로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믿는 자는 무조건 구원을 받습니다. /믿/
  유대인들이 이런 편견 병에 걸려서 하나님의 축복인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안식일에 치료받은 한 손 마른 자를 데려다 놓고 그를 올무로 하여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얼마나 안타가운 일입니까?

  ▶편견은 무섭습니다. ⑴배타적이고 대립적인 인간 관계를 만들어 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은 더럽다는 편견 때문에 함께 식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히틀러에게 당한 것을 비롯하여, 유대인이 당한 수난 가운데는 그런 편견에 대한 반감도 있습니다. 편견이 있는 곳에 다툼과 분쟁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서 일어난 거의 모든 전쟁들도 다 자기 주장이 옳다는 편견에서 시작된 것들입니다.  
  ⑵편견이 집단적일 때 사회 전체가 피해를 입습니다.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극단적으로 대립시켰습니다. 지주와 농민, 자본가와 노동자는 공존할 수 없는 원수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편견이 무엇입니까? 자본가, 지주는 다 제거해야 될 사람으로 분류했습니다. 노동자 농민은 무조건 선량한 계층으로 분류했습니다. 부자들 중에도 착한 사람이 있고, 가난한 사람들 중에도 악한 사람이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보지 않고 사회적 조건만을 본 것이 큰 실수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한 사람을 죽여도 큰 죄인인데 하물며 스탈린이나 폴 포트처럼 수 백만 명을 죽이고도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⑶편견은 인간에게 재생이나 재기의 기회를 박탈합니다. 유대인들의 생각이 뭡니까? 한 번 나쁜 놈은 영원히 나쁜 놈입니다. 한 번 원수는 영원한 원수입니다. 한 번 실패자는 영원한 실패자입니다. 다시 일어날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편견이든지, 집단적인 편견이든지 편견은 인간 사회를 망치는 원인입니다. 
 
  ▶4절 "베드로가 저희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역시 베드로는 하나님의 훌륭한 종이었습니다. 그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 님을 받기 전에는 성질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회 때, 주님을 잡으러 온 말고의 귀를 칼로 내리쳤던 혈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을 받고 나자 자기를 비판하며 정죄하는 자들에게 아주 겸손하고, 온유한 태도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논쟁적으로 나오는데 베드로는 논쟁적이 아니라 온유와 겸손으로 그들의 이해를 구했습니다.
  '당신들로서는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에 오래도록 젖어 있는 당신들로서는 얼마든지 그렇게 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동하라고 하셨는지 그것을 들어 보십시오' 하면서 자초지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5절 "가로되 내가 욥바 성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을 네 귀를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워 내 앞에까지 드리우거늘"
  고넬료에 집에 가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욥바에서 그가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동안에 지붕으로 올라가서 기도를 하는데 하늘에서 보자기가 내려왔습니다. 거기에 유대인들이 먹을 수 없는 각종 부정한 짐승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가 처음에는 거절했습니다. 세 차례나 하나님은 간곡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건 후에 고넬료가 보낸 두 사람과 한 천사가 찾아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나에게 보여 주신 계시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베드로와 고넬료는 당시 사회적인 신분으로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을 방문하기 어려웠던 이유를 먼저 살펴봅시다.
  ⑴고넬료는 이방인이었고, 베드로는 유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는 마치 우리네 38선 만큼이나 높은 장벽이 있어서 교제가 어려웠습니다. 유대인의 자존심은 하늘만큼이나 높았기 때문에 그들이 먼저 자청하여 이방인을 만나는 법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이방인을 멸시하고 경시했습니다.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찾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⑵고넬료는 로마 장교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는 세계를 지배한 막강한 힘을 가진 나라였습니다. 그 힘으로 유대나라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의 분봉왕도 로마가 임명한 사람이었고, 그 왕을 감독하는 로마의 총독이 있었습니다.
  그런 지배나라 장교를 지배받고 있는 민족의 백성이 찾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⑶신앙 관이 달랐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일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만 로마인들은 다신론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로마인들은 그들의 황제를 신격화하여 섬겼으며 식민지에도 그것을 강요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일제 때 신사참배를 강요받았습니다. 일본도 황제를 섬기는 국가입니다.
  ⑷평소에 단 한 번의 교분도 없었습니다. 어떤 일 때문에 만날 일도 없었고, 누구의 소개를 받은 일도 없었습니다. 혹시 그들의 이름 정도나 소문으로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⑸다른 유대인들이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찾아갈 마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유대인들이 반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제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간일은 간단합니다.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믿/
  여기 5절을 보면 '기도할 때'라고 한 것은 결코 그가 인간적으로 한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하나님의 뜻에 바르게 순종할꼬' 하는 기도하는 마음이 되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원래 기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순종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도록 힘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기도의 행위입니다. /믿/ 무엇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기쁘게 순종하고 자 기도하는 기도라야 그 기도가 옳은 기도입니다.
  지금 베드로는 기도 중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일에 대하여 다시금 10:9절 이하에 기록된 사실대로 그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비몽사몽간'이란 말은 베드로가 하나님과 기도로 교통하는 가운데 그의 심령이 황홀한 상태, 즉 온전히 기도에만 몰두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늘로부터'라 함은 감추어져 있던 신비가 드러나는 것을 의미하며 이 일이 하늘에서 온 계시라는 뜻입니다. 또 '네 귀에 메였다'는 것은 동서남북 사방을 가리키는 말로 모든 나라들과 민족들이 복음을 믿음으로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보자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영혼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내 앞에까지 드리우게'란 말은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베드로가 기도하는 지붕 위까지 내려왔다는 말입니다.

 

  ▶6-7절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주목했다는 것은 정신 차리고 똑바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여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목하여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에는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짐승은 레11장에 보면 율법에 의해서 모두 불결하여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언급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그 짐승들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잡아먹어라'고 한 것은 이제 이방인들과도 대화하여 음식을 먹으며 자유롭게 교제하라고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깨닫지 못하고 자신이 깨끗한 채 대답을 합니다.

 

  ▶8절 "내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지 아니한 물건은 언제든지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베드로는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것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아직도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약의 율법에서 자유를 얻게 된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계시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고 거부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깨닫는 것이 은혜고 축복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13:23절에서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 십배가 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지금까지 레11장의 음식에 대한 금기를 지켜 온 유대주의 정신을 쉽게 깨뜨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감히 주님께 '그럴 수 없나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9-10절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대답하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
  두 번 째 음성은 '하나님이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말라!' 쉽게 말하면 '베드로 너 건방지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잡아먹으라고 했으면 아멘 해야지 베드로는 굉장히 건방집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베드로의 유대 의식, 즉 율법 사상이 복음의 사상으로 바꾸어지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아직 체질화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버릇이 있고, 습관이 있다면 얼른 고치는 것이 유익한 것입니다.
  그런데 고정관념을 못 버리는 것이 많습니다. 베드로가 지금 율법사상을 못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십자가의 마침이 되었고, 완성이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음으로 가는 시대인 것입니다.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이제는 그것들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므로 그것을 '부정하다, 속되다' 하면 안 됩니다.
  딤전4:4절을 보세요!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할/ 즉 이방인은 더럽다고 배척하지 말고 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라는 말입니다.

 

  ▶10절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는 후에' 왜 세 번이나 강조합니까? 반복은 강조를 의미하는 것이요, 세 번은 완전수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하나님의 확정된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방인과 유대인들을 구별 없이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확정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보여준 환상이 끝이 났습니다. 그와 동시에 가이사랴에서 고넬료가 보낸 하인 세 사람이 시몬 피장의 집 대문을 두드립니다. 지금 베드로가 이곳에 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1절 "마침 세 사람이 내 우거한 집 앞에 섰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라"
  그들이 문을 두드리면서 '이 집에 베드로란 분이 계십니까?' 찾고 있을 때 베드로는 '자기가 본 환상과 이들과 무슨 뜻이 있는가?'를 가만히 생각하고 있는데 성령 님께서 감동하시기를 그들을 따라가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깨닫습니까? 사람이 아무리 거역하여도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것은 기어코 성취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사실 베드로가 환상을 보았지만 그 환상이 이방인에게 전도하라는 것인 줄은 몰랐습니다.
  '이상한 일이다. 왜 하나님께서 부정한 동물과 깨끗한 동물을 썩어서 먹으라고 하셨을까?'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면서 '이 집에 시몬이란 사람이 있느냐? 우리가 그를 청하러 왔노라!'고 하니 베드로가 '주여! 제가 본 환상과 밖에 온 이방인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마음속에서 묵상하고 기도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이 사람들을 따라 가도록 명령하신 것입니다. /할/

 

  ▶12절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지금 이 말씀은 10장에서도 똑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넬료의 집에 가보았더니 이미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성령의 명령은 의심도 말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의심은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됩니다.
  ⑴불 신앙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모든 것이 의심스럽습니다.
  ⑵영적 상태가 불안정하기 때문입니다. 믿기는 믿는데 확신이 없는 상태 교회를 들락거리지만 신앙고백이 없는 상태가 곧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그것을 믿자니 의심스럽고 안 믿자니 불안한 상태입니다.
  약1:6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그리고 7절에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13절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고넬료가 체험한 것과 베드로가 체험한 것이 '일치하다.'는 것입니다.

 

  ▶14절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고넬료가 베드로에게 한 말입니다. '베드로를 불러오면 너의 집안 모든 사람에게 구원 얻을 말씀을 전해줄 것'이라고 천사가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고넬료의 신앙이 아주 귀합니다. 그는 천사가 전해준 말을 듣자마자 즉시 순종하여 베드로가 와서 '구원에 말씀을 전해줄 것'을 믿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것이 복된 소식이요 빅 뉴스요 생명의 소식입니다. 

 

  ▶15절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베드로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께서 고넬료와 그 집사람들에게 임하였다고 말합니다.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오순절날 베드로와 120명에게 임했던 그 성령의 역사가 예수를 믿을 수 없고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불결하고 짐승처럼 느껴졌던 그 이방인의 가정에도 똑 같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그 사건을 목격하면서 순간적으로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16절입니다.

 

  ▶16절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고넬료의 가족들이 성령 충만하여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것을 본 베드로는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이로 인해 베드로는 이 모든 일들을 주님께서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가 말씀을 증거 하는데 마치 마가 다락방에 일어난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가이사랴의 오순절'입니다.
  ⑴성령이 강림했습니다. 그때 말씀 듣는 각인에게 폭포수 같은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 사실은 베드로와 동행했던 할례자들이 보고 놀랐던 것입니다.
  ⑵방언이 터졌습니다. 방언을 주신 목적은 복음전하고 영으로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 하나님을 녹이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⑶세례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모세가 준 율법을 따라 할례를 행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푼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죽고 사는 예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할/ 이것은 불가항력의 은혜입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