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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은 목사님 신앙간증(2004.05.08)

성령충만땅에천국 2012. 1. 16. 07:44

손성은 목사님 신앙간증(2004.05.08)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Gal.2:20-3:5)

 

1. 가짜중생

저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면서 자랐습니다.

주일학교생활도 열심히 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사춘기가 되면서 이런 생각에 회의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하는 것도

목사의 아들로 자라면서 받은 교육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반항아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겉모양으로는 아직 모범적인 학생이었지만, 속으로는,  그리고 부모님의 눈을 피해서 소위 비행청소년들과도 섞여서 밤거리를 휘젓고 다니곤 했었습니다.

아버지의 설교의 내용에 대해서 반대했고, 오히려 다른 이웃교회에 출석하기도 했었습니다.

 청바지 끝을 찢어서 길을 쓸듯이 다녔던 유행을 따르고, 때론 머리를 빡빡 밀고는 회중들 맨 앞에 앉아있곤 했습니다

(그 당시 머리를 짧게 하긴 했어도, 면도칼로 머리를 밀듯이 깎았던 것은 흔치 않던 시절입니다).

그러던 어느 해였습니다. 제가 결핵을 앓으면서 고등학교를 휴학하고, 그때 마침 저의 큰 누님이 돌아가시던 해였습니다

(이 일은 민족사의 고통과도 관계된 일이지만, 저의 현재의 신학적 노정에도 아주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삶 그 자체에 더욱 비감해졌던 저는, 자살이란 것을 생각하면서 매일을 지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비몽사몽간에 저는 까만 밤하늘에 별들이 깜빡이면서

아득한 정신 가운데 하나님을 찾으면서 부르짖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그러다가 문득 정신이 드는데, 어머니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고 형제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엉금엉금 기어서는 형제들이 자고 있는 방을 드르륵 열었습니다.

죽어있는 듯이 누워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부시시 눈을 뜨고는 일어나서 저를 보고는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이냐면서 의아해 했습니다.

그때서야 그들이 자고 있었던 것이지 죽은 것이 아닌 것을 발견하고는

저는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누워있는 것이 마치 죽어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은, 제가 연탄가스에 취해서 자고 있던 방에서 기어나와 마당에 누워서 차가운 땅기운에 정신을 차리고는

밤하늘을 보다가 형제들 방문을 열고는 그들을 깨웠던 것입니다.

 큰 소동이 벌어진 뒤에 다시 밤은 조용해 졌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제가 확신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제가 누구를 제일 먼저 생각해 내고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 나의 존재의 심층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란 의식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정양육이란 것이 나의 의식을 결정하는 가장 원초적인 것이라면, 그 밑바닥에 “어머니”가 있어야 하는데,

바로 “하나님”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론을 내린 것은,

내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이 “하나님”과 어쨌든 사이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고 근원적인 분임을 인정하기로 했었습니다.

정신적인 방황을 잠시 중단하고 일단 “하나님”을 믿기로 했었습니다.

그 당시로선 그것이 “참된” 믿음이었고, 참으로 하나님을 만난 것인 줄 알고 목사가 되기로 결심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믿음이 참으로 “참된 믿음”인 지에 대해서 심문하는 사람이 없었고,

오히려 외경스러운 눈치로 저의 얘기를 듣곤 했었습니다

(그 당시 저의 선친께서는 제가 ‘목사’되겠다고 했을 때에 그렇게 환영하는 기색이 아니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분명하게 깨달은 것은 한참 오랜 뒤의 일입니다).

물리학자가 되기로 했었던 진로를 바꿔서 심리학을 공부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좋은” 목사가 되기 위해선 사람들의 심리를 잘 이해해야 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2. 대학시절의 성령체험?

 

대학과정과 대학원과정에서 심리학을 공부했습니다. 참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교실에서 강의를 들을 때, 교재들과 참고자료들을 읽어갈 때 마치 그것은 설교시간과도 같았습니다. 아니, 논지도 분명하지 않은 설교보다도 더 많은 빛을 얻는 것 같았습니다.

 대학부에서는 회장이 되어서 열심히 교회봉사를 했습니다. 마침 교회의 대학부 부서를 담당하셨던 분은 그 당시로서는 고신교단 내에서 일찍부터 성령론과 평신도사역에 관심을 많이 가지셨던 분입니다. 그 분의 가르침에도 도전을 받았고, 또한 캠퍼스선교사역을 하는 어느 나이든 선배의 도전으로 나 자신이 과연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인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만족스러운 답변을 얻기까지 저는 개인적으로 성경공부교재들을 구하여서 독습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로서 SFC에는 지금과 같은 단계별교재가 없던 때였습니다. 네비게이토나 CCC 그리고 UBF교재 같은 것을 개인적으로 공부했습니다. 무언가 얻는 것이 있는 듯도 싶었습니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머리는 채워주는 듯도 싶었지만, 무언가 흡족하지 못했습니다. 그 무언가 흡족하지 못한 것이 막연하게나마 “성령”에 대한 체험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대학부에 지도하는 교역자의 성령을 강조하는 교육방식에 저항했습니다. 산기도회니, 고백식기도니, 여러 가지 스타일들을 도입해서 감성을 건드리는 식의 스타일에 왠지 저항감만 늘어났습니다. 그 분의 설교를 들으면 마음이 묘하게 움직이는데도 머리가 따라가지를 않았습니다. 설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나 자신을 스스로 설득해 보기 위해서라도 내 나름대로 성령(의 체험)에 관한 책들을 읽곤 했었습니다. 지방교회의 워치만 니의 책들도 깡그리 읽었습니다. 만족스럽지가 않았습니다. 논리적인 것 같기도 하면서도, 비약이 심하다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머리와 마음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 당시의 SFC에 대한 기억은, 솔직히, 별로입니다. 이 말은, 제 자신을 볼 때 그렇다는 말입니다. 동기들이나 선배, 혹은 후배들의 열심히 봉사하고 모이는 모습들을 보면서,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어떻게 저렇게도 잘 정리되어 있을까? 어떻게 저렇게도 자신이 넘치는 것 같을까?

이 말은 추억 속에 있는 그 SFC맨들의 모습을 보면서, 비아냥대는 말이 아니고, 진정으로 저는 저 자신이 그 당시 참 초라하게 여겨졌었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때로는 날카롭기만 하는 비판의식을 가지고, 그렇게 잘 정리되어 보이는 주변의 형제들, 혹은 자매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들을 뱉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런 모습으로 이것도 저것도 다 비판하면서 그렇게 비판하는 스스로를 즐기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런 저의 모습으로 마음이 많이 상했을 동기들이나, 선후배들의 모습을 되돌아 보면서, 여기, 정말 죄송했었다는 말씀, 정말, 어리석었던 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사과의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 아침 일찍 학교건물 뒤의 SFC모임터에 모여서 조용히 기도하던 그 순간들…. 금정산 산새가 좋아서 그랬을까요? 아침의 신선한 공기와 더불어 도란도란 기도하곤 했던 그 추억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될 것입니다. , 그때의 얼굴들은 지금 다 무엇을 하고 있을까?

 

각설하고….

 

머리와 가슴 사이에서 방황했었다고 했습니다. 마음에 무언가가 느껴지면 머리가 저항하고,  머리를 깨닫는 그 무엇이 마음에까지는 와 닿지를 않았습니다. 참 괴로왔습니다. 이것을 잊기 위해서 연애를 했고, 이것을 잊기 위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이것을 잊기 위해서 교회봉사를 했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으로 나의 “하나님 자녀 됨”을 스스로 확인하고 싶었던 셈입니다. 학교교정에는 자주 최루탄가스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일들이 빈번했고, 사회의 불의에 눈감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참여했던 총학생회활동도 겨우 한달 간….그리고...... 휴교령…. 그때에 인문사회대총학에서 결정했던 “자유의 벽”을 세우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그것은 총학총무였던 저의 아이디어였었습니다). 군사정권에 젊음을 희생당한 친구들을 생각하면 괴롭기만 했습니다.

한 편으로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희생당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참 괴롭기만 한 세월이었습니다. 신앙적으로는 머리와 가슴 사이를 방황했고,

사회적으로는 가정과 사회의 대의 사이에서 방황했었습니다.

돌파구는 없었는가? 지금 되돌아보면, 그런 돌파구를 저는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돌파구는, 바로, “성령체험”이라는 것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영적인 방황과 사회적인 방황 사이에서 압박해 오는 그 긴장을 해소시키기에는

“성령”은 나에게 참 기가 막히게 절묘한 “도피처”였습니다.

 

저는 저의 머리를 속이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니, 저 자신을 기만하기로 작정했다고나 할까요?

저의 감정이 가는 데까지 가도록 둬보자고 결심했습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나를 잡아주시리라”는 것이 저의 저 자신을 향한 변명이었습니다. 소위 성령의 체험이란 것을 추구해 가기 위해서 저 자신의 감정이 미치는 그 극에까지 가보자고 생각했었다는 것입니다. 머리로 따지지 말자, 계산하지 말자. 나 자신을 그냥 그대로 내버려주자……놀라운 체험이 뒤따라 왔습니다. 마치 약물을 마시고는 그 효과를 보는 것과도 같이…..몽롱함, 짜릿짜릿함, 쏟아지는 눈물, 그리고 그렇게 흘러나오는 눈물을 보면서, 또 다시 눈물은 흘러 나오고…..온 몸에 땀을 흘리며, 그 체험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긴 터널의 끝에 있는 듯한 그 “하나님”을 부르고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하나님! 나를 만나 주세요! 기도란 것을 할 때마다 그런 호소를 목청껏 질러대었더랬습니다. 일종의 함성이고 고함이고, 데모였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저는 그렇게 몰두해서 무언가 말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느끼고 있는 것 바로 그것이 “성령체험”이라고 단정했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체험 이외에 또 무엇을 “성령체험”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저는 당당해 졌습니다. “중생”에다가 “성령체험”까지 한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들을 만나도, 다른 신앙의 경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도, 어떤 부흥사, 어떤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도, 느긋하게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흐음….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도 다 체험해 보았노라는 식이었습니다.

 

아뿔싸!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줄도 모른 채로 나 자신을 속이고 있었던 때. 바로 그때가 저의 대학시절이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발견해 가는가?  뒤이어 설명되어질 것입니다.

 

 

3. 관념적 개혁주의?

 

중생했다고 믿었던 그 때의 일은 고등학교 때의 일이었습니다.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신학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부산대학에 입학했던 것은, 고신대학보다도 부산대학의 입학금이 쌌기 때문입니다.

목사의 집이었는데도, 목사되겠다는 아들을 신학대학에 보내지 못할 정도로 저의 집은 가난했었습니다.

이런 일은 대학을 졸업하면서도 벌어졌습니다. 서울대학원에 합격을 했지만 서울에까지 올라갈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습니다.

결국 군대를 먼저 가기로 결심하고 그 군대에서의 월급으로

서울생활과 첫 번째 학기 학비를 벌리라는 생각으로 공군학사장교로 지원했습니다.

군입대 이야기를 이렇게 하는 것은, 군대에서 발견하게 된 “개혁주의” 때문입니다.

군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사병들의 신앙생활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여유가 있는 대로 책들을 보았습니다.

그 당시 전공영역의 것을 포함한 영어원서들을 200여권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한글로 된 것들도 읽었습니다.

군생활을 통해서 강하게 기억나는 것은 다른 군생활에 대한 것이 아니고,

퇴근 이후에 그렇게 책을 읽었던 것입니다.

공군교육사령부의 정신전력교관실에 근무하게 된 것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었다고 여겨집니다.

 

그런 다양한 영역의 독서 중에서 개혁주의라는 것을 체계적으로 알고 싶었던 것을 나누고 싶습니다.

 SFC생활을 통해서 자주 들었던 것이 “개혁주의”였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는 강의들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귀에 익숙해진 “개혁주의”였지만,

나 자신의 것이라고 여길 수 없는 무언가 막연하고 무언가 모호한 구석들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옳은 얘기긴 한데, 과연 이 사회, 불의와 부패가 만연해 있는 이 사회를 향하여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이며 체계인가?

 군생활의 여유있는 바로 이 때를 이용해서, 그런 질문들에 나름대로 답을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읽어갔던 것이 그 당시 입수가능했던 개혁주의에 관한 책들이었습니다.

헨리 미터의 칼빈주의나, 카이퍼의 칼빈주의에 관한 강의를 번역한 것을 읽고,

이근삼목사의 칼빈주의문화관이나 안토니 후크마의 예정론에 대한 책들을 읽었습니다.

“칼빈”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면 어떻게든 입수해서 읽어보려고 했었습니다.

머리 속에서 더욱 분명하게 그려지는 “칼빈주의”에 대한 그림이 생겼습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이해되고 설명된다면,

이 사회와 교회의 대안이 될 것이라는 심증이 생겨났습니다.

저는 흥분했습니다. 대학생활 동안에 맛보았던

“성령체험”에 이런 칼빈주의”세계관과 철학”을 결합하게 되면,

말 그대로 “열정”칼빈주의가 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칼빈주의자들이 철학과 세계관에 대해서 조직적이고 철저한 논증을 하면서도

무언가 결함으로 여겨졌던 “성령체험”이 보충되는 그 신학적 이상이 머리속에 그려졌던 것입니다.

이런 이상이 앞으로 있게 될 목회의 꿈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서울대학원생활을 통해서

“심리학”영역에 대한 공부를 통한 전문적 지식과 결합이 된다면, 바로 누구에게 못지 않는 “목사”가 될 것이고,

“목회자”가 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목회적 야망과 비전이 알차게 영글어져 갔습니다.

누구 못지 않은 큰 야심을 품은 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자신감은 박살이 나고 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아니었습니다. 그 야심으로 대학원생활과 신학교생활을 거치고

전도사, 강도사, 목사로서 수련을 거치는 과정 중에도 이런 야심들이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다 이야기하는 것은, 저의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는 것이 될 것입니다.

생략하겠습니다.

단지, 하나,

그 마음 속에 해결되지 않는 질문 하나가 남아 있었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나의 마음 속에 가장 원초적인 하나님이 어떻게 나의 밖에 계신,

객관적으로 계신 그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는가?

다른 사람의 가장 원초적인 마음 속 깊이에도 다 나와 같이 하나님이 있는 것일까?

그들의 하나님과 나의 하나님이 어떻게 같은 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저의 하나님은 저 자신만의 하나님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심리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이런 심증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심리학을 더 이상 공부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것이 돌파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신학교에서 좀더 거룩하고 경건한 분위기에서 공부를 하면서 이 문제를 풀자고 생각했었습니다. 신학교에서의 공부와 교수님들에게서 이 답을 얻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4. 성공적인 목회수련?

 

열심히 신학공부를 했습니다. 열심히 교회봉사도 했었습니다. 이런 공부와 봉사로 객관적이고 영원하신 그 하나님을 무언가 깊이 체험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개인기도시간을 가지면서 기도를 했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듯 하다가도(“성령충만”의 순간이라고 여길 수 있었던) 곧장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허공에 대고는 하나님, 하나님 나를 진짜로 만나주세요 잡힐 듯이 만나주세요 고함을 치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주변사람들은 모두들 저를 믿음 좋은 사람인 줄 알아주었습니다. 교회의 맡은 부서들도 부흥했었습니다. 전도사(부산수영교회), 그 다음엔 강도사(부산부민교회)가 되고, 부목사(서울잠실중앙교회)가 되어서, 사역지를 옮겨 목회수련을 받았습니다. 더 좋은 목사가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좋은 목사가 될 것 같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속에는 이것만이 아닌데, 그 무언가 근본적인 그 무엇이 없는 것 같은 허전함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더욱 기도하는데 전념했고, 성경을 보려고 했었고, 교회봉사에 힘을 내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그 비어있는 그 무엇이 채워지는 것처럼 느껴졌었습니다. 하지만 곧, 스멀스멀 허전함이 다시 내 마음을 다시 밀려오곤 했었습니다. 나의 “성령체험”이 사실은 성령체험이 아니라, 일종의 감정일 수 있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면서도 그렇다고 인정하기가 싫었습니다. 나의 존재기반, 내 믿음의 기본이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나의 “중생”에 대해서도 얼핏얼핏 의문을 가졌더랬습니다. 그럴 때마다 머리를 흔들면서 그럴 리가 없다고 부인하곤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야, 나는 구원받았어…이런 의문은 단지 구원 이후에나 오게 되는 성숙의 과정에 있는 의문일 뿐이야…..

그렇게 스스로에게 답을 했고, 심리적인 확신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일종의 자기최면이었더랬습니다.

봉사와 수고와 헌신이 바로 이런 류의 자기확신을 갖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하지만, 잠자리 내 옆에는 저의 아내만 누워 있었던 것이 아니고, “허전함”이 기어들어와 나와 함께 베개를 베고 있었습니다.

 

목사안수를 받은 지 4년 저의 나이가 40이 되었던 때였습니다. 주변에서는 좋은 목사님이라고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던 때였습니다. 담임목사가 없는 중에 맡았던 수석부목사 활동 중에 오히려 교회가 부흥하게 되는 기이한(?) 일도 있었습니다. 교회행정, 설교 등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질 수도 있었습니다. 한다면 할 수 있겠다 그런 마음으로 청빙에 응할까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청빙들에 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근본적인 그 무엇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과연 기독교의 복음이 한국사회를 책임질 수 있는가 하는 것에 확신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엄청나게 부흥을 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지만,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참된 능력을 체험하지 못한 것 같았고, 사회의 여러 가지 지탄을 받는 범죄들 속에 소위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연루되어 있는 일들이 자주 폭로되기도 했었습니다. 한 개인을 변화시키는 복음만이 아니라 그 사회와 민족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이 무엇인 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야만 이 복음이야말로 당신과 당신의 가정, 그리고 나아가 이 사회를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외칠 수 있는 것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아서 목회를 하는 것보다 이것을 체험해 보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라고 여겨 졌습니다. 마침 몇 개인과 봉사하던 교회에서 저에게 유학의 기회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영국을 선택했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으로 개인과 사회, 문화를 변혁시키려고 했던 사람들이 있는 곳, 곧 청교도들의 나라로 여겼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은 많은 면에서 비기독교화 되어가는 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 흔적들은 남아 있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먼저 영어공부가 우선이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영어공부를 하면서, 올 소울즈교회(존스토목사 시무했던), 웨스트민스터 채플(로이드 존스목사 시무했던 ), 그리고 메트로폴리탄 타버너클(스펄존 목사가 시무했던 )을 방문하면서 무언가 들을 만한 것이 있는가 귀를 기울였습니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정확하게 모든 것을 다 알아 들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면, 그들 목사님들의 설교집들을 구해서 읽곤 했었습니다. 특별히 메트로 폴리탄 타버너클의 피터 마스터즈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회심의 모델”은 저에게 무척 충격적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현대인의 회심은 이전 청교도들의 회심, 나아가서 성경적인 회심과는 다른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나 자신에게 적용하지를 못했습니다. 단지 참 좋은 이야기다. 나중 한국교회에 소개하면 좋겠다 하는 정도였습니다. 다른 모든 설교들 또한 그러했습니다. 여전히 저의 마음은 비어 있었고, 허전함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이 만져주시기 전까지는 어떤 좋은 논리와 이론, 그리고 설교들이 그저 허공을 치는 소리일 뿐입니다. 비록 그것들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들이 각성되어지고 준비되어져 간다곤 하더라도. IMF가 터지고….빛이 자꾸만 어두워져 가는 것 같았습니다.

 

 

5. 가슴에 벼락을 맞고서야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1999 7월의 마지막 주일 쯤이었습니다.

170 Exeter Road, Rayners Lane, Middx., HA2 9PJ에서의 일이었습니다. 그 날도 여전히 자녀들과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화평, 충만이를 위해서 기도했었습니다. 그 이름들처럼 화평이 충만해지기를 원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기도를 마치자 마자 아이들이 싸우길 시작했습니다. 마치 기도를 마치기를 바랬던 것처럼, 그리고 저의 기도를 희롱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신경질이 났습니다. 그렇게 기도했는 데도 말귀를 못알아 듣고 있는 아이들이 미웠고, 아이들에게 전혀 영향을 못미치고 있는 저의 기도가 전혀 무기력하게 느껴지면서, 그렇게 기도의 능력이 없는 저 자신에게 화가 났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버럭 고함을 치면서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쳤습니다. 아이들에게 다음엔 절대 그렇게 하지 말라면서 주의를 준 뒤 보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무언가 손목부터 어깨까지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하고 오른쪽 가슴과 등쪽 부분에서 무언가 뽀록뽀록 쏫아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현상일까 의아해 하면서 계속 통증을 느꼈습니다. 책상을 갑자기 내려쳤기 때문에 오는 근육통인가 생각이 되면서도 가슴과 등부분에 솟아나는 뾰로지는 도대체 설명할 길이 없었습니다.

여기 어디 그 현상을 설명하실 수 있는 분 계십니까? 저에게 좀 말씀해 주십시오.

어쨌든, 혹시 그것을 어떤 자연적인 인과관계로 설명해 낼 수 있을 런 지 몰라도,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저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종의 “벼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하나님 자녀라고 생각하면서 자족하고 있는 저를 흔들어 깨우시기 위해서 주신 벼락 말입니다.

스스로 저는 지금까지 회심한 사람, 중생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었습니다.

 회심의 모델에 대해서 듣고, 현대그리스도인의 회심과 청교도들의 회심에는 차이가 있고,

 성경적인 회심과는 더욱 거리가 멀다는 것을 듣기는 들어도 그것을 저 자신에게는 적용시키지 않고 있었는데, 그런 벼락으로 스스로를 근본적으로 돌이켜 보면서, 내가 참으로 회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그 가능성을 나 자신에게 적용시켜 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목사로 안수를 받은 지 6년이 지난 한 여름이었습니다.

목사가 된 자로 아직도 중생하지 않은 사람이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고통스러웠습니다. 지축이 흔들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나는 무엇이었는가?

나의 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받았다고 하고, 특별히 대학부를 지도하면서 그렇게 나의 사역에 영향을 받고는 지금 간사로, 선교사로, 목사의 아내로 봉사하고 있는 그들을 떠올리면서 자문했습니다. 그들의 중생도 헛된 것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것은 그 당시로 긴급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나 자신이 중생되지 않았는 지, 중생되었는 지 다시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고후13:5)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나의 믿음이 참된 믿음인 지 아니면 귀신도 믿고 떤다는 그런 믿음인 지(2:19)를 확실히 분별하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단 말입니까?

 

 

6. 청교도들의 회심

 

우선은 청교도들의 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드의 "신앙과 정서"란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회심시에 거룩한 기질을 부여받는다는 것이 그의 논지였습니다.

그의 글에 의하면 저의 믿음이 분명히 참된 믿음이 아님이 분명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저 안에 그 어떤 거룩한 기질이 있다고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기질이 도대체 무엇일까 궁금해 졌습니다.

스테판 차르녹의 "중생의 신학"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책들을 인도해 주셨다고 믿습니다. 차르녹은 그 책에서 거룩한 기질이란 일종의 습관이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분명해 졌습니다. 저 안에 있는 간혹의 종교적 감정은 감정이었지, 습관으로까지 자리를 잡은 기질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룩한 것을 향하는 기질이 습관이 되어 있지 않는 저에게 있어서,

이전의 체험(, 19살 때의 나의 영혼 가장 깊은 곳에 있다고 확신했고,

그 존재를 확인함으로 하나님을 만났다고 하는 체험)은 참된 회심의 체험이었다고 보다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일반적인 종교적 체험이었고,

일종의 신비적 종교적 체험으로서 오토라는 사람이 말한 바 있는

일종의 누미누스에 대한 체험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적 체험, 참으로 중생하게 되는 구원의 체험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이렇게 나 자신이 중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것이 저를 좌절시키고 절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참된 중생을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 것일까 하고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문들 때문에, 청교도들의 회심을 기록해 놓은 글들, 특별히 그들의 자서전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회심의 기록과 비교해 보기도 했습니다.

아키발더 알렉산더의 "중생의 체험: 회심에서 임종까지"

란 책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리차드 박스터, 존 번연, 하웰 해리스 등의 전기 등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도움과 도전을 받았던 것은, 토마스 왓슨의 "회개의 교리"란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독서들이 성경을 읽어가면서 느꼈던 도전만큼 크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독서들을 통해서 성경을 다시 읽어가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영혼의 양식과 깨달음을 위해서 읽어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사모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 지, 그 모르는 바를 깨닫게 해 달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특별히 참된 믿음이 무엇일까 하는 것에 대해서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먼저 지금껏 알아왔던 말씀들을 정리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확실한 것부터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내가 죽어서 영생(곧 구원)을 한다는 사실을 지금 살아 있는 중에 알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성경이 쉽게 답을 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요한3513절에 보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영생이 지금 나에게 있느냐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 앞의 구절의 앞 구절들, 11,12절에 보면, 그 영생이 그의 아들 안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13절에는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영생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하나님의 아들을 참으로 믿고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 왔지만, 그 믿는다고 한 것이 참으로 믿는 바, 구원에 이르는 믿음인가 하는 것이었지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던 유대인들조차 오히려 예수님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하지 않았었습니까?(831, 59)

이것에 답을 줄 수 있는 성경구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성령과 관련된 구절들이 답을 줄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로마서 8장에 비슷한 구절이 나옵니다. 9절에 보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곧 그리스도의 영, 성령으로 인해서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내가 나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여기는 것이 성령으로 인한 것이냐 아니면

나 자신의 영으로 인한 것이냐는 것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만일 성령으로가 아니라, 나 자신의 영으로 나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만 한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임에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의 영으로 나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확증하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8:15),

 내 안에 있는 영이 성령인 지 아니면, 나 자신을 속이는 거짓된 영인지를 분별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떠오른 구절이 바로 갈라디아서 32절이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

믿음으로 성령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참된 믿음인 지는 성령으로 알 수 있고,

 성령을 받았는 지는 믿음으로 받는다고 하니, 순환논리에 빠진 것 같았습니다. 난감해 졌습니다.

 

 

7. 주의 말씀 속에서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긍휼에 풍성하셔서 또 참으시고 인내하시면서 기다리셔서

우리가 참된 회심에 이르기를 위해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갑자기 이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믿음"이란 것이

내가 지금까지 알아왔던 믿음이란 말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예수님이 저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다고 생각해 왔고,

그것이 참된 믿음인 지 아닌지를 알고 싶어해 왔었는데,

이런 믿음과는 또 다른 믿음이란 것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 저의 의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를 차근차근 처음부터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장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이란 말이 나오면 멈추었습니다.

 앞뒤문맥을 자세히 살폈습니다. 별로 특별한 것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2장을 읽고 3장으로 넘어가서 앞에 언급했던 구절을 묵상하면서 그 문맥을 깊히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20장을 묵상하고 묵상했었습니다. 로이드 존스목사님은 이 구절이

초대교회 성도들의 어떤 특별한 경험이 아니고, 일반적인 체험이었다고 했었던 말이 기억났습니다.

이 구절에 무언가 비밀이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이 구절에도 "믿음"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 믿음이란 것이 도대체 어떤 믿음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전까지 생각해 왔던 믿음과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실망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 믿음은 또한 앞 부분에 나오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것을 믿기는 했지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것을 믿지는 못했었습니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일종의 소망이었고 기도제목이었지만 말입니다.

 

이런 잠정적인 가설을 세워놓고, 갈라디아서를 계속 읽어갔습니다.

그러다가 만난 구절이 524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 못박고 싶어 하느니라가 아닙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에 대한 성경적인 정의라고 여겨졌습니다.

물론 이 구절이 우리가 중생을 하여 그리스도인이 되면 곧 천사가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앞 뒤 문맥을 보면, 그리스도인이 되어도 여전히 육체의 소욕을 따라서 생활하는 경우도 있고,

26절처럼, 서로 투기하는 경우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결정적으로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는 그 무엇이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채로 나의 정과 욕심이 꿈틀거리면서 아직은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린 적이 있느냐? 그렇다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 곧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께서는 그렇게 하셨습니까?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님께서 님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싶다고 소원한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도 전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8.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저는 저 자신의 육체를 정과 욕심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고 싶어해 왔었습니다.

하지만 미뤄두고 미뤄 왔었습니다.

생활을 하면서 매력이 있다고 여겨져 온 세상의 유혹들이 많았었습니다.

목사가 된다고 하는 것도, 어쩌면 존경을 받을 것이라는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좋은 목사가 된다고 하는 것도, 그만큼 더 많은 존경을 받는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서울대학원에서의 심리학공부를 중도에 포기한 것도 그런 것도 포기했다는 "경건한 모양"에 대한 매력 때문이었습니다.

참된 포기가 아니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중생을 하고 싶었었습니다.

참된 중생이 무엇인 지를 참으로 맛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회심을 하고 싶었습니다. 참으로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더라구요.

때론 이전의 저의 모습을 반추하면서

 여전히 나의 마음 속에 사로잡고 있는 자아와 욕심을 청산하노라고 기도하면서 눈물을 흘리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외침이 있었습니다. 이런 눈물 말고요.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눈물. 정신적 스트레스를 풀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하는 눈물,

이렇게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로 스스로 무언가 경건한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그런 눈물 말고,

참으로 영혼의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흘리게 되는 그런 눈물을 흘리고 싶습니다.

그런 눈물을 허락해 주세요. 이런 외침으로 절규했습니다.

때로는 저의 자아의 꿈틀거리는 욕심을 청산하고 싶은 마음에 회개를 한다고 하면서도 참된 회개가 아닌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답답해서 머리를 벽에다 박아대면서 괴로워했습니다.

그렇게 괴로워하면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은혜를 허락하실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기 때문입니다.

회개를 하고 싶어도 참된 회개가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스로를 속여왔던 거짓된 회개를 더 이상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거짓된 자아를 스스로는 깨부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지옥의 영원한 저주를 받은 자로 느껴졌습니다. 지옥의 불길이 느껴졌습니다.

화평(저의 첫아들)이를 안고 울었습니다. 나는 지옥가도 마땅한데, 이 아들녀석도 함께 지옥가야 합니까?

 중생하지 않는 목사의 집에 태어나서, 거짓된 경건 때문에

참된 그 복음도 알지 못한 채로 살아갈 이 자식이 불쌍하게 여겨졌습니다.

자식이 불쌍하고, 스스로가 불쌍해서 또 울고 울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렇게 몸부림치던 주간의 마지막 날 쯤이었습니다.

여전히 구원받을 방도를 찾으면서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음미하고 있는 중에,

긍휼이 넘치시는 하나님께서는 저의 눈을 여셔서 마땅히 깨달아야 할 바를 깨닫도록 역사해 주셨습니다.

지금껏도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께서 바로 나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는다고 생각해 왔고, 그렇게 고백해 왔었지만,

그 의미를 참으로(!) 새롭게 깨닫도록 해 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너무나 생생하게 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신음하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신음을 하고 계시는데, 나의 죄악들이 일종의 살아 꿈틀거리는 실재가 되어서

화살같이 예수님께로 날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허리에 온 몸에 내려 꽂히고,

그럴 때마다 예수님은 신음을 토하시면서 몸을 꿈틀거렸습니다.

신비적인 환상을 보았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정의해 볼 수 없는 체험이었습니다.

 

이런 체험을 과장해서 확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체험이 아니라, 저 안에 다가오는 확신이었습니다.

, 분명히 내가 예수님을 죽인 바로 그 장본인이구나. 십자가 주변에 있었던 유대인이나, 로마군병들이 아니라,

분명히 나의 죄악들이, 시기와 질투와 미움과, 깨어지지 않는 못된 자아의 이 죄성들이 예수님을 죽게 한 바로 그것들이었구나.

이것에 대해서 확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울었습니다. 예수님, 예수님, 바로 저 때문에 그렇게 고통을 당하셨군요.

저 때문에 그렇게 죽임당하셨군요. 문제는, 저의 죄악들 때문에 예수님이 몸이 꿈틀거리면서 고통하시는 것을 볼 때마다,

내 자신도 함께 움칠거리면서 그 고통이 다가 왔었습니다. 그 죄악들은 예수님을 죽이는 것만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죽이는 것들이었습니다. 예수님, 예수님, 다시는 이런 죄악들을 짓지 않을께요.

용서해 주세요.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자백하면서, 용서를 구하고,

그러면서, 마음 속에 다짐과 결심이 생기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결심들이었습니다.

 

이전엔 죄를 짓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고 결심을 했어도,

무언가 그 마음 깊은 곳에 은밀하게 즐길 수 있는 그 마지막 무엇인가를 남겨 놓은 채로 결심을 했었더랬습니다.

전심으로 한 결심들이 아니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편으로는 회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회개를 하지 않는 이중적인 회개였었더랬습니다.

, 이런 복잡한 인간심리를 이해할 수 있을런지요. 제가 그런 사람이었었습니다.

이것이 복잡한 것처럼 보여도, 누구나 참된 중생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다면,

 이런 인간의 복잡미묘한 심리과정에 대해서 눈치채고 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문제는, 그 가장 근원적인 인간영혼의 심층 속에 있는 자아의 욕망을 단호하게 끊어버릴 수 있는 그 용기,

그 결단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도와주셔야 가능했다는 것이지요.

내 스스로는 불가능했던 결심이었습니다

(추가함: 이렇게 내 스스로는 불가능하지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게 되는 이 결심이 동반된 회심이어야 참된 회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때 동반되는 것이 바로 "성령세례"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친히 베푸시는 세례말입니다.

이 성령세례에 기초한 성령체험이어야만 참된 성령체험입니다.

이것은 성령론에 대한 또다른 깊은 연구를 통해서 내린 저의 결론입니다.

현재 "인간체험에 대한 해석의 다양한 이론들"을 섭렵하고 있습니다.2004.5.11.).

 

 

9. 그리스도와의 연합 후에 온 참된 부부의 합일

 

이런 결심이 가능해지는 것을 보면서, 또 울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강권하시는 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결심 속에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거룩한 기질"이 제 안에 주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떤 죄를 짓겠다는 하는 생각에도 몸이 움칠했습니다.

마치 구더기를 보듯, 아니면, 송충이가 살갗에 닿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죄를 짓는다는 것에 대해서 그만큼 민감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청교도들이 그렇게 강조해 왔던 "거룩한 기질"이라고 하는 것이구나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본성"이 창조된다는 그런 기질 말입니다.

 그런 민감함이 어떤 굴레를 덮어쓰는 것 같다고 여길 질 모르겠군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떤 강박적인 의무로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마디로 하자면, 자유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전에 나를 얽매었던 자아의 족쇄로부터 해방되는 자유, 그 자아의 끈적거리는 욕망의 유혹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누리는 자유, , 그 자유를 맛보셨나요? 세상의 다른 여인들로부터 받는 유혹(여인들이 유혹한다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그런 유혹이 있다고 생각되는 유혹입니다)을 뿌리치고, 오직 한 여인을 택함으로 맛보게 되는 자유와 해방감,

마치 그것처럼, 아니, 그것보다 더한 해방감, 자유가 오직 한 주님을 택함으로 인해 누려지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자아와 하나님 사이의 끝없는 전쟁에 종지부를 선언하고, 무조건 항복의 깃발을 올리고 투항하면서 맛보는 자유라고나 할까요?

 세상이 무너져도 두렵지 않을 담대함이 함께 주어진 것도 바로 이런 자유함 때문이었습니다.

나를 짓눌렸던 근심과 염려가 나의 주인이었고, 나는 그것들의 종이었는데,

그 주인들에게서 자유해진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마침 한국의 경제가 IMF체제에 있던 때였습니다.

국내에서의 도움으로 생활을 연명해야 했던 외국생활에서 환율의 엄청난 차이는 바로 생존 그 자체의 위기였었습니다.

그런데도, 무언가 모를 담대함이 가득 마음에 차올랐습니다.

산같은 믿음같은 것이 이런 것인가? 스스로를 보고 놀라곤 했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이 들었습니다.

당신의 아들을 그렇게 죽였던 장본인 된 나 조차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너무나 광대하게 느껴졌습니다.

감사, 감사, 그 감격으로 눈물을 흘러 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여보, , 중생한 것 같애!" 집사람에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괴로워 하면서 고통하는 중에 옆에서 아무 말로 하지 않은 채, 잠잠히 기다려 주면서, 기도해 주었던 집사람이었습니다.

회심하기 전에는 그런 모습이 너무 태연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저로선 신경질나고,

짜증스럽고, 오히려 위선적이라고 느끼면서 미워하는 마음까지도 들었는데,

 그녀의 그 모습이 너무나도 고맙게 여겨졌습니다.

오히려 안달을 하면서, 목사가 아직도 중생을 하지 못했다고 그렇게 괴로워하느냐고 투덜대었더라면,

마음껏 고통도 못했을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저의 회심의 고백에 집사람은 너무나 기뻐해 주었습니다.

참으로 함께 부둥켜 않고 좋아했습니다. 몸마다 깊은 영혼의 한 부분까지 결합되는 느낌을 그때야 갖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한 몸되었음을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의 집사람을 저에게로 인도하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가족문제는 유학의 외부적인 동기였습니다.

유학간다는 것이 이런 영적 고뇌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면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

가족치료영역에 깊은 연구를 위해서 간다고 유학의 동기를 설명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가정문제보다도 더욱 깊은 곳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참된 회심 없이는 가족치유도 거짓된 치유일 뿐이라고 믿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도 너무 많아서 생략합니다).

 

 

10. 못 박힌 후에

 

그 일 이후에 저의 생활에는 여러 가지로 변화가 동반되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현존이 계속적으로 의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가까이 계신다는 느낌 말입니다. 바로 손을 뻗으면 그 손을 잡아주시는 느낌이었습니다.

저의 어깨를 포근히 감싸주시면서, 다독여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이 감격으로 저는 울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결코 어떤 신비적인 엑스타시를 경험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실감나는 그 분의 현존이 체험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분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니, 기도라고 하는 것이 무척이나 쉽게 되어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개인적인 기도가 아니라, 중보기도나, 공기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변화를 어떻게 느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저에게 있어서는 감지되는 변화였습니다.

공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이전처럼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기도란 호흡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실감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 글을 적어나가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대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의 지난 체험을 기록해 가면서, 혹시라도 거짓이 있는가 하나님과 대화를 하면서 점검하곤 합니다.

 

하나님과의 이런 관계변화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대인관계가 쉬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 그 자체가 힘들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자주 너무나 위선적일 수 밖에 없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목사다와야 했습니다. 경건의 모습이 있어야 했었습니다. 경건의 모습이 과장되어야만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남들이 나를 경건하게 보느냐 아니냐는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좋은 목사가 되느냐 아니냐도 관심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즐거웠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거웠던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는 그 자리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 어떤 사람을 만나면서도 그 하나님과 함께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과도 이야기를 했지만, 그 사람과 함께 하나님과도 얘기를 나눴습니다. 상대방과의 대화가 편해졌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도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전엔, 나보다(?) 신분이 높은 분을 만나면 불편함을 느꼈었습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없어졌습니다. 조심함이 없어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욱 신중해졌지만,

그 신중함이 불편함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한 영혼으로 대하여 진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 영혼을 향하여서 오히려 나를 만나주셨던 주님에 대해서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담대함도 주어졌습니다.

 

설교준비가 굉장히 쉬워지고, 설교하는 것이 무척 쉬워졌다는 것을 빼먹을 수 없습니다.

 물론 준비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것이 아님을 아실 것입니다.

 어쨌든, 설교하는 것이 편해지고, 또한 설교의 내용도 듣기에 용이하도록 바꿔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제가 섬기는 교회의 교인들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교인들이 목사의 회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참된 회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드디어는 오랫동안 믿어왔던 한 집사가 자신의 회심에 대해서 간증하게 되었습니다.

 목사와 집사의 회심에 대한 이야기들은 교회전체를 새롭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이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 더욱 풍성하게 나눌 수 있으리라고 여겨져서 이만해 두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사명감이 주어지더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늦게 중생하게 하셨을까? 회심 이후에 얼마간 줄곳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들 중의 하나인 회심과 중생의 개념들에 대한 지금까지의 오해를 염두에 두고는,

바로 이것을 보다 철저하게 연구하고 분석하는 것이 일종의 소명의식으로 주어졌습니다.

지금까지의 공부는,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좋은 목사가 된다는 미명 하에 자신의 영광과 명예를 추구해 왔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진정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해야 될 공부란,

바로 이 회심의 잘못된 개념들을 참으로 논리적이며 학문적으로 검토하고, 설득력있게 제시하는 것임을 점점 강하게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회심에 대한 자료들을 읽고 검토하면 검토할수록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11. 회심 후 첫번째 고국방문

 

마침, 그때쯤, 섬기던 교회의 요청에 의해서, 학생비자를 목회자비자로 바꾸기 위해서 한국을 방문하고는,

방문하게 된 교회들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복음" 대해서 설교하게 되었습니다.

설교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음을 확신합니다. 때로는 저의 체험이 " 2의 축복"같은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목사도 회심하지 않은 채 목사로서 봉사한다고 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충격을 받으면서,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들이 도전을 받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대학시절에 있었던 “성령체험”이 거짓된 체험임을 확신했습니다.

잘못된 신학에 근거한, 변질되고 오염된 체험이요, 감정적이고 기복적인 신비주의였었습니다.

이런 것을 이야기도해도 사람들은 믿어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2, 3의 체험 정도로 여겼습니다. 저의 회심을 믿어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저의 마음 속에는 확신이 들어왔습니다.

참으로 이 복음이 한국교회에 필요하다는 생각을 더욱 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이 과연 한국사회를 책임질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회심 이전엔 부끄러움없이 그렇게 할 수 있겠노라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담임목사로서의 청빙이 몇 군데 있었지만, 그 당시로선 도저히 응할 수가 없었더랬습니다.

 결국 유학이란 미명 하에 도망을 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도망치던 요나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선 IMF의 큰 풍랑을 일으키시고, 큰 고기 뱃속에 잡아넣으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슴에 "벼락"을 맞게 하시곤 정신이 들게 하셨습니다.

자아의 교만을 꺾으시고, 거짓된 구원의 허위의식을 발견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이 한국사회를 책임질 수 있는가?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회의 어떤 류의 비리들과 관련되어서 매스미디어를 장식하는 것을 자주 보면서,

이것에 대해서 긍정적인 답을 저로선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젠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사회를 책임지는 것은 기독교의 복음이 아니라 그 복음을 깨달은 바로 나 자신인 것을....

이렇게 해서 복음과 한국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회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연 기독교의 복음이 어떤 것이냐? 어떤 복음이 기독교의 복음이냐는 이해에 따라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복음"이 분명히 한국사회를 책임질 수 있고,

이 세상을 책임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복음을 위해서, 나의 남은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이 민족 앞에 이 복음을 소개하는 것이야 말로 저의 사명일 것입니다.

강단의 외침을 통해서, 혹시 주어질 학교에서의 강의를 통해서,

아니, 노방의 전도활동들을 통해서 이 복음을 외치고 전할 것입니다. 하지만…어떻게?

 

 

12. 다시 영국으로 돌아 오면서

 

마침,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기도했습니다. 이 복음이 참된 복음이라면,

 이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방법을 계발할 수 있도록

지혜와 영감을 주시길 위해서 말입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런던에서의 사역들을 돌아보면, 아직은 초라하고 부족하지만,

비젼의 주님께서 저에게도 비젼을 주셨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영국에 오고가는 수많은 여행객들과 이곳 런던의 갤러리나 뮤지엄 등에 전시된 기독교역사와 관련된 문화들을 관련시키면서,

바로 이것들을 이용하여서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히는 복음"을 증거한다는 전략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은 지역교회가 속해있는 그 지역의 문화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비평하면서,

 기독교적 대안을 모색하도록 교회의 인적자원들을 격려하고 고무시키는 것과도 관련됩니다.

 

이미 이런 방면의 일들을 3년 정도 전개해 오면서 나름대로의 열매들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어떤 면에서는 긴급하게 요청되는 일임을 발견하곤 합니다. 앞으로 지금 하고 있는 공부과정들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게 되면,

이런 회심과 문화를 동시에 강조하는 복음증거의 방법을 더욱더 계발해 가면서,

기독교세계관문화학교같은 것을 세우고, 기독교역사가이드같은 것을 시도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 문화여행을 위해서 이런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연대하여 세계적인 네트웍도 형성할 수 있겠다고 기대해 보곤 합니다.

바울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해서 세계선교의 비젼을 실천해 갔던 것처럼,

세계의 대도시를 연결시키는 네트웍을 통해서,회심과 문화를 균형있게 강조하는, 십자가복음을 증거할 꿈을 가져보는 것입니다.

 

이런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해서, 내가 무엇을 이루겠노라는 허황된 꿈, 낭만적인 계획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라시면 하고, 멈추라면 멈출 것입니다.

또한, 저의 회심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모든 영적 문제들이나 고민들이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여전히 한 인간으로서 육신의 남아있는 흔적들을 죽여가면서 성령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성령을 좇아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더욱 깨닫게 됩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너무 장황한 간증이 된 것 같습니다.

원래는 석 장 정도의 길이로 계획했던 간증입니다. 하지만, 쓰다 보니, 좀 더 보충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쓰는 것이 저의 회심의 과정을 한 번은 이렇게 정리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3. 후기

 

이렇게 정리를 하고 보니, 너무나 감사를 드립니다.

여태까지는 저의 회심의 과정을 기회 있는 대로 말로 해 왔었습니다. 이제는 이렇게 글로 정리한 것을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나눔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그 놀라운 복음을 구체적으로 나눠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니 기대가 됩니다. 혹시라도, 이 간증을 읽고, 제가 말씀 드린 회심의 복음에 대해서 의문이 나는 부분들이 있다고 느끼시는 분은, 언제든지 저에게 연락을 주십시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이나 더욱 구체적으로 나눌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저의 기쁨으로 삼겠습니다.

 

저의 현재 연락처는,

전화:44-(0)208-864-6222,

그리고 주소는 58 Stanley Road, South Harrow, Middx., HA2 8AZ. UK입니다.

편한 방법으로 연락을 주십시오.

우리의 교제와 대화를 통해서 홀로 영광을 받으실 분은

우리를 참된 구원에 이르기를 즐거워하시는 삼위 하나님 그 분 뿐이십니다.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런던의 한 귀퉁이에서,

참된 중생의 복음을 너무나 늦게 깨달은,

 

부족한 주님의 종, 손성은 2004 5 8일 오후,

 

ps. 1999년 여름에 있었던 회심을 통해서, 객관적으로 존재하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의 문제도 해결되었음을 밝히고 싶습니다. 소위 중생했었다고 여겼던 첫 번째의 "회심"에서 제가 가졌던 질문을 기억하시는지요? 내 안에 영혼의 심층에 만났다고 여겼던 그 하나님이 참으로 객관적으로 계신 그 하나님인가 하는 것에 대한 의문 말입니다. 저의 19살 때에 만났던 그 하나님은 참된 하나님이 아니었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참된 하나님이었다고 한다면, 이렇게 신학적으로 정리해서 표현하고 싶군요. 그 분은, 일반은총을 통해서 나타나신 하나님이라고나 할까요? 아직은 특별은총을 통한 구원의 하나님으로는 저에게 현현하지는 않았었던 것입니다. 내 영혼을 창조하신 창조의 하나님은 되실 지라도, 내 영혼의 부패와 패괴를 치료해주시는 구속의 하나님은 아니셨습니다.

 

그럼, 객관적으로 존재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는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만남의 주체는 물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제가 무어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겠군요.

하지만 그 하나님께서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고,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실 때까지 계속 끊임없이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객관적인 진리에 대한 확신을 지성적으로 분명히 가져야 된다고 여겨집니다. 특별히 요즘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이 횡행하는 시대에는 모든 절대적, 객관적 가치에 대해서 회의의 눈길을 던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객관적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갖기가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런 객관적 기독교의 진리에 대한 도전이면서도 또한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포스트모더니즘적 경향이 우세한 중에서도, 진리의 객관성에 대한 확신이 지성적으로 가능한 것을 확신합니다. 신앙이란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맹목적 비약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의 자아의 절대적인 포기를 요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자아의 기능을 모두 스톱시키는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욱 날카롭게 우리의 지성을 사용하길 원하십니다. 그 지성의 온전한 기능에 의해서 얻어진 확신에 기초해서, 의지적 결단을 할 수 있고, 그 지성과 의지의 기능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감정이 협력해서 주어지는 것이야말로 건전한 체험이 됩니다. 저의 체험에 대한 운운이 비건전한 신비주의적 체험과 구별되어서 이해되기를 바래서 이런 사족을 붙여봅니다. 참으로 온 우주와 만물의 구주가 되시고, 왕이 되신 하나님께서 이 글을 읽으시는 분에게도 나타나셔서 님의 구주가 되시고, 또한 왕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