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하나님은 품삯을 주시지 않고 은혜를 주신다. (마 20;1-16)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1. 2. 11:06

하나님은 품삯을 주시지 않고 은혜를 주신다.

 

                                                                                              마 20;1-16.


 

오늘 본문은 참으로 인상깊은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은 포도가 익어갈 때면 갑자기 태풍이 불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한 시간이라도 더 포도를 따야 하는 긴급한 상황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 배경을 깔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포도원을 가지고 있는 주인이 아침 일찍 일군들이 모이는 곳에 가서 하루에 1 데나리온 임금을 주기로 하고 품군을 데리고 왔습니다. 9시에 또 나가 보니 일군이 또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또 데려다가 일을 시켰습니다. 12시 3시 또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후 5시에 나가보니 일군이 또 있었습니다. 이제 6시에 해가 지니까 한 시간 정도 밖에 일할 시간이 남지 않았는 데 그 일군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냐?”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 이가 없습니다.”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그리고 한 시간만에 모든 일이 끝났습니다. 주인은 청지기에게 말했습니다.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그런데 5번째 들어와서 한 시간 겨우 일한 일군에게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지불하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온 일군은 자기에게는 더 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기에게도 한 데나리온만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불평하면서 말했습니다.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주인이 말했습니다.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그리고 예수님이 이 이야기의 총 결론을 이렇게 내리셨습니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오늘 본문은 은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많이 쓰여지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사랑, 믿음, 은혜, 예배, 기도 이런 단어들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는 원어로 카리스라고 합니다. 카리스라고 하는 말은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의미입니다.

무엇이 은혜입니까?

 

1. “왜?”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은혜입니다.

다음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모두 <은혜>입니다. 물음에 모두 <은혜>라고 대답하시기를 바랍니다.

왜 하나님은 성실한 에서를 선택하시지 않고 교활한 야곱을 선택하셨을 가요?

왜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는 음란하다고 선지자 한 명 보내시지 않고 멸망시키시고, 니느웨 성은 요나를 보내어 모두를 구원하시는 것일가요?

왜 하나님은 동키호테같은 삼손에게 그렇게 큰 힘을 주신 것일가요?

왜 하나님은 불륜 관계에서 태어난 솔로몬에게 그렇게 탁월한 지혜를 허락하셨을 가요?

왜 하나님은 수많은 어부들 가운데 베드로를 선택하셔서 수제자로 삼으신 것일가요?

왜 하나님은 하필이면 예수믿는 이들을 핍박하는 바울을 선택하셔서 최고의 선교사로 삼으신 것일가요?

욥과 아브라함은 동시대 사람입니다. 그런데 욥은 동방 최고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메시야 조상으로 욥을 선택하시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을 가요?

베드로도 야고보도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왜 야고보는 감옥에서 순교하게 하시고 베드로는 천사를 보내어 감옥에서 끌어내셨을 가요?

이새에게는 아들이 8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막내 아들 다윗을 왕으로 선택하셨을 가요?

 

본문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주인은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은 일군에게 12시간 일한 일군과 같은 임금 한 데나리온을 주었을 가요?

대답은 같이 “은혜”입니다.

불교의 고행, 힌두교의 업보, 유대교의 율법, 이슬람교의 법전은 모두 자기 노력만큼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은 은혜의 종교입니다.

얼마 전에 뉴욕 타임즈에서 일본인 범죄에 대하여 분석한 결과를 보도하였습니다. 10만명 당 미국은 감옥에 가는 사람이 519명입니다. 200명중에 한 명이 감옥에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37명입니다. 그 이유를 기자가 분석하였습니다. 일본에서 살인죄로 15년 형을 받고 출옥한 사람을 인터뷰하였습니다. 감옥에 15년 있는 동안에 한 명도 면회온 사람이 없었습니다. 감옥에서 나오는 날 교도소 앞에 아내와 아들이 처음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아내와 아들이 말했습니다.

“절대로 우리 동네 근처에도 얼씬 하지 말아요.”

15년 감옥에 있는 동안 세 딸이 모두 결혼하였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만나주지도 않고 상대하여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울면도 말했습니다.

“손자, 손녀도 4명인 데 얼굴도 본 적이 없지요. 사진도 못 보았지요.”

철저히 율법적인 사회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범죄율이 낮다는 것입니다.

 

포드 자동차 회사는 직원들 등급이 정확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모두 27등급입니다. 평사원이 1 등급입니다. 대표이사가 27 등급입니다. 주자창을 무료로 사용하려면 9등급이 넘어야 합니다. 13 등급이 되면 책상이 창가쪽으로 배정받게 됩니다. 그리고 책상에 화분이 하나씩 놓여집니다. 그리고 16 등급부터는 화장실이 따로 있는 사무실이 배정됩니다.

이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댓가만큼 받는 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노력만큼 주어지는 임금은 은혜가 아닙니다. 한 시간 일하고 한 데나리온 받는 것이 은혜입니다.

 

미국의 흑인들은 백인들로부터 멸시를 받고 있습니다. 옛날에 종살이를 하였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흑인의 인권을 찾으려고 흑인 인권 운동을 하다가 멤피스에서 피살된 목사님이 마르틴 루터 킹이십니다.

그리고 흑인 운동가중에 말콤 엑스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흑인 문학 베스트 셀러 작가입니다. 말콤 엑스는 어려서부터 자기가 흑인이라는 사실에 상당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울을 보면서 자기 검은 얼굴을 볼 때마다 비관하였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비관하고 부모를 원망기도 하였습니다.

“왜 나는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검은 사람이 되었는가?”

하루는 세수비누로 하루 종일 검을 얼굴을 닦아 보기도 하였습니다. 얼굴을 희게 하여 보려고 무진장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허사였습니다. 아무리 닦고 닦아도 검은 피부는 희어지지 않았습니다. 비관하기도 하였습니다. 집안에 들어 앉아 아예 두문 불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를 영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자기를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무한한 값진 창조물이라는 사실이 깨달아졌습니다. 은혜받고 한 말이 있습니다.

<검정은 아름답다>(Black is beautiful.)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창조물은 모두가 아름다운 것입니다. 검은 피부도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니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는 처음으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하늘을 나르는 것처럼 기뻤습니다. 어깨에 두 날개를 단 것처럼 홀가분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는 그 동안 자기의 아팠던 경험을 되새기면서 글을 썼습니다. 그 글은 일약 베스트 셀러가 되었습니다.

왜 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2. "불구하고"가 은혜입니다.

하루종일 놀고 한 시간 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임금을 받았습니다. 한 시간 일군은 품삯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품삯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자격이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미안함에도 불구하고 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이 일군은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5시에 나가 보았습니다. 서성이는 일군을 모두 데리고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군은 이렇게 변명하였습니다.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 이가 없습니다.”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거짓말하였습니다. 거짓말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불구하고>가 은혜입니다.

 

어떤 의사가 아프리카의 어느 외진 마을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의료 선교사였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외국 유학을 하고 돌아와서 축산을 하는 인테리 총각이 있었습니다. 그와 언어가 통하기에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부농임에도 가난한 조국을 위해 일해야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는 독특한 결혼 풍습이 있었습니다. 청혼을 할 때 남자가 암소를 끌고 처녀의 집으로 갑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암소 받고, 딸 주세요!”

일등 신붓감에게는 암소 세 마리, 괜찮은 신붓감에게는 암소 두 마리, 그리고 보통 신붓감이라면 암소 한 마리로도 결혼을 승낙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의사는 이 청년이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어디론가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청혼을 하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몰고 나온 청혼 선물은 살찐 암소 아홉 마리였습니다. 그 마을에서는 암소 아홉 마리라면 당장이라도 부자의 반열에 드는 엄청난 재산이었습니다. 모두가 놀랐습니다. 도대체 그 청년이 찾고 있는 처녀가 누구인가 모두 궁금해 하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초비상이었습니다. 그 총각이 누구 집으로 가는 지 눈여겨 보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마을 촌장의 집을 지나 갔습니다. 그 마을에서 가장 부자인 농장의 주인집도, 마을의 학교 여선생님의 집도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걷더니 어느 허름한 집 앞에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는 그 집 노인에게 청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의 딸은 너무도 마르고 약해보이는 초라한 여자였습니다. 암소 한 마리로 청혼을 할 상대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런데 암소 아홉 마리를 가지고 가서 청혼을 하는 것을 보고 동네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습니다. 그 처녀가 마법으로 청년을 홀린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의료 선교사인 의사는 의료봉사를 마치고 본국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가끔 그 청년을 생각할 때마다 그 때 왜 아홉 마리의 소를 몰고 그 보잘 것 없는 처녀에게 청혼을 했는지 궁금해지곤 했습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났습니다.

휴가 차 다시 그 마을을 찾아갔습니다. 그 의사는 큰 사업가가 되어있는 옛날의 그 청년을 만났습니다.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의사는 그에게 청혼선물로는 과도하게 암소 아홉 마리를 건넨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웃을 뿐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궁금증이 더 해 갔습니다. 그 때 커피를 들고 한 여인이 들어왔습니다. 아름답고 우아한 한 흑인 여인이었습니다. 유창한 영어와 상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미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의사는 마음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아! 이 사람이 그때의 말라깽이 처녀 말고 또 다른 아내를 맞이했구나. 하긴 저 정도는 되어야 이 사람하고 어울리지.’

그 때 사업가가 천천히 말을 시작했습니다.

“선생님, 저 사람이 그 때 제가 청혼을 했던 그 여인입니다.”

의사의 놀란 모습을 보고 사업가는 말을 이었습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저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저 사람과의 결혼을 꿈꾸고 살아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마을에선 몇 마리의 암소를 받느냐가 여자들의 세계에선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저도 그런 관습을 무시 할 수가 없어서 암소를 몰고 갔습니다. 사실 제 아내는 한 마리의 암소면 충분히 혼인을 승낙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정말 사랑한 여인이 스스로 자기 자신의 가치를 한 마리의 암소 값에 한정하고 평생을 사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자신을 두 마리나 세 마리를 받았던 처녀들과 비교하면서 움츠려져 살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청혼 때 몇 마리의 암소를 받았느냐가 평생 동안 자기 가치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세 마리를 훨씬 뛰어넘는 아홉 마리를 생각해낸 것입니다. 결혼하고 나서 아내에게 공부를 하라고 말해준 적이 없습니다. 외모를 꾸미라고 요구한 적도 없습니다. 저는 있는 그대로의 아내를 사랑했습니다. 또 사랑한다고 이야기 해 주었을 뿐입니다. 처음에는 무척 놀라 하던 아내가 차츰 저의 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나에게 암소 아홉 마리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후로 아내는 ’암소 아홉 마리‘에 맞는 사람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아내는 더욱 건강해지고 아름다워져 갔습니다. 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아내를 사랑하지만, 이제 아내는 결혼 할 당시의 모습보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더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 수근 대던 동네 아낙들도 요즘은 제 아내의 밝은 미소를 사랑해 줍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최고의 가치를 부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면 자신에게 최고의 가치를 부여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암소 아홉 마리‘로 배운 인생의 교훈이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한 마리 정도 가격의 처녀에게 9 마리 소를 지불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3. "내 뜻대로"가 은혜입니다.

은혜의 세 번째 의미는 ‘내 뜻대’입니다. 주인이 말했습니다.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은혜란 절대 주권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뜻대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엿장수가 엿 가위를 일분에 몇 번 두드릴가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엿장수 마음대로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그 분 마음입니다. 그 분 뜻대로입니다.

 

우리 성막 쎄미나가 245기를 지났습니다. 그런데 166기 성막 쎄미나는 내장산에서 있었습니다. 전라도 목사님들이 성막 쎄미나를 내장산에서 하자고 하면서 나를 초청하였습니다. 쎄미나 장소가 가서 보니 내장산속에 있는 모텔이었습니다.

내장산에 장로님 한 분이 은혜 모텔을 세웠습니다. 모텔하면 음란이 연상됩니다. 더구나 유흥지 모텔이니까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모텔 이름을 은혜 모텔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만 받고 있었습니다. 사연을 들어 보았습니다. 5년 전에 위암 죽음을 선고받았습니다. 이제는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그런데 기도로 기적적으로 고침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는 죽기까지 유흥지에서 복음을 전하여야겠다고 깨달았습니다.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유흥지에 은혜 모텔을 만들어 놓고 기독교 행사만 유치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옛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연월일시(年月日時) 기유정(旣有定)인데 부생(浮生)이 공자망(空自忙)이라.>

(태어난 사주팔자가 이미 정해져 있는 데 인생들이 그 것을 모르고 공연히 그 것도 모르고 바쁘게 뛰어 다닌다.)

 

팔자가 정해져 있으면 변화시킬 수 없다는 말입니다. 팔자 소관이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노력하여도 팔자를 넘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팔자를 바꿀 수 있는 비법이 6가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 적선(積善)

좋은 일을 많이 하면 팔자를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자녀들 팔자가 바뀌고 축복이 임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500년 명문가를 보면 좋은 일, 선한 일을 많이 한 가문이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2) 눈밝은 스승.

좋은 스승을 만나면 운명이 바뀌어지고, 팔자를 고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조상들의 이론입니다.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영통한 스승의 가르침을 잘 받아 나가면 팔자를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부모들은 자녀들이 좋은 스승을 만나게 하여 달라고 보통 100일 기도를 드리곤 하였습니다. 기도가 하늘에 사무치면 자녀가 좋은 스승을 만나 팔자가 바뀌었습니다.

 

(3) 명상.

하루에 100분정도씩 매일 명상을 하면 팔자를 능히 바꿀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기도입니다.

 

(4) 음택(陰宅)이나 양택(陽宅)

명당 자리에 음택(陰宅) 묘지를 잘 쓰거나, 양택(陽宅) 양지바른 곳에 집터를 잘 선택하여 살면 팔자를 고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5) 독서

책을 많이 읽으면 지혜가 생겨서 팔자를 고칠 수 있습니다. 안 좋은 일이 있을 수록 밖으로 나가 다니지 말고 집안에 앉아 책을 많이 읽으면 운명, 팔자를 고칠 수 있습니다.

 

(6) 명리(命理)

자기 자신을 잘 알아서 재물복이 없는 사람은 사업을 하지 말고 취직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의 팔자를 고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자기 운명과 팔자를 고칠 수 있는 것이라고 옛 조상들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들이 자기 운명을 바꾸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모두가 변하게 됩니다.

 

아일랜드 코크라는 곳에서 생긴 사건입니다. 빌딩 4층 창문에서 한 사람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밑에서 일하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순간 모두가 이리 저리 황급하게 피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4층에서 일하던 사람의 발판이 삐끗하면서 그 사람이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당황한 이들이 모두 몸을 피하며 놀라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명이 꼼짝 않고 서서 그 사람이 떨어지는 방향을 응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달려가서 그 사람을 받았습니다. 순간 그 사람의 뼈가 부스러지면서 평생 불구가 되었습니다. 떨어진 이는 평생 자기를 받아주고 불구가 된 그 사람을 돌보아 주었다고 합니다. 둘 다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자기를 사랑하여 준 이에게 일생 관심을 두고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신 분이십니다. 그 분을 위하여 살아가겠다고 그 분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은혜받은 자의 자세입니다.

 

마지막으로 은혜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올해 80세가 되신 임 막덕 권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는 6.25 때 황해도 옹진에서 인천으로 피난 내려왔습니다. 여자의 몸으로 아들 둘과 생계를 이어 나가기도 어려웠습니다. 힘도 없고, 가진 것도 없었습니다. 의지할 만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은혜 체험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보따리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보따리 속에 항상 전도지를 가지고 다니며 발길이 닿는대로 전도를 하였습니다.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전도를 하였습니다. 어린이들에게는 복음 전하는 목사가 되라고 일렀습니다. 전방 포부대가 떠난 자리에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권사님은 대포알 껍데기를 매달아 놓고 종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평생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고 헌신했습니다. 그가 모은 돈으로 지하 1층, 지상 4층 총 767평의 성전 건축을 하게 되었습니다. 돈을 벌어 그 교회만 길렀습니다. 그 교회에서 12명의 목회자를 배출하였습니다. 그 동안 권사님의 자손 중에 목사와 장로, 의사 등 축복받은 일꾼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약하고 가난한 권사님에게 축복을 부어 주시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큰 감동과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은혜는 축복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1. “왜?”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은혜입니다.

2. "불구하고"가 은혜입니다.

3. "내 뜻대로"가 은혜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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