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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기도는 오늘도 기적이 일어납니다! (막 11:20-25)
상어는 바다의 제왕입니다. 바다 생명체 중에 최강자이고 최상위 포식자입니다. 그래서 바다 생명체들은 모두 상어를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상어는 치명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유독 상어만 부레가 없습니다. 물고기가 물 속에서 생존하려면 반드시 부레가 있어야 합니다. 부레가 있어야 물 속에 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레가 없는 상어는 쉬지 않고 헤엄을 쳐야합니다. 그래야 물에 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상어는 참 불쌍한 동물입니다. 계속 움직여야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계속 움직이다보니 상어는 바다 동물 중 가장 힘이 센 동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다를 호령하는 바다의 절대 강자가 된 것입니다. /할/ 우리 주님의 백성들이 그렇습니다. 상어가 계속 헤엄쳐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은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상어가 가만히 있으면 가라앉고 마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하지 않고 쉬고 있으면 이 세상 풍조에 휩쓸려버리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상어가 가라앉지 않고 계속 움직일 때 상어 본연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계속 기도할 때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상어가 계속 움직이다보니 힘이 강해져 강자가 된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계속 기도하면 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영적 강자가 됩니다. /믿/ 지난 주 설교 본문이 단6:10절입니다. 다 잊어버렸죠? 잊어버린 것도 감사합니다. 그래야 제가 설교를 편안히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할/ 그런데 다니엘서를 보면 다니엘은 마치 상어가 쉬지 않고 헤엄을 치는 것처럼 쉬지 않고 기도했음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하루에 세 번씩 창문을 열어놓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삶의 위기 앞에서도 그는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의 정적들이 다니엘의 이 기도 습관을 공격의 수단으로 이용한 것입니다. 다니엘의 정적들이 아무리 다니엘의 약점을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었는데 오직 유일한 약점 아닌 약점이 있다면 바로 '이방 땅에서도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정적들이 왕을 찾아가 왕을 신으로 떠받들면서 왕 이외의 다른 신에게 절하는 것을 금하는 그런 법령을 만들었습니다. 이 법으로 다니엘을 궁지에 몰아넣으려 한 것입니다. 물론 다니엘은 당시 정치 지도자였기에 이 법을 소상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법을 어기면 어떻게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법조차 다니엘의 기도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단6:10절에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그들이 만든 법을 어겨서 법의 처벌을 받는 한이 있어도 기도를 쉴 수는 없다는 그의 신앙의 결단입니다. 그래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그 기도가 우리와는 다릅니다. 이런 상황이면 다니엘은 구원해 달라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법을 어겨가며 기도를 드리니까 하나님께서 발각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만일 발각된다 해도 하나님께서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저 감사만 했습니다. 무엇을 감사했을까요? 이방 땅에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었음에 감사했습니다. 또 기도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기도할 수 있는 믿음에 감사했습니다. 만일 기도하다 발각되어 죽더라도 그것이 순교니 순교할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할/ 이런 기도가 믿음의 기도인 줄 믿습니다. /아멘!/ ◀제목 소개!▶
기도가 축복입니다. 기도가 능력입니다. 기도는 응답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기도는 임신이다.'라고 임신부에 비교했습니다. 임신하면 달이 차면 분명히 아이는 태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도해 놓으면 응답으로 역사해 주십니다. /아멘!/ ▶기도에 대한 이런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마무리되려는 시점인 1945년 4월 12일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미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갑자기 서거한 것입니다. 탁월한 지도력으로 이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던 장본인이기에 미국과 서방세계는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그런데 가장 크게 놀란 사람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루즈벨트 뒤를 이어야 할 부통령 '해리 트루먼'이었습니다. 그는 시골이라 할 수 있는 미주리주 출신으로 경력도 미천하고 아직 능력도 검증되지 않은 그런 상태였습니다. 서거한 루즈벨트는 경제 대공황을 이겨냈고, 역사상 처음으로 세 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됐고 당시 이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이런 신화 같은 존재였던 루즈벨트를 대신해서 대통령직을 수행해야 했던 트루먼은 두려워 떨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취임 직후 기자들이 취임 소감과 국민들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 때 트루먼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대통령이 서거한 순간, 하늘의 달과 별, 모든 행성이 나를 향해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 만약에 일생에 한번이라도 기도해 본 일이 있다면, 지금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이렇게 트루먼은 자기 앞에 놓여 진 일생일대의 중요한 순간을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놀라운 도우심으로 모두의 우려를 불식시키며 성공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1952년 '국가 기도의 날'을 법으로 제정하며 온 국민이 나라를 위해 함께 기도하게 했습니다. 그는 국가 통치의 중대사를 향해 기도로 출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기도로 시작하면 시작을 성공적으로 잘 해 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중대한 일을 앞두고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결국 기도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①오늘 본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믿음과 기도'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예수께서 베다니에서 아침 일찍 예루살렘으로 가시다가 열매가 없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그 유명한 사건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이 다 보는 앞에서 '지금부터 영원히 사람들이 너에게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고 하시니 제자들은 무심코 그 이야기를 듣고 그 자리를 떠나갔습니다. 이튿날 또다시 예루살렘에서 나와 베다니를 지나가는데 베드로가 보니까 어제 예수님이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바싹 말라버렸습니다. 그래서 '주님, 주님이 어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고 하자, 예수께서 믿음과 기도에 대한 위대한 교훈을 22-25절까지 주시고 계십니다. /할/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 아들이 무슨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다고 그렇게 화를 내셔서 무화과를 저주했느냐?'고 말할 사람도 있는데, 예수님이 그 말을 하신 것은 제자들에게 믿음에 대한 법칙을 실물 교육을 시키신 것입니다. /할/
②믿음의 사람들의 기도 생활도 중요하지만, 언어생활도 매우 중요합니다. ⑴'할 수 있다'는 말이 행복을 만듭니다.
마16:19절에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사람의 말은 무엇이든지 맬 수도 있고 풀 수도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민14:28절에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할 수 있어, 하나님이 도우신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하는 말을 듣고 하나님께서 들으신 대로 도와주신다는 말입니다. /할/ 우리가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 성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 말씀을 믿고 외치십시오! 그리하면 주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그대로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 드릴 때에도 믿음으로 구하는 것이 중요한 기도 응답의 요건입니다. 하나님은 '안 된다, 못한다, 어렵다, 힘들다'고 한 열 명의 정탐꾼과 그 지파들에게 진노하시고 멸하셨습니다. ⑵'될 것이다'라는 말이 행복을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룰 것이요, 네 이름이 존귀하게 될 것이요, 축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라는 will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일평생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붙들고 살았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나는 사람마다 '될 것이다'라는 말을 주시기 바랍니다. 인정하는 곳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람은 인정을 받을 때 행복을 느끼고 성공으로 나아가는 힘이 됩니다. /할/ ⑶격려의 말이 행복을 만듭니다.
지금 사람들은 모두 지쳐 있고 피곤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는 격려의 말이 필요합니다.
또 칭찬의 말이 행복을 만듭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답니다. 칭찬은 윤활유와 같습니다. 기계는 윤활유가 있어서 소리나지 않고 잘 돌아가는 것처럼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칭찬이라는 윤활유가 있을 때 아주 부드럽고 평화로워지고 화목하게 되어집니다. /할/ ⑷감사의 말이 행복을 만듭니다.
감사를 잊어버릴 때 행복도 잃어버리고 성공도 잃어버립니다. 감사를 잊지 않으면 인생에는 향기로운 꽃이 되고 축복의 나비가 춤을 춥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생각지 않고 한, 두 가지의 어려움이 오면 불평할 때가 많습니다. 이 원망이 실패를 만드는 사슬이기 때문에 원망을 내 입술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인생을 묶어 주는 저주의 사슬이 풀어집니다. 감사는 행복을 만드는 언어요, 성공을 만드는 말입니다. 문제 속에서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과 성공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⑸하나님의 말씀이 행복을 만듭니다.
마4:4절에서 우리 주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시119:105)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을 살리고 우리의 심령을 살려 행복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아멘!/
③기도의 손서도 중요합니다. ⑴마음의 문을 열고 찬양하십시오!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입니다. 가사를 상고하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섭리를 기억하면서, 그리고 항상 보호하시고 함께 하시는 것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⑵자복하고 통회하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못하고 지키지 못하고 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회계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 속에 행여나 품고 있을 죄악된 생각도 내려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시66:18절에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요일1:9절에서도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솔직히 '나는 죄인입니다. 죄를 지었으니 주님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고백하면 주님께서 그 보혈의 피로 깨끗이 씻어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⑶감사의 기도가 나와야 합니다.
시50:14-15절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할/ 바울은 엡5:20-21절에서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감사하라'는 말에 '범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으면 우리는 왠지 모르게 부담을 느낍니다. 감사하라는 말 앞에 '항상'이라는 수식어가 있으면 기가 죽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범사'라는 말은 어떤 형편에 있든지, 어떤 일을 당하든지 무조건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이름 때문에 우리가 복을 받았습니다. 오늘도 예수의 이름으로 역사가 일어납니다. 히13: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은혜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의 이름의 은혜를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은혜를 알아야 감사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나의 생명의 구세주입니다. 그 예수 안에 회복이 있고, 변화가 있습니다. 가끔 보면 은혜를 오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병에서 낫고, 문제가 풀리고, 원하던 것을 얻는 것만 은혜인 줄 압니다. 물론 그것도 은혜이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얻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존재가 되는 것'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짜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선한 열매를 많이 맺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존재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아멘!/ ⑷남을 위한 중보기도가 더 큰 능력입니다.
딤전2:1-3절에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할/ 중보기도란 자기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웃과 교회, 나라와 민족과 세계 선교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 때 세운 교회입니다. 그리고 3년이라는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체류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던 바울의 체취가 가장 깊게 남아있던 그런 교회입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이제 남겨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에베소 교회에 몇 가지 꼭 필요한 교훈을 전하기 위해 붓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보내진 편지가 에베소서입니다. 그 중에 엡1:15절 이하가 바울의 에베소 교회를 위한 중보기도가 나옵니다. 옥중에 갇힌 터라 바울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기도 밖에 없어서 에베소 교회를 위한 중보기도를 편지에 담아서 선물로 보냈습니다. 그렇습니다. 중보기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누구에겐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 안에 우리의 마음이 가득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들인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그렇다면 중보기도가 최고의 선물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답을 출17장 사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딤이라는 곳에서 아말렉과 출애굽 이후 첫 번째 전쟁을 치르게 됐습니다. 아말렉은 이곳이 홈그라운드입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 사막 전투에 잔뼈가 굵은 전사들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430년 동안 노예로 부역만 하던 사람들입니다. 전쟁을 위해 훈련을 받아본 일이 없습니다. 전쟁을 해 본 경험도 없습니다. 게다가 사막에서의 전쟁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지도자 모세는 이런 상황 속에서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를 앞장 세워 이스라엘 백성을 전쟁에 내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르비딤 산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저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두 손들고 중보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광경이 펼쳐집니다. 모세가 두 손들고 기도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적군을 밀어냅니다. 그러나 힘이 들어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 백성이 적군에게 밀립니다. 다시 말해서 모세가 힘있게 중보기도하면 전쟁에서 승리하지만 모세가 중보기도를 쉬면 전쟁에서 패하게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중보기도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 지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전쟁의 승리는 바로 중보기도에 의해 결정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보기도가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중보기도는 우리 기도하는 사람들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선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시도록 부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돈보다 귀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줄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귀합니다. 그래서 최고의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마18:19-20절에서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아멘!/ ⑸자신을 위한 간절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이 순서가 보통 맨 먼저 시작합니다.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그러나 성숙한 신앙인의 기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큰 교회 목사님이 설교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번은 어떤 집사님이 암에 걸렸는데 그분을 위해 기도해 주면서 물어봤답니다. '얼마동안 기도했습니까?' '5년 동안 매일 10시간 정도씩 기도했습니다.' '어떤 것을 기도했느냐'고 물어봤더니 '자기 가족에 대한 기도만 한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이 그 집사님에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미성숙한 기도입니다. 이제부터는 성숙한 기도를 하십시오. 성숙한 기도는 먼저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영적인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또 철저히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중보기도도 하시기 바랍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세계선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 기도가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한지 14일만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방언이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암 덩어리가 다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할/ 그 집사님이 하는 말이 자신이 암에 걸려 몇년동안 가족만을 위해서 기도할 때는 응답이 없었는데 기도의 내용을 바꾼 후에 응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큰 응답을 받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가 하나님이 응답이 떨어집니다. 여러분, 하나님 뜻대로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그렇다면 간절한 기도는 어떤 기도인가?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매달리는 기도입니다. 왕상18장에 갈멜산 대결에서 850:1로 승리한 뒤 '비가 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 위해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 기도한 엘리야의 기도가 간절한 기도입니다. 왕상18:42절에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가 간절한 기도입니다. 제가 한 번 엘리야 처럼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대보았습니다. 아무리 당겨서 무릎 사이로 가까이 하려고 해도 무릎 앞 10센티 이하로 가까이 할 수 없었습니다. 엘리야는 앞이마를 무릎 사이까지 당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자세는 서커스 단원들이나 기예 전문가들이나 가능합니다. 그리고 기계체조선수들이나 요가로 단련된 사람들이나 가능합니다. 보통 신체구조를 가진 사람들로는 불가능한 자세입니다. 그러면 엘리야는 어떻게 이런 자세가 가능했을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오랜 기도의 습관 때문입니다. 오랜 세월 얼굴을 땅에 대고 무릎 꿇고 기도하다가 이루어진 자세입니다. 여기서 엘리야의 기도의 내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멘!/ ▶학자들 역시 이 자세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대체로 이 자세에서 세 가지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첫째는 겸손입니다. 땅에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정말 하나님 앞에 가장 낮은 자리에서 기도를 드렸다는 것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창18:27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라고 겸손하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의 응답은 겸손한 자에게 옵니다. 잠22:4절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둘째는 간절함입니다. 땅에 엎드렸다는 것은 꼭 이루어주시기를 간구하는 간절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셋째는 기도의 깊이입니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넣었다는 것은 모든 외부의 시선과 소리를 차단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여 기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은밀한 기도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엘리야처럼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모세도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다윗도, 솔로몬도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다니엘도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이런 간절한 기도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영국의 종교개혁자 '존 웨슬리'는 '하나님의 나라는 무릎으로 올라간다'고 했고, '아브라함 링컨'은 '나는 여러 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주위의 모든 것이 감당하기에 너무 벅찰 때 나는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할/ 권세를 쥔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돈 많은 재벌이라 할지라도,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신학자 'R. A. 토레이' 박사는 '바쁘다고 기도를 못하면, 기도를 안 한만큼 손해를 본다.'고 말했습니다. 기도는 곧 축복의 열쇠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안 하면 안한 것만큼 손해를 보게 됩니다. /믿/ 그렇습니다. 기도가 축복이고 능력이고 응답이고 기적입니다. /할/ ▶오래 전 신앙잡지 '가이드 포스트'(2001년 1월 호)에 한국도자기의 김동수 회장에 관한 글이 실렸습니다. 글의 제목이 '실패는 없다'입니다. 이분은 가업으로 도자기 업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런데 빚이 늘어나서 매출액의 40%를 이자로 물어야 했습니다. 사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빚이 무려 300억 원이나 됐습니다. 종업원 월급도 3개월이나 밀렸습니다. 이제 공장을 다 처분한다고 해도 전체 빚의 20% 밖에 갚을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 절망적인 순간에 이분이 하나님을 바라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이 말씀을 하루에도 수백 번 수천 번 암송하면서 하나님 앞으로 달려나갔습니다.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서원 기도를 드렸습니다. '빚만 갚게 해 주시면 제 생명을 드려서 충성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셔서 드디어 1973년에 모든 빚을 다 갚게 되었습니다. 이제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 생각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기업을 일구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제 한국도자기는 세계 5대 도자기 메이커가 되었습니다. 본 차이나 분야에서는 세계 3위가 되었습니다. 국내 최초로 '국제품질인증'을 받았고 이제 부채 0%의 견실한 회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의 일을 힘있게 하는 기업인이 되셨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적극적인 믿음이 필요합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나는 능력이 없지만 내게 능력 주시는 자이신 주님을 바라보고 그분 앞으로 달려나가야 합니다. 달려나가는 행위가 바로 기도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힘을 주십니다. 그 힘을 깨닫는 순간 나도 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마음을 갖게 됩니다. 또 주님께서 계속 내게 말씀해 주십니다.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라' 그 말씀에 순종해서 최선을 다해서 달려가면 결국 문제가 해결됩니다. /믿/ ④중요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매사가 믿음과 신뢰와 신용 없이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상거래도 믿음이 있어야 성립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아무것도 성립이 안됩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가장 기뻐하십니다(히11:6). 본문에서 응답 받는 기도의 네 가지의 깊은 교훈이 있습니다. /할/
⑴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중요한 말씀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으라'(22절)는 말씀과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23)는 말씀과 '무엇이던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24)는 말씀입니다. 이상의 말씀들을 한데 묶어 정리하면, '믿으면 된다는 것이며, 할 수 있다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참 어려운 말씀인데도 쉽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보다 막연한 말이 없습니다. 인간의 지식과 노력으로는 이 말의 뜻을 바로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무화과나무가 저주 한 마디에 말라버리는 것을 보고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제자들이 어떻게 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주님이 주신 대답이 바로 '하나님은 믿으라'입니다. 우리 앞에 어떻게 할 바를 알지 못하는 문제와 갈등이 직면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대의 답은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아멘!/ 성경에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을 강조합니다. 주님은 요14:1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에 제자들이 불안과 두려움과 근심에 쌓여 있었지만 그때 주님이 하신 첫 번째 말씀이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음성이 최고의 답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은 '하나님에 의하여 믿음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돈으로 사는 상품이 아닙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에 의하여 믿음을 가지라는 이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을 받으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믿음도 우리에게 올 수 없습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기 때문에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엡2:8절에 '믿음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이 믿음은 '성공이냐 실패냐?'라는 차원이 아닙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느냐 불행하게 하느냐'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믿으면 영생이요 믿지 않으면 멸망'이라고 했습니다. /할/ 그러나 이 믿음에 대해서 우리는 그런 심각함을 가지고 응답하지 않습니다. 절대 절명의 과제가 믿음인데도 다만 내가 마음의 평안과 사업의 확장을 위해서만 믿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믿음이 아닙니다. 오늘 이 시간 목숨을 내놓고 열광하는 곳이 있습니다. 특히 주일날 그런 곳이 있는데 그곳은 경마장입니다. 경마장에는 목숨을 걸고 경마에 도박을 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경마 도박에 걸린 사람의 말을 들어보니 경마도박을 위해 가족도 잊어버리고 동생의 결혼식에도 가지 않을 정도라고 합니다. 여러분, 믿음은 그 정도의 돈을 따느냐 못 따느냐의 차원이 아닙니다. 믿으면 영생이고 믿지 않으면 멸망입니다. 이와 같은 절대 절명의 사건이 믿음인데도 인간들은 믿음에 대한 반응을 부정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 '하나님을 믿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믿느냐'에 따라 신관과 신앙이 결정됩니다. '말씀 한 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한나의 고백처럼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주실 수도 있고, 주신 것을 다시 취하실 수도 있는 하나님이시며,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는 하나님, 즉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면, 그 신앙은 철저하고 확실한 신앙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확신이 중요합니다. 구원의 확신, 응답의 확신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⑵의심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의심한다는 말의 본래 뜻은 '판단이 엇갈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류 최초로 의심을 품은 사람은 아담의 아내 하와였습니다. 어느 날 뱀이 속삭인 말 때문에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의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옳은가 뱀의 말이 옳은가 판단이 엇갈리기 시작했고,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했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 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고 말씀하시자 도마는 그 말씀 한마디에 자신이 지녔던 모던 의심을 버리고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요20:28)라고 고백했습니다. /할/ ▶본문에서 이제 주님은 제자들에게 한 단계 더 구체적인 믿음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23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즉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은 원론이므로 주님은 이제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먼저 알고 믿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천지창조는 믿고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연구해보고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고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알고 믿으려면 십자가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사실을 믿고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도 믿고 알아야 합니다. 이해하고 알고 믿으려는 것은 지식이나 헬라철학의 차원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할/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믿음은 상당히 구체적인 대상이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라고 했는데 여기에 두 가지 주제가 아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첫 주제는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으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는 그것이 없다면 내가 믿을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내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믿으라는 것입니다. /할/ 믿음의 객체입니다. 믿음은 내가 믿어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믿을 근거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이 믿음의 객체요. 믿음의 근거입니다. /믿/아멘!/ 두 번째는 '마음에 의심치 않으면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 그 믿음이 성립됩니다. 의심이라는 병은 세상에 어떤 병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무서운 병입니다. 믿음은 의심을 극복하고 갈등을 극복하고 고난을 극복하면서 강한 믿음으로 자라간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의 신앙생활 속에 갈등이 없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갈등을 극복함으로서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의 훈련입니다. 고난과 어려운 난관이 신앙의 훈련입니다. '카일라일'은 길을 가다가 걸림돌을 만나면, 약자는 걸림돌로 보고 넘어지지만, 강자는 그것을 디딤돌로 여기고 올라선다고 했습니다. ▶테니스 교습을 받아보신 분은 잘 알겠지만 처음에는 코치가 초보자가 치기 쉽게 볼을 줍니다. 그러나 항상 테니스를 그렇게 쉽게 친다면 실력이 늘지 않습니다. 한 두, 세 달 지나면 코치가 공을 치기 어렵게 줍니다. 두 발, 세 발 움직여서 볼을 쳐야 합니다. 그 공을 칠 수 있는 자리로 실력이 늘어가야 테니스가 재미있습니다. 코치가 주는 치기 쉬운 공만치는 사람은 테니스의 재미를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 믿음이 내게 치기 쉬운 교습 초보자 같은 신앙생활의 자세에 머물면 안됩니다. 어려운 공도 받아낼 줄 아는 테니스 선수처럼 우리 신앙생활에 제법 힘든 갈등이나 힘든 십자가도 거뜬히 질 수 있는 믿음으로 나아가야만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그대로 이루어는 축복을 체험합니다. /아멘!/ 그것은 의심을 극복하는 믿음에서 가능합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변치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성경진리도 일획일 점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믿음과 신앙생활에 갈등이 일어납니까? 믿는 우리의 자세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할/ 약16:7절에서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던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했고, 8절에는 이런 사람을 가리켜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갈팡질팡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할/
⑶믿음의 기도는 '그대로 되니라'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짧은 본문에 '그대로 되리라'는 말씀이 두 번이나 나옵니다. 23절에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리고 24절에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런데 본문에 나온 내용은 황당한 데가 있습니다. 멀쩡하게 살아있던 무화과나무가 예수님의 저주 한 마디로 뿌리째 말랐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얘기는 더 놀랍고 황당합니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이게 말이 되는 얘기입니까? 그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 중에 아무도 그 말을 곧이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이런 극단적인 예를 들어가면서 기도를 가르쳤을까요? 도대체 기도가 뭐 길래? 왜 예수님은 지나가던 소도 웃을 얘기를 하면서 그렇게 극단적으로 기도를 가르쳐야만 했을까요? 이제 사흘이 지나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그리고 이 땅을 떠나야 됩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고아처럼 이 세상에 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무엇으로 이 험악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제자들의 손에 뭔가 쥐어줘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인생살이에서 최고의 무기인 '믿음과 기도'를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할/ 여기서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은 기도의 능력을 보여준 실제'입니다. 그리고 기도란 '산들을 명하여 바다에 던져져라' 할지라도 그대로 되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충격적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기도의 능력은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의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그런데 우리가 본문에서 주목해야 될 중요한 말씀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는 24절 말씀입니다. '믿고 기도하는 순간 이미 응답 받은 것으로 믿어야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할/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고 했습니다. 나는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 있으면 나도 할 수 있습니다. 초월적인 능력과 창조적인 능력을 소유하신 주님의 능력을 공급받는다면 나도 할 수 있습니다. /할/
⑷용서가 능력입니다(25).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는데 우리가 이웃을 용서 안 하면 하나님이 우리 죄도 용서 안 해 주십니다. 우리 모두는 용서받은 의인입니다. 눅17:3-4절에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면 사람들과의 관계도 회복되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응답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미움은 마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내가 남을 용서해야 하나님도 나를 용서하시고 내가 남을 축복해야 하나님도 나를 축복하시고 내가 남을 사랑해야 하나님도 나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믿/
그래서 마5:23절에 보면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와 맺힌 것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웃과 꼬인 것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선 먼저 풀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신 답니다. /아멘!/ (2011년 11월 27일 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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