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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처녀의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마 25:1-13)
어느 마을에 아주 믿음이 독실한 의사가 있었습니다. 이 의사는 하나님께로부터 남다른 은사를 받아서인지 명의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그저 잠시 진찰만 해도 어디가 아픈지 알아냈고 처방도 잘해서 많은 환자들이 회복되고 치료받았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몸이 아프면 이 의사를 찾아가서 치료를 받곤 했답니다. 그런데 이 의사가 나이가 많아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과 가족들 그리고 교우들이 임종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의사가 모인 사람들에게 유언처럼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나보다 훨씬 훌륭한 의사 세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바로 '소식과, 수면, 그리고 운동'입니다. 음식은 위의 75%만 채우고 절대 과식하지 마십시오. 잠을 충분히 주무십시오. 그리고 열심히 걸으십시오. 그러면 웬만한 병은 다 나을 수 있습니다.' 이분이 잠시 쉬었다가 또 말을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 의사는 다음 세 약을 함께 복용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더욱 귀를 종긋 세우고 그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과, 기도, 그리고 사랑'입니다. 말씀의 약은 매일 일정한 시간에 평생 꾸준히 복용해야 합니다. 기도의 약은 부작용이 없는 약이라 많이 복용할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약은 상비약입니다. 늘 준비했다가 수시로 복용하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였습니다. '육체의 건강은 반쪽건강입니다. 영혼이 건강하면 육체의 건강은 따라옵니다. 먼저 영혼이 건강하고 그리고 육체도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마치고 그 분은 운명하셨다고 합니다. /할/ 정말 우리 신앙인들에게 큰 유익을 주는 그런 교훈입니다. /아멘!/ ◀제목 소개!▶
①본문의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마24-25장은 이름하여 '종말 장'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열 처녀의 비유로 소개됩니다. 1절에 보면 본문은 '그때에'로 시작됩니다. 그때가 어떤 때입니까? 즉 '인자가 오는 때, 종말론적 심판의 때'를 의미합니다. 기독교는 5중 복음을 믿습니다. 주님의 '성육신, 십자가 죽으심, 부활, 승천, 재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승천까지는 이루어졌고, 이제 남은 것은 재림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종말의 때입니다. 오늘 본문은 쉽게 말씀드리자면 예수님이 심판 주로 오실 때 어떤 성도가 천국에 올라갈 것인가를 쉽게 비유해서 열 처녀 중에 기름을 준비한 처녀가 신랑을 맞이할 수 있고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는 낙오자로 남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혼식 이야기지만 종말을 준비하라는 메시지입니다. /할/ ⑴그 당시에 유대나라의 결혼 풍습은, 남자는 18-24세, 여자는 13-14세가 결혼 적령기였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의 혼인은 세 단계를 거칩니다. 첫 단계는 신랑 신부의 아버지들이 혼인을 약속합니다. 본인들이 혼인을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 단계는 정혼이 이루어진 다음에 신부집에 모여서 여러 증인들 앞에서 결혼을 서약하는 약혼식을 합니다. 세 번째 단계는 약혼한 지 일 년이 지나서 혼인식을 치릅니다. 혼인식이란 신랑이 신부집으로 신부를 데리러 가는 것을 말합니다. 혼례복을 차려 입은 신랑이 해가 진 후 신부를 데리러 갑니다. 해가 진 후에 신부를 데리러 가는 것은 유대인의 날에 대한 개념 때문입니다. 우리는 날에 대한 개념이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는 순서지만 유대인들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순서입니다. 신랑이 새 날이 시작될 때 신부의 집으로 가는데 이때 신부의 친구들이 들러리로 나섭니다. 신부의 친구들은 신랑의 행렬을 비출 등불을 들고 마중을 나갑니다. 신랑이 도착하면 신부의 친구들이 신랑을 신부집으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혼인 예식을 치르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열 명의 처녀들이 신랑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신랑이 더디 온 것 같습니다. 열 명의 처녀들이 신랑을 기다리다가 지쳐서 다 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밤 중에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가 납니다. 그 때 정신을 차리고 저마다 등을 준비하는데, 미련한 다섯 처녀들의 등불이 커져갑니다. 그래서 슬기 있는 처녀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고 말하자, 슬기 있는 처녀들은 대답하기를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도착했고, 예비하였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이 닫혔습니다.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라고 애원했지만, 신랑은 대답하기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비극입니다. 이 사실이 가슴에 와 닿아야 합니다. /믿/ 여기 나오는 열 처녀는 불신자들이 아니라 교회에 속해 있는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이 신부집으로 오는 것은 주님의 재림을, 혼인잔치는 최종적인 구원'을 의미합니다. 열 처녀의 비유는 우리에게 교회 안에 두 종류의 신자가 있음을 말해 줍니다. 그 하나는 진실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형식적인 신앙생활로 만족하는 신자들입니다. ⑵여러분! 우리는 본문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신랑이 오므로 준비된 자들은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여기서 문이 닫힌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이 닫히기 전에 졸음이 오기 전에, 인생의 황혼기가 되기 전에, 건강하고 눈이 밝으며 총명이 흐려지지 않았을 때에 준비할 것을 준비하고 일할 것을 일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멘!/ 누가 주님과 함께 들어갔습니까?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그렇습니다. 준비된 자만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예비된 자란 인내를 가지고 신랑이 더디 올 것에 대비하여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입니다. '닫힌지라' 이 단어는 이미 문이 굳게 닫혀버려 다시 열리지 않을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구원은 기회를 잃어버리면 끝장입니다. /믿/ ⑶때를 알고 사는 성도들이 됩시다. 그렇습니다. 인생이 때를 알고 산다는 것은 지혜로운 자의 모습입니다. ▶은혜 받을 때 은혜 받아야 합니다. 고후6:2절에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회개의 때가 있습니다. 땅을 쳐도 회개할 수 없을 때가옵니다. 당신의 종말이 문득 다가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 ▶봉사의 때가 있습니다. 포도원에 들여보낼 때가 있고, 일을 맡기실 때가 있습니다. 기회가 지나고 나면,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축복의 때, 복 받을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 복이 올지 모르니 늘 준비된 심령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할/
②'열 처녀의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⑴'준비하는 사람이 되라'는 교훈입니다. 여러분은 준비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사람은 무슨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준비를 해야 합니다. 준비 없이 시작하는 일은 목적을 달성하기가 힘이 듭니다. 준비하는 것만큼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했느냐에 따라 그 일을 그만큼 성취하게 됩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말이 있습니다. 군대에서 많이 즐겨 사용하는 말입니다. 비단 군대 만이겠습니까? 만사가 그러합니다. 창업을 하기 위해서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준비해야 합니다. 결혼하는 사람도 준비해야 합니다. 어린 아기를 출산 할 사람도 준비해야 합니다. 새해를 위하여 예산을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를 하되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노후(老後)를 준비해야 합니다. 은퇴를 준비하여야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죽음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언제 부르실 것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믿/ 여러분, 매를 맞아도 준비하고 있다가 맞는 것과 준비 없이 맞는 것은 다릅니다.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가 맞으면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준비 없이 맞으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통일을 위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도 공생애 3년 간의 사역을 위해서 30년을 준비하셨습니다. /할/ ▶옛날 어느 마을에 큰 부잣집이 있었는데, 하루는 주인이 미련하다고 생각되는 머슴을 불러 지팡이를 주면서 말하기를 '여보게 내가 보기에는 자네보다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은 없을 것 같네. 그러니 이 지팡이를 가지고 있다가 자네보다 더 미련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만나거든 주게나'하고 놀렸습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서 그 부잣집 주인이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주인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머슴이 주인을 찾아갔을 때, 주인은 그 머슴에게 '여보게, 내 인생이 마지막이 온 것 같네, 나는 이제 얼마 있지 않아서 먼 길을 떠나야 될 것 같네' 이 소리를 들은 머슴이 주인에게 '어디로 가시며, 갈 준비는 다 되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주인은 이 머슴이 말귀를 못 알아듣고 미련을 떤다고 생각하면서 '아니 이놈아, 죽음의 길에 무슨 준비가 필요하며,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아느냐?'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머슴은 '주인어른, 하루 여행을 떠나도 목적지를 정하고 준비를 하는데 죽음을 앞두고 그런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생각하니 주인어른은 참 어리석고 미련합니다. 그러니 이 지팡이를 도로 받으시지요'라고 하면서 예전에 주인에게 받았던 지팡이를 다시 돌려주었다는 고전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할/ 세상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 종말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상 종말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개인의 종말이 있다는 사실은 다 믿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종말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흔치가 않다는 것입니다. ▶23세의 젊은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난 성자 알로이시오(1568-1591)에 관한 일화입니다. 알로이시오가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던 어느 날 휴식 시간의 일이었습니다. 모두들 즐겁게 놀다가 잠시 스승과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이때 스승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지금 당장 세상의 종말을 당하게 된다면 자네들은 어떻게 무슨 일을 하겠는가?'하는 물음이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학생은 '빨리 교회에 달려가서 기도를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어 둘째 학생은 '집에 가서 부모님을 찾아뵙고 함께 종말을 준비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셋째 학생은 '어제 대화하다가 마음 상한 친구를 찾아가서 화해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학생들이 그 시간부터 종말을 준비하겠다는 그런 대답입니다. 그 말은 아직 종말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알로이시오는 자기 차례가 돌아오자 주저하지 않고 '지금은 휴식시간이니까 이대로 놀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이미 종말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할/ 지금 우리들은 주님의 재림 직전인 말세지말을 살고 있습니다. 도처에 이상기온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은 찜통더위와 집중호우, 태풍으로 얼룩졌습니다. 또 어떤 곳은 눈사태로 인명 피해가 엄청났습니다. 도처에 지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까? 이웃 나라 일본은 '쓰나미'가 와서 한 때 엄청난 국가손실이 왔었습니다. 또 인간들의 도덕과 윤리가 땅바닥에 떨어진지가 오래 되었고, 생명의 존엄성이 무너진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세상 말세지말에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처럼, 처처에 기근과 전쟁과 지진과 재난이 닥치는 것을 보면 말세인 것이 분명한데, 여러분들은 말세를 준비하며 살고 있습니까? 이것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주님 오실 날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유명한 문학가이신 어느 집사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집사님은 폐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입원실 밖에서 가족들끼리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고 자신이 6개월 밖에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분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6개월 동안 죽음을 준비해야지. 내가 제대로 인생을 마쳐야지'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죽음을 준비했습니다. 그 때까지 갚지 못한 빚을 갚았습니다. 그 동안 서먹서먹했던 사람들을 찾아가서 오해를 풀고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 동안 소홀히 했던 자녀들과 대화의 시간도 가지면서 한 가지씩 서서히 자기 주변을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폐암은 악화되지 않았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다른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해보라고 권유했습니다. 결국 다른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니 암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전에 진단했던 병원에서 오진을 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억울하지 않느냐?'고 물었답니다. 그 동안 여러 가지를 정리하느라 많은 돈을 썼고, 무엇보다도 마음고생이 심했을 텐데 '손해가 막심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집사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일생 동안 지난 6개월처럼 진지하게 삶을 살았던 때가 없었습니다. 나머지 인생도 그런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할/ 저는 그 분의 이 고백이 말세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참 행복한 성도 여러분,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⑵신앙생활은 기다림입니다. 인내로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생활입니다. 요14장에 보면 주님이 하늘나라에 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신 후에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10명의 처녀가 신랑을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생활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기다리던 신랑이 더디 왔습니다. 열 처녀는 기다림에 지쳐서 그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오랜 기다림이 슬기로운 자와 미련한 자를 구별시켜 놓았습니다. 옛말에 '길이 멀어야 말(馬)의 힘을 알 수 있고, 세월이 흘러야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길이 멀고 험해야 타고 가는 말이 얼마나 힘이 센지 알 수 있고, 세월이 흘러 온갖 풍상을 겪어 보아야 사람의 우정이나 사랑이 진실한지를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할/ 마찬가지로 주님의 재림이 지체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진실한가를 시험하시려는 주님의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믿/ 신앙생활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기도의 응답도 기다리는 자에게 옵니다. 하나님의 축복도 기다리는 자에게 옵니다. 인내가 필요하고 끈기도 필요합니다. 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영생의 나라도 기다림의 은총입니다. /아멘!/ 다윗은 시40:1절에서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늘나라에는 반송된 소포가 많이 쌓여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선물을 보내셨는데 받는 사람이 그새를 참지 못하고 이사가 버려서 소포가 배달되지 못하고 되돌아온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시고 하늘의 복을 내려주어도 기다리지 못해서 응답과 복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30:18절에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 ▶어느 극장에서 직원 한 사람이 여자 손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자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다이아몬드 반지를 잃어버렸는데 찾아달라며 좌석번호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그 직원은 여자 손님이 말한 그 좌석에 가서 확인해 봤더니 정말 다이아몬드 반지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 직원은 반지를 들고 사무실로 돌아가서 전화수화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손님은 전화를 끊어버린 상태였습니다. 반지는 찾았지만 손님이 기다리지 못했기 때문에 반지를 돌려 받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저 중동에 화약고는 기다리지 못하고 엉뚱한 짓을 한 아브라함의 신앙의 실패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창대케 하시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는 약속의 말씀만 붙잡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습니다. 이 때가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입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해서 살았습니다. 세월이 흘러가고 자신은 점점 늙어갑니다. 그러나 아들은 생기지 않고 아내를 보니 가능성도 없어 보입니다. 아브라함은 점점 조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고자 서두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다시 약속을 확인시키십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을 보게 하시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세월이 조금 더 흘렀습니다. 이제 나이 86세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조급증에 걸렸습니다. 사람이 조급해지면 실수를 합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사라의 조언을 따라 하갈이라는 여종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그 이후 약 13년 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침묵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라를 통하여 언약의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중동의 갈등은 하갈과 사라의 갈등이요, 이스마엘과 이삭의 싸움입니다. 원인 제공을 누가 했습니까? 바로 아브라함의 조급함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을 기다리지 못한 것이 역사의 큰 오점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할/ 합2:3절에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여러분! 너무 조급해 하지말고 하나님의 역사하실 날을 기다리며 준비하십시오. 때가 되면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아멘!/ ⑶신앙생활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1:1의 개별적입니다. 이 비유에서 열 처녀를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로 나눈 것은, 교인들을 크게 둘로 나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교인은 교인인데 믿는 자가 있고 믿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있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이 있습니다. 천국에 갈 사람이 있고 갈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정은 본인의 신앙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교인이라고 해서 다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 교회를 나온다고 다 천국 가는 것도 아니고, 교회를 나온다고 다 믿는 사람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 미련한 다섯 처녀가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기름을 좀 나눠 달라'고 하자 거절당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거나 양도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것이 불가능한 것들도 있습니다. 예컨대 내가 가진 재산은 나누어 줄 수 있지만, 나에게 속한 남편이나 아내는 나누어 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비유는 바로 우리의 믿음과 구원이 나누어 줄 수 없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구원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의 출생과 죽음을 대신할 수 없듯이 영생을 좌우할 믿음과 구원 역시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의 고백이 나를 구원하고, 나의 회개가 나를 죄에서 건지고, 나의 충성과 봉사와 희생으로 내가 상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기름을 준비하는 것도 개별적으로 자신이 준비해야 하고, 혼인집에 들어가는 것도 개별적으로 자신이 준비된 사람만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는 것도 개별적이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개별적입니다. 시카고의 무디신학교 총장이었던 '조지 스위팅' 박사가 '하나님에게는 자녀만 있지 손자가 없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아버지'하고 말하면 내 아들은 '하나님 할아버지'하고 불러야 됩니다. 그러나 아들도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개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멘!/ ▶어느 믿음 없는 사람이 아내를 따라서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아내가 교회에 들어가서 의자에 앉더니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이 아내 옆자리에 앉더니 '하나님 장인어른'이라고 했답니다. 세상 적으로 보면 아내의 아버지면 남편의 장인이 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영적인 족보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개별적입니다. 누구에게나 하나님은 아버지입니다. 부모의 믿음 때문에 자녀가 구원을 받고, 아내의 믿음 때문에 남편이 구원을 받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마누라 치마폭 붙잡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예수를 생명의 구주로 영접하고 바르게 신앙생활을 할 때 하늘 문이 열리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믿/아멘!/
③미련한 자와 슬기로운 자를 보면서 깨달음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할/ 2절에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여기 '슬기롭다'의 원어는 '지혜롭고 준비성과 분별력이 있는 자'를 가리킵니다. 여러분, 신앙은 뭐니뭐니해도 준비하는 신앙이 귀합니다. 늘 말합니다만 준비하는 신앙 인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위탁합니다. /아멘!/ 여기 '미련하다'의 원어적인 의미는 '우둔한, 얼빠진 자'라는 의미로 '깨어있지 못한 자'를 의미합니다. 우리 모두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 안에 들어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 ⑴미련한 자와 슬기로운 자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기름을 준비한 자와 준비하지 못한 자의 차이입니다. 열 처녀들은 모두 등을 들고 나왔습니다. 여기서 등은 사람 앞에 구체적으로 보일 수 있는 행위를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에 나오고 봉사를 하고 기도를 하는 그런 외형적인 신앙생활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외형적인 면에서 누가 보아도 '저 사람 교회 가나보다, 행복한 교회 집사구먼!'하면서 알 수 있는 행위 그것이 바로 등입니다. /할/ 등은 누구나 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름입니다. 기름은 교회에 나오는 사람마다 다 준비된 것이 아니라 오직 슬기로운 다섯 처녀만이 기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름은 무엇입니까? 등은 누구나 볼 수 있는 외형적인 신앙생활이라고 한다면 기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적인 신앙생활을 말합니다. 기름은 등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할/ ⑵슬기로운 자는 기름을 준비한 자들입니다. 성령으로 심령의 불을 밝히는 자입니다. 성령 받았다는 말은 성별 되었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죄와 악으로부터 분리되었으며 세상의 흑암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사람들을 가리켜 성령 받은 사람, 기름을 준비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성령의 충만한 사람은 인간 역사의 변화의 주도권을 쥔 자입니다. 자기를 이기는 자이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상하고, 상심하고, 약해지고, 억압받고, 열등의식을 갖고 피해의식 속에 무수한 좌절과 절망과 고독과 실패와 병마 속에 허덕이는 모습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높은 사람은 높은 사람대로 근심하고, 낮은 사람은 낮은 사람대로 고민합니다. 그러나 기름을 준비한 사람들은 이 시대가 잃어버린 진리를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할/ 많은 사람들은 재물이 세상을 구원하는 줄 믿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빵이 세상을 구원하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느니라.' /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자유 함을 얻습니다. 여러분 행여나 지금도 두렵고 떨립니까?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강하고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느니라.' 세상을 이긴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이 이겨 놓은 길, 우리가 믿음으로만 달려가면 역사는 일어납니다. /믿/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안정, 평화, 성취, 번영'을 원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얻었을 때 기뻐하고 얻지 못할 때 낙심합니다. 한 평생 거칠고 험한 세상을 살면서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을 살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향하여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14: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할/ 여러분 우리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평화가 필요합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도 평화가 있어야 하고 역사적으로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평화를 주노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내가 준다'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내가 다스리고 내가 해결하고 내가 책임지고 내가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다스리는 것에 평화가 있습니다. /할/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고, 나를 그분께 맡긴다는 것이고, 내 삶의 중심을 예수 중심으로 바꾼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란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말입니다. 슬기로운 자는 기름을 준비한 자인데 '예수님의 영으로 충만한 자, 예수님과 함께 하는 자'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면 크게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할/ 3절에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또 말합니다만 기름은 신앙생활의 원초적인 힘이 되는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생명력 넘치는 내면적 생활과 성령 충만, 믿음 충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기름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성령의 체험조차 얻지 못한 외형적인 성도를 가리킵니다. 즉 형식적이고 의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신랑 예수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 본문에서 주는 교훈입니다. 이 사건은 불행 중에 가장 큰 불행이요, 비극 중에 가장 큰 비극입니다. /할/ ⑶기름을 준비 못한 미련한 자를 보면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며, 그 다음 신앙의 삶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 자신 1:1의 신앙이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성령 충만해야지, 내 남편이 내 아내가 믿음 충만하다고 들림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할/ ⑷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진리입니다. 잔칫집의 문이 닫혔습니다. 한번 닫힌 문은 다시 열 수가 없습니다. 범사에는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만사에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한 순간 내 인생의 기회의 문이 닫혀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후6:2절에서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아멘!/ 10절에 '저희가 사러 갈 동안에' 때가 지났습니다.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봉사할 기회가 있고 때가 있습니다. 언제나 늘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에게도 효도할 수 있는 때가 있고, 기회가 있습니다. 부모가 영원히 항상 자식들 옆에 있지 못합니다. 때가 되면 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살아 계실 때 효도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본문의 이 미련한 처녀들은 그 밤에 신랑이 올 바로 그 시간에 그 자리를 비우고 또 이미 밤중이라 가게문이 모두 닫혀 살수도 없을 때 그것을 사려고 나왔습니다. 그때 신랑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누가 주님과 함께 들어왔습니까?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그렇습니다. 준비된 자만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예비된 자'란 '인내를 가지고 신랑이 더디 올 것에 대비하여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입니다. '닫힌지라' 이 단어는 이미 문이 굳게 닫혀버려 다시 열리지 않을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구원은 기회를 잃어버리면 끝장입니다. /믿/ ⑸미련한자들의 절규를 들으면서 우리들도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11-12절에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그러나 주님은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여기서 미련한 자들의 절규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마7:21-22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비유의 '크라이 막스'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허겁지겁 신자, 헐레벌떡 신자'를 보게 됩니다. 인생에 있어서 항상 한 박자 늦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에서는 그런 대로 넘어갑니다만 영적인 세계에서는 안 통합니다. 여러분, 가장 불상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나님께 버림받은 존재가 가장 불쌍한 존재입니다. 이런 사람이 어디로 갑니까? 지옥 음부에 떨어져 이를 갈며 슬피 우는 처참한 신세가 됩니다. /믿/아멘!/
④신앙은 지금 현재가 중요합니다. 지금이 졸며 잘 때가 아니라 깰 때입니다. 롬13:11-14절에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도적이 밤중에 침입할지라도 주인이 깨어있으면 절대로 집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영적으로 캄캄한 밤중에 도적같이 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깨어 있는 성도들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살전5:4절 이하에 보니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찌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할/ ⑤오늘 비유에 결론도 깨어있으라고 당부하고 계십니다(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⑴'그 날과 그 시'는 주님의 재림의 날입니다. 지구에 종말의 날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꼭 이루어집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주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요14:1-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행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비롯한 오백 여 성도들이 지켜보는 데서 승천하시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말하기를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1:11)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살전4:16-17절에서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였고, 약5:7-9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도 그의 서신 벧후3:10절에서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계1:7절에서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할/ ⑵우리 모두 깨어 있는 사람이 됩시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여기서 깨어 있는 자는 재림을 준비한 자요, 늘 깨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또 깨어 있는 사람은 자기의 믿음을 준비하고 확인하는 사람입니다. 고후13:5절에서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 했습니다. /할/ 또 여기 '깨어 있으라'는 말은 '예비하고 있으라'와 동일한 말입니다.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이 말씀이 24장에서 4번이나 나옵니다.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바로 깨어 있어야 할 이유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종말의 신앙은 여기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준비하고 깨어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 돌아가는 증조들을 보면 정말 우리 주님이 오실 재림의 때가 임박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깨어있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아멘!/ (2012년 10월 7일 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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