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호 목사 설교

[스크랩] 오직 청빈의 사람들? 청교도 (행 20;33-35)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9. 4. 16:20

오직 청빈의 사람들? 청교도 (행 20;33-35)

 


무엇에 몸부림치며 사는가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돈버는 데 몸부림치면 돈의 사람입니다.

골프에 미친 사람은 골프의 사람입니다.

게임에 전념하는 사람은 게임 중독자입니다.

예수님에게 미친 사람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청교도는 주님에게 미친 사람들입니다. 청빈의 사람들입니다.


성경의 사람들은 모두 청빈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세는 사유재산없이 오직 사명의 사람이었습니다. 물질에 관심을 가진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베드로도 청빈의 사람이었습니다. 사유재산에 관심을 가진 적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청교도는 오직 청빈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도 청빈의 사람이었습니다. 오직 영혼 구원, 전도뿐이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3-35)


바울은 청빈하게 살았습니다. 은과 금과 의복을 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로 살았습니다. 이렇게 산 사람들이 청교도입니다.

청교도는 기독교 역사에 보석과 같은 존재입니다. 이들은 경건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준 스승입니다. 거룩을 보여준 증인들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 모델입니다.


1. 청교도들의 언약 사상

청교도들의 신앙은 분명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와 사회를 세우자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자기가 자기를 설득하고 사람을 설득할 줄 알아야 청교도입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과 3가지 언약을 하여야 합니다.

1. 개인 언약

2. 교회 언약

3. 사회 언약

청교도 사랑은 언약 사상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위에 모든 이론이 정립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언약은 철저히 자발적이어야 합니다. 자발적인 것은 참여의식을 분명히 하고, 참여의식은 개혁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2. 청교도 운동의 7대 기준

청교도 운동은 일곱 가지 뚜렷한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성경중심의 신앙

청교도 운동의 시작은 성경을 바로 읽고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바르게 살자는 운동입니다.


둘째가 성수주일(聖守主日)

십계명의 네 번째에 지시한 바를 따라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며 살자는 운동입니다.


셋째 직업에 대한 소명 정신

목사만이 사명자가 아닙니다. 목사만 사역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직업은 하나님이 맡기신 청지기로서의 사명입니다. 귀하고 천하고 구별이 없습니다. 모든 직업은 청지기입니다.


넷째 자녀들에 대한 책임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바로 가르치는 것은 부모의 책임입니다.


다섯째 바른 교회를 세우기

사람의 권위가 지배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라 사람의 교회입니다. 예수께서 머리가 되시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목표입니다.


여섯째 정의 사회, 정의 국가 세우기

가정뿐 아니라 사회도, 국가도 성경에 기초하여 세우는 것이 청교도의 목표입니다.


일곱째 청지기 정신

모든 물질은 하나님이 맡기신 것이기에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소유주는 없습니다. 사용주만 있을 뿐입니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뿐입니다.


3. 청교도의 삶

청교도는 청교도로서의 삶의 원칙이 있었습니다.


(1) 청교도들은 성경의 사람들입니다.

엘리자벳 시대의 청교도인 토마스 샘슨 박사(Dr. Thomas Sampson)는 말했습니다.

“청교도는 그 누구도 잘못을 찾을 수 없는 교리와 생활을 지닌 형제들이다.”


리랜드 라이큰(Leland Ryken)이 말했습니다.

“청교도들은 이 세상의 성자들(Worldly Saints)이다.”

“청교도들은 세속의 오염으로부터 격리된 거룩한 양심을 소유한 자들이었다. 이들은 초대교회로부터 물려받은 사도적 순결과 거룩한 양심을 지키기 위하여 세속으로부터 격리되기를 염원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신앙생활은 어떠한 것이라도 거부하였다.”


청교도들이란 누구인가요?

“성경에 가장 가까운 삶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로이드 존스는 말했습니다.

“청교도는 언제나 신약으로 돌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제임스 헤른(James Heron, D.D)은 말했습니다.

"청교도들이 원했던 것은 가능한 성경적 원리, 성경적 규율, 성경적 행정조직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한 마디로 철저하게 성경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청교도들 때문에 성경은 더욱 권위를 갖게 되었습니다.


(2) 청교도들은 온전한 개혁을 시도한 사람들입니다.

청교도들이 살던 당시의 카톨릭 사제들은 정치적이었습니다. 형식적이었습니다. 교회는 국가의 시녀 정도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당시 성직자들중에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성직자들도 많았습니다. 결국 설교 없이 의식만 거행되는 예배가 많아졌습니다.

이런 시대를 배경으로 청교도들은 성경적 예배를 드리고 싶어 몸부림쳤습니다. 초대교회와 같은 예배를 원하였습니다. 거룩과 경건을 추구하였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Sola Fide)’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Soli DEO Gloria)’

이것이 청교도의 중심 언어였습니다.


(3) 청교도들은 성경의 진리를 바르게 설교한 사람들입니다.

청교도들을 한 마디로 이렇게 정의하였습니다.

“청교도들은 다른 어떤 자이기 전에 먼저 설교자였다.”

청교도들은 교회가 성경의 권위아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진리를 드러내는 설교의 권위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성경의 진리를 설교하였습니다.

인생의 제일 되는 주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의지하고 바라보아야 하는 유일한 대상이 그리스도임을 제시하였습니다.

신앙인의 삶의 방향이 경건과 거룩임을 일깨웠습니다.

철저한 직업 소명의식을 일깨웠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건전한 가정생활을 하게하였습니다.

세상의 쾌락과 사치로부터 돌아서게 하였습니다.


(4) 청교도들은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경건한 의무에 충실한 사람들입니다.

청교도들은 “의무”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청교도들은 그들에게 맡겨진 의무를 다 하는 것이 성경을 준수하는 신앙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댓가로 하나님은 보상하여 주시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의무는 충성뿐입니다.

청교도들이 철저하게 의무로 여겼던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성수주일, 2. 예배, 3. 기도, 4. 경건한 가정, 5. 거룩한 삶입니다.


1. 철저한 주일 성수의 의무

청교도들은 주일을 ‘영혼을 위한 장날’로 여겼습니다. 천국 잔치에 모두가 참여하는 날이 주일입니다. 청교도 교리와 문답 제 118문과 답입니다.

“왜 가족의 어른들과 윗사람들을 향해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이 특별히 주어졌습니까?

답: 가족의 어른들과 다른 윗사람들을 향해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이 특별히 주어진 것은 그들 자신에게 안식일을 지킬 의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통솔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로 안식일을 지키게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 자신의 일로 아랫사람들의 안식일을 방해하는 일이 흔히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소요리문답(The Westminster Shorter Catechism) 제60문과 대요리문답 제117문에서는 어떻게 안식을 거룩히 지켜야하는 지를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대요리 문답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안식일 혹은 주일을 어떻게 거룩하게 하여야 합니까?”

답: 안식일 혹은 주일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온 종일 거룩히 쉬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언제나 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다른 날에 해도 되는 세상 일이나 오락까지 그만두어야 합니다. 부득이한 일과 자선 사업에 쓰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적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최대의 데 기쁨으로 삼을 것입니다.”

그 결과 주일에는 청교도들이 다니는 거리에 무질서가 없었습니다. 가정마다 찬송소리가 들렸습니다. 들은 설교를 되새김질하는 이야기만 하였습니다.


2. 예배의 의무

청교도들은 형식적이고 의식에 치우친 예배를 배격하였습니다. 대신 성경에 근거한 순수한 예배, 간결한 예배를 사모하였습니다.


존 카튼(John Cotton, 1585-1652)이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예배는 사모함이다.”

청교도들이 주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입니다. 청교도들은 예배에는 세 가지 영역이 있다고 정하였습니다.

1. 지역교회에서의 공적 예배

2. 가족 단위의 가정 예배

3. 골방에서의 개인 예배

그러나 가장 중요한 예배는 공적 예배입니다. 그리고 청교도들은 가정 예배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웨스트 민스터 예배모범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가정이 통상 아침과 저녁에 시행하여야 한다. 가정예배는 기도와 성경읽기와 찬양으로 이루어진다.”


리차드 백스터는 말했습니다.

“가정예배를 위해 단지 2명만 있어도 된다.”


죠지 휫필드는 말했습니다.

“마음만 올바르게 가진다면 가정예배를 품위 있고 건강하게 드리는데 있어서 다른 어떤 비장한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3. 기도의 의무

청교도들은 기록된 기도문보다 즉석기도를 했습니다. 주일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기도로 살았습니다. 개인기도와 가족기도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청교도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존 낙스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본받아 청교도들은 기도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기도에 대한 의무가 대요리 문답 185문과 186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185문 :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답: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위엄에 대한 엄숙한 이해와 우리 자신의 무가치함과 필요한 것들과 죄에 대한 깊은 의식과 통회하며 감사하는 열띤 마음을 가지고 이해, 믿음, 성실, 사랑과 인내로써 하나님을 바라며, 그의 뜻에 겸손히 복종함으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4. 경건한 가정의 의무

청교도들은 가정을 사회의 기본적인 단위인 동시에 교회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남편을 목사로, 아내를 전도사로 하는 작은 교회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의 의무는 가족을 신앙으로 이끌고 주일날 그들을 교회에 데리고 가고 가정에서 그 날 온종일 성별하도록 감독하고, 자녀에게 교리문답을 하고 믿음을 가르치고 설교를 들은 후에 가족 전체의 시험을 보아 얼마나 기억하고 이해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부족하면 이해시키고, 매일 가정 예배를 이상적으로 하루에 두 번 인도하고, 언제나 모든 문제에서 근실한 모범이 되는 것이다.”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은 그리스도인 부모들이라면 “자녀들을 그들의 자녀로 만들기보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기위해 애쓴다”고 믿었다. 설교자들은 가정을 경건한 가정으로 유지할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5. 거룩한 삶에 대한 의무

칼빈(John Calvin, 1509 - 1564)과 존 오웬( John Owen, 1616 - 1683)이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땅의 삶 동안 그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은 성화이다.”

그는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약속의 선물이기도 하며 인간에게 명해진 의무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우리는 이 의무를 실행할 수 없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의무를 바르게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목적 아닌 다른 목적으로 이 은혜를 주시지 않으신다.”

거룩을 이루기 위해서는 죄를 억제하여야 하고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청교도들은 “죄 죽임의 교리(A doctrine on mortification)”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완전한 거룩이 불가능하지만 그들은 거룩의 최고봉에 이르기 위한 열망으로 완전한 거룩을 추구한 사람들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성경이외의 교회사에서 가장 거룩한 무리들이었습니다. 청교도의 거룩은 그들의 특징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들의 능력이 되었습니다.


(5) 청교도들은 개신교회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 사람들입니다.

초기 청교도들은 장로교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장로 중심제였습니다.

로이드 존스는 말했습니다.

청교도들은 후에 개신교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청교도들은 교회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장로교회, 회중교회, 분리주의교회, 감리교회 등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4. 청교도들의 신학 사상

청교도들의 신학과 사상의 유일한 근거는 오직 성경이었습니다. 청교도 신학을 한마디로 말하면 칼빈주의 신학입니다.

청교도들의 신학과 사상이 가장 잘 나타나고 있는 곳은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입니다. 청교도 신학과 사상은 종교개혁의 4가지 사상과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네 가지의 모토(Motto)가 있습니다.

①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 only through Scripture)

② 오직 믿음! (Sola Fide : only by Faith)

③ 오직 은혜 ! (Sola Gratia : only by Grace)

④ 오직 하나님의 영광! (Soli Deo Gloria : Glory be to God Alone)이었습니다.

청교도들에게서 하나가 더 추가되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Soli Christo : only through Christ)입니다.


①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종교개혁자들은 한결같이 오직 성경’을 강조하였습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종교개혁의 핵심입니다.

루터(Martin Luther, 1483 - 1546)는 “성경은 그 자체로 해석한다(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라고 말했습니다. 루터는 말했습니다.

"교황이 성경보다 위라는 점에 나는 반대하네. 누가 그에게 그런 권위를 주는 것인가? 그의 근거는 성경에 없고, 그의 교서는 단 한 번도 성경에 근거한 적이 없다네. 아첨꾼들이 교황을 성경 위에 올려놓고 잘못을 저지를 수 없는 사람이라고 우겨대지만, 그렇게 되면 성경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인간의 말뿐일세. 나의 신앙은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에 사로잡힌 포로라네“


칼빈은 말했습니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그의 개념에 기초를 두고 "성경으로부터 생각하고 말하는 규범(ex scripturis et loquendi regula)"이 신앙생활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밖에 종교 개혁자들도 한결 같이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였습니다.

그런데 종교개혁자들의 신학과 사상은 그대로 청교도들에게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성경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이 무오한 진리요,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충분하게 납득하고 확신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심령 속에서 말씀에 의하여 말씀을 가지고 증거하시는 성령의 내적 사역에 의해서이다(요일 2:20,27, 요 16:13-14, 고전 2:10-12, 사 59:21).”


제157문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읽어야 합니까?”

답 “성경은 높이 경외하는 마음으로 읽고, 성경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만이 우리가 성경을 깨닫을 수 있게 하실 수 있다는 굳은 신념으로, 거기에 계시되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믿고, 순종하고자 하는 소원으로 부지런함과 성경의 내용 및 범위에 주의함과 묵상과 적용과 자기 부정과 기도함으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② 오직 믿음(Sola Fide)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믿음이었습니다. 루터도 칼빈도 오직 믿음이었습니다.

루터가 재발견한 이신칭의 진리를 칼빈에게 와서도 동일하게 주장되었습니다.

“칭의의 근거는 인간에게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이것은 동일하게 청교도들의 신학과 사상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부르심을 입은 그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의존할 때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다. 그 믿음은 그들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고,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행10:44; 갈2:16; 빌3:9; 행13:38,39; 엡2:7,8). 이같이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받아들이고 의존함에 있어서 믿음은 칭의의 유일한 방편이다(요1:12; 빌3:28; 5:1).”


③ 오직 은혜(Sola Gratia)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구원관은 공로사상에 근거한 행위구원에 있었습니다. 즉 구원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아니라 행위에 근거한 것이기에 수많은 성자를 숭배하고, 금식기도와 고행이 수반되었습니다. 면죄부도 그런 것입니다.

루터는 성경에 근거하여 오직 은혜로 인한 구원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자신의 구원을 고민하면서 말했습니다.

“어떻게 준엄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겠는가?”

“성경 특히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의존하는 구원론의 재발견은 자신의 의를 통해서 구원에 이룰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의 의만을 의존하게된 것이다.”


칼빈도 동일하게 오직 은혜로 인한 구원을 강조하였습니다.

“부르심은 선택의 증거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복음의 선포는 선택이라는 원천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지만, 이런 선포는 악인들도 함께 듣는 것이므로, 그 자체로서는 선택을 완전히 증거 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택된 자들을 믿음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효과적으로 가르치신다. ……누구를 왜 부르시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그가 선택하신 사람을 부르신다는 것이다. …… 더 나아가서 지금 경건한 자들이 구원을 위한 도움으로서 받는 것은 복락까지도, 모두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러한 종교개혁자들의 오직 은혜에 대한 사상은 청교도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청교도들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유효한 부르심은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특별한 은혜로만 되어지는 것이며, 결코 사람 안에 있는 어떤 것을 미리 하나님이 보시고서 하는 것이 아니다(딤후 1:9; 딛 3:4,5; 엡2:4,5,8,9; 롬 9:11)”


④ 오직 하나님의 영광 (Soli Deo Gloria)

청교도들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 사람들입니다.

루터는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강조하였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도 강조하였습니다. 루터는 말했습니다.

“인간 구원의 모든 계획과 사역의 주체 자이신 하나님 한 분에게만 찬양을 드리며, 그 은덕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칼빈의 중심사상도 Soli Deo Gloria 였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은 전도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추가하였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열심을 자기 실존의 제일의 목적으로 삼지 않고, 자신에게만 생각을 한정하는 것은 건강한 신학이 아니다.”

청교도들도 이를 이어 말했습니다.

토마스 왓슨은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삶과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진리의 대강령이다.”


⑤ 오직 그리스도 (Soli Christo)

청교도 신학과 사상의 중심은 오직 그리스도이다. 청교도들의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맴도는 신학”이라고 언급하였습니다.

성경에서 그리스도가 없으면 휴지조각에 불과한 것처럼 청교도들의 신학과 사상에서도 그리스도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청교도 설교는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적이었습니다.


청교도들의 생활과 의식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1636년 하버드 대학을 세웠습니다. 종교적인 경건삶이 목적이었습니다. 성경을 알자는 것이 그 근본이었습니다. 이것이 미국 교육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청교도들의 공공 생활 중심부는 읍민회(Town meeting)였습니다. 이 읍민회는 교육과 정치적인 활동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청교도 사회에서의 목사의 위치는 절대적이었습니다. 청교도 사회는 성경이 첫째였습니다. 두 번째는 목사의 설교였습니다. 세 번째는 거듭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말이었습니다.


청교도 리처드 시브즈는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상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산다.”


존 코든은 자립하기 위하여 떠나는 개척자를 향하여 말했습니다.

“가시오. 모두 가시오. 공동 정신을 가지고 가시오. 자기 것만 보지 말고 다른 사람의 것도 보시오.”


청교도 William Tyndale은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무리 비천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왕국에서는 왕의 형제인 양, 왕의 혈족인 양 대우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왕이라도 그렇게 비천한 사람을 섬기기에는 자신이 너무 고결하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Hugh Latimer 은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아무리 지체가 낮은 농부라 하더라도 지체높은 귀족과 다를 바 없다.”


William Perkins는 말했습니다.

"누구든 명문 세도가(勢道家) 출신임을 자랑해서는 안 된다. 오로지 어두움의 왕국에서 옮긴 사실을 감격하는 마음만이 있을 뿐이다.”


Samuel Willard은 말했습니다.

"통치자를 위해 인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위해 통치자가 있다.”


청교도의 가정관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다스림을 받는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정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최초의 창조질서로 보았습니다. 가정제도는 교회가 존재하기 전에 있었고, 국가제도가 생기기 전에 있었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개혁은 그 어떤 창조의 질서의 개혁보다 우선한다고 보았습니다. 가정의 질서는 부부 질서가 우선입니다.

대표적인 청교도요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였던 윌리엄 퍼킨즈(William Perkins)를 중심으로 몇 가지 살펴 보려고 합니다.

청교도들은 모든 사람은 결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부들은 결혼하지 않습니다. 경건을 핑계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부부관계를 거절하는 죄가 독신주의입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후 그의 갈빗대로부터 하와를 만드신 후 두 사람의 결혼을 주례하셨습니다.

주례사로 하나님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1:28)라고 말씀하셨고, “생육하며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고 축복하셨습니다.

첫째는 남자가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 공간적으로 분리하라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경제적으로 독립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아내와 연합하라는 것은 모든 면에 일치를 보라는 말입니다.

세째는 한 몸을 이루라는 것은 육체적으로 하나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둘만의 하나입니다. 음란을 금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가정 생활의 다음 목적은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돕는 배필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길러야 합니다.

코튼 매더는 말했습니다.

“세상적인 지식이 없어도 하늘나라에 갈 수 있으나 기독교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청교도들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도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축복을 누리는 것을 우선시 하였지만, 그들은 세상적인 축복도 넘치도록 받았습니다.

청교도 후손들은 정치, 문화, 종교, 경제계를 이끌고 있습니다.


미국의 복음주의적인 목사 팀 라헤이가 조사하였습니다. 라헤이는 “성령 충만한 가정의 비결”이라는 책에서 같은 시대 같은 장소에서 살았던 두 가정, 막스 쥬크스(Max Jukes)라는 사람의 가정과 청교도 죠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e)의 가정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청교도에게 임한 은혜

쥬크스는 불신자로 불신자와 결혼하여 수많은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의 자손 1천 26명을 연구한 결과입니다. 3백 명이 일찍 죽었고, 1백 명이 13년에 한 번 정도 교도소에 갔으며, 1백 90명은 창녀였고, 1백 명은 알콜 중독자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쥬크스의 자손 가운데는 한 사람도 미국 사회에 공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뉴잉글랜드의 청교도였던 죠나단 에드워즈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기독교도와 결혼하였습니다. 그의 자손 7백 29명을 연구하였습니다. 3백여 명의 복음 전도자가 나왔고, 65명의 교수, 13명의 대학장, 60명의 작가와 3명의 국회의원, 그리고 1명의 부통령이 나왔습니다.


이제 마지막 때입니다.

청교도적인 삶을 살아가기를 하나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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