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호 목사 설교

[스크랩] 신비의 하나님은 신비를 주십니다. (왕상 19;1-8)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5. 28. 08:14

신비의 하나님은 신비를 주십니다. (왕상 19;1-8)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사람들과 전혀 다른 차원에서 존재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 분의 평범은 우리의 비범입니다.

그 분이 한번 숨을 내쉬면 지구가 날라갈 수도 있습니다.

그 분이 손가락으로 지구를 한번 흔들면 온 땅에 지진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범이 우리에게는 신비일 수 있습니다.


6.25 전쟁이 한창일 때였습니다. 목사님 한 분이 교회를 지키며 피란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공산당이 그 마을에 밀어 닥쳤습니다. 황급이 곡식단을 쌓아 놓은 낫가리 속에 숨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공상단이 가지 않았습니다. 며칠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 하고 굶고 있었습니다.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까마귀가 날라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엘리야 생각이 났습니다.

“까마귀를 통하여 엘리야를 먹이신 하나님! 어제와 오늘 동일하실 줄 믿습니다.”

기도가 끝나자 닭이 오더니 옆에 알을 낳고 갔습니다. 먹었습니다. 공산당이 갈 때까지 닭이 그렇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신비하신 분이십니다.


본문 이야기로 들어 갑니다.

배경은 아합왕 시대로 거슬려 올라 갑니다. 아합왕은 북쪽 강대국의 침범을 막을 수 있는 길은 전쟁으로 불가능함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화친 정책을 썼습니다. 그래서 강대국 왕의 딸 이세벨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이세벨은 바알 신을 잘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세벨은 이스라엘로 시집을 오자 말자 바알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전역에 바알 신당이 세워지고 바알 제사장들이 득세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신지, 바알이 참 하나님인지 혼돈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비를 주지 않았습니다. 3년 6개월의 가뭄이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나라가 어려워지고 있었습니다. 이 때 나라를 구하려고 나타난 선지자가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을 갈멜산으로 모았습니다. 그리고 송아지를 잡아 단위에 놓고 각각 기도하여 하늘에서 불떨어지는 신이 참 신으로 인정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먼저 바알 선지자들이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불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바알 선지자들은 포기하였습니다. 엘리야가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서 엘리야가 잡아 놓은 송아지를 불태웠습니다. 갈멜산에 모여와서 그 대결을 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외쳤습니다.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다.”

엘리야는 거짓 선지자인 바알 선지자 450명을 기손 골짜기로 끌고 가서 목잘라 죽여 버렸습니다. 지금도 갈멜산 꼭대기에는 엘리야 동상이 있습니다. 바알 선지자가 다 죽고 나니까 바알 신봉자인 이세벨의 심기를 건드렸습니다.

이세벨은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엘리야는 브엘쉐바 광야로 도망하였습니다. 로뎀나무 밑에 누웠습니다. 그리고 죽기에 넉넉하오니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천사가 나타나서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그리고 숯불로 구운 떡과 물을 엘리야에 주었습니다. 엘레야는 그 것을 먹고 마신 후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걸었습니다.


신비같지만 신비가 아닌 신비

하나님이 계시 곳에는 신비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신비같지만 신비가 아닌 것이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서 참으로 신비하다고 느끼는 것이 발견됩니다.


1. 이방 여인이 통치하는 이스라엘의 신비

아합 왕이 이방여자 이세벨에게 보고합니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합왕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 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1)


보통은 여자에게 말하여 여자가 남자에게 알려줍니다. 이것이 부부입니다. 에덴 동산 첫 부부부터 그랬습니다. 뱀이 아내 하와에게 먼저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하와가 남편에게 이런 사실을 다시 알려 주었습니다.

우리 가정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무슨 일이 있으면 저의 아내에게 말해주어서 아내가 나에게 말해 줍니다. 그런데 아합 가정은 달랐습니다. 아합은 왕입니다. 왕이 아내 이세벨에게 보고하여 줍니다. 이상합니다. 신비한 것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아합왕이 다스린 것이 아니라 여자 이세벨이 다스리고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세벨의 종교는 바알 종교입니다. 이세벨 눈에 나면 죽음이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합왕이 엘리야를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고 결정하였습니다.

이방 여자가 지배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1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신비같지만 신비가 아닙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2. 감격의 신비

본문에서 또 보는 이상한 신비는 아니지만 신비같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알 선지자들이 오랫동안 기도하여도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바알 선지자들이 돌위에 올려 놓은 송아지는 하루 종일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몇 초 동안 간단하게 하나님께 불을 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참 하나님임을 보여 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불이 하늘에서 떨어졌습니다. 송아지가 탔습니다. 그 밑에 나무가 타는 것은 물론이었습니다. 그 밑에 있는 12 돌이 모조리 탔습니다. 얼마나 강력한 불이었는 지 짐작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밑에 흙도 타고 12 통 물을 부었는 데 물도 순신간에 다 말랐습니다. 온 백성들은 감격하여 소리질러 외쳤습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반복하여 외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 왔습니다. 바알 신이 거짓신임이 백일하에 들어났습니다. 바알 선지자 450명은 정치가 이세벨에게 아부하는 정치꾼들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들은 도망치려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나도 도망가지 못 하게 하라.”
백성들이 달려들어서 450명 모두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기손 시내로 끌고 가서 죽였습니다. 이 소식을 이세벨이 듣고 엘리야에게 한 명 신하를 보내서 선포하였습니다.

“내일 이 때 너를 죽인다.”

당장 죽일 수 없었습니다. 흥분한 군중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루만 지나면 군중의 흥분이 사라질 것을 이세벨은 알았습니다. 갈멜산 위에서 기손 시내까지는 아무리 빨리 걸어도 1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입니다. 온 백성들이 하나가 되었기에 한 명도 놓치지 않고 다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나가 되어 있고, 그렇게 감격한 군중도 하루만 지나면 끝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데 옷을 벗어서 길에 깔았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꺽어서 흔들면서 열광하였습니다. 주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군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빌라도에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래서 목요일에 잡히셔서 금요일 아침에 십자가 처형을 당하였습니다. 군중의 모습입니다.

언제 변할 지 모르는 군중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비같습니다. 그러나 신비가 아닙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3. 생명의 신비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으로부터 브엘쉐바까지 도망쳤습니다. 사환과 같이 갔습니다. 사환은 브엘쉐바에 두고 하루 종일 걸었습니다. 하루길이란 40 키로미터 100리 정도 길입니다. 광야로 들어 갔습니다. 브엘쉐바 근처는 모두 사막입니다. 네게브 사막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올 때에 마지막 성막 진을 쳤던 곳입니다. 깊숙이 사막으로 들어 갔습니다. 마침 로뎀나무 한 그루가 우뚝 솟아 자라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로뎀 나무 아래 앉았습니다. 그는 죽기를 바라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보다 낫지 못 하나이다.”

엘리야는 자살하고 싶어 하였습니다.


어떤 때에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것일가요?

대개 극심한 실패를 하고 나면 자살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에서 실패하고 나면 자살합니다. 혼자 자살하는 경우도 있지만 동반 자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로는 사랑하는 데 부모가 결혼을 반대하니까 둘이서 한강에 빠져 죽기로 하였습니다. 한강 다리위에서 남자가 여자를 끼어 안으며 마지막 이별의 키스를 하였습니다.

“우리 저 세상에서 만나자.”

그리고 남자가 뛰어 내렸습니다. 물에 빠져서 여자를 보니 가만히 있는 것이었습니다.

“빨리 뛰어내려.”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자가 말했습니다.

“무서워.”

그리고 못 뛰어 내렸습니다. 남자가 화가 나서 “나도 안 죽는다” 그리고 헤엄쳐 나왔습니다. 사랑에 실패하여서 자살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돈 문제로 얽히고 설켜서 풀 수 없을 때 극단적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 옆에 쌍용 찜질방이 있습니다. 100억 정도 들여서 시설을 하였습니다. 거의 은행빚이었습니다. 이자 감당만도 힘에 겨웠습니다. 그러던 중에 여자 목욕탕에서 두 여자가 말다툼을 하였습니다. 화가 나니까 한 여자가 다른 여자 유방을 물어 뜯었습니다.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119가 동원이 되었습니다. 죽었습니다. 그 후 소문에 소문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안 오기 사작하였습니다. 점점 이자 감당이 어려웠습니다. 5식구가 모조리 약을 먹고 동반자살하였습니다. 그 좋은 시설, 100억을 투자한 시설이 지금 비어 있습니다. 누구도 들어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돈문제를 풀기 어려울 때 자살을 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홧김에 자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 집사님 아들이 엄마와 싸우고 홧김에 나가서 소나무에 목메달아 자살하였습니다. 10일만에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살이 시커멓게 썩어 흘러 내리고 온 몸에 구더기 투성이었습니다. 경찰도 사진만 찍지 시신을 만지지 싫어 합니다. 그래서 내가 고무 장갑을 끼고 끈을 가위로 잘랐습니다. 그리고 솔나무 가지로 구더기를 떼고 뼈를 상자에 담아 가지고 내려 왔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살하고 싶은 충동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있는 감정은 결코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살의 충동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모세도 죽고 싶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엘리야도 그랬습니다. 이 때 자칫 잘못 생각하면 유다처럼 자살하게 됩니다.

제주도에 가면 삼성혈 옆에 사자봉이 있습니다. 얼마나 산책 코스가 좋은 지 사라봉 때문에 이사가지 못 하는 주민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리고 불가피하게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게 되면 사라봉을 못 잊어 다시 이사오는 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왼 쪽에 바다를 끼고 오른 편에 언덕을 끼고 산책하는 길은 환상적인 길입니다. 그런데 그 낭떨어지에 자살 바위가 있습니다. 그 곳에서 떨어지면 백 %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자살할 사람들은 다 이 곳에서 떨어져 죽습니다. 그 바위에 흰 페인트로 크게 쓰여져 있는 말이 있습니다.

“한번 더 생각하라.”


이것이 신비입니다. 이세벨이 죽이려고 하니까 죽기 싫어서 멀리 피한 엘리야가 광야 로뎀나무 밑에서 죽여 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이 신비롭게 보입니다. 그러나 결코 신비가 아닙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갈멜산의 북쪽 거의 끝에 있고, 브엘쉐바는 최남단입니다.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도망친 엘리야가 살려고 도망쳐서 죽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너도 나도 그럴 수 있습니다.

로뎀나무와 대조적으로 보입니다. 로뎀나무는 사막에서 굳굳히 자라는 나무입니다. 일년 12달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도 견디는 나무입니다. 원인을 알아 보니 로뎀나무는 뿌리가 30리까지 내립니다. 뿌리가 깊으니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4. 7000명 숨어 있는 신비.

지금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이 생명을 건 대결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게 아픔을 당하고 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7,000명의 동역자가 숨어 있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엘리야는 두 번에 걸쳐서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10)

“........ 오직 나만 남았거늘.....”(18)


그러나 하나님은 홀로인 줄로 알고 있는 엘리야에게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당당하게 신앙생활하고 있는 7000명이 더 있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18)


그러나 신비한 것이 있습니다. 7천명이 있었지만 한 명도 나타나주지 않았습니다. 신비같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신비같지만 신비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은 다 그런 것입니다. 폭풍이가 일 때에 개미는 모두 개미굴에 숨어 있습니다. 한 마리도 나오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울 때 진정으로 갈멜산에 한 명이라도 나타났더라면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신비같지만 신비는 아닙니다. 사람은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신비

그러나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주신 신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항상 신비가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1. 사랑의 신비

엘리야는 지금 지쳐 있습니다. 하루 종일 광야로 걸어 왔기에 피곤합니다. 목 마릅니다. 아무도 응원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쓸쓸합니다. 고독합니다. 나라를 살리는 일을 하여 주는 데 죽이려고 합니다. 죽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로뎀나무 밑에 앉아 있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5)


일어나 보니 머리맡에 숯불로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었습니다. 먹었습니다. 마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누웠습니다. 워낙 피곤하였는 지 또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 할까 하노라”(7)


천사가 두 번 왔습니다. 두 번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두 번 음식을 주었습니다. 아무도 자기를 사랑하여 주지 않는 외로운 광야에서 하나님이 두 번이나 나타나셔서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어찌 좋은 일만 있나요? 억울하고 아프고 고독하고 쓸쓸하고 죽고 싶은 심정이 파도처럼 몰려 올 때가 있지요?

나는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엎드려 울 때가 흔하지는 않지만 종종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여 글썽이며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주님이 나타나셔서 나를 어루 만지면서 속삭이듯이 말씀하여 주실 때가 있습니다.

“강 목사야. 내가 있잖아.”

나는 더 많이 울었습니다. 더 크게 울었습니다. 더 오래 흐느꼈습니다.

“내가 있잖아.”

가장 큰 위로입니다.


어느 가난한 자매님의 간증입니다. 시아버지가 병들어 병석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하늘나라로 갈 것같았습니다. 그런데 며느리에게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가야! 나 보신탕이 먹고 싶다.”

그런데 보신탕을 사다드릴 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정성껏 기르고 있는 개가 한 마리있었습니다. 그 개를 잡아 세상을 떠나는 시아버지에게 보신탕을 계속 공급하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개를 데리고 산속으로 들어 갔습니다. 개는 정들었기에 죽을 지도 모르고 쫄랑쫄랑 따라 왔습니다. 깊이 들어 와서 개를 묶었습니다. 가만히 있었습니다. 나무에 묶고 눈을 감고 망치로 머리를 내리쳤습니다. 정말 용기가 필요하였습니다. 머리가 터졌습니다. 개는 죽는 소리를 내려 있는 힘을 다 하여 발버둥쳤습니다. 끈이 풀려졌습니다. 도망쳤습니다. 피자국이 났습니다.

허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놀라운 일은 개가 먼저 집에 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보자 꼬리를 치면서 와서 안기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매는 피투성이가 된 개를 불들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상처를 치료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시아버지에게는 보신탕을 사서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개를 사랑하면서 길렀습니다.

“다시는 너를 아프게 하지 않을 께.”

항상 쓰다듬어 주면서 길렀습니다.


아프고 외로울 때마다 주님이 옆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옆에 있잖아.”


지난 주간 나는 헨리 나우웬이 저술한 “새벽의 영성”을 읽었습니다. 1985년 2월 7일 데이크레크 장애자원에서 살면서 쓴 일기입니다. 아무리 읽어도 탁월한 영성입니다.

엘리야와 같은 체험을 하였습니다.

너무나 힘들어 울고 있을 때 천사가 와서 두 날개를 펴고 폭 감싸주면서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안에서 평안하라.”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평안함은 최고의 안식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갓난 아이가 어머니 품속에 안겨 있으면 최고의 안식인 것과 같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 교회에서 스데반 돌봄 사역 전문가 김 철환 목사님을 모시고 하루종일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쎄미나를 열었습니다. 큰 은혜를 받은 좋은 집회였습니다. 그 때 김 철환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아들이 화가 나서 아버지에게 문자 멧세지를 보냈습니다.

“너 내 아버지 하지 마.”

기가 막혔습니다. 아들이 집에 들어 왔습니다. 패고 싶은 마음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러나 참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붙들고 기도하여 주었습니다. 아들이 그 사랑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주 모범적인 아들이 되었습니다.


엘리야가 그랬습니다.

죽고 싶어서 하나님께 죽어 달라고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두 번이나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엘리야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일어나 40일을 걸었습니다. 더 큰 일을 하는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죽지 않고 승천하였습니다.

그 때 만일 천사의 어루만짐이 없었더라면 엘리야는 그 자리에서 굶어 죽을 때까지 떠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후 큰 일을 더 하지 못 하였고 승천하지도 못 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비하신 분이시기에 신비한 방법으로 엘리야를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우리 온 성도들에게도 주님이 어루만져 주시는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 음식의 신비

하나님의 신비가 또 하나 있습니다. 음식의 신비입니다. 천사가 숯불에 구운 떡과 물 한 병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사막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이 두가지입니다. 엘리야가 피하여 있던 그 광야에 지금 성막에 세워져 있습니다. 나는 성막 연구차 몇 번 갔었습니다. 한번은 46명 목사님들을 모시고 갔는 데 다 퇴근하고 잠겨져 있었습니다.

광야입니다. 또 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 날 보지 못 하면 다시 볼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나는 그 성막 책임자를 몇 번 만났기에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우리 팀들에게 말했습니다.

“담 포장을 뜯으세요. 그리고 들어가서 성막을 관람하고 다시 원상 복구해 놓으세요.”

이 말을 듣고 이스라엘 현지 가이드와 여행사 직원이 새파랗게 질렸습니다. 만일 걸리게 되면 모두 구속이라는 것입니다. 남의 집을 뜯고 들어간 주거 침입죄라는 것입니다. 결사 반대하였습니다. 내가 뜯었습니다. 46명 목사님들 모시고 들어가서 잘 보았습니다. 그리고 모두 나온 후 잘 복구하여 놓았습니다. 그 때서야 가이드가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나는 전에 혼자 그 곳을 방문하였을 때 나를 알아 보고 책임자가 친절히 맞아 주었습니다. 내가 도착하자 말자 나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을 드릴가요?”

“물 한 잔만 주세요.”
나는 가볍게 말했습니다. 그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이 곳에서 가장 필요한 것, 이 곳에서 가장 비싼 것을 요구하시는 군요.”

그리고 물 한 자를 주시는 데 그 사막에서 물 한 잔이 얼마나 귀중한 지를 알았습니다.

천사가 엘리야에게 숯불에 구운 떡과 물 한 병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천사의 음식이 아닙니다. 천사는 먹지 않습니다. 마시지 않습니다. 하늘에는 숯불에 구운 떡이 없습니다. 하늘에는 물 병도 없습니다. 물 병은 땅의 것입니다. 천사가 이것을 엘리야에게 주었습니다. 어디에서 이 떡을 구하였는 지 성경은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꼭 필요한 것을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다음 말씀이 더 신비입니다. 천사가 준 음식과 물을 마신 후 일어난 사건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에 힘에 의지하여 사십주 사십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8)


40일 걸을 때에 천사가 음식을 준 기록은 없습니다. 천사가 두 번 공급하여 준 음식을 먹고 40일을 걸었습니다. 천사의 음식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신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공급하여 주시는 신비로우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지나놓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문제로 죽여 달라고 낙심하여 절망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 놓고 보니 잠시 고통이었을 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을 보면 쓰레기 투성이입니다. 넘어지고 있는 담도 보입니다. 말라 버린 풀도 보입니다. 색바랜 아파트 담도 보입니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높이 올라가 보면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보입니다. 다 하나로 종합이 되면 아름답게 보입니다.

나무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숲이 보입니다.

집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도시가 보입니다.

물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바다가 보입니다.

작게 보이지 않고 크게 보입니다.

극심한 아픔이 몰려 올 때면 신비의 하나님을 의지하십십니다. 그 분이 다가 오셔서 어루만져 주시고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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