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개혁이 시스템 개혁이었다면 헤라클리우스 1세(재위 610-641년)의 개혁은 로마시민들의 정신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헤라클리우스 1세는 로마 시민들로부터 오늘날의 ‘지나칠 정도의 과도한 복지병’이라고 할 수 있는 ‘빵과 서커스’를 없애버린 황제로 유명하다.
로마는 공화정 말기 무렵부터 무산자 시민들에게 곡물을 무료로 배급하고 곡물 무료 수급 증명서를 가진 이들에게는 마차 경주 등의 행사를 무료로 입장할 수 있게 하였다.
무료 밀 배급 제도는 BC123년 호민관 가이우스 그라쿠스가 만든 소맥법에서 시작된 제도였다.
매년 수확되는 일정량의 밀을 정부가 사들여 시가의 절반에 도시 노동자들에게 팔도록 규정한 일종의 빈민 구제책이었는데, 여러 변화를 거쳐 카이사르 때는 20만명 정도의 로마 시민이 무료로 밀 배급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확대 실시되었다.
이 제도가 700년이 지난 헤라클리우스 1세 황제 때까지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로마는 일찍부터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했던 것으로 유명한데, 마차 경주와 같은 여러 이벤트를 하는 축제일이 1년에 카이사르 때는 65일, 5현제(96-180년) 때는 120일 그리고서로마가 망하는 5세기 무렵에는 물경 175일이나 되었다.
건국 이후 제정이 시작될 시기까지 지속된 선조들의 노고로 그 후손들은 일을 하지 않아도 굶어죽을 일이 없고, 심심해서 자살할 일도 없는 그런 삶을 7세기 무렵까지 계속해서 살고 있었다.
상상해보면 지상천국이 따로 없었다.
국방은 용병들에게 맡기고 사나운 야만족들에게는 돈을 주어 평화를 사면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새벽부터 나가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무료함으로 인해 우울증에 걸릴 일도 없는 그런 시대이니 시민들의 육체적·정신적 쇠락은 당연한 결과였다.
헤라클리우스 1세가 한 일이 바로 이 700년 동안 지속되어 온 무료 밀 배급제도 폐지와 마차 경기 회수 제한이었다.
갑작스럽게 ‘빵과 서커스의 종말’을 당한 동로마 시민은 에덴 동산을 쫓겨난 아담과 이브처럼 이제부터는 굶어죽지 않기 위해 죽도록 일을 해야 했고 국가를 지탱하기 위해 산고 이상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육체와 정신이 항상 긴장되어 있어야 했다
이 외에도 헤라클리우스 1세는 교회로부터의 전쟁비용 징수를 통한 군대 재편과 동부의 속주 탈환 등 여러 가지 성과를 이룬다
역사의 거친 폭풍 앞에 서로마에 이어 막 꺼지려던 동로마의 운명이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시스템 개혁’과 헤라클리우스 1세 황제의 ‘정신 개혁’으로 기사회생해 그 생명을 800년 이상 연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