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간증+믿음의 글

[스크랩] 나는 지옥에 떨어졌었습니다 (조용기 여의도 순복음 교회 원로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12. 26. 10:27

출처:  http://cafe.daum.net/gvlove0691/EnQA/224     (2008. 2. 3. 성찬주일설교 중에서)

 


      얼 전에 저는 꿈도 아니고 환상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것도 아니고 인지 밖인지도 모르는 사이에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 지옥은 마치 우주의 블랙홀 같았었습니다. 주위에 있는 별들을 빨아 당겨서 삼켜 버리는 지옥인데 엄청난 자석과 같았습니다. 사실은 쇠붙이가 있으면 끌어당기는데 없이 끌려가는 것처럼 지옥은 죄만 있으면 끌어 당겨요. 손톱만한 죄로부터 바위 덩어리만한 , 모든 죄를 끌어 들이는 엄청난 인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옥으로 사람들이 끌려 들어가는데 뒹굴면서 엄청난 인력에 곤두박질치면서 빨려 들어가는데 누구도 막을 수가 없어요. 죄는 죄나 적은 죄나 죄는 쇠붙이가 크거나 적거나 자석에 끌려가듯이 열린 지옥에 끌려 들어가는데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지옥은 사망의 처소인데 캄캄한 곳으로 끌려 들어가는데 저도 회오리바람 같은 자석의 힘에 의해서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 지옥문에서 들어가자마자 그곳은 시간이 중지된 곳이었습니다. 영원한 곳이었습니다. 영원한 곳에 급속한 속도로 떨어지는데 고통은 말로다 없습니다. 세상의 말로써 비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도저히 말로다 없어요. 그리고 나는 영원히 지옥에 떨어지고 나오는 알았습니다.

 

      기에 떨어져서 고통을 당할 생각하기를 ' 태어난 것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고통의 괴로운 세계에 바에는 태어나는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데 마음속에서 '예수님의 보혈을 부르짖으라. 예수님의 보혈을 부르짖으라.' 저는 원래 예수를 믿고 주님께 기도하는 사람이니까 보혈이 마음속에 있지만 다른 사람은 보혈이 없지 않습니까? 내가 예수님의 보혈로, 예수님의 보혈로.. 아주 모기 소리 만하게 ‘예수님의 보혈로, 예수님의 보혈로’ 하니까 끌려 내려가던 내가 중지를 해요. 그리고 예수님의 보혈을 외치니까 지옥이 끌어당기는 자력선이 없어져 버리고 떠올라 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고함을 쳤습니다. “예수님이 보혈로! 예수님이 보혈로! 예수님의 보혈로! 그러니까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말할 마다 떠올라 오고 떠올라 와서 지옥의 세력이 끊어지고 나중에 세상으로 나와서 정신을 차렸는데 영원의 세계를 여행하고 같은 기분을 느꼈었습니다. 도저히 형언할 없는 그러한 느낌을 느껴서 제가 수첩을 내어서 간증을 적었었습니다. 그것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옥은 절대 단절의 처소인 것입니다.

 

      옥에는 하나님 생각도 없어요. 세상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생각도 없고 마음에 보혈이 없는 사람은 교회 아무리 왔다 갔다 하고 형식을 지켜도 소용이 없어요. 지옥은 눈꼽만치 죄만 있어도 끌려 들어갑니다. 우리 눈꼽만큼 죄도 없이 정결케 하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밖에 없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 > 보혈을 모르는 사람은 거기에 내려가서 영원히 올라올 없습니다. 단절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 세상에 대한 완전히 단절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과의 대화도 헛된 것입니다. 공허함 밖에 없습니다. 이웃이 고통 속에 있는데 대화가 됩니까? 곤두박질치면서 몸부림치는데 대화가 됩니까? 지옥에 여러분 불이 나는 바깥에서 타는 알았는데 밖에서 타는 것이 아니에요. 유황불이 속에서 타올라 오는 것입니다. 속에서 유황불이 타올라 오르고 구더기가 득실거리고 온갖 고통이 다가오는데 세상으로, “유황불이다! 무슨 구더기다! 무슨 고통이다! 그렇게 말하지만 그것은 형식에 불과해요. 표현 못해요. 인간으로 표현할 없는 괴로움은 도저히 인간의 말로써 표현할 없는 고통이 속에서 끌어 오르니까 자기 고통도 감당하지 못하는데 누구 이웃하고 대화를 한단 말인 것입니까? 엄청난 고통 속에 짓눌려 이웃과의 대화가 끊어진 것입니다.

 

< >

 

      옥은 완전 절망의 처소였었습니다.

 

      간이 정지 되어 버렸어요. 시간이 있어야 내일의 희망도 현재의 희망도 있는데 시간이 정지되어 버리니까 내일에 희망도 현재의 희망도 전혀 없는 영원한 절망만 있었습니다. 시간이 없어요. 1년이 지나갔다. 2년이 지나갔다. 그것이 없어요. 지옥문에 들어가자마자 시간 개념은 없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설명해도 모르겠지요? 적막강산입니다. 단절의 세계인 것입니다. 절망의 처소인 것입니다. 희망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괴로워서 이것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없어요. 그리고 언제쯤 괴로움에서 놓여날 있다는 기약도 없습니다. 오직 좌절과 절망만 들어찬 것입니다.

 

< >

 

      옥은 자살하려고 해도 죽을 수도 없는 곳입니다.

 

마나 자신이 밉든지 내가 나를 죽여 버리고 싶습니다. 칼이 있으면 찔러서 죽여 버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자기가 저주스럽고 혐오스러워도 지옥은 죽을 수가 없습니다. 죽을 수가 있으면 축복이지요. 죽을 수가 없는 곳입니다. 자기가 자살을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에 대한 미움이 하늘에 사무치니까 살수가 있어요? 세상에도 자기를 비하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하는 것처럼 지옥에는 자살을 없으니까 괴롭지 않습니까?

 

      가복음 9 48절로 49절에 예수님께서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말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죽는 것이 없어요. 구더기 같은 죄악의 죄책이 꺼지지도 아니하고 불도 꺼지지도 아니하고 모든 사람이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고함치고 몸부림치며 소금 치듯합니다. 몸부림칩니다. 저도 몸을 비틀고 그냥 앞으로 엎드렸다가 뒤로 누웠다가 옆으로 기었다가 자빠졌다가 온갖 짓을 해도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었습니다.

 

      옥에서 회개나 후회나 있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회개하려고 해도 회개할 없고 후회하려고 해도 후회할 없어요. 시간이 중지된 곳이라 과거의 일을 회개할 수도 없고 후회할 수도 없어요. 세상에서는 우리가 회개할 있고 후회할 있지 않습니까? 회개도 못하고 후회도 못하므로 자기의 상황이 변화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회개할 사람은 땅에 있을 회개해야 돼요. 지옥에 들어가면 회개할 알아도 회개가 없고 후회가 없어요.

 

< >

 

      옥에 들어가면 회개할 없기 때문에 새롭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영원한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데 가벼운 죄를 지은 사람은 조금 지옥의 가장 밑바닥에서 떠있고 죄의 중량에 따라서 흡입력이 달라요. 죄는 강한 흡입력으로 끌려 들어가고 적은 죄는 중간에 있지만 고통은 똑같아요. 그리고 형언할 없는 버림받은 고통은 말로 없어요. 여러분 절망, ‘나는 버림 받았다! 그것이 영원 속에 들어찼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버림 받고, 세상에서 버림받고, 이웃에게 버림받고, 전혀 자신에게도 버림받고, 보통은 아무리 버림 받아도 자기가 자신을 버리지 않지 않는가. 자기 자신은 자꾸 보호하고 변명하는데 그것도 없어요. 하나님께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이웃으로부터 자기 자신으로부터 버림받아 전적으로 철저히 버림받은 몹시 상상할 없는 고통이었었습니다.

 

      가복음 16 27절로 28절에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고통을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러나 버림받은 그의 기도를 들어줬습니까? 단호하게 No!”했습니다. 버림받은 처소인데요. 기도가 무엇이며 응답이 무엇입니까?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살로니가후서 1 8절로 9절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원한 형벌의 멸망이라니까 하루 이틀의 형벌이 아닌 것입니다. 영원한 형벌 왜냐면 시간이 없는 지옥은 시간이 중지된 곳이니까 고통은 하루 이틀의 고통이 아니라 영원한 고통인 것입니다.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영원히 고통 자체 속에 존재하는 삶이란 엄청난 것입니다. 희망이 있어야죠. 지나면 좋아질 것이다. 세월이 흘러가면 나아질 것이다. 지나면 변화가 것이다. 이런 것이 없습니다. 극한 고통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절망과 좌절과 버림받은 심령과 괴로움은 도저히 말로써 표현 못합니다.

 

      느낀 것은 뭐냐면 ‘정말 지옥 바에야 태어난 것이 좋다. 지옥에 가서 자살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것은 살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살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데 살아 있어요.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미꾸라지에 소금 치듯이 몸부림을 치고 발버둥을 치는데 그것이 시간 하는 아니라 영원히 계속하는 것입니다. 자지도 아니하고 쉬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있는 죄가 지옥 불에 타면서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태양이 항상 공중에 떠있어 수억만년 동안 저렇게 불빛을 내는 것처럼 억만년 동안 시간 없이 속에 죄가 불타는 것입니다. , 죄를 씻을 보혈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죄는 영원히 타는 원자핵과 같아서 수가 없습니다. 죄는 세상에 예수님 보혈로 있는 것입니다. 보혈이 없는 곳에 죄를 수가 없으니까 영원히 불타는 것입니다. 이러한 표현은 자체가 수박 겉핥기에 불과합니다. 정말 몸서리치는 곳이 지옥입니다.

 

      한계시록 21 8절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육체가 죽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나님께 버림받아서 지옥에 떨어진 것은 둘째 사망으로써 고통은 말로 다할 없습니다.

 

< >


      일생을 목회하면서 지옥에 대한 설교를 별로 안했습니다. 성경에 보니까 '지옥도 있을 만하구나!' 그런 생각이 많이 났어요. < > 별로 심각하게 생각 안했는데 제가 순식간에 지옥으로 떨어져서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지옥에서 당하는 고통은 말로써 형용할 없었습니다. 나는 깨어나자마자,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지옥에 가지마라고 경고해야 되겠다. 불타는 사명감을 느꼈습니다.

 

      러분, 죄를 지을 때는 세상에 일종의 환락이 있는 같지만 그것이 나중에 엄청난 지옥으로 끌려가는 재료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지옥에 가보니까 죄도 끌려 들어가고 조그마한 티끌 같은 죄도 결국에는 자력선에 지옥의 흡입력에 끌려 들어가요. 지옥은 죄를 끌어 들이는 자력선이에요.

 

< >

 

      지옥에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엄청난 자력선으로 잡아당기는데 자력은 여러분, 나무나 동은 끌어당기지 못합니다. 철만 끌어당기지요. 지옥은 죄만 끌어당기지 용서받은 의인은 당길 힘이 없어요. 자력선이 힘이 없어요. 예수의 보혈을 부르짖을 모든 지옥의 세력이 끝나므로 지옥에서 떠나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 이외에는 우리를 희게 하고 의롭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런데 지옥에서 올라오니까 제가 제일 먼저 느끼는 것은 '~ 이곳이 천국이구나!' 예수 믿고 세상에 사는 것보고 천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때는 고달프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하고 싫증이 나기도 하고 그랬는데, 웃기는 소리. 지옥에 잠시 갔다 나오니까 천국이 다른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예수 믿고 사는 것이 천국이구나.

 

< >

 

      2004 조선일보에서는 신앙과 경제의 관계에 대한 의미 있는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2000년을 기준으로 188 국가로 구성된 국제연합(UN) 가운데는 부자 나라도 있고 가난한 나라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나라는 살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가? 그에 대한 관심을 갖고 미국 미주리 주에 있는 세인트루이스 연방 준비 은행 연구원들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이색적인 시각에서 답을 설명하는데, 결론적으로 사는 나라와 사는 나라가 생기는 이유는 '지옥을 믿느냐 아니냐' 달렸다는 것입니다. 지옥을 믿는 사람이 많은 나라가 살고 부패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경제적 원리로는 설명할 없는 비경제적 요인들, 특히 나라의 종교가 나라의 경제에 끼치는 영향이었습니다. 연구팀이 부분을 집중 연구한 결과 지옥의 존재를 믿고 사는 사람이 많은 나라일수록 부패 정도가 약하고, 부패 지수가 낮은 나라일수록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들어갈수록 바로 지금 여기서 천국을 체험하고 자리에서 하나님의 축복도 받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미국 국민을 조사해 보니까 미국 국민의 60% 지옥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지옥이 무서우니까 그만큼 부패하지 않았었습니다. 부패 안하니까 사람들이 잘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지옥이 없다고 하는 나라는 마음대로 부패하는 것입니다. 보는데 무슨 겁날 것이 있느냐. 마음대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지옥을 보고 다음에 놀랜 것은 ‘어찌하든지 지옥은 가지 말아야 되겠다. 좌우간에 세상에서 거지가 되더라도 지옥만은 가지 않는 것’ 세상의 거지는 잠시 동안 지나가는 아닙니까? 지옥은 영원한 고통 아닙니까? 잘살고 못살고 높고 낮고 부귀영화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입니다. 속에 그리스도가 있느냐. 세상인 죄악이 들어 있느냐가 우리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때부터 심신을 새롭게 하고 말과 행동에 조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 >  내가 지옥을 보고 다음에 경각심을 느낀 것은 전에 어떠한 일을 체험해도 그런 경각심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떨리고 무섭고 몸서리가 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드러지게 내가 것은 죄가 바로 지옥으로 끌려가는 자석의 목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옥을 믿는 나라, 지옥을 믿는 사람들이 죄를 지을 수가 없고 불의를 행할 없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 >

 

      말을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내가 지옥에 가서 경험한 것은 사실 억지로 오늘 말을 했지 말로써 표현할 없습니다. 고통이 말로써 표현할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하리라. 사람이 심경을 이를 수가 없습니다. 지옥도 그렇거든 하물며 천국에 갔다 와서 천국을 말로써 표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비유로 설명하지 그것은 택도 없는 소리입니다.

 

      오늘 지옥에 대한 이야기했지만 말은 너무나 너무나 표현력이 약해서 억만 분의 일의 표현도 되는 것입니다. 고통, 고통.. 저는 고통 많이 당해봤어요. 폐병으로 죽다가 때는 숨을 쉬어서 밤새도록 낮새도록 고통하는 고통도 느껴봤고 군대에 가서 수술하고 6개월 동안 삶과 죽음 사이에 왔다 갔다 하는 고통도 겪어봤고 심장병으로 고통당하고 어지럼증으로 고통당하고 허약으로 고통당해 봤지만 그런 것은 천당이요, 그런 고통은 천당이요, ~ 지옥의 고통은 뭐라고 설명할 없어요. 어떻게 설명할까요? 이렇더라. 여러분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인간이 생각할 있는 극도의 고통의 억만 고통스러운 것이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간구합니다. 제발 지옥은 가지 마십시오. 어떤 일이 있어도 지옥은 피하십시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고 다음에는 천국 지옥의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없다고 부인해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있는 것을 없다고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없다. 귀보고 보라고 하면 봅니까? 눈더러 들으라고 하면 듣습니까? 사람은 삼차원의 세계에 있기 때문에 감각은 하나 이성으로는 영적인 세계를 없습니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판단하느니라. 성경에 계시된 말씀으로 영원의 세계를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외치는 천당과 지옥을 우리는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땅에서 준비해야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변화 받아서 십자가를 끌어안고 보혈의 능력을 의지해서 천국 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Dean`s Study
글쓴이 : Jestor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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