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인생의 카운트다운은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시 39:4-7)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4. 16.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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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카운트다운은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시 39:4-7)

 

  아니 벌써 2010년도의 끝자락인 12월입니다. 엊그제 신년새해라고 설렘을 가지고 출발한 것 같은데 벌써 마지막달입니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고 하더니 정말 빠릅니다. 유명한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우리는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말은 인생이 지나가는 인생, 날아가는 인생이라는 말입니다.
  일찍이 모세는 시90:12절에서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모세는 세월이 참 빠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생의 덧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인생을 알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여기 '우리 날 계수 함을'이라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카운트다운'하는 겁니다. 로켓을 발사할 때 수를 세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텐, 나인, 에잇, 세븐, ... 쓰리, 투, 원, 제로!' 이렇게 떠날 것을 의식하는 사람은 세상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짧고 세월은 빠르게 지나갑니다. 과거도 현재도 지나가고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음이 우리 앞에 뚜벅뚜벅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월을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도 모세처럼 '하나님,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인생을 알게 하시고, 더 나아가서 우리 앞에 있는 천국과 지옥을 깨닫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은 본문에서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나이다(셀라)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람들은 그림자처럼 헛된 일에 바쁘게 왔다갔다하면서 재물만을 취하지만, 그 재물을 누가 취할는지 알 수 없다고 하면서 그는 '나는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엡5:15-17절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이태리의 시인 '단테'는 '가장 현명한 자는 허송 세월 하는 것을 가장 슬퍼한다'고 했습니다. 세월을 그냥 보내고 있는 것을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지혜서인 '탈무드'에서 '한정되어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평생 동안 쓸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귀중한 것은 무엇이겠느냐?'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답변으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간으로는 돈을 살 수 있지만, 돈으로는 시간을 살 수 없습니다. 또한 한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이킬 수 없습니다. 나갔던 돈은 다시 들어올 수 있지만, 한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지나간 내 청춘, 내 인생은 한번 가버리면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지불한다 할지라도 지나간 세월은 결코 되찾을 수 없습니다.
  ▶미국의 연방교도소에서 18년 간을 복역했던 '에드워드 분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전과자였던 에드워드 분커는 자서전 '미스터 블루'라는 책을 써서 범죄인으로써 문학상의 결선에까지 올라가고 작가로서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살았던 에드워드 분커는 5세 때 부모가 이혼을 하여 8세 때부터 아동 보호소에서 자랐습니다. 그 후 소년원 수감, 탈옥, 정신병원 수용 등 악순환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결국 범죄 조직에 가담하고 마약거래와 무장강도 혐의로 검거돼 최연소 죄수로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은 거기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침 감옥에서, 독방에 수감된 채 언제 사형이 집행될지 모르는 초조감 속에서도 끊임없이 글을 쓰는 한 사형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사형수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고 결심을 했습니다.
  '나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을 꺼야' 그래서 그는 독서를 시작했습니다. 감옥에서 남는 것은 시간밖에 없었으므로, 유명한 고전 작품들은 모조리 섭렵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글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18년 간 감옥에 있으면서 장편소설 6편과 단편소설 50편을 쓸 수 있었습니다. 41세가 되어 감옥에서 나왔을 때, 그는 이미 작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출소 후에도 그는 미친 듯이 글만 썼습니다. 그는 글을 쓰지 않으면 자신이 다시 타락하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침, 점심, 저녁, 밤낮 없이 글만 썼습니다. 비로소 그의 글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영화 제작자들로부터 교섭이 들어오고, 그가 각본을 쓴 영화가 오스카상 후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자서전 '미스터 블루'는 문학상 후보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한 시간도, 한 순간도 이제는 내가 헛되게 보내지 않을 꺼야! 나는 시간을 알차게 보낼 꺼야'라고 결심하며 열심히 산 한 전과자가 소설가로서 성공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할/ 사람들은 뭔가 자극이 있어야 변화됩니다. 그래서 신앙은 결심이고 결단입니다. /믿/
  이제 한 해를 보내면서 모세의 기도를 깊이 생각해 봅시다! 시90:10절에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그리고 12절에서 고백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할/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지혜를 얻어 남은 한 해도, 남은 우리들의 인생도 주님과 동행하는 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지금도 주님의 지혜는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미합중국의 43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대통령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우여곡절이 많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미국의 41대 대통령이었고, 그의 가문도 정치가 가문입니다. 그런데 5남매 중 장남인 부시는 늘 집안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공부도 못했고, 술과 파티, 그리고 연애로 젊은 날을 보냈습니다. 예일대를 나오기는 했지만, 그것도 아버지 빽으로 들어가서 간신히 졸업만 한 것입니다.    
  20세에는 약혼을 했으나 행실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파혼을 당했습니다. 베트남 전에도 참전했다가 훈련 성적이 좋지 않아서 전쟁은 구경도 하지 못하고, 주 방위군에서만 근무를 했습니다. 31세에는 하원의원 선거에서 낙선하고, 석유 사업에서도 실패했습니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40세 때 '빌리 그래함'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목사님의 간곡한 권유와 기도로 비로소 40세에 회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처럼, 그는 먼저 술을 끊었습니다. 매일 아침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40세에 젊은 날의 방탕과 타락, 실패와 좌절에서 일어나서 회심하고 나서, 14년만인 50세에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할/
  누가 이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까? 알코올 중독자이며 집안에서도 내놓은 버림받은 탕자가 어떻게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방탕과 도박, 알코올 중독, 헛된 생활에서 그를 새롭게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할/ 말씀을 의지하며 기도하는 부시에게 새로운 삶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부자(父子) 대통령이 나왔습니다.
  여러분,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오늘 다윗처럼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이 신앙의 위대한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할/ ◀제목 소개!▶

 

  오늘 본문은 다윗 왕이 인생 말년에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고백한 시입니다. 다윗 왕도 인생인지라 그 역시 인생무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음을 고백하면서 먼저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내 인생무상을 깨닫고 5-6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의역해 봅니다.
  '주께서 내 날을 손바닥 넓이만큼 되게 하셨으니 나의 일생도 주 앞에는 일순간에 불과하며 인간이 잘난 척하지만 한 번의 입김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부산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지만 그림자에 불과하고 그 하는 일도 헛되며 기를 쓰고 재산을 모으지만 누가 가져갈지 알지 못합니다.'
  다윗 왕이 병약한 말년에 자신의 남은 인생이 몇 년이나 될까 하고 손을 펴서 살펴보니 '내가 한 평생을 다사다난(多事多難)하게 살았다고 하는데 그것이 고작 한 뼘에 불과하다'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이 시편을 다윗의 '참회시'로 분류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길이를 잴 때 기본 단위는 한 뼘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왕이 되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장하며, 그 동안 끊임없이 괴롭혔던 주변 국가들을 모두 제압하여 조공을 바치게 하는 등 천하를 호령하며 대단한 왕으로 살아온 것 같은데 '별 것 아니었구나'라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한 뼘에 지나지 않는 인생, 하나님 앞에서는 없는 것과 똑같구나. 인간이 잘난 척하지만 한 번의 입김에 지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생들이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초라한 존재이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모세의 시편을 상고해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풍운아로 살았던 모세도 일찍이 인생무상을 그의 유일한 시편인 90편을 통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주는 영원히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주께서는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너희 인생들아, 돌아가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는 천 년도 지나간 하루 같고 밤의 한 순간에 불과합니다. 주께서 사람을 홍수처럼 쓸어 가시니 우리는 잠시 잠을 자는 것 같고 아침에 돋아나는 풀과 같습니다. 그 풀은 아침에 새파랗게 돋아 나와 저녁이 되면 말라 시들어 버립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가운데 지나가니 우리가 한평생을 한숨으로 보냅니다. 우리의 수명이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모든 날이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지나가니 우리가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일생이 얼마나 짧은지 헤아릴 수 있게 하셔서 우리가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주의 종들에게 주의 놀라운 일을 나타내셔서 우리 자녀들이 주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할/
  애굽 궁전에서 잘 나가는 왕자로 40년, 가장 비천한 목자로 광야에서 40년, 그리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에서 40년, 그렇게 120년의 인생을 보내면서 인간은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유한하고 허무한 존재임을 깨닫고 하나님을 떠나서는 참된 소망을 가질 수 없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영원한 소망을 누릴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모세와 다윗은 자신을, 아니 인생을 정확하게 깨달았습니다. 영원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렘10:10절에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오 사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열 방이 능히 당치 못하느니라' 다윗은 본문 7절에서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며 영원하신 하나님께만 소망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를 두고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2:22절에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호흡이 붙어 있을 때만 살아 있다고 하는 인생,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고 마는 인생(시146:4)은 의지할 가치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호흡을 취하시면 죽어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 인생(시104:29)입니다.
  이스라엘 전체 중에서 가장 화려한 인생을 산 사람을 들라면 솔로몬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인생을 다 살고 마지막 결론을 이렇게 내리고 있습니다. 전1;2-3절에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야고보는 약4:14절에서 말하기를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시인의 말을 들어 봅시다! 시146:3-5절에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할/
  인생의 카운트다운은 지금도 진형형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바로 눈을 떠야할 것은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아멘입니까?/할/
  ▶본문을 상고하면서 다윗의 위대한 신앙의 고백을 우리의 고백으로 만드는 시간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할/

 

  ①다윗은 지금도 인생의 카운트다운은 진행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여기서 다윗의 기도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신의 종말의 때'를 묻고 있습니다. 지금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의 종말'을 물어보고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를 향하여도 자신의 종말을 물어보라는 메시지입니다. '내가 언제쯤 죽을지 물어 보라'는 것입니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앞으로 나에게 남은 세월이 얼마만큼이나 되는지 물어 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이야기하면 자신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 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람의 生이라는 것은 소(牛)가 외나무다리(一) 건너는 것처럼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전혀 예기치 못했던 수많은 사고들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그런데 저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일들을 당하기 전까지는 그런 일들이 자기들하고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그냥 마냥, 마냥 살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며 이 세상의 것에 매달려서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살아 있는 동안 어떤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십니까? 언젠가 내 인생이 끝나리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 마지막을 준비하며 살아가십니까? 만일 오늘밤이 여러분의 마지막이라고 한다면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오늘밤이 나의 종말이라면 세상에서는 인정을 못 받았다 할지라도 주님 앞에서는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귀한 것입니다. /할/
  알렉산더 대왕은 죽으면서 말하기를 '내가 모든 것에 대하여 시간을 바치고 생각하여 왔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인 죽음에 대하여 만은 준비하지 않았구나!' 불쌍한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입니다. 다윗이 드린 기도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와는 다른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강해지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건강을 달라고, 물질의 풍성함을 달라고, 지혜의 충만함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거꾸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연약함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누구인가? 그는 강한 자입니다. 골리앗을 넘어뜨린 자입니다. 그 당시 강대국인 불레셋을 초토화시킨 사람입니다. 그는 통일 왕국을 이룬 막강한 권력자이고, 국민들에게 추앙 받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연약함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겸손한 기도인가? 그런데 사람들은 자진들이 대단한 존재로 착각하며 사는 자들이 많습니다. 자기의 지식이 으뜸이고, 힘이 으뜸이고, 배경이 으뜸이고, 수단과 방법도 으뜸이고, 모든 면에서 자기를 들어내고 나타내고 의시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인생이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인생의 재료가 흙입니다. 질그릇입니다. 깨어지기 쉬운 존재입니다. 뚝하면 인격이 깨어지고, 건강이 깨어지고, 감기에도 깨어지고, 환경과 조건 앞에서도 깨어지고, 조석변개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네 인생입니다. /믿/
  이 세상에는 상대적인 것과 절대적인 것이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상대적인 것이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그 절대자 앞에 인생의 연약함을 깨닫는 자가 겸손한 자요,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할/
  베드로는 절대자 앞에서 자기의 죄를 깨닫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할 때 예수님의 수석 제자의 입문이 이루어졌습니다. 성경은 겸손한자를 구원하시고, 응답주시고, 높여주시고, 재물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잠22:4절에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할/ 

 

  ②다윗은 자신이 '한 뼘 길이 만한 인생'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5-6).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셀라)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의역해 보면 '우리의 생명은 손바닥 넓이입니다. 영원에 비하면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나놓고 보니 모두가 허사입니다. 그림자 같습니다. 헛된 일로 열심히 일하지만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 합니다.' 지금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⑴우리의 생명은 손바닥 넓이입니다. 영원에 비하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지극히 짧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짧은가? 겨우 손바닥 넓이 만한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손 넓이란 말의 본래의 뜻은 손가락 4개 넓이 만큼이라는 말입니다. '손가락 넷' 이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우리 인생의 연수가 팔십이라고 하면 이 손가락 하나가 20년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이미 셋을 넘어 살았습니다. 여러분은 몇 개 남으셨습니까?
  예를 들어봅니다. 1년이나 10년의 시간과 비교해 볼 때 10분이 긴가요? 짧죠! 30분은? 60분은? 80분은? 모두 짧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30년을 살든 90년을 살든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창5장 보면 많은 사람들의 기록이 나옵니다. 그 당시는 노아 홍수 이전이라 기후가 온난하고 수명이 길었습니다. 보통 수백 년씩 살았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장수한 사람이 므두셀라입니다. 969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생애 기록이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그가 자식 낳고 살다가 죽었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놀랄 만큼 오래 살았는데 그래봤자 별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인생이기에 든든히 서 있을 때라도 별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인생은 모두가 허사라는 겁니다. 여기서 허사라는 말은 원문을 보면 히브리어로 '헤벨'인데, '입김, 혹은 호흡'이란 뜻입니다.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벧전1:24절에서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모든 인생은 풀처럼 덧없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이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겠습니다. 빌3:12절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또 14절에서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좇아가노라'입니다. 바울사도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운동 경기에다 종종 비유했고, 달리기에 비유했고 달리기 중에서도 마라톤 경기에다 비유했습니다.
  여러분,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 경주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모두 토끼가 이긴다고 장담했지만 결국은 거북이가 이기었습니다. 여기서 보면, 빨리 잘 달린다는 것만으로 우승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끝까지 달리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막연히 공부하는 것과, 자신의 목표를 세우고 공부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런 의식 없이 직장을 다니는 것과, 나름대로 목표를 세우고 다니는 것과는 비교할 바 못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사람은 자신이 세운 목표만큼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바울은 푯대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라틴어로 목표라는 말은 '피니스(finis)'인데 이것은 종말이라고 하는 말과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목표가 무엇입니까? 종말입니다. 목표가 무엇입니까? 끝입니다. 인생의 진짜 목표는 인생 종말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끝에 가서 후회하지 아니하는 목표라야 진짜 목표라는 말입니다. /할/
  바울은 '좇아간다'고 했는데, 이 말씀 속에는 '신앙의 길을 갈 때 도중에서 쉬지 말고 계속 뛰겠다'는 자기 의지입니다. 달리기하는 사람의 법 제1조가 쉬지 말고 뛰어야 합니다. 달리다가 쉬면 말이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인이 신앙의 길을 가다가 쉬면 안 됩니다.
  왜 바울이 '쫓아가노라'고 했습니까? 천국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할/ 바울은 천국을 참 중요시했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우리에게 만일 천국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천국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쉬지 말고 뛰어야 합니다. /할/아멘!/
   그렇습니다. 우리는 푯대를 향하여 쫓아가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할/ 상은 다 귀합니다. 세상에서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이 상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공부를 많이 하는 학생에게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도,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에게도 이 상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했습니다. 신앙에도 상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인들이 수고하고 고난 받고 순교까지 합니다. 사도바울은 평생 달려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루도 쉴 날 없이 살았습니다. 왜 달려갔습니까? 그것은 바울이 말했듯이 하늘에서 얻을 상 때문입니다. /할/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땅의 상급이나 축복이 중요하지만 진정한 상급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너무 이 세상의 상급에 붙잡히면 하늘의 상급을 놓치고 맙니다. 바울은 늘 기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늘 상을 기대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최선을 다 하고 달려갔습니다. 여러분, 짧은 인생입니다. 우리들도 하늘에 상을 바라보며 최선을 다하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⑵다윗은 그림자 같은 인생들이 헛된 일에 분주하다고 꼬집고 있습니다.
  여기 '분요'란 말은, '어지러울 분(紛), 요란할 요(擾)'로 '분주하고 바쁘다는 뜻'입니다. 정말 사람들이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그런데 인생 속에 뭔가 있는 것 같지만 실상 가서 만져보려고 하면 아무것도 없는 그림자입니다. 아름다운 것 같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없는 저 구름처럼 아무것도 없는 것, 그런 것이 인생입니다.
  얼마나 바쁩니까? 우리 가운데 바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모두가 다 바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바쁩니까? 정말로 위대한 일이기 때문입니까? 아니 위대하지는 않지만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NO'(아니요)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헛된 일을 하느라고 그렇게 바쁘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누가 취할는지도 모를 그 재물을 쌓느라고 그렇게 바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와 '선생님, 내 형더러 유산을 나와 나누어 가지라고 말씀해 주십시오'하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아, 내가 너희 재판관이나 재산 나누는 사람인 줄 아느냐?'고 말씀하시고 무리들에게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 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에게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비옥한 농토를 가진 어떤 부자가 풍성한 수확을 하자 속으로 내가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옳지!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지어 거기에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쌓아 두겠다고 하면서 그의 영혼에게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이 많아 쌓여 있다. 이제 편히 쉬면서 먹고 마시고 즐기리라'고 하자 하나님은 그에게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아가면 네가 지금까지 쌓아 둔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자기를 위해서는 재산을 쌓으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은 사람이니라'(눅12:13-21) 그리고 예수께서 결론적으로 '오직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더하여 주실 것이니라'(눅12:31)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자기를 위해서는 재산을 쌓으면서도,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사람은' 결국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인생과 같이,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 날에 허무하게 무너지는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영국의 루이스 황제가 국정으로 너무 골치가 아프고 답답하고 괴로워서 밤에 아무도 모르게 왕궁을 벗어나 어떤 마을을 걷고 있었습니다.
  어떤 동네 모퉁이에 있는 물레방앗간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늦은 밤에 그 물레방앗간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다가가 그 안을 들여다보니 어떤 노인이 혼자 일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나도 역시 세상 사람 부럽지 않네/하나님의 크신 은혜 생각할 때에/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2)>
  똑같은 노래를 계속 반복해서 불렀지만 너무나도 즐거워하면서 불렀습니다. 황제는 그 노래가 너무 좋아서 그 노인에게 그 다음절은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없다고 하니까 황제가 이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영국 황제 루이스가 날 부러워 해/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할 때에/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할/
  흔히 생각하기를 높은 권력을 차지하고 부자가 되면 만족할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부자가 되면 큰집에 살 수 있고, 큰 차를 타고 다닐 수 있으니 좀 편안하게는 살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사람에게 참 평안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속에도 문제는 있게 마련입니다.
  일반적으로 군인들이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군인들 중에서도 가장 크게 스트레스를 받고 허탈감에 빠지는 사람은 별 3개를 달았다가 4개를 달지 못하고 그냥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별 하나 다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러니 그 별을 세 개나 달았다고 하면 얼마나 큰복을 받은 사람입니까? 그런데 별 세 개를 달았던 사람이 네 개를 달지 못하게 되면 자살을 하고 싶을 정도의 허탈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들 이미 주신 별 세 개에 대해 감격하기보다는 더 많은 욕심 때문에 근심하고 염려하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은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화는 풀의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시간이 다 지나가서 죽게 되면 그때는 어떻게 하시는지 아시지요, 부여 쥐었던 손을 쭉 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포기를 의미합니다.
  이 세상의 것, 아무리 부여잡으려고 해도 모든 것을 놓아야 할 날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할 인생의 나그네들입니다. 헛된 것에 욕심 두지 않고 사는 사람이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어떻게 만드셨습니까? 손바닥 넓이 만한 인생으로 만드셨습니다. ▶어떤 장로님이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는 인색하기 그지없으신 분이 돈만 생기면 수석을 열심히 모았습니다. 3,000개나 되는 수석을 모으며 즐겁게 수집광으로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보고 이렇게 물을 때가 가장 기뻤습니다. '이렇게 신기한 돌을 어디서 구했어요?' '참 취미도 고상하시네요!' 이런 소리를 들을 때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 그분이  어느 날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생 먹지도 않고 입지도 않고 모은 이 돌들이 누구 것이 될 것인가?' 생각하여 보니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 그는 암 선고를 받고 그 돌들을 다 버렸습니다.
  오늘 다윗은 말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할/
  어떤 착실한 은행에 다니는 분이 계셨습니다. 일생동안 알뜰하게 돈을 모았습니다. 약 3억원 정도를 저금할 정도이니까 얼마나 '돈, 돈, 돈'하면서 살았는지 짐작이 갑니다. 먹을 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갈 데 안 갔습니다. 쓸 데 안 썼습니다. 입어야 할 때 안 입었습니다. 겨울에 춥게 살았고, 여름에 덥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장 친한 친구 보증을 서 주었습니다. 믿을 만한 사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친구가 사업이 망해 버렸습니다. 그 빚들이 모두 자기에게 떨어졌습니다. 그는 빈손으로 양평 허허 벌판에 비닐 하우스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아내도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그는 허허 벌판에서 쓸쓸히 정말 쓸쓸히 생을 마감하고 말았답니다. 돈만 알고 죽음을 준비하지 않은 삶의 종말입니다. /할/

 

  ③다윗의 결론은 '영생을 주시는 분이 누구 신지' 바로 알고 살라고 합니다(7).
  인생의 생명은 손바닥 넓이입니다. 짧습니다. 잠깐입니다. 그렇기에 영생을 주시는 분이 누구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할/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믿/
  파스칼은 말했습니다. '우리 중심에 공백을 두었나니 그 공백에 하나님이 계실 때까지 인간은 만족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셨기에 하나님 안에서만이 참 안식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아멘!/
  ⑴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소망을 이 땅에 두지 않고 하나님께 두고 삽니다.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을 알았고, 하나님 없이 하는 이 세상의 모든 일이 헛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겠다고 했습니다.
  ⑵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어떤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롬8:28절의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을 믿기 때문이고, 또 세상의 삶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⑶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저 영원한 천국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후5:1절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우리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기에 어떤 고난도 핍박도 감수하게 됩니다.
  ▶로마의 황제 네로시대 때 가장 용감하고 신체가 튼튼한 전사 40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황제의 투사'라고 불렀고, 로마의 원형 극장에서 경기하는 것을 보고 가장 건강하고 가장 용감한 사람들을 뽑아서 구성한 팀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원형 경기장에서 결투 할 때 황제를 향해 손을 들고 외치기를 '우리 투사들은 황제를 위하여 싸우겠으며 황제가 주는 면류관을 위해 싸우겠습니다'라고 선서를 합니다. 로마 군인들이나가 싸울 때에도 이 40명의 투사들 보다 더 용감한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로마 군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을 받아 들였다는 소식이 네로 황제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백부장 '베스파샨'에게 황제의 특명이 내려졌는데 '만약에 너의 부대 투사들 중에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있으면 다 사형시켜라'는 특명이었습니다.
  그때가 몹시 추운 겨울이었는데 호숫가에 투사들을 불러 모였습니다. 백부장 베스파샨이 황제의 특명을 그들에게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용사들을 세워 놓고 묻기를 '너희들 중에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으면 앞으로 나서라'고 말하자 즉시 40명의 용사들이 모두 앞으로 나와 차려 자세로 섰습니다.
  백부장이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많을 줄은 예상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릴 터이니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하고, 해가 지자 다시 불러모아 놓고 물었더니 40명의 용사가 모두 앞으로 나섰습니다.
  백부장은 오랜 시간동안 그들을 타이르며 신앙을 포기하도록 권면을 했으나 듣지 아니함으로 마지막으로 '황제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너희들이 피 흘리는 것을 보기 원치 않는다. 너희들은 모두 옷을 벗고 호수의 얼음 위에 들어가라'고 명하자 그들은 모두 옷을 벗고 혹독히 추운 밤 얼음 위에 서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노래는 원형 극장의 투기장에서 부르는 노래를 가사를 바꿔 부르고 있습니다. '오 그리스도시여 우리 40명의 용사들은 당신을 위해 싸웁니다. 주님이 주시는 승리의 면류관을 받기 위해 용감히 싸웁니다'
  베스파샨이 밤새도록 모닥불 옆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니까 그 투사들의 노래 소리가 점점 희미하게 들렸습니다. 새벽이 되자 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더니 불가로 기어올라 왔습니다. 온 몸이 얼어붙는 고통에 못 이겨 한 사람이 주님을 배반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캄캄한 중에 또 노래 소리가 들려 오는데 '오, 그리스도시여 우리 39명의 용사들은 주님을 위해 싸웁니다. 주님이 주시는 승리의 면류관을 받기 위해 용감히 싸웁니다'하는 노래였습니다.
  베스파샨이 그 배반자가 불가로 기어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을 때 하늘로부터 환한 빛이 호수 한 가운데로 비춰 오면서 천사가 금 면류관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누가 말한 것도 아닌데 백부장 베스파샨은 헬멧과 옷을 벗어 던지고 얼음판으로 뛰어들면서 함께 노래를 부륩니다.
  '오! 그리스도시여 40명의 용사가 당신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당신이 주시는 승리의 면류관을 받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라고 부르면서 그도 함께 순교를 했다고 합니다. /할/ 찬송 작가 '헌팅 턴'은 찬222장에서 <우리를 구하신 주님도 거룩한 그 집에 계시니 우리도 이 세상 떠날 때 주님과 영원히 살겠네, 거기서, 거기서 기쁘고 즐거운 집에서 거기서, 거기서 주님과 영원히 살겠네>라고 노래를 했습니다. /아멘!/  (2010년 12월 5일 대예배 설교)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송수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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