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박보영 목사 설교

최고 지도자가 지녀야 할 7 가지 덕목 / 김진홍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11. 19. 11:09

[최고지도자가 지녀야 7가지 덕목]  / 김진홍 목사

 

지도자가 지녀야 7가지 덕목(1)

2014-11-10

동양에서는 최고 지도자 왕이 지녀야 덕목을 제왕학(帝王學)이라 불렀다. 서점에 가면 제왕학이란 주제가 붙은 책들을 대여섯권 있다. 동양에서 제왕학의 대표적인 경우가 당태종의 정관정요나 조선 태조의 경국대전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동양의 제왕학에 해당하는 서양의 학문이 요즘 떠오르는 신학문이라 대통령학이다. 대통령학이라면 나라의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이 직을 원만히 수행하기 위하여 갖추어야 덕목들과 실천하여야 조건들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름이 대통령학이지만 실제는 대통령뿐만이 아니라 모든 지도자들에게 통용될 있는 덕목들이다. 기업의 총수나 교회의 목사 혹은 가정의 호주에 이르기까지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덕목이요 조건이다.

미국에서 대통령학에 권위자인 교수가 대통령이 자신의 직을 원만히 감당함에 필요한 덕목으로 7가지를 꼽았다. 나는 이들 7가지 덕목들과 조건들을 읽으며 성경의 가르침과 연결하여 읽었다.

이들 7가지 조건이 한결같이 성경의 교훈과 관련되는 가르침들이다.

첫째는 건강이다.

조건에 대하여는 재론의 여지가 없는 내용이다. 비단 대통령직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지도자는 건강하지 않고는 감당할 없다. 문제는 건강한 몸과 마음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고 훈련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많은 지도자들이 자신의 과다한 업무에 짓눌려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표적인 경우가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바닥에서부터 각고의 노력을 쌓아 대통령직에까지 오른 사람이다. 그러나 직에 있던 후반부에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대통령직에서 당하는 온갖 스트레스와 갈등이 자신에게는 너무 벅찬 나날이었을 것이다. 후유증으로 자살로 마감하는 비극에 이르렀다. 누구든 모름지기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한번 진지하게 자신을 살펴보아야 사례일 것이다.

나는 3 전까지만 하여도 시간 예배를 인도하고 나면 체력이 딸려 누워 있어야 했다. 그리고 사흘도록 감기 몸살에 시달려 병원에 드나들며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이곳 동두천 속으로 들어온 후로 작심하고, 건강관리에 정성을 쏟았던 결과 지금은 마치 사람처럼 건강하여졌다. 오늘도 주일을 맞아 번의 설교를 마친 수도원 둘레길 7Km 가뿐히 걷고 왔다.

누구든 지도자의 자리를 제대로 감당하기를 원한다면 건강관리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것이다. 건강관리에 실패하고 나면 지도자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되는 것만이 아니라 전체를 마감하여야 하게 된다.

최고 지도자들이 지녀야 덕목 7가지(2)

2014-11-11

어제 글에서 대통령학에서 지적하는 대통령이 직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함에 있어야 덕목과 조건으로 7가지가 있음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그들 덕목들과 조건들은 비단 대통령의 경우에만 아니라 모든 지도자들이 함께 지녀야 것들임도 언급한 바이다.

그들 7가지들은 다음과 같다.

1)
건강
2)
비전을 주는 상상력
3)
설득력
4)
도덕적 일관성
5)
정확한 판단력과 과감한 추진력
6)
전체를 보고 부분(Detail) 있는 안목
7)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균형 있게 활용할 있는 안목

어제 글에서 번째인 건강에 대하여는 적은 바이다. 오늘 글에서는 번째인 < 국민들에게 비전을 심어 있는 상상력 > 살펴보자.

먼저 비전이란 무엇인가?

구약성경 잠언 29 18절에서 이르기를 < 비전 없는 백성들은 망할 짓을 골라서 한다.> 구절이 있다. 말씀을 제목으로 삼아 함석헌 선생께서 논설로 < 비전 없는 백성은 망한다> 제목의 글이 있다. 글에서 함선생께서 지적하기를 나라 민족이 살길을 영으로 나가려면 먼저 백성들이 함께 바라보고 나갈 비전이 있어야 한다. 비전을 제시하여 주는 것이 지도자들의 몫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마디로 비전이란 말은 무슨 뜻인가? 비전이란 없는 시대에 길을 찾아 선포하여 주는 것이다. 절망과 좌절에 빠져 있는 백성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 주는 것이다. 비전을 보고 국민이 마음이 되어 내일을 향하여 있게 나아갈 있게 되는 것이 비전이다.

비전에 대하여 프랑스의 나폴레옹 장군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
인류의 미래는 인간의 비전과 상상력에 달려 있다."
성경이 위대한 것은 성경을 바로 읽고 바로 깨달아 바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비전의 샘이 그침 없이 솟아오르게 하는 책이란 점에서다. 성경은 없는 시대에 길을 찾게 하여 주는 책이요 희망이 끊어진 시대에 희망의 깃발을 올려 주는 책이다.

 

최고 지도자들이 지녀야 덕목 7가지(3)

2014-11-13

어느 사회, 어느 조직에서나 지도자는 있기 마련이고, 지도자는 자신이 이끄는 구성원들을 설득해야 책임이 있다. 설득력이 없거나 빈약한 지도자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켜가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특히나 우리 시대는 민주주의가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고 있는 시대이다. 민주주의가 제구실을 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의사소통이다. 의사소통은 대화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대화는 상대를 설득하는 일을 출발점으로 한다.

설득력이 부족한 지도자는 자신의 뜻이나 정책이 아무리 고매하여도 제대로 나갈 없게 된다. 그래서 대통령학에서 대통령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함에 가장 중요한 덕목과 조건 중에서 설득력을 앞세운다. 그런데 흔히들 설득력이 선천적인 능력에서 온다는 말을 한다. 이는 설득력에 대한 오해이다. 진정한 설득력은 진지함과 겸손함과 열성이 합쳐진 열매이다.

만고에 빛나는 설득력의 사람이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설득력은 모든 지도자들이 받아야 최고의 기준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이런 인격과 능력을 배우라 하시며 다음 같이 이르셨다.

"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이는 멍에는 쉽고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1 29, 30)

예수님께서 자신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라 하셨다. 온유와 겸손이 진정한 지도력과 효율적인 설득력의 기본이 된다. 온유는 인간관계에서 부드러움이요, 겸손은 하나님 관계에서 낮아짐이고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는 마음가짐이다. 흔히 지도자들은 강력한 힘과 영향력을 행사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지도력은 낡은 시대의 사고방식이다.

시대는 부드러움과 포용, 상대에 대한 배려와 베풂을 갖춘 지도력이 돋보이는 시대이다. 일찍이 독일의 문호 괴테가 이르기를 "여성적인 그것이 인류를 구원한다" 말을 남겼다. 여성적인 것의 진수가 바로 부드러움이다. 어머니가 자녀에게 베푸는 마음가짐이 부드러움의 알맹이이다. 그런 마음 바탕에서 나오는 지도력이 시대의 바람직한 지도력이다.

 

 

 

최고 지도자들이 지녀야 덕목 7가지(4)

2014-11-14

지난날에는 나라의 통치자인 왕이나 대통령, 기업의 총수인 회장들의 도덕성에 대하여 너그러웠던 때가 있었다. 부도덕한 점이 있고 상식을 넘어서는 비행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큰일을 하려면 그렇겠지하는 식으로 그냥 지나치곤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변하였다. 대통령이나 기업의 총수들의 도덕성에 대하여 국민들이나 사회가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최근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대기업 총수들 여럿이 옥살이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만 하여도 그냥 넘어갈 사안들이 이제는 통하지 아니하는 실정이다. 고위직에 있을수록 보통 사람들 보다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도덕성이 일관성 있게 유지되어지기를 국민들은 요구한다. 도덕성의 일관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일관성이란 말이 영어에서는 'Integrity' 단어를 쓴다.

‘Integrity’
말은 대단히 함축성이 있는 용어이다. 사람을 평가할 때에 "그는 Integrity 있는 인물이다" 말하면, 사람은 성실하고 변하지 아니하고 굳건한 기상을 지닌 사람임을 나타낸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변화의 속도가 너무나 빠른 시대이다. 시대의 변화가 빠를수록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무언가의 기준이 있기를 요구한다. 그런 변하지 않는 일관성을 최고 지도자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물론 지도자라고 해서 완벽할 수는 없다. 국민들은 대통령이나 대기업의 회장이나 교회의 당회장들에게 완벽하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실수를 하고 허물을 범하는 때가 있을지라도 정직하고 순수함을 지켜 주기를 원한다. 국민들이 최고 지도자에 바라는 도덕적 기준은 정직함과 순수함에서의 일관성이지 완벽하기를 원하는 기대가 아니다.

점에서 구약시대의 최고 지도자 다윗 왕의 경우가 좋은 사례가 된다. 다윗 왕은 위대한 왕이었지만 완전한 인격자는 아니었다. 어떤 때는 보통 사람들도 범하지 않는 파렴치한 죄를 지은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위대할 있었던 것은 나단 선지로부터 허물을 지적 받았을 때에, 자리에서 눈물로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신하들 앞에 엎드릴 있었던 점이다. 성경이 우리들에게 나무라는 것은 지은 죄를 나무라는 것보다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는 점이다.

최고 지도자들이 지녀야 덕목 7가지(5)
정확한 판단력과 과감한 실천력

2014-11-17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한지라"(다니엘서 6 3)

구약성경 다니엘서의 주인공인 다니엘은 틴에이저 시절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당대에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른 불세출의 인물이다. 다니엘서 6장에서는 그를 일컬어 민첩한 사람이라 표현하였다. 여기서민첩하다 말의 의미가 중요하다. ‘민첩하다 말은정확한 판단력과 과감한 실천력 합친 단어이다. 어느 조직에서든 최고 지도자가 되어 자신이 맡은 직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이들 가지를 합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특히 대통령이 갖추어야 덕목 중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된다. 대통령이 바른 판단력과 신속 정확한 실천력이 없으면, 국가를 제대로 이끌어 나갈 없게 된다. 어떤 사람은 판단력은 신속, 정확하나 실천력이 없다. 그런가 하면 어떤 지도자들은 실천력은 있으나 판단력이 바르지 못하다.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한 실천을 하게 되면 낭비와 갈등을 만들게 된다.

지도자들 중에 가장 나쁜 경우가 무식하면서 용감한 사람이다. 무식하여 바른 판단을 있는 기본 소양이 없는데, 용감히 실천만 하게 되면 조직 전체를 위기로 몰아가게 된다. 그래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 "무식하면서 용감한 사람"이다.

다니엘이 포로로 끌려간 신분으로 재상의 자리에 오를 있었던 것은 그에게는 어느 경우에나 먼저 정확한 판단을 있는 분별력이 있었고, 그런 판단을 기초로 과감한 실천력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정적들의 온갖 모함과 견제를 극복하고 재상의 직을 감당할 있었다.

다니엘은 그런 민첩성에 더하여 도덕적 일관성이 탁월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여하한 경우에도 자신의 안일과 영달을 위하여 자신을 굽혀 타협하지 않았다. 소년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는 도덕적인 일관성을 지켜 나갔다. 지금 시대는 너무나 변화가 심한 시대이다. 시대가 그러할수록 사람들은 도덕성과 순수함에서 일관된 지도자를 원한다.

최고 지도자들이 지녀야 덕목 7가지(6)
전체를 보고 부분을 있는 안목

2014-11-18

나라의 대통령이든 기업의 회장이든 지도자들이 마땅히 지녀야 덕목들과 조건들이 있다. 미국의 대통령학 교수가 그런 덕목으로 7가지를 들었다. 앞의 5가지는 지난 글에서 소개한 바이고 오늘은 6번째를 소개할 차례이다. 여섯 번째 항목은 우리들이 평소에 소홀히 지나치기 쉬운 점이다.

소홀하기 쉬운 항목이지만 지도력을 원만히 발휘함에 반드시 있어야 항목이다. 전체를 보는 눈과 부분(detail) 보는 눈을 동시에 가지는 안목이다. 아무리 전체를 보았어도 부분 부분을 제대로 보지 못하여서는, 모처럼의 계획이 사소한 원인으로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면에 아무리 부분 Detail 밝아도 전체를 보지 못하게 되면 엉뚱한 결과를 얻게 되기 쉽다.

이점에서 동양 3 사람들의 기질을 분석한 글이 있다. 일본인들은 detail 강하고 중국인들은 전체를 보는 안목에 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과 중국의 중간지역인 한반도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전체를 보는 중국인들에게서 전체를 보는 눈을 배우고, 부분을 세밀히 살피는 일본인들에게서 배워 전체와 부분을 동시에 있는 안목과 자질을 길러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장점이 선천적으로 얻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후천적인 훈련과 교육에 의하여 체득(體得)되어 지는 것인지가 문제이다. 이점은 분명히 어린 시절부터 가정에서, 교실에서 혹은 교회나 성당에서 훈련과 교육을 통하여 길러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나라에서 가정에서도 교실에서도 이런 점을 훈련시켜 주지를 못하고 우리 자녀들이 시험 점수나 취직 준비 혹은 스펙 쌓기에 매달려 있는 점이다. 정말로 애석한 일이다.

옛날 서당 교육은 비록 시설이 열악한 사랑방에서 둘러 앉아 가르치는 자리였지만 교육 목표 만큼은 분명하였다. 유학의 교육목표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였다. 시절엔 교육의 목표가 먼저 자신의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바르게 닦고, 자신의 가정을 소중히 후에 나랏일을 도모하고 거기서 나아가 천하를 도모한다는 경륜을 심어주었다.

우리 교육이 선배들의 이런 교육정신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기껏해야 자기 몸의 안일 안에 매달리는 소인배들을 길러내는 데에 머무르고 것이다.

최고 지도자들이 지녀야 덕목 7가지(7)
제한된 자원을 균형 있게 활용할 있는 분별력

2014-11-19

나라에도 기업에도 그리고 교회나 가정에도 사용할 있는 자원은 제한되어있기 마련이다. 곳은 많은데 들어오는 것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그런 때에 모자라는 예산을 어떻게 적절하게, 효율적으로 그리고 균형 있게 있느냐는 문제는 최고 지도자들에게 항상 닥치는 문제이다.

회사의 경우 회장으로부터 말단 사원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부도의 위기에 몰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가정에서도 가족이 알뜰히 산다고 살았는데, 파산의 지경에 이르게 경우들이 있다. 대체로 재정 지출의 우선순위 ‘Priority’ 잘못 정한데서 오는 결과이다. 우선순위가 잘못 정하여진 지출은 조직을 궁지에 몰아넣게 된다.

그러기에 최고 지도자들이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덕목 중의 하나가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균형 있게 사용할 아는 분별력이다. 이런 분별력을 지니지 못한 위인이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앉게 되면 조직을 파탄시키는 자리에까지 몰아가게 된다.

일본의 경우 1886년에 일어났던 명치유신이래 100 동안 일본 최고의 위치에 까지 올랐던 기업, 500기업을 선정하여 수명을 조사한 적이 있다. 조사 결과에 의하면 예상 외로 일본 최고 기업들의 평균 수명이 30년으로 나와 있다. 날리던 최고의 기업들이 고작 30 만에 사라져 것이다. 그렇게 망가진 이유들 중의 첫째가 투자의 우선순위를 잘못 정한 탓이라는 결론이다.

반면에 일본의 기업들 중에서 100 이상으로 유지되어 나오는 기업들의 경우 공통된 가지 특색이 있었다. 호황을 맞았을 때에 불황을 예측하여 구조조정, 예산절감 등으로 준비하고, 불황을 맞았을 때에는 다가올 호황을 대비하여 투자를 기업들이었다. 그런 기업들의 회장들이야말로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는 지도자들이다.

요즘은 교회라 하여 예외가 아니다. 적지 않은 교회들이 교회건물을 증축할 때에 은행에 돈을 빌려서 크게 짓고서는 감당하지 못하여 부도 처리가 되는 경우들이 있다. 지난 7~80년대에 교회당만 크게 지어 놓으면 교인들이 모여와 교회가 부흥되던 시절의 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교회의 지도부가 시대가 변한 것을 생각지 못한 채로 옛날 사고방식에 매여 빚으로 교회당을 지은 탓이다.

그러기에 불황을 만났을때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며 구조조정을 하는 일과, 주요 요소에 투자를 하는일이 최고 지도자들이 감당하여야 책임이다. 그리고 호황을 맞아 다가올 불황기를 대비하여 조직의 군살을 빼고, 조직의 역량을 강화시켜 나가는 또한 최고 지도자의 책임이다. 이런 책임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애초에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지 말아야 한다.

 

최고 지도자들이 지녀야 할 덕목 7가지(8) 온유와 겸손 2014-11-20

대통령학에서 대통령이 자신의 직을 잘 수행함에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을 7가지로 살폈다. 이들 7가지에 더하여 한 가지 더하고 싶다. 바로 예수님이 이르신 덕목이다. 예수께서 이르시기를 ‘이를 배우면 너희 삶이 쉼을 누리게 된다’라고 하신 말씀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마태복음 11장 28, 29절)

예수께서 자신에게 배우라 이르신 내용은 “온유와 겸손”이다. <온유와 겸손>은 최고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반대로 생각한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는 지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권위 있고 강력하여야 지도력이 순탄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권위와 힘’을 기반으로 하는 지도력은 일시적으로 효과를 나타낼 수는 있을지라도, 자발적으로 기꺼이 헌신하게까지 이르지는 못한다.

<온유와 겸손>의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온유는 사람관계에서 부드러움이다.
겸손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낮아짐이다.

사람들에게 부드럽고 하나님께 낮아지는 마음이 온유와 겸손의 마음이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낮아짐으로 오히려 높임 받는다. 이런 마음이 성경의 가르침이요 인간성의 본질이다.

강함은 남성적인 지도력의 기본이요, 부드러움은 여성적인 지도력의 기본이다. 독일의 문호 괴테가 이르기를 "여성적인 것, 그것이 인류를 구원한다" 하였다. 옳은 말이다. 권위와 강함을 내용으로 하는 남성적 지도력은 지난 세기의 지도력이다. 그런 지도력이 한계에 이른지는 이미 오래다. 지금은 부드러움과 포용이 사람들을 움직이는 시대이다.

"부드러움과 낮아짐"으로 지도력을 발휘한 대표적인 사례가 마하트마 간디와 이순신의 경우이다. 간디와 이순신은 예수께서 일러 주신 온유와 겸손의 위대함을 보여 준 사례이다. 최근 로마 교황의 한국방문에서 우리들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에게서 "온유와 겸손"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고 지도자들이 지녀야 할 덕목 7가지(9) 듣는 마음 2014-11-21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고?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열왕기상 3장 5절~9절)

솔로몬 왕의 시대는 길지 않았던 이스라엘 통일 왕조시대의 황금기였다. “솔로몬의 영광”이란 말이 남아 있을 정도의 시대였다. 그리고 길고 긴 인류의 역사에서 숱한 왕들이 지나갔지만 지혜의 왕이라면 솔로몬을 손꼽을 정도로 그는 지혜로운 왕의 최고봉이다. 그의 지혜는 하늘이 준 지혜이다.

불세출의 왕 다윗이 죽은 후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일천 번의 제사를 드렸다. 하루에 한 번씩 드리는 제사를 일천 회를 계속한 것이다. 그의 이런 정성에 하나님이 귀히 여기시고 그에게 임하여 말씀하셨다.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번제를 드렸더니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열왕기상 3장 4절 5절)

이때 솔로몬이 구한 것이 자신의 장수를 구한 것도 아니요 부를 구한 것도 아니었다. "잘 듣고 잘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는 아이라. 출입할 줄을 잘 알지 못하나이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열왕기상 3장 7절~9절)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것이 "잘 듣는 마음", "잘 듣는 귀"를 구하였다. 하나님이 그의 이런 마음을 귀하게 헤아리셔서 그에게 지혜를 주셨다.

“듣는 귀”는 최고 지도자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덕목이다. 잘 들어야 좋은 지도자가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에게는 “듣는 마음”, “듣는 귀”가 부족하다. 김영삼 대통령 시대에 청와대 부활절 예배에 강사로 가서 예배드린 후 대통령과 식탁을 나눈 적이 있다. 한 시간 칼국수 식사를 나누는 중에 김대통령의 이야기만 듣다 끝났다. 내가 한 마디 끼어들 기회도 없었고, 그가 나에게 한 마디 물은 적도 없었다. 마치고 나오는 자리에서 겨우 한 마디 할 수 있었던 말이 기억난다.

"장로님, 앞으로는 좀 들으십시오"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김영삼 대통령 통치 기간에 IMF재난이 닥친 것은 그에게 듣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최고 지도자들이 지녀야 할 덕목 7가지(10) 듣는 마음 2014-11-22
우리 사회의 취약점 중의 하나가 대화에 서툰 점이다. 대화의 기본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다. 먼저 잘 들어야 대화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대화가 시작되면 먼저 말하려 들지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잘 듣지를 못하니 그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한국인들의 DNA속에 잘 듣는 기능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한국인들은 듣는 것에 서투르다.

먼저 잘 듣는 사람이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요, 그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이는 최고 지도자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지도자가 되려면 먼저 듣기에 능하여야 한다. 잘 듣는 사람은 인관관계가 좋고 실수가 적다. 잘 들어주기에 사람을 얻는다. 그러나 한국의 지도자들은 일단 높은 자리에 오르면 들으려 하지를 않고, 말하고 지시하고 명령하려든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다. 김대통령이 대통령 직무를 시작한 후 즉시 발표된 발표문이 제2건국운동을 시작하겠다는 성명서였다. 얼마 후 나에게도 제2건국운동의 운영위원이 되어 참여하여 달라는 연락이 청와대로부터 왔다. 정치에는 전연 관계할 생각이 없는 나이지만 제2건국운동이라면 일반 정치와는 차원이 다르겠다 싶어 수락하였다.

며칠 후 제2건국운동 발대식에 참석하여 와달라는 전갈을 청와대로부터 받고 참석하였다. 11시쯤엔가 시작되었는데 청와대 영빈관에 150명에 가까운 운영위원들이 모였다. 총장, 장관, 문화예술인, 기업인 등등 한국에서는 각 분야에서 내노라 할만한 분들이 위원으로 위촉되어 참석하고 있었다. 내 옆 자리에도 좌우로 대학총장 두 분이 앉아있었다.

식이 시작되자 국민의례를 치르고는 김대중 대통령이 등단하시어 40여 분간 국정운영에 관한 소식을 특유의 달변으로 설파하였다. 매스컴에 늘 들어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대통령의 긴 이야기가 있은 후 사회를 맡았던 비서실장이 식사를 하시고 안녕히 돌아가시라는 인사를 하였다. 황당함을 느낀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실장을 향해 말하였다.

"아니 건국운동을 한다 하여 바쁜 사람들을 불러놓고는 늘 듣던 대통령의 말 듣고는 점심 먹고 돌아가라 하면 이건 경우에 없는 일 아니요, 건국운동을 이런 식으로 시작하여서는 하나마나 한 일 아닌가요. 이건 너무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종래의 방법인 것 같은데요. 적어도 이정도 수준의 위원들을 모셨으면 조별로 나누어 건국운동의 방향에 대하여 토론을 한다든지 각자의 의견을 듣는다든지 그런 시간과 프로그램이 있어야지 대통령의 말만 듣고 밥 먹고 가시라는 건 너무 하지 않소!"

나의 말에 주위의 여러 위원들이 동의를 표해 주며 이런 식으로는 제2건국운동은 싹이 노랗다고들 하였다. 그 뒤로 청와대에서 다시 부르지도 않았다. 제2건국운동이 유야무야 흐지부지하여진 건 물론이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정부나 지도자는 큰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정치가도 그러하고 기업인도 그러하고 성직자도 부모까지도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