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 (롬 2:6-16)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4. 1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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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 (롬 2:6-16)

 

  맹 천수 집사님이 쓴 '맹 집사 이야기'는 우리에게 굉장히 감동을 주는 책입니다. 맹 집사는 조그마한 시골교회를 섬기는 분인데, 하루는 임 집사라는 분이 중풍으로 쓰러졌습니다. 몸도 비대한 분이 중풍으로 쓰러져 눕게 되어 거동을 못하니까 교회에 와서 예배를 못 드립니다. 그래서 맹 집사님이 늘 예배드리고 임 집사 집에 가서 교회 소식을 전했습니다.
  오늘 목사님 설교는 이렇게 했고, 외부에서 손님은 누가 왔고, 교인들은 이렇게 은혜를 받았다고 얘기를 하면 그는 누워서 '아, 그래요'고 하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날도 주일예배를 마치고 교회소식을 전하려고 맹 집사가 임지사 집에 갔는데 임 집사가 그럽니다. '나도 교회에 가서 예배드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말을 들은 맹 집사가 부담이 되어 하나님 앞에 기도를 시작합니다. '오 주님, 휠체어 한대만 주시면 제가 평생동안 임 집사를 밀고 다니면서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맹 집사님이 그런 기도한다는 얘기를 듣고 목사님께서 예산을 세워서 휠체어를 하나 사 주었습니다. 맹 집사님도 기뻐했고 임 집사님도 기뻐했습니다. 맹 집사님이 휠체어를 끌고 임 집사를 모시고 예배당에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휠체어를 끌고 임 집사를 끌고 오는 맹 집사를 보고 박수를 쳤습니다. /할/
  그런데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박수를 받을 때 느꼈던 흥분이 돌아갈 때 휠체어를 밀고 갈 때는 별로 그 기분이 아닙니다. 이것도 하루 이틀이지 주일날, 밤, 수요일 밤을 밀고 다니려고 하니까 너무 힘들고 더군다나 휠체어라는 것이 아스팔트 길 같으면 잘 가는데 시골 자갈밭 길을 가니까 비대한 몸이 왜 그렇게 무거운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휠체어를 밀고 가면서 '많이도 먹었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수요일 밤, 예배를 드리기 위해 휠체어를 밀고 가는데 비가 쏟아졌습니다. 비 온다고 안 갈 수도 없고 비 오는 날 우산을 받쳐가면서 휠체어를 밀고 가는데 진흙탕에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때 마음 속에 살인을 합니다. '중풍 들었으면 죽어야지 무엇 때문에 살면서 사람을 괴롭히나' 하면서 끌고 갑니다. 그런데 그 날도 비가 오는데 휠체어를 끌고 왔다고 교인들이 박수를 치면서 칭찬을 합니다.
  그 다음 주일 아침 임 집사님을 또 휠체어에 태우고 예배당으로 가는데 예배당 입구에 조그마한 구멍 가게가 있는데 동네 사람들이 소주를 마시면서 맹 집사를 보면서 이렇게 칭찬합니다. '맹 집사는 천사야 어떻게 자식도 못하는 일을 저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칭찬합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예배당 앞에 도착한 맹 집사는 도저히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으로 안 집사를 죽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제에 내가 어떻게 예배당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겠는가 마음으로 살인을 했는데...'
  맹 집사는 감히 예배당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임 집사를 안으로 들여보내 놓고 자기는 밖에 서서 이렇게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 용서해 주십시오. 나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임 집사를 데리고 다녔지 주님에게 보이기 위해서 데리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저는 날마다 예배당 안으로는 들어갔으나 주님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은밀한 가운데 계신 주님 안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그가 눈물을 흘리면서 예배당 밖에서 기도를 드립니다. 그때 주님의 십자가의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맹 집사야, 내가 너를 용서한다.' 맹 집사는 주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고 주님 안으로 들어가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아, 내가 수 없는 세월을 여기에 와서 예배를 드렸지만 교회당만 왔다갔지 주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주님을 만나지 못한 채 나는 지금까지 예배를 드렸구나! 오, 나의 살아 계신 주님, 나에게 은혜를 내려주소서.' 그가 중심으로 회개하고 주안에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선한 일도 선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주님 안에 거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제목소개!▶

 

  우리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은 심는 데로 거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모든 일이 뿌린 대로 거두게 됩니다. 인과응보(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나온다는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이 행한 대로 받는 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우리 '하나님은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5절까지는 선민이라고 자처하는 유대인들이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멸시하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은 진리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임을 망각하고 고집 때문에 회개치 아니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두 가지를 말했습니다.
  하나는 남을 판단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의롭게 생각하는 사람들(유대인)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복음의 필요성을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은 죄를 짓지 않으니까 하나님의 심판은 자기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버립니다. 그런데 바울은 '남을 판단하는 너희들도 똑같이 죄를 짓고 있다.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느냐, 드러나지 아니하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 너희들도 똑같은 죄인들이다.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너희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잊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심판이 즉시 임하지 아니한다고 해서 심판 자체를 무시해버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복음 전파가 역시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이 너희들을 즉시 심판하지 않는 것은 너희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런데도 너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하나님의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너희가 멸시하고 있다'고 꼬집고 나서 바울은 복음을 방해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아주 엄하게 경고의 말씀을 주었습니다. /할/

 

  ①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6)
  심판은 누가 합니까?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각 사람에게' 심판의 기준은? '그 행한 대로' 심판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각 사람에게'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매 급으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1대1. 심판도 1대 1 입니다.
  목사 아들이라고, 장로 아들이라고 봐 주는 것이 아닙니다. 큰 교회 성도라고 봐주지 않습니다. 소위 유대인이냐? 헬라인이냐? 동양인이냐? 한국인이냐? 이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판단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명하시는 것입니다.
  심판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그 행한 대로'입니다. 여기서 행함이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행위만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인간이 품고 있는 마음까지도 들어다 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시139:2-4절에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족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할/ 부모는 자식의 체질을 대강 압니다. 아내는 남편의 체질을 압니다. 좋아하는 음식, 취미, 건강 여부 등 대강 압니다. 그러나 완벽하게는 알지 못합니다.
  ▶결혼한 후 30년 동안 감기 한 번도 걸려 본 일이 없는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돌아오더니 속이 매끄럽고 머리가 아프다고 합니다. 부인은 단순히 체했거니 하고 약국에서 소화제를 사다가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 밤 남편은 열이 오르고 밤새도록 신음하며 괴로워했습니다. 다음날 병원에 가서 종합 진찰을 했더니 결과가 간암으로 나왔습니다. 간암에 선고를 받은 부인이 맨 먼저 터트린 말은 '설마 이럴 수가 있느냐'는 말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떻게 이렇게 감쪽같이 모를 수가 있었겠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든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만큼 우리를 자세히 아시는 분은 없습니다. 의사보다, 가족보다, 하나님은 나의 체질을 아십니다. 체질까지도 아시는 하나님이 (각 사람이 그 행한 대로)를 모르겠습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이 설마 우리를 보실까? 이런 착각을 합니다. 하나님은 보십니다. 지금도 보시고 계십니다. /믿/ 계20:12절에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 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또 계20:15절에 '누구든지 생명 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생명 책과 행위의 책이 기록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주민등록부나 호적 원본이 있어 거기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구원받은 자기 백성의 이름을 생명 책에 기록하고 계십니다. 눅10:20절에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아멘!/
  ▶어떤 사람이 그곳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
  말3:16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느니라' 그런데 하나님께 범죄 하면 그 이름이 지어진답니다. 출32:33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여러분! 우리의 이름이 지워지면 우리는 망합니다. 지옥 음부에 떨어지고 맙니다. 또 하나의 책은 우리의 행위를 기록한 책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의 행위 뿐 아니라 믿는 자의 행위까지도 기록해 놓으시고 행위대로 상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마16:27절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하나님 앞에서 가장 큰 죄 4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불신, 불 신앙, 불의, 불선'입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사람은 상급의 심판이요, 그렇지 못한 사람은 형벌의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표준은 무엇입니까? 심판의 특징은 공정성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편벽 되거나 불공정하지 않습니다. 시비와 선악을 가려 벌을 주시고, 상을 주십니다. 심판을 받지 않고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예는 절대로 없습니다. 그렇다고 부당한 판결을 받아 고생하는 예도 절대로 없습니다.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오늘 이 본문에서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구원의 기준을 믿음에 두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러나 여기서 바울은 행위를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행위대로 보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학자의 견해가 있습니다만 '알 포드'는 악인을 심판하고 선인을 상주시는 하나님의 일반법칙을 설명하고 있다고 합니다.
  ⑴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반드시 우리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행하는 것입니다. 욥1:15절에 '여호와의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나니 너의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너의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마16:27절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⑵그리고 심은 대로 거둡니다. 갈6:7-9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것, 이것이 바로 추수의 원리입니다. 이 원리를 제정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도 이 원리를 거스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심지도 않고 거두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컨대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따려고 하는 것이나, 남들보다 적게 심어놓고 남들보다 많은 것을 거두려고 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일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것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만홀히 여긴다는 말은 "비웃는다, 조롱한다"라는 뜻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원리인데 그것을 비웃는 행위가 된다는 것입니다.
  ⑶바울은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8절에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의 삶은 매일매일 심는 삶입니다. 두 가지 종류밖에 없습니다. 썩어질 육체를 위해서 심는 것과 육체의 정욕을 이기고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성령을 위해서 심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썩어질 육체를 위해서 심으면 무엇을 거두겠습니까? 심은 대로 거두니까 썩는 것밖에 거둘 것이 없습니다. 부패한 것, 부끄러운 것, 수치스러운 것을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악을 심으면 반드시 악을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야곱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속였습니다. 그리고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습니다. 뿐만 아니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눈먼 아버지 이삭을 속였습니다. 그리고는 형 대신에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것으로 끝이 났습니까? 야곱이 형과 아버지를 속였다가 자기도 속임을 당했습니다. 그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외삼촌 라반은 그의 품삯을 여러 번 속였습니다. 그리고 라반이 자기 딸 라헬을 야곱에게 아내로 주기로 약속을 하고서는 라헬 대신에 레아를 들여보냈습니다. 그는 형과 아버지를 속였다가 자기도 그대로 외삼촌에게 속임을 당한 것입니다.
  그것뿐입니까? 야곱은 자기의 아들들에게서도 속임을 당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그들의 형제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그들은 요셉을 애굽에 종으로 팔아먹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야곱에게는 요셉의 옷을 보여주면서 짐승에게 찢겨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죽은 줄 알고 얼마나 마음 아파했습니까?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였다가 외삼촌에게 속임을 당하고, 또 자기 아들들에게서 속임을 당한 것입니다. 거짓을 심으니까 그대로 거짓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원리대로 된 것입니다.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육체의 정욕을 이기고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이 그러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선을 심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불렀습니다.
  '요셉아, 형들이 멀리서 양을 치고 있는데 소식이 없어 궁금하구나! 한 번 가보고 오너라!' 요셉은 형들이 자신을 미워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해서 형들을 찾아갔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미워해서 애굽에 종으로 팔아먹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복수하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형들을 용서해 주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있는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할 때였습니다. 그는 여주인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육체를 위해서 심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호하게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물론 그 대가로 감옥에 갇혔었지만, 그는 어디를 가든지 계속해서 선을 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선을 거두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로 하여금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해서 극심한 가뭄 속에서 그의 가족을 구원케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마음과 생각으로 심습니다. 말로 심습니다. 행동으로 심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썩어질 육신을 위해서 심지 마십시다. 그러면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이기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매일 매 순간 거룩하고 선한 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우리가 심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선을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심는 자에게 꼭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여기서 하나는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열매가 빨리 맺혀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이 몰라줄 때도 낙심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9세기 말 영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도회지에 살고 있는 한 소년이 시골로 놀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만 물가에서 놀다가 물 속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헤엄을 칠 줄 몰랐습니다. 연거푸 물을 마시면서 허우적거리는 그를 발견한 시골 소년은 용감하게 물 속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익사 직전에 있던 그를 구해주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시골 소년은 그 때 일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렸습니다. 선을 행하고서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시골 소년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의과대학에 진학해서 열심히 공부한 뒤 훌륭한 의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그를 도회지로 유학을 보내줄 만큼 집안이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냥 꿈으로만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멀쑥하게 차려입은 도시 소년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과거에 자신의 생명을 구해주었던 은인을 잊지 못하고 다시 찾아온 것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도시 소년은 자기를 구해주었던 시골 소년의 꿈이 의과대학에 진학해서 의사가 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또 집안이 가난해서 그럴 형편이 못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반면 도시 소년의 아버지는 귀족이었습니다. 부자였습니다. 그는 얼른 집으로 돌아와서 자기 아버지를 졸랐습니다. 그리해서 아버지로 하여금 자기를 구해주었던 시골 소년에게 장학금을 주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시골 소년의 꿈이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의과대학에 진학한 뒤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의사가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도시 소년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영국의 위대한 정치가로서 세계 제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입니다. 그리고 시골 소년은 푸른곰팡이 페니실린을 발견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그 공로로 노벨 의학상을 타게 된 알렉산더 플레밍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뒤에 처칠이 2차 대전 중에 과로해서 쓰러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폐렴에 걸렸습니다. 과거 같았으면 영락없이 죽었을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칠은 플레밍이 만든 페니실린 주사를 맞고서 살아났습니다. 그는 그 뒤로 건강을 회복해서 20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는 정계은퇴하고 나서 열심히 글을 썼습니다. 그래서 그도 1953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플레밍은 플레밍대로 자기가 심은 것을 때가 되니까 아름답게 거두었습니다. 또 처칠은 처칠대로 자기가 심은 것을 값지게 거두게 된 것입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마십시다.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하나님이 거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잊고 있어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시고 거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즉각적으로 거두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또 채소 같은 것은 여러 달이 지난 후에야 거두지 않습니까? 과일은 여러 해가 지난 후에야 거둘 수가 있습니다. 부모가 심은 것을 자식 때에 가서 거둘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땅에서 순교의 피를 아낌없이 뿌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늘 나라에서 거둘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때가 되면 다 거두기 마련입니다.
  시126:5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할/ 그렇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그러나 상급은 행위대로 얻어집니다. 이해가 가십니까? 7절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②선을 행하면 종국에 영생을 거둡니다(7)
  여기서 말하는 선은 하나님이 옳다 인정하심인데,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 안에서 있을 때 하나님의 기준으로 선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참고 주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여기서 '참고 선을 행하여'의 '참는다'는 것은 '작은 것으로는 혈기를 참고, 큰 것으로는 닥쳐있는 큰 환난을 참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인내입니다. 성령의 열매도, 사랑의 열매도 인내요, 오래 참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참아야 합니다. 혈기뿐 아니라 닥쳐올 어려움도 참아야 합니다. 성질 급한 성도는 어제 기도했는데, 오늘 응답 없다고 '하나님이 뭐 이러냐?'고 합니다. 기도의 응답도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하는 것을 구하는 자에게는' 무엇이 보상으로 옵니까? 생명입니다. 영원히 사는 영생의 축복입니다.

  여기서 ⑴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보통 하나님의 속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영광을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사는 경건의 삶을 말합니다. 고전10: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아멘!/
  ⑵여기 존귀라 함은 귀한 것 또는 보배를 가리키는 것으로 존귀를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잠8:17-18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할/
  ⑶썩지 아니함은 이슬과 같이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세상에 부귀영화와 물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마6:20절에서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 한다'고 하셨습니다.
  ▶넉넉지 못한 신앙이 좋은 집사님 댁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아들이 군에서 제대했습니다. 용돈이 필요했습니다. '어머니, 용돈 좀 주세요' '얘야, 지금 너에게 줄 돈이 없구나' 아들에게 용돈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의 마음속에 문득 의심이 들었습니다. '과연 어머니가 돈이 없어서 용돈을 주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있으면서도 주시지 않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없을 때 몰래 어머니의 가방을 뒤져보았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가방에서 십일조 헌금봉투를 발견했습니다. 그 속에 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착했습니다. 그 돈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뒤에 어머니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어머니, 봉투 속에 분명히 돈이 있던데 왜 제가 용돈을 달라고 할 때 없다고 하셨습니까?' 어머니는 아들을 타일렀습니다. '얘야, 그것은 내 돈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란다' /할/
  사랑하는 아들에게 용돈 하나 변변히 주지 못하는 심정이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속으로 많이 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분명히 확신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복이 그 가정에 쌓여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그 가정에는 하나님의 엄청난 복이 폭포수와 같이 쏟아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무엇을 보고 살아갑니까? 썩어질 육신을 보고 살아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은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며 산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영광을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롬8:18절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할/

 

  ③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8)
  ⑴당을 짓는다는 말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이고, 또 다른 의미는 '이기심에 얽매인다'는 말입니다.
  당을 짓는 자는 이 사람, 저 사람을 격동시키고 악한 말로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악평하고, 불평과 불만을 품게 하고, 공동으로 죄를 짓습니다.
  한 사람이 주동이 되어 선동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 일에 동조하여 악한 세력을 구성합니다. 불의를 좇는 자에게 하나님은 노와 분을 발하십니다. 고라의 일당의 말로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진노하시면 그 누가 대적할 수 있습니까? 작게는 징계요, 크게는 심판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불의를 좇지 맙시다. 히12:4절에서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대항"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신라의 김 유신 장군을 잘 압니다. 장군은 소년 때 불의한 친구를 사귀며 한때는 방황하며, 방탕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간곡한 눈물의 훈계에 감동이 되어 다시는 죄에 빠지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하루는 말을 타고 산책을 하다가 깊은 명상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가다가 말이 한곳에 멈추어 섰습니다. 이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이고, 도련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평소 자주 출입하던 기생 천관의 집 앞이었습니다. 말이 주인이 잘 가지 때문에 그곳으로 안내한 것입니다. 유신은 즉시 말에서 뛰어 내려 긴칼을 뽑더니 사정없이 말 목을 단숨에 쳤습니다. 어머니와의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결단을 가지고 죄와 불의를 짤라내야 합니다.
  ⑵8절에서 예수를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나타나는 세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당을 짓고, ㈁진리를 좇지 않고, ㈂불의를 좇는다고 했습니다.
  유대인을 한번 생각해 보자! 저들은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할례 받은 자기들을 할례 당이라고 하고,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을 무 할례 당이라고 마음대로 판단하고 멸시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들은 또한 진리를 좇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진리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위하여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까? 그러나 저들은 그 진리를 받아들이지 아니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으려고 하지 않고 자기의 의를 끝까지 고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들은 불의를 좇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좇지 않으면 불의를 좇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람은 본질적으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불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보응을 하신다고 했습니까?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여기 '노'의 원어로 보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는 뜻이고, '분'은 '터져 버린다'는 뜻입니다.
  주전자에 물을 붓고 불을 때서 끓이면 부글부글 끓어오릅니다. 하나님께서 노하시는 모습입니다. 계속 가열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한계에 이릅니다. 그러면 뚜껑이 날아갑니다. 터져 버립니다. 그것이 바로 분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 하나님의 진노가 화산처럼 터져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

 

  ④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라! (9)
  여기서 '영'은 '프쉬케'로, '혼, 혹은 목숨, 여기서는 속 사람'을 가리킵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외부적으로만 환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고 속 사람, 즉 내적 심령의 고통이 먼저 옵니다. 다윗이 심령의 고통의 표현을 시32:3-4절에서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할/
  악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보응하십니다. 어떤 보응입니까? '환난과 곤고'가 옵니다. 여기서 '환난'의 원어의 뜻은 '내려 누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위에서 내리 누르는 하나님의 간섭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누르시면 피할 길이 없습니다.
  '곤고'는 심령이 괴로워 고통 하는 것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평강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57:21절에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교제가 끊어집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악을 행한다면 심령이 괴로워지고 마음에 곤고가 찾아옵니다. 믿는 사람이 주일날 낚시하러 가 보십시오. 마음이 불안합니다.
  여기서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은 '당을 짓고,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들을 가리키는데, 복음밖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다고 했습니다. 육신은 잠시 잠깐입니다. 길어야 백 년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예수를 안 믿는 악인들도 잘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잠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영은 영원합니다. 저들이 지옥에서 당해야 할 고통은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들이 앞으로 지옥에서 환난과 곤고를 세세토록 밤낮 없이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예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날 그 날에 당할 지옥의 고통은 영원토록 끝나지 않습니다. /믿/

 

  ⑤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라! (10)
  9절의 정반대를 말합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각 사람에게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라! /아멘!/

 

  ⑥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십니다! (11)
  이 구절은 6-10절까지의 결론부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잠16:2절에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여기서 외모란 얼굴일 수도 있고, 주위 여건일 수도 있습니다. 가령 배웠다, 안 배웠다, 가졌다, 못 가졌다, 이런 외형적인 모습입니다.
  인간세계는 외형적인 조건 때문에 계급사회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계급의 형태 따라 사람들은 한 개인을 판단합니다. 이렇게 인간이 만든 계급이라는 형태 따라 그 인간의 귀천이 결정되고 대우가 달라집니다.
  ▶우리는 거지왕자라는 동화를 잘 압니다. 어느 왕자가 왕궁이 갑갑하여 왕궁을 탈출했습니다. 어느 불쌍한 거지 집에 들어가 거지 아이와 옷을 바꿔 입었습니다. 그런데 그 얼굴모습이 너무 비슷했습니다. 거지 옷을 입은 왕자는 자유를 얻은 듯 기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왕궁이 발칵 뒤집힌 것입니다. 전국에 수배하여 왕자 옷을 입은 거지를 찾아 왕궁으로 모셔왔습니다. 신분이 거지였던 아이가 왕자의 옷을 입었다는 이유 하나로 왕궁에 들어가 왕자 대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판단의 기준이 그 외모에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하실 때 외모를 보지 않습니다. 약2:9절에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할/ 하나님은 외모로 보시지 않고 그 심령 속에 살아있는 영을 보시고, 그 마음속에 품고 있는 중심을 보십니다(삼상16:7). 행13:22절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나님은 우리 심령 속에 영을 보십니다. 살았느냐? 죽었느냐? 롬8:9절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할/
  ▶영국 웰링턴 장군이 어느 날 성찬식에 참석하여 단 앞에서 기도하고 있는데 한 가난한 노인이 와서 장군 곁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려 했습니다. 그때 한 재직이 작은 소리고 '장군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좀 기다리라'고 하자 그때 웰링턴 장군은 노인의 손을 꼭 잡고는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나나 당신은 평등합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미국 동부에 가면 '보스턴'시가 있는데, 그 도시에 미국 최대의 명문 대학인 하버드 대학교가 있습니다. 그 하버드 대학교 정문에 비석이 하나 서 있는데 그 비석에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말라!' ▶이런 말이 새겨지게 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오래 전에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 아주 돈 많은 억만장자 부부가 있었습니다. 저들은 자기들이 일평생 모은 돈을 사회의 뜻 있는 곳에 기증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들은 평소에 후세 교육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당대 최대의 대학인 하버드 대학의 총장을 만나서 이 일을 상의하려고 서부에서 동부로 달려와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정문에서 수위에게 총장을 만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수위가 그만 실수를 했습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평상시대로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양새를 보고 수위가 불친절하게 대한 것입니다. 그때 부인이 자기 남편에게 '여보, 이만한 대학을 하나 설립하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요?' 수위가 옆에서 그 소리를 듣고는 기가 막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취급했습니다. 결국 노부부는 하버드 대학교 총장을 만나지 못하고 쓸쓸하게 걸음을 돌이켰습니다.
  노부부는 고향에 돌아와서 전 재산을 다 기증해서 미국 동부의 하바드 대학교에 버금가는 좋은 대학을 설립하게 되었는데 그 대학이 미국 서부의 명문 대학인 '스탠포드' 대학입니다. 드디어 스탠포드 대학이 설립되던 날 하바드 대학의 총장이 축하를 하기 위해서 건너왔습니다. 뒤늦게 그 사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속이 상했겠습니까? 수위 한 사람이 외모로 사람을 취했기 때문에 학교는 엄청난 손실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에 돌아와서 정문에 비를 하나 세웠습니다. 큼지막하게 글씨를 새겼습니다.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말라!' /할/

 

  ⑦인생의 심판의 날이 분명히 옵니다! (16)
  여기서 은밀한 것이 드러나는 그 날은 어떤 날인가? 바로 심판의 날입니다. 한마디로 복음 안에 있는 자는 기쁜 날이요, 예수 밖에 있는 사람은 망하는 날입니다. 그 날은 주님의 심판의 날입니다. 그 날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복음 안에 있는 사람은 기뻐 웃는 날, 밖에 있는 자는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믿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행위 속에 기록한 대로 상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멘!/
  미국의 대 전도자 '빌리 그레함'은 '여러분은 죽는 것을 두려워하십니까? 나는 오히려 사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죽음으로 우리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고 난 뒤에는 우리 모두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행한 대로 보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사는 것이 더 두렵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참 행복한 성도 여러분, 올 신년새해에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하늘의 상급을 많이 쌓으시기 바랍니다. /할/ (2011년 2월 6일 대예배설교)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송수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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