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지옥인은 감추고, 천국인은 장사한다. (마 25;14-30)

성령충만땅에천국 2012. 1. 28. 16:05

지옥인은 감추고, 천국인은 장사한다.

 

                                                                           마 25;14-30.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받아 천국갈 사람과 구원받지 못 하여 지옥 갈 사람은 이 땅에서부터 알 수가 있습니다.

지옥인은 감추고 천국인은 장사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돈을 저금하고 부자는 돈을 꿉니다.

작은 사람은 일하고 부자는 경영합니다.

 

오늘 이야기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어떤 주인이 떠나면서 타국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세 종을 불렀습니다. 한 종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그리고 다른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습니다. 달란트는 돈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무게를 표시하는 단위입니다. 한 달란트는 33.75 kg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면 9000돈입니다. 그러면 금 한 돈을 20만원이라고 하면 18억원입니다. 상당한 돈이었다고 합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떠나자 말자 나가서 준 돈을 모두 사용하였습니다. 장사를 하여 두 배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하였습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았던 종들은 주신 것을 가지고 두 배로 남겼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원금과 남긴 돈을 가지고 와서 주인에게 안겨주었습니다. 그 주인이 칭찬하였습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이 주었던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말했습니다.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였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태복음 25장은 인상깊은 세 가지 이야기입니다.

첫 번 이야기는 10처녀 이야기입니다. 천국가는 5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여 신랑되신 예수님을 맞았습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못 한 5처녀는 신랑되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 하였습니다.

세 번째 비유는 의인과 악인의 비유입니다.

소자가 주릴 때 먹을 것을,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추울 때 입을 것을, 감옥에 있을 때에 돌아보는 이가 의인입니다. 반대가 악인입니다.

그런데 가운데 있는 두 번째 비유가 달란트 이야기입니다.

지옥 갈 사람은 감추었습니다. 파묻었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지옥갈 사람은 감추고 파묻는 것이 특징입니다. 나눌 줄을 모릅니다. 가난한 사람은 저금하고 부자는 돈을 꿉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박왕 아리스토틀 오나시스가 죽고 나니 5억불 약 6천억원이 남아 있습니다. 남에게 나누어 주지 못 하고 죽었습니다. 미국 타임지는 이런 글을 썼습니다.

“그는 아무 유산도 남기지 못 하였다. 조그만 기념비가 될 만한 일 하나 한 적이 없다.”

카다피, 후세인 모두 수 조원을 감추고 살다가 결국은 다 빼앗기고 슬피 울며 이를 갈다가 죽었습니다. 김 정일도 그렇게 살다가 죽었습니다. 김 정일이 죽자 부산의 어느 집사님이 문자 멧세지를 내게 보내주었습니다.

“지금 지옥의 뜨거운 불가마 속에서 카다피, 후세인, 김 정일, 김 일성이 펄펄 뛰어 다니는 모습이 우습네요. 하나님 만세.”

이들의 특징은 자기만 생각하고 산 사람들입니다. 지옥인은 감추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감추고 살아도 다 들어납니다.

 

미군 부대에서 사무보는 처녀가 있었습니다. 결혼하였습니다. 귀한 가문에 독자와 결혼하였습니다. 임신하였습니다.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을 때 온 가족들과 친척들이 모였습니다. 너무나 자손이 귀한 집이었기 때문입니다. 분만하는 순간에 그 여자는 병원이 떠나갈 듯이 비명을 질렀습니다. 드디어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밖에서 궁금하게 여기던 가족들이 문틈으로 물었습니다.

“아들인가요?”

“아니요.”

“딸인가요?”

“아니요.”

“아니, 그러면 무엇인가요?”

간호원이 말했습니다.

“말할 수 없으니 들어 와서 보세요.”

들어가서 아이를 보는 순간 온 식구는 뒤로 나가 자빠질 뻔 하였습니다. 몸집이 큰 흑인이었습니다.

감추인 것은 들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지옥인은 감춥니다. 나중에 바깥 어두운 곳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울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을 향한 선고는 비참하였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1. 있던 것도 다 빼앗깁니다.

2. 어두운 곳으로 내쫓깁니다.

3. 슬피 울게 됩니다.

4. 이를 갊게 됩니다.


일본 가정 법률 상담소에서 1928년 불량소년 8,219명을 조사하였습니다. 특별히 부모를 조사하였습니다. 75%가 부모가 성적으로 매독에 걸려 있었습니다. 부모가 방탕하고 일하기 싫어하였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사람들이었습니다. 남을 사랑하지 못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도 망치고 자식도 망치게 합니다. 그리고 세상도 망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갈 사람은 달랐습니다. 지옥인은 감추고, 천국인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1. 없앴습니다.

지옥인은 감추지만 천국인은 주인이 준 모든 것으로 장사를 시작하였습니다. 5달란트 받은 돈을 모두 없앴습니다. 그리고 물건을 사가지고 와서 장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떠나자 말자 바로 가서 없앴습니다. 미개인에게 100만원을 주었더니 받자 말자 흥청망청 다 썼습니다. 배운 사람에게 주었더니 바로 저금하였습니다. 사업가에게 주었더니 바로 장사하였습니다. 큰 그릇 사업가에게 주었더니 100만원 꾸어서 2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바로> 장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천국인은 없애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죽어야 삽니다.

없애야 생깁니다.

내려와야 올라갑니다.

주어야 받습니다.

비어야 담깁니다.

지옥에 가는 사람은 돈을 감추었지만 천국에 가는 이는 우선 없애는 것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는 데 TV에서 아침마당을 하고 있었습니다. 중간에 보았습니다. 호떡 장사를 하는 부부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100만원 보증금에 40만원 월세로 살고 있는 호떡장수 부부가 나와서 이야기합니다. 오후에 호떡을 팝니다. 그 돈을 가지고 다음 날 오전은 양노원 고아원에 가서 봉사를 합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또 호떡을 팝니다. 아내는 자기가 머리를 잘랐습니다. 여자인 데 미장원에 간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는 돈을 써본적이 없는 부부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앵커가 물었습니다.

“이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이 도와 드릴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일가요?”

그들이 말했습니다.

“도움을 받아서 도움을 주는 것은 진정으로 도와주는 것이 아니지요. 내가 벌어서 내 것으로 도와 주어야 정말 도와 주는 것이지요. 그들을 위하여 도와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위하여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막을 내렸습니다. 지옥인은 감추고 천국인은 없앱니다.

 

그리고 이어서 뉴스가 나왔습니다. 같은 맥락의 뉴스가 눈에 띄였습니다. 전주 노송동장이 나와서 말했습니다. 해마다 성탄절을 앞두고 40대 남자가 전화를 합니다. 동회 앞에 상자가 있으니 가지고 들어가라는 전화입니다. 사무원이 뛰어 나가 보니 상자만 있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5400만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년이 12년째라고 합니다. 노송동에서는 이 사람을 <얼굴없는 천사>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세상은 악한 것같아도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세상을 빛나게 하고 있습니다.

지옥인은 감추고 천국인은 우선 없애고 늘리고 나눕니다.


2. 최선을 다 하였습니다.

지옥가는 사람은 감추고, 파묻어 두고 즐깁니다. 그러나 천국으로 가는 사람들은 5달란트를 없앱니다. 팔 물건을 구입합니다. 그리고 이익을 남기기에 최선을 다 합니다.

탈무드는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시지 않는 죄가 두 가지 있습니다. 과욕을 부리다 병든 것을 용서하시지 않습니다. 장사를 하면서 이익을 남기지 못 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이 사람이 최선을 다 하였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나중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평가하셨습니다. 충성하였다는 말은 피스토스라고 되어 있는 데 죽기까지 충성하는 충성을 말합니다. 천국가는 이들은 죽도록 충성을 다 합니다. 맡은 일에 충성합니다.

 

나는 지금 이야기하려는 개보다 충성된 사람을 본 적이 없는 것같습니다.

부산에 살던 부자집 이야기입니다. 그 집에서는 영리한 개가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바구니를 개 입에 물려 주고 고기 한 근 값을 넣어 줍니다. 그러면 정육점에 가서 고기를 사오곤 하였습니다. 주인 아주머니가 살코기만 사오라고 요청하면 살로만 사왔습니다. 정확하게 심부름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가 서울로 이사오게 되었습니다. 새로 이사온 집에서 가까운 곳에도 정육점이 있었습니다. 주인은 부산에서 그랬던 것처럼 고기를 사오라고 장바구니를 개 입에 물려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여기 저기 찾아 보았습니다.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3일이 지났습니다. 개는 돌아 오지 않았습니다. 서울에는 개 도둑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개를 잡아 갔을 것으로 여기고 개 찾기를 포기하였습니다. 3일이 지난 후 저녁 주인 아주머니가 시장을 보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에 개가 입에 바구니를 물고 절뚝 거리며 힘없이 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개에게 달려 갔습니다. 그리고 반가워서 개를 끼어 안으며 말했습니다. “그 동안 어디 깄었니?”

그 개는 주인을 본 후 그 자리에 푹 쓰러지더니 죽어 버렸습니다. 알고보니 부산까지 가서 고기를 사 가지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그 개는 지쳐서 쓰러져 죽은 것이었습니다.

이런 충성이 피스토스입니다. 천국인은 맡은 일에 충성스런 최선을 다 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입니다.


3. 은총을 사모하였습니다.

지옥으로 가는 사람은 감추고 파묻어 둡니다. 줄 줄 모릅니다. 사랑할 줄 모릅니다. 나눌 줄 모릅니다. 편한 것만 좋아 합니다.

그러나 천국으로 가는 사람들은 없앱니다. 충성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을 기다립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까지는 최선입니다. 그러나 <많은 것을 맡기리니>라는 말씀은 은총입니다. 최선으로 받은 축복보다 은총으로 받은 축복이 더 큽니다.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상으로 두 배를 두고 은총으로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상보다 은총이 더 컸습니다. 충성에 대한 보상은 휴식이 아니라 더 큰 일이었습니다.

골리앗이 가지고 있는 창, 칼, 갑옷은 자기의 최선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런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창도, 칼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갑옷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돌맷돌 하나를 돌렸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다윗이 이겼습니다. 최선보다 은총이 큽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최선보다 은총이 큽니다.”

 

자기는 최선으로 5 달란트 남겼지만 은총은 <많은 것을 맡기리니>입니다.

우리 교회는 강남에서 교회를 다시 지으려고 땅을 찾았습니다. 10 곳도 더 찾았습니다. 성남 문화부지 땅도 보았습니다. 하남 학교도 인수하려고 가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린벨트 1400평도 사려고 계획도 세웠습니다. 건물을 사려고 하였었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동안에 하나님이 이 교회를 허락하셨습니다.

나는 서울에서 50년을 살면서 뚝섬에는 우리 교회로 올 때 처음 와 보았습니다. 전혀 상상도 못 하였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앵무새 이야기입니다.

한 마리 앵무새가 고향을 떠나 먼 산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 산에 살고 있는 동물들이 환영해 주었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장기 체류를 하며 즐기다가 고향으로 돌아 왔습니다. 마침 자기 고향 산에 큰 불이 났습니다. 밤에 왔는 데 산불로 대낮같았습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습니다.

“큰 일이다. 숲속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다 죽겠다.”

안절 부절하다가 앵무새는 근처 호수로 들어가서 빠졌다 나왔습니다. 그리고 불타는 숲속 위로 와서 털며 물을 뿌렸습니다. 수 백번을 되풀이하였습니다. 이제는 지쳐서 쓰러질 것같았습니다. 하나님이 물었습니다.

“앵무새야! 미련하구나. 그렇게 큰 불을 그렇게 작은 물방울로 끌 수 있을 것같으니?”

앵무새가 대답하였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가족과 친구들이 불에 타죽는 것을 가만히 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앵무새의 의리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먹구름을 보내어 폭우를 쏟아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산불이 꺼졌습니다. 앵무새의 작은 물방울이 폭우가 되게 하였습니다.

최선보다 은총이 큽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 하면 하나님은 은총을 주십니다.

5달란트 남기면 많은 것을 더 하여 주십니다.

 

어느 여인이 배를 타고 바다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람에 날려서 수천만원짜리 진주 목걸이가 바다에 빠졌습니다. 그 여인은 항구로 돌아 오자 바가지를 들고 바닷물을 푸기 시작하였습니다. 3일 쉬지 않고 펐습니다. 거북이가 와서 물었습니다.

‘무엇을 하나요?“

“바닷물 푸지.” “언제까지 풀 거예요?”

“다 풀 때까지....”

거북이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살 집이 없어지네.” 그리고 진주 목걸이를 갖다 주었습니다. 최선 후에 은총이 있습니다. 5달란트 작은 일에 충성후에 많은 은총이 있습니다.


천국에 가는 사람들은 천국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가는 것임을 확실히 압니다.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길을 먼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어느 느추한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집인데 공자를 존경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공자 일행을 불러 식사대접을 하고 싶다고 하여 들렀습니다.

그들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대접하는 잣죽을 정성을 다하여 끓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먹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수저에 때가 자욱하였습니다. 잣죽을 담은 그릇도 언제 닦았는 지 모를 정도로 더러웠습니다. 그러나 공자는 맛있게 혼자 다 먹었습니다. 주인의 환송을 받으면서 그 집을 나섰습니다.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 더러운 그릇에 들어 있는 잣죽을 그렇게 맛있게 다 드셨나요? 저희들은 수저와 그릇을 보니 도저히 잣죽이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공자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그릇을 보면 더러운 것만 보았지만 다는 그릇을 보면서 주인의 따뜻한 마음을 보았단다.”

제자들은 보이는 것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공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총을 보면 다 없앨 수 있고, 최선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 있을 것을 확실히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눈을 코처럼 하나 주시지 않고 둘을 주신 것은 한 눈으로 최선을 보고, 다른 한눈으로는 하나님의 은총을 보라고 하는 의미라고 어느 분이 해석하였습니다.

지옥인은 감추지만 천국인은 모두 없애고 은총을 볼 줄 압니다.


그렇습니다.

지옥인은 감추고 천국인은 장사합니다. 장사하는 사람은 없앱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 합니다. 그리고 은총을 사모합니다.

우리는 지옥인이 아니라 천국입니다.

이제 우리는 없애고 최선을 다 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야 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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