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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한 사람 보고 싶다-김정남 (언론인)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2. 26. 12:22

그런 한 사람 보고 싶다
김 정 남 (언론인)

                               踏雪野中去    눈 밭 속을 가더라도
                               不須胡亂行    함부로 걷지 마오
                               今日我行跡    오늘 내 발자국이
                               遂作後人程    뒷사람의 길이 될지니

  지난 설 연휴 때 청풍호 주변의 산골마을에서 며칠 묵었다. 내가 그 곳을 좋아하는 것은 뒤쪽으로 호젓한 등산로가 나 있어, 그 길로 별로 높지 않은 능선 길을 따라 저 멀리 청풍호를 내려다보는 풍광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길은 동네사람들이 송이 등 산야초를 캐러 다니느라 만들어진 것으로 숲 속 오솔길로 시작해서, 바위를 타고, 산허리를 돌아 능선 길에 오르도록 되어 있다. 내려간 이튿날 새벽, 나는 늘 하던 대로 그 길을 찾아 나섰다. 아뿔사. 그 길은 꽤나 깊은 눈으로 덮여있었고, 아무도 그 눈을 밟고 지나간 사람이 없었다. 과연 그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원래부터 길이 희미했던데다 그런 길마저 눈에 묻혔으니, 나 혼자 길을 찾고 또 길을 내면서 가야 했다.

  용기를 내서 눈 위에 발자국을 내면서 갔다. 내가 길을 잘못 내면, 뒤에 오는 사람 역시 똑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한발 한발이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가는 길이 미끄럽고 때로 험했지만 그렇게 두어 시간의 고생 끝에 능선에 올라 얼어붙은 청평호를 조망할 수 있었다. 이렇게 길을 내고, 또 내가 올라온 발자국을 따라 거꾸로 내려오면서 나는 백범이 즐겨 읊었다던 이 시가 생각났던 것이다. 기왕에 있던 길을 찾아내기도 이렇게 힘든데, 한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얼마나 외롭고 숙연한 일일까 하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던 것이다.

  내가 이 시를 처음으로 만났던 것은 1970년대 초반, 백기완의 백범사상연구소에서였다. 비상사태와 유신정변이 몰아치는 와중에서 백범사상연구소는 당대의 협객들이 모여 울분을 토하고, 고담준론을 나누는 장소였다. 어느날, 백기완이 보여주는데, 명함판 크기의 백범 사진 옆에 백범의 친필 만년필 글씨로 이 시가 적혀있었다. 거기다 “백기완군에게 준다”라는 말까지 쓰여있는 것이 아닌가. 백기완의 완(玩)자가 잘못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어쨌든 백범의 친필 글씨를 사진과 함께 직접 받은 백기완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 후 백범이 붓글씨로 쓴 같은 내용의 휘호를 복제해 나누어 가졌다. 한 폭은 표구해 집안에 걸어놓고 들고 나며 이 시가 주는 그 깊은 가르침을 되새기곤 했었다.

눈 밭 속을 가더라도 함부로 걷지 않는 사람

  그때 우리는 이 시가 서산대사의 작품인 줄 알았다. 이 시가 서산대사의 것이 아니라 조선조 정조∙순조 연간의 문인 임연당(臨淵堂) 이양연(李亮淵, 1771~1853)의 작품이라는 것을 안 것은 그 뒤의 일이다. 한문학자 안대희 교수에 따르면 이 시가 이양연의 시집 「임연당 별집(別集)」에 실려있는데다, 「대동시선(大東詩選)」에도 이양연의 작품으로 올라있다고 한다. 백범의 휘호에서 1행의 답(踏)이 천(穿)으로, 3행의 금일(今日)이 금조(今朝)로 되어있는 점이 다르다.

  과연 이 시는 불가의 선미(禪味)보다는 수기(修己)를 강조하는 유가(儒家)의 자계(自戒) 풍모가 더 짙어 보인다. 그러기에 이 시를 백범 같은 이가 당신의 좌우명이자 자경문(自警文)으로 삼았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 시는 혼자 있을 때조차 몸가짐을 삼가해야 한다는 신독(愼獨)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이 시 앞에 서면 스스로가 괜히 엄숙해 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새로운 정부의 출범과 관련하여 3부의 요직을 담당할 이들의 과거행적이 국민의 관심사로 떠오른바 있었다. 공직을 맡는 사람이야말로 “눈 밭 속을 가더라도 함부로 걷지 않은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백이면 백 그 모두가 함부로 걸은 사람들 뿐이니 과연 이 나라가 어디로 갈 것인지 걱정이다. 법치주의를 말하면서 법을 운용하는 총리, 장관, 실장들이 하나같이 위법, 탈법, 편법을 일삼았으니,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더러 무슨 명분으로 바르게 걸으라 말할 수 있으랴. 천편일률로 모두 그런 사람이라는 것도 통탄할 일이지만, 함부로 걷지 않은 사람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 우리를 더 참담하게 한다.

  옛사람은 그 자신이 바르면 령이 없어도 바르게 되고, 그 자신이 바르지 못하면 비록 령을 내린다 해도 따르지 않는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공직부패가 더욱 심화되었다는 행정연구원의 조사결과가 아니더라도, 이미 이명박 정부는 처음부터 부패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대통령 자신이 경박한 행동거지로 독도분쟁을 자초하고, 누가 보지 않으면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 그가 이끈 정부가 부패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눈 밭 속을 가더라도 함부로 가지 않는 사람, 홀로 있더라도 스스로 삼가할 수 있는 사람, 그 스스로가 바른, 그런 한 사람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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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정남
· 언론인
· 前 평화신문 편집국장
· 前 민주일보 논설위원
· 前 대통령비서실 교문사회수석비서관
· 저서 : <진실 , 광장에 서다- 민주화운동 30년의 역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