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강원용목사/살롬을 힘써 찾아라! (겔 13:3-8/벧전 3:8-12/눅 19:37-42)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11. 15. 16:14

강원용목사/살롬을 힘써 찾아라! (겔 13:3-8/벧전 3:8-12/눅 19:37-42)

 

여러분은 지난 9월 11일 밤 텔레비전을 통해, 뉴욕에서 전개된 기가 막힌 사건을 보셨을 것입니다. 미국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경제력의 본거지요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110층 짜리 쌍둥이 건물에 비행기가 와서 정면으로 부딪히면서 건물이 무너져 내리고,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국방부가 있는 펜타곤이 무너지는 광경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어서 부시 대통령은 "21세기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전쟁은 언제 끝날지도 알지 못하고 전선도 없는 전쟁이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20세기의 후반기는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진영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진영이 정면 대립을 하다가, 결국 소련은 무너지고 미국만이 남아서 전 세계에 최강대국이 되었습니다만, 중국과 북한에서 쏘는 미사일만 막으면 미국은 지상에서 절대 안전한 나라라고 자부하던 부시가 자기 코앞에서 세계 최강대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기가 막히고 분통이 터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 미국과 전 세계가 흥분의 도가니로 빠졌고 부시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오래 전부터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결코 현실이 아니기를 바랐던 나로서는, 그것이 현실로 오고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잘 아는 대로, 이제 21세기에는 기독교 문명을 배경으로 하는 서구세계와 이슬람 문명을 배경으로 하는 아랍국가들 사이에 문명의 대충돌이 생겨서, 이 지구의 역사가 끝날지도 모른다는 끔찍스러운 예측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는, 왜 이런 끔찍스러운 전쟁이 21세기를 맞는 첫 해에 일어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저 테러단들이 와서 저렇게 단번에 건물을 부숴서 수천 명의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고 간단하게만 볼 수 없습니다. 비행기에는 테러를 저지른 사람들이 탔습니다. 그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입니다. 자기 목숨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가서 부딪히면 비행기는 고사하고, 건물은 고사하고, 자기 목숨이 뼈다귀 하나 남지 않고 없어진다는 것을 잘 알면서 그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들의 행동에는 단순하게 "테러다" 이렇게만 볼 수 없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 사건이 생기는가. 뿌리를 살펴보면 굉장히 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나 가장 구체적인 것으로 이스라엘 민족과 아랍 민족 사이의 문제는, 양쪽이 모두 구약성서가 말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야웨라고 부르고, 아랍인들은 알라라고 부릅니다. 그뿐 아니라, 양쪽 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자칭합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읍지인 동시에 알라신의 도읍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로서는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 선물로 주고 잘 지키라고 한 도성입니다. 이것을 결국에 아랍인들에게 빼앗기고 난 유대인들은 그 한을 품고 평생 세계를 떠돌게 되고, 그 이후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영국과 미국이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을 이 땅에 보내서 그곳에서 거의 무력으로 이스라엘을 세우게 되는데, 이에 아랍인들은 기독교국가인 영국과 미국에 의해서 알라신을 섬기는 자기들이 무참히 당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48년 이후에 거듭 계속된 이스라엘과 아랍의 끝없는 투쟁의 반복을 불러온 원인입니다. 여기에서 기독교 문명을 배경으로 하는 미국이나 영국은 이스라엘을 지원하게 되고, 아랍은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가난과 질곡에 떨어지고 맙니다. 이들은 결국 자기들의 원수일 뿐 아니라 알라신의 원수인 저들을 쳐부수는 것만이 알라신에 대한 충성이요, 그것만이 올바른 삶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비참한 역사가 뉴욕에서 일어난 사건의 배경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도읍이라고 생각하고,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서로 1400년 간을 싸워 왔습니다. 이들의 싸움은 30년 전쟁도 되고, 100년 전쟁도 되었습니다. 이들은 계속해서 수십 년의 전쟁을 반복해 왔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우리 기독교인들은 흔히, 모하메드교, 이슬람교는 마호멧이 준 코란을 믿는 종교로, 비이슬람교도들에게 "코란을 받을 것이냐, 칼을 받을 것이냐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며, 코란을 못 받겠으면 칼을 받아라 하는 식의,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고 잔인한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요즈음 텔레비전에서 아랍을 연구하는 여러 교수들이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자주 보았을 것입니다. 이슬람이 믿는 코란에서는 평화라고 하는 것이 절대적입니다. 평화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 안 되며,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 그 종교의 주목적입니다. 그것이 이슬람교입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유대교, 기독교는 과연 어떨까요? 평화는 히브리어로는 "샬롬"입니다. 성서가 이 샬롬, 이 평화를 어느 정도 존중하고 있느냐 하면, 제가 조사한 바로는 신구약 성서에 이백 쉰 아홉 번 나옵니다. 신약성서에만 여든 여덟 번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이 샬롬은 성서의 핵심되는 언어, 키워드인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건강하게 살고, 영적으로 온전하게 살고, 공동체로는 공의가 이루어지고 전쟁 없이 살며, 정치적으로는 안정이 이루어지고, 경제적으로는 번영이 이루어지고, 종교적으로는 종말의 약속을 받은 그것이 샬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바로 샬롬의 하나님입니다. 죄란 것은 무엇이냐. 죄는 평화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구약 성서를 믿는 기독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슬람과 이러한 기독교가 끝없는 전쟁을 되풀이하는 이유가 과연 뭐라고 생각합니까? 평화를 절대로 존중하는 두 종교가 전쟁을 하면서 그 전쟁의 이름을 Holly War, 성전이라고 합니다. 거룩한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충성은 거룩한 전쟁에 목숨을 바치는 것이 됩니다. 무엇이 이렇게 만드는 것입니까?
야웨 하나님, 혹은 알라신을 믿는 그들은 그 신을 자기 체제 안에 가둬 놓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소위 유대교의 체제 안에 야웨 하나님을 가둬 놓았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도그마를 만들고 율법을 만들고, 그것들을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으로 만듭니다. 이것은 이슬람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체제, 상징적으로 말하자면 "예루살렘"을 지키는 것이 곧 하나님을 지키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것이 야웨 하나님, 혹은 알라신에 대한 최고 충성이 되어 버립니다. 바로 그들이 만들어 놓은 종교적인 체제, 그들이 그 체제 안에서 지키는 율법, 도그마 그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것이 독선적인 것이 되어서, 그것과 어긋나는 것은 쳐부수어야만 하는 배타적인 것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철저히 닫혀 버린 종교가 된 것입니다.


이들은 그들의 종교를 덜 믿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전쟁을 선동하는 지도자들일수록 종교적인 정열이 대단하고, 그들이 믿는 종교에 모든 것을 바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긴 하나, 흔히, 언제든지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고 한국에 있는 기독교는 어떻습니까?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잘못된 점을 보면서, 디트리히 본회퍼의 말이 생각납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들이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굶주리는 사람들, 병든 사람들, 박해받는 사람들, 수많은 고난을 받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교회가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교회 나오고, 헌금 잘 바치고, 교회 모임에는 빠짐없이 잘 참석하지만, 결국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는 거의 관심 없는 교인들을, 본회퍼는 뭐라 말했느냐 하면,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교회 열심히 나와서 뭘 합니까? 기도합니다. 왜? 나 이런 복 좀 내려 주십시오. 내 가족이 이런 복 좀 받게 해주십시오. 우리 모임이 이런 복 받게 해주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을 써먹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용하는 그런 종교가 어떻게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뿐입니까?
우리가 열심히 교회에 봉사하는 것으로 잘 믿는다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뭘 믿습니까?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입니다.


그 그리스도는 어떤 분입니까? 그분이 이 세상에 태어나던 날 밤, 하늘의 천군천사가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고 노래합니다. 그의 탄생은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옵니다. 요단강에서 세례 받을 때 비둘기 모양을 한,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합니다, 평화의 성령이 그분의 머리에 와 임하였습니다. 그 성령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뭘 합니까. 예수와 함께 광야로 나갑니다. 거기에는 돌로 떡을 만드는 물질 숭배, 절만 하면 천하를 다 주겠다는 우상숭배의 유혹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분은 절대적인 사탄의 역사 속에 가서, 그곳에서 떡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에게 절하고 얻는 권세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존재로, 사탄과 부딪치면서 전 생애를 삽니다.


그가 살던 유대나라의 유대교는 크게 세 종류였습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고, 계명을 잘 지키고, 십일조 헌금을 잘 내는 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라는 바리새파와, 세상을 적당하게 살며, 현실주의를 내세우며 로마제국과 적당히 타협한 사두개파,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악을 징벌하고 잘못된 것은 폭력을 써서라도 몰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젤롯당이 있었습니다. 이런 현실 가운데서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의 길은 예수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 모두는 평화의 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걸어가신 평화의 길은 어디로 이어졌습니까? 그것은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죽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폭력을 폭력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고, 자기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그의 십자가의 죽음, 여기에서 평화가 성취됩니다. 제자들은 겁이 나서 다 도망치고 문을 잠그고 벌벌 떨면서 방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부활한 예수는 잠가 놓은 그 문으로 들어가, 제자들을 보고는 "내가 너희에게 평화를 가지고 왔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에 부활한 예수가 하신 말씀입니다. 결국 평화이신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평화를 성취시키고, 예수 안에서 성취한 평화를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보냄으로써 성령의 역사로 평화를 이루어 갑니다. 그 하나님은 예수 안에, 그 예수는 성령 안에, 그 성령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바로 나의 삶의 한가운데에 와 있습니다. 성령과 함께 사는 사람,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평화와 함께 사는 사람이지요. 성령이 하시는 일이 그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5장 19절에는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는 성령 안에서, 그리고 성령은 우리 안에 와서 평화를 만들어 주신다 했습니다. 오늘 읽은 베드로전서 3장 11절에, 아까 읽은 성서는 번역이 좀 달라서, "평화를 추구하라" 이런 말을 썼습니다만, 제가 가지고 있는 성서에는 "평화를 실로 힘써 찾아라"고 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모든 힘을 다해서 평화를 찾아라"는 이러한 말은, 예수를 믿는 사람은 무조건 평화주의자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북의 군대가 3․8선, 휴전선을 치고 들어오는데 "아아, 우리는 평화주의자이니까, 평화적으로 해 봅시다."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안에서 평화라는 것을 일군다는 것, 그것은 정의를 동반한, 이것만이 사람들이 살 길인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21세기에는 분명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평화를 깨버리고 평화를 상실하는 때, 이 지구의 모든 생물은 분명히 끝장나고 맙니다. 부시가 끝날 줄 모르는 전쟁을 한다고 할 때, 저 사람이 나보다 머리가 더 좋은 줄 알았더니, 좀 멍청한 사람이구나 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싸움을 한다는 겁니까? 아프가니스탄 조그만 나라 인구도 얼마 안 되는 나라 하나만 하더라도, 강대국 영국이 들어와 싸우다 싸우다 손들고 나갔고, 소련이 10년 동안 들어와 싸우다가 스스로 물러나갔습니다. 미국이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월남에 가서 결국엔 밀려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은 아프가니스탄 한군데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에 라덴이라는 사람을 미국의 정보부 등등이 합세하여 잡아들이려고 하는 것을 압니다. 아마 결국 라덴을 찾을 것입니다. 찾아서 비참하게 처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라덴이 처형되면 백 명의 라덴이 다시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백 명의 라덴을 처형할 때 만 명의 라덴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할 겁니까? 몇 년 전에도 텔레비전에서 예견한 것입니다만, 단기적으로는 이들을 죽이고, 강경한 조치를 취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 끌고 갈 때에는 그 나라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망하는 것입니다. 이 역사의 뿌리를 보아야 합니다. 왜 아랍인들이 미국과 싸워 죽는 것이 영광이라고 생각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이제까지 천 년 이상 당해온 그 수모와 고통과 설움과 분통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시간을 주면서, 풀어주면서, 화해를 만들어야 하고, 평화적으로 함께 사는 길을 열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랍의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총 쏘는 것부터 배운다고 합니다. 그런 아이들을 다른 나라 아이들처럼 인터넷을 즐길 수 있는 아이들로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이런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없고, 인류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어제도 뉴욕에 본부가 있는 "세계종교인 평화협의회"에 전화를 걸어서 오랫동안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전 세계의 종교, 특히 기독교가 선두에 서서 이슬람과 손잡아야 한다. 아랍의 굶주리고 피난 다니는 저 사람들을 우리가 먹여 살려야 한다. 그래서 참사랑을 이 사람들에게 실천해서 그들의 원한을 풀어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들도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며, 10월 달에 큰 모임을 할 테니, 꼭 와서 그런 뜻을 밝혀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만,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부시가 말한 끝도 모르고 전선도 없는 이 전쟁은 더 이상 터져서는 안 됩니다. 기도해야 됩니다. 정말 우리 마음을 모아서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우리가 할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어떤 곳에 살고 있습니까. 지금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구약 에스겔서에 보면, 에스겔 당시의 종교인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성문이 쪼개졌는데 그 쪼개진 성문을 고쳐서 든든하게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밤낮 성전에 모여서 하나님, 하나님만 부르며 지내는 그 종교인들을 에스겔이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황무지에 사는 여우 새끼들아 했습니다. 에스겔은, "쪼개진 성문을 고칠 생각은 안 하고, 쪼개진 성문 틈바구니에 들어가서 후벼 가지고 구덩이를 만들고 구덩이 속에 들어앉아 따뜻한 햇볕을 쬐다가 살금살금 기어나와 다른 짐승들이 먹다 버린 뼈다귀와 썩은 고기를 주워 먹는 그 황무지의 여우가 바로 너희들이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정말로 쪼개진 성문을 고치는 일에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까? 전국의 교회가 수많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뭘 하고 있습니까? 황무지의 여우처럼, 쪼개진 성문 틈으로 살살 기어 들어가서 구덩이를 파고 그렇고 그런 것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지금 이 겨레는 남과 북으로 갈라졌습니다. 이 쪼개진 성을 자칫 잘못 건드리다가는 한반도의 칠 천 만 겨레가 완전히 끝장나 버릴 것입니다. 이것이 동북아로 번져서 세계가 다 망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 쪼개진 성을 고치려고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굶어 죽어가고, 그 굶어 죽는 그들을 방치하는 한, 피맺힌 원한으로 비행기를 몰고 쌍둥이 본부를 들이받는 그런 일이 한반도에 생기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뭘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까? 이 나라 국회에서 하는 짓거리들은 뭡니까? 야당, 여당하며 저래가지고 나라가 되는 겁니까? 이 평화가 깨진 땅,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깨진 땅, 무제한 폭력이 날뛰고 있고, 성폭행에 이르기까지 말할 수 없는 많은 폭행들이 일어나고 있는 이런 역사의 한가운데서 여러분과 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과연 이렇게 해서 예배를 드리고 조용히 집에 돌아가고, 다음주 추수감사절 헌금을 남 못지 않게 하면, 그러면 천당에 가는 것 다 예약되고 그런 것입니까? 이 세상에서도 복 받고 저 세상에서도 복 받고 그렇게 되는 겁니까?
우리는 정말 기도해야 됩니다. 지구 덩어리가 생명이 없이 피폐해지는 이 비참한 현실 속에서 정말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테러다, 폭력이다" 이렇게 우리는 말하고 있습니다만, 비행기로 그 젊은 목숨을 버리는 그 사람들에게는 폭력이 아닙니다. 알라신을 위한 헌신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들의 뿌리깊은 원한을, 풀 수 없는 그들의 원통함과 분통함을 풀어 줘 가면서 서로가 평화스럽게 살아가는 세계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오늘이야말로 평화인 하나님, 사도행전 10장 38절에 나오는 샬롬의 복음, 이 평화의 하나님, 평화를 위해 십자가 위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가운데 계신 평화의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오늘의 샬롬의 성취를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헌금과 우리의 실천을 때가 늦기 전에 합하여 평화를 이루는 여러분과 저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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