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어느 단계의 성도인가? (겔 47:1-12)
본문은 에스겔 선지자가 본 물의 환상에 관한 기록입니다. 확실히 이 환상은 신비하고 오묘한 환상 중의 하나입니다. 성전(교회) 문지방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한 물이 점점 불어나서 결국은 건너지 못할 큰 강이 되었다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문지방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옛날 한국 집들은 한결 같이 문지방이 높았습니다. 점점 주택이 서구화되면서 문지방이 낮아져 살기가 좋아졌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문지방이 높은 집에서 살았습니다. 우리가 이런 말을 하기도 합니다. '관공서의 문이 높다. 은행 문이 높다'고들 합니다. 이런 문은 다 낮아져야 합니다. 특히 교회의 문지방이 높아지면 큰 일입니다. 허리보다는 교회의 문지방은 낮아져야 합니다. 그래서 어른도 아이도, 잘 사는 사람도, 못사는 사람도 평안하게 드나들어야 합니다. /아멘!/ 미국에는 상류사회 인사들만 모이는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춥고 배고픈 사람들은 드나들기가 어렵답니다. 이것은 크게 잘못된 일입니다. 어떤 교회는 창설 멤버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교회가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학력수준이 높은 사람들만 모이는 교회가 있습니다. 다 잘못된 교회입니다. 부흥하는 교회, 은혜 충만한 교회는 다 문턱이 낮습니다. 누구나 마음 편하게 들어와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께 예배드리고, 은혜를 받고, 위로를 받고, 평안을 얻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지방색이 있어도 안되고, 텃세가 있어도 안되고, 계급의식이 있어도 안되고 빈부의 차별이 있어도 안 되는 곳입니다. /믿/ 교회란 잘 사는 사람이 들어와서 못사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겸손해야 하는 곳입니다. 많이 배운 사람이 배우지 못한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예수님에 관한 얘기를 주고받는 곳이어야 합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과 악수를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곳이어야 합니다. 가령 하나님의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교인대접 이상은 받는 곳이 아닙니다. /할/ 미국의 전 카터 대통령은 주일 날 교회에 나가서 주일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미국 대통령이 뭐가 아쉬워 아이들을 가르치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미국 대통령도 교회에 나가면 교인이고 주일학교 교사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카터 대통령의 신앙의 인격은 너무나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현직에 있을 때 보다 오히려 임기 후에 그분의 인기가 더 높아졌습니다. /할/ 우리 참 행복한 교회는 남녀노유 빈부귀천 누구나 다 들어와서 예배드리고 은혜 받고 응답 받고 회복되는 축복의 교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제목소개!▶
1. 본문의 배경은 무엇인가?
지금으로부터 2700년 전 일입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침략해 왔습니다. 많은 문물을 약탈해 갔고 1만 명의 젊은이들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 포로 가운데 25세의 젊은이 에스겔이 함께 포로로 끌려갑니다. 그는 바벨론 포로생활 중에 나이 30이 되던 해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습니다. 노예생활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용기와 희망을 선포합니다. 그런데 또다시 비극적인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바벨론 군대가 또 다시 예루살렘을 침공해 성을 초토화 시켰습니다. 예루살렘의 임금 시드기야를 잡아 두 눈을 뽑고, 손발을 묶고 말에 매달아 끌고 다니다 처참히 죽게 합니다. 이제 조국도 없어졌습니다. 돌아갈 땅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울고 또 우는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이 무렵 에스겔의 아내가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니 소망을 선포하던 에스겔의 꼴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비극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습니다. 절망하지 않습니다. 백성들을 위로합니다. 더욱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용기와 희망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역사 하시고 기회를 주시고 결국은 회복의 축복과 주님 앞에 쓰임 받는 역사가 있습니다. /아멘!/ 오늘 본문의 내용을 간추려 보면 이렇습니다. 하루는 에스겔이 하나님의 사자에게 이끌려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성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성전에 물이 가득히 고입니다. 이어서 한번 걸어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걸었더니 물이 발목까지 찰랑 찰랑 흘러 넘쳤습니다. 계속해서 사방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있다가 또 다시 한번 걸어보라고 합니다. 물이 무릎까지 차 올랐습니다. 다시 물은 점점 차 올라 허리까지. 오늘 본문에는 생략되었지만 가슴까지, 급기야 물은 성전에 가득하여 헤엄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물이 되었습니다. 이 강물이 성전을 한바퀴 휘감아 돌더니 사막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해 바다에 도착하자 죽었던 사해 바다가 살아나고 고기들이 펄떡거리며 뛰어 놉니다. 그리고 다시 사막을 지나 돌아오는데 보니까 벌써 사방에 숲이 우거져 있습니다. 진귀한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할/ 예루살렘은 강이 없는 곳입니다. 예루살렘은 고원지대이기 때문에 강이 흐를 수 없습니다. 더구나 성전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그 물이 사막을 통과하고 사해 바다까지 이르러 마침내 죽은 사해 바다를 살렸다고 하는 이 말은 상징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 이 성전과 강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인간에게 있어서 물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고 중요한 것입니다. 지구조차도 71%가 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류 최초 문명의 발생지는 모두 강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나일강의 애굽문명, 유브라데스 강의 바벨론 문명, 인더스강의 인도문명, 황하강의 중국문명이 그렇습니다. 우리 사람의 몸도 물로 이루어졌습니다. 물을 마시지 않고는 살수가 없습니다. 우리 영적인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의 물을 마시지 아니하면 죽습니다. /할/
2. 그렇다면 이 물은 어떤 물인가?(1)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 물이 제단(전)을 한바퀴 돈 다음 그 제단을 통과하여 다시 남쪽으로 흘러갔다고 했는데 여기 제단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강물이 무엇입니까? ①전과 물의 의미는 무엇인가? 물의 의미는 이미 예수님께서 이렇게 요한 복음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물과 성령으로 너희들이 거듭나야 하리라.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리라' /할/ 이것은 성령의 물에 감동되어 예수님의 보혈의 은총에 적셔진 죄인들이 구원을 얻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의 보혈의 은총이, 성령의 생수가 제단에서부터 흘러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사람은 교회를 어머니로 섬겨야 합니다. 여기서 생수가 흐르기 때문에, 구원의 보혈이 흘러 넘치기 때문에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다'고 '칼빈'은 주장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제단입니다. 쉽게 생각하는 자리가 아니라 구원의 물이 흐르고 있는 구원의 자리입니다. /믿/ 어떤 분은 교회를 우습게 가볍게 생각합니다. 운동경기를 본다고 교회 안나오고, 어떤 일이 좀 생기면 먼저 교회를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하십시오, 교회가 우스운 곳이 아닙니다. 성령의 생수가 흐르는 곳이요, 우리의 영혼이 사는 곳입니다. 영혼이 잘되어야 범사가 잘 됩니다. 신앙 생활을 잘 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아멘!/ 그런데 어떤 사람은 뚝 하면 교회를 핑계를 됩니다. 그러나 깨달아야 할 것은 교회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 신앙이 문제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미국의 어느 큰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지금은 아주 크게 부흥 성장한 교회인데 일화가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그 교회에 부임을 했습니다. 몇 해 동안 열심히 기도하고 눈물을 흘리며 애를 썼지만 교회가 좀처럼 부흥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나가서 전도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기 자리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교인이 줄고 교회가 약해져서 도저히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어느 주일 날 이렇게 광고를 했습니다. '도저히 더 이상 교회를 운영할 수 없어서 다음 주일에 고별 예배를 드리고 교회 장례식을 거행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지방 신문에다가도 크게 '다음 주일에 교회의 장례식을 거행합니다'라는 광고를 실었습니다. 그 신문기사를 보고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교회 장례식을 치른다는 말은 처음 들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교회 장례식을 치른다는 주일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많이 모였습니다. 교회에 등록만 하고 출석하지 않던 사람들까지 호기심을 갖고 다 모였습니다. 목사임은 짧게 고별사를 하고 장례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리고는 한 사람씩 나와 강단 앞에 놓은 큰 관에 작별인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참석했던 사람들은 처음엔 호기심 반, 장난 반으로 앞으로 나가 관속을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관속에 자신의 얼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관속에는 큰 거울이 놓여 있어서 들여보는 사람의 자신의 얼굴이 관속에 있게 된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교회가 부흥되지 않아서 장례식을 치르는 것은 결국 자신이 영적으로 죽은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교인들이 모여 기도회를 열고 전도대를 만들어 열심히 전도해서 교회가 크게 부흥되었다고 합니다. /할/ 그렇습니다. 문지방 밑에서 물이 흘러 내렸다는 것은 물의 근원이 주님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사실을 요4:14절에서 주님이 친히 밝혀 주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근원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시고 구원의 근원이시고 축복의 근원이십니다. 백록담을 근원으로 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이 흐르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근원으로 하여 우리의 삶이 영위되고 발전되는 것입니다. ②그 물을 흘러 내렸습니다. 그 물은 연못이나 저수지처럼 고여 있지 않고 흘러내렸습니다.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전 세계 70억의 인간 속에 퍼졌습니다.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한 생수를 마른 땅을 적시면서 점점 앞으로 흘러 내려갔습니다. 흐른다는 것은 살았다는 것이요,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우리가 역사를 보면 전진하는 역사가 있고, 후퇴하는 역사도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흘러나가야 합니다. 쭉쭉 뻗어나갈 줄 믿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흘려나갈 때, 우리 생명이 넘쳐날 줄 믿습니다. 전진하는 신앙, 전진하는 교회, 신앙은 자라야 합니다. 성장해야 합니다. 성장한 만큼 하나님의 축복의 그릇을 넓어집니다. 우리가 집에서 자식을 키워보아서 압니다. 자식이 쑥쑥 자라야 부모의 마음이 기쁩니다. 정상적으로 자라야지, 5살 먹어도 7살 먹어도 정신연령도 지혜로 키도 자라지 않으면 부모의 마음을 애가 탑니다. 당해보지 않은 부모들이 그 부모의 고민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믿음이 정상적으로 자라기를 원합니다. 1년 믿었으면 1년만큼의 분량을, 3년만큼의 분량을 바라십니다. /믿/ ③그 물이 점점 불어났습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 생수의 물은 생명과 번영을 상징합니다. 본문을 보니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내린 물이 점점 불어나고 있을 때 에스겔이 그 물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발목에 올랐습니다. 이제 일천척을 더 나갔을 때, 물이 무릎에 올랐습니다. 얼마 후 다시 건넜을 때는 허리가 차고 나중엔 헤엄을 치지 않으면 건널 수 없는 큰 강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본문 5절 하반부에 보면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뜻을 발견합니다. ⑴복음은 계속 뻗어나가되 점점 불어나고 확대된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보잘 것 없는 주님의 12제자들로 시작된 복음의 사역은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된 이래 계속 흘러내려서 이 복음의 생수가 결국은 건널 수 없을 만큼 큰 강을 이루고 전 세계를 정복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앞으로 전 세계 어느 곳이든 하나님의 복음의 강물 줄기가 뻗어나가지 않은 곳이 없게 된 것입니다. 왜 그런지 이십니까? 주님 오실 날이 가짜와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공산권에도 회교권에도 잡신만을 섬겼던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지금 복음의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할/ ⑵물이 점점 불어났다는 것은 한사람의 신앙이 성장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3.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 성숙의 단계(과정)가 있습니다.
①주님을 따르는 단계가 있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 출발이 잘 되면 신앙의 성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서 고향을 떠남으로써 시작됩니다. 모세의 신앙도 하나님의 소명에 응답해서 지팡이 하나를 들고 애굽으로 출발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사도 바울의 신앙도 다메섹에서 주님의 부름에 순종하여 따라 나섬으로써 시작됩니다. 사도들의 신앙도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서 그물을 버려 두고 주님을 따라 나선 것이 사도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결단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주님과 함께 살아 갈 것이다'라는 비장한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아멘!/ ②주님과 동행하는 단계입니다. 주님을 따라 나섰으면 언제까지나 그냥 수동적으로 쫓아가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주님과 동행을 해야 합니다. 이 단계가 한 단계 성장한 단계입니다. 그런데 동행하는 데도 법이 있습니다. 반드시 주님과 방향이 같아야 하고, 동행에는 보조가 같아야 합니다. 동행의 의미는 함께 한다는 데 있습니다. 마음이 맞고 뜻이 맞고 생각이 같아야 합니다.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 두 마리는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목적지를 향하여 똑바로 갔습니다. /할/ ③주님을 꼭 붙잡는 단계입니다. 우리가 연약한 인간이다 보니 신앙 생활을 하는 데도 마음이 한결같지가 않습니다. 때로는 피곤하기도 하고, 쉬고 싶기도 하고, 싫증도 나고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떤 때는 신앙 생활하는 것이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놀지도 못하고, 여행도 못 가고, 즐기지도 못하고 그래서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신앙 생활 하는 동안 이때가 가장 위험할 때입니다. 부부간에도 권태기가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의견이 자꾸만 충돌되고, 집에 늦게도 들어오고, 다투기도 잘하고 그럽니다. 이때 방심을 하면 안 됩니다. 이때가 위험한 때입니다. 신앙 생활도 하다가 보면 이런 때가 옵니다. 그래서 '꼭 붙잡는 단계'가 필요합니다. 꼭 붙잡아야 합니다. 이때 한번 이탈하면 다시 돌아오기가 힘듭니다. 이때 한번 신앙의 줄을 놓치고 나서 아직까지도 다시 붙잡지를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④주님께 꼭 붙잡히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까지 오르게 되면 신앙도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단계에 오르게 되면 신앙 생활은 아주 쉬워집니다. 자동차가 탄력이 붙으면 저절로 굴러가는 것처럼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손을 잡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아이가 힘이 빠지면 잡고 있던 어머니의 손을 놓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아이는 미아가 됩니다. 넘어지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이 아이가 안전하려면 어머니 큰손에 잡히는 일입니다. 그러면 내 힘이 아무리 떨어져도 놓칠 염려가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은 꼭 붙잡히는 생활입니다. 이쯤 되면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주님의 것이 됩니다. 그때는 주님이 나를 당신의 마음대로 주관을 하게 됩니다. 내가 주님과 동행하던 길에서 이탈을 하고 싶어도 그분이 용납을 하지 않습니다. 내가 주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자유롭고 싶어도 내 마음대로 되지를 않습니다. 이것이 붙잡히는 신앙 생활입니다. 이렇게 되면 신앙 생활은 힘이 있어집니다. 우리 모두가 이 단계까지 올라와야 합니다. 이때부터 비로소 '믿음'의 사람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이 경지에 오르게 되면 신앙 생활은 재미있어집니다. 응답의 역사! 체험의 역사! 신앙의 맛이 납니다. ⑤주안에 상주하는 단계입니다. 요15: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어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단계가 주안에 상주하는 단계입니다. 주석가들은 이 상태를 '유무 상통의 생활'이라고 합니다.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이 때가 가장 온전한 믿음의 상태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엡4:13절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라고 명령합니다. 이 정도가 되면 우리는 믿음의 승리자가 됩니다. 요일5:4절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할/
4. 본문에서 밝힌 믿음의 단계를 알아보고 우리 자신들의 신앙을 정검 해 보자!
오늘 에스겔이 본 환상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자신의 신앙생활을 측량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성전에서 흐르는 물을 측량하였듯이 오늘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측량해 보아야 합니다. /아멘!/
①발목은혜의 단계입니다(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발목에 물이 잠겼다는 것은 신앙의 초보단계를 의미합니다. 이 단계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바랄 수가 없습니다. 일단 교회에 나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발목신앙은 이제 교회에 나가 등록하고 두 발로 걸어가 드나들기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때를 유아기로 봅니다. '저 소리가 무슨 소리인가? 웬 놈의 죄만 회개하라고 하는지 아리송할 때'입니다. 아직 어떤 신앙적 체험이 없는 단계입니다. 하나님께 발목이 잡힌 발목신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일이면 예배만 드리고 돌아가는 출석신앙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아버지가 신앙이 좀 약했습니다. 그래서 예배 때마다 졸았습니다. 사람들 보기에 참 민망했습니다. 그래서 한 아이에게 옆에 앉았다가 아버지가 졸 때 깨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천 원씩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아이가 주일마다 아버지 곁에 앉아서 열심히 깨웠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조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버지가 다시 졸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옆에 앉아있는데도 졸고 있는 아버지를 깨우지 않고 그냥 앉아있습니다. 참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예배 후에 아이를 불러서 왜 깨우지 않느냐고 물으니까 할아버지가 깨우지 않으면 2천 원씩 준다고 해서 깨우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유아기 신앙이라 그렇습니다. ▶어느 장로님 아들 이야기입니다. 아버지 장로님에게 끌려 겨우 교회에만 다니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장로님이 외국에 출장가게 되었습니다.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아버지가 외국에 나가도 주일 예배에 빠지지 말아라' '알았어요' '월요일 날 내가 전화로 확인한다' '알았어요. 염려하지 마세요' 장로님이 월요일에 집으로 전화를 해서 아들과 통화를 합니다. '아들아! 어제 교회에 갔었니?' '네' '누가 대표 기도하셨니?' '늦게 가서 몰라요' '목사님이 무슨 설교 하셨어?' '졸아서 몰라요' '헌금 기도는 누가 했어?' '일찍 와서 몰라요' 이런 사람이 바로 발목 성도입니다. ▶절에서 과거 공부를 하는 학생이 한 명 있었습니다. 부잣집 아이였는데 공부는 안 하고 술만 마시러 다녔습니다. 하루는 대낮부터 술을 퍼마시고 얼큰하게 취하여 절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책 가지고 와!' 그래서 책을 갖다 주었습니다. 그는 또 소리를 질렀습니다. '너무 얇아!' 심부름하는 사람은 너무 수준이 낮은 책을 갖다 주었나 보다 생각하고 수준이 높은 두꺼운 책을 갖다 주었습니다. 그 부잣집 아들은 그 책을 받더니 말했습니다. '됐어' 그리고 머리에 베고 잠에 들었습니다. 발목의 단계는 성경을 보는 성경이 아닌 가지고 다니는 수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물은 점점 불어납니다. 신앙이 자란다는 의미입니다. 롬10: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신앙도 말씀을 먹으면 자라기 마련입니다.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냥 왔다 갔다만 한 것 같은데 하나님은 그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우리가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면 그물은 다시 밑으로 다 쏟아져 나와버립니다. 그러나 그물을 먹고 그 안에 콩나물을 보이지 않게 자라 훌륭한 영양가를 낼 수가 있는 것을 압니다. 중요한 것은 이 발목신앙이 시작되지 않으면 신앙은 자랄 수가 없습니다. 예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성경에 예수 앞에 나온 자 마다 다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중풍 병든 환자는 혼자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혼자서는 예수님께 올 수 없었습니다. 그때 그는 친구들의 도움을 얻어서 예수님께 왔습니다. 예수님은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그는 친구들의 도움을 얻어 예수님께 나왔더니 건강을 얻어 다시 걸을 수 있는 복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복을 받았습니까? 예수님께 나왔기 때문입니다. 발목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삭개오는 국경도시의 세관장입니다.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높은 관직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 적으로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오직 돈, 돈, 돈 합니다. 관직이 낮은 사람은 오직 높은 관직 합니다. 출세, 출세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위치에 있으면 도리어 외롭고 평화가 없습니다. 친구가 없습니다. 쓸쓸합니다. 진실한 친구가 없습니다. 삭개오가 그랬습니다. 세상 적으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만 너무나 인생이 고독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나왔던 것입니다. 나와서 보니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급한 나머지 길가에 있는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의 심정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펴셨습니다. 삭개오는 세상이 주지 않는 평화를 얻었습니다. 발목 은혜입니다. 발목 은혜는 예수님께 나오는 단계입니다. ▶12년 간 혈루증으로 고통받던 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의원에 갔습니다만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병은 더 악해졌습니다. 그때 그는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 뒤로 가서 그의 옷을 만졌습니다. 당장 병이 치료되었습니다. 그렇게도 그를 못 살게 하던 병이 깨끗이 치료 된 것입니다. 발목 은혜는 모든 신앙생활의 기본입니다. 모든 신앙생활의 출발입니다. 발목 은혜부터 받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자녀들에게 예배를 가르쳐야 합니다. 불신 남편에게 예배를 드리도록 권면하는 것이 진정으로 남편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일에 가족에게 예배부터 드리고 다른 일을 하도록 권면 하는 것이 제일 큰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②무릎 은혜의 단계입니다(4).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이제 물이 무릎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물이 무릎에 오르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지를 걷어올려야 합니다. 조금 깊이 들어간 상태를 말합니다. 지난번 홍수에 사람들이 바지를 걷어올리고 걸어가는 모습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이때부터는 내가 교회를 위해 바지를 걷어올리고 팔을 걷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 그런 단계입니다. 이제 약간 은혜도 체험한 단계입니다. 저 말씀은 어떤 말씀인가? 어렴풋이 깨달아 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무릎 단계는 어떤 단계인가? 기도하는 단계입니다. /할/ 우린 대게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특히 한국 사람의 습관을 단정하게 무릎꿇고 기도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들도 간절한 기도를 드릴 때는 무릎을 꿇고 기도한답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자기를 낮춘다는 뜻입니다. 잘못을 빌 때는 무릎을 꿇고 빕니다. 내 무릎이 은혜의 강물에 잠기면 기도의 무릎을 꿇게 됩니다. /믿/ 여러분,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가 축복이고, 기도가 응답입니다. 여러분, 시험 당하고, 고난 당하고 앞이 안 보이고 무엇이 안될 때에는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 기도의 무릎이 은혜의 강물에 잠기게 되기를 바랍니다. 선지자 예례미야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구속당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할/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다 들으십니다. 기도는 이론이 아닙니다. 실제입니다.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우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는 것은 무릎의 은혜를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욥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순전했고, 정직했으며, 하나님을 경외했고 악에서 떠난 자'였습니다. 그에게 10남매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큰 재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중의 권세 잡은 사단 마귀는 성도가 평안하고 복 받아 사는 것을 그냥 보고 넘기지 못 합니다. 하나님의 허락 하에 욥을 시험해 봅니다. 처음에는 그의 재산을 빼앗아 갔습니다. 10남매의 생명을 빼앗아 갔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신 자'라고 입술로 범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마귀는 하나님의 허락 하에 욥을 두 번째 시험을 주었는데 그의 온 몸에 병이 들게 했습니다. 온 몸에 성한 곳이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아내가 그 남편을 저주했습니다.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욥이 고통 당한 소식을 그의 친구들이 들었습니다. '빌닷, 소발, 엘리바스'입니다. 그들은 멀리서 욥을 보고 부르짖어 울었습니다. 7일간 한마디 말도 못했습니다. 욥이 너무 어처구니없는 고통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일주일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말했습니다. '나 같으면 하나님께 구하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은 크고 측량 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비를 땅에 보내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물을 밭에 보내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라고 그에게 권면해 주었습니다. 욥은 기도했습니다. 그 큰 고통 중에서도 기도했습니다. 낙타 무릎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의 인생에 회복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욥42:10절에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또 12절에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할/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릎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무릎의 은혜 체험이 없으면 이성적인 신앙생활 밖에 못 합니다. 머리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신앙생활입니다. 그것은 내 지식 이상 넘어서지 못합니다. 그것은 성령 충만의 역사를 이해 할 수도 없고 도리고 비판합니다. 방언 같은 은사를 비판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 무릎의 은혜를 받읍시다. 야곱의 결사적인 기도를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은 그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승리자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죽을병이든 히스기야의 기도를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셨고 15년 동안 더 살도록 생명을 연장 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라도 안정되게 지켜 주셨습니다. /할/
③허리 은혜의 단계입니다(4). '물이 허리에 오르고' 여러분, 우리 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이 어딘지 아십니까? 허리입니다. 허리는 우리 몸의 중심부분입니다. 허리가 온전하지 못하면 모든 일에 불편을 느낍니다. 그렇습니다. 허리는 중심부분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중심이 잡히는 시기가 옵니다. 그냥 성경이 옛날 얘기인 줄 알았는데 언젠가부터 성경이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연애편지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냥 옛날 역사책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그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달아 가게 됩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갑자기 가슴이 설레기 시작합니다. 눈물이 핑 돌며 감격이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지금 허리까지 물이 차 오르고 있는 단계입니다. /할/ 이때부터 온유와 겸손히 자라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봉사가 시작됩니다.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취임식 하려 의회에 갔을 때 늙은 의원 한 사람이 그를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구두 만드는 자의 아들이 대통령이 된 것이 못마땅해서 말 한 것입니다. 링컨씨 '내가 신고 있는 구두는 당신 아버지가 만든 것이요' 그때 링컨은 조금도 불쾌한 감정을 나타내지 않고 그에게 '내 아버지가 만든 구두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잘 수선해 드리겠습니다.' 대통령 취임하는 분에게 인격을 모독하는 말을 했지만 겸손히 받아들이는 분이 링컨이었습니다. 과연 그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의 겸손히 미국 대통령 43명 가운데 제일 존경받는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④가슴 은혜의 단계입니다. 물은 허리에 머물지 아니하고 또 불어납니다. 본문에 문자 적으로는 생략이 되었지만 당연히 거쳐야 될 단계가 있는데 바로 가슴까지 물이 차는 단계입니다. 가슴이 은혜의 물에 잠기지 아니하고 신앙생활의 연조만 깊어지다 보면 기쁨이 없고 감격이 없습니다. 자칫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신앙생활을 하기가 십상입니다. 이런 신앙은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신앙은 머리가 아닙니다. 가슴입니다. 찬송도 입으로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할/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우리의 가슴이 물에 잠기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하면서도 기쁨이 없고 말씀을 들으면서도 감격이 없고 은혜를 받았다고 하나 감사가 없는 신앙인들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입니다. 감사가 없는 기도는 자기 독백에 그치고 맙니다. 감격이 없는 찬송은 진실하지 못합니다. 감사는 가슴에서 나옵니다. 우리 모두 가슴의 은혜의 단계를 체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⑤초월적인 은혜를 받는 단계입니다(5).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은혜의 강물에서 헤엄쳐야 합니다. 온 몸이 잠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입만 은혜 받으면 말만 잘하게 됩니다. 눈이 은혜 받으면 좋은 것만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 인격 전체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설익은 은혜, 어설픈 은혜를 받은 사람은 교만에 넘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쉬면 은혜가 떠나가 버리고 다시 문제 속에 삽니다. 여기 '헤엄할 물'은 물이 많은 것을 말합니다. 걸을 정도의 물이 아닙니다. 수영하지 않으면 건너지 못할 정도의 물입니다. 영적으로 성령 충만을 말합니다. 초월적인 은혜입니다. 그때 내 인격을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인도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오직 교회입니다. 오직 십자가입니다. 성령의 열매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이때에 육체의 욕심을 버리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십일조 헌금을 드려도 아깝지 않습니다. 감사, 감사의 삶을 살아갑니다. 전도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실패를 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고 했습니다. 이 은혜를 받은 바울은 '내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땅에 살지만 하늘을 누리며 삽니다. /할/ 우리 모두 여기까지 가야 합니다. /아멘!/
5. 생수가 충만한 곳에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⑴생수가 강물을 이루고 좌우에 수목들이 무성했습니다(6-7). 왜 이처럼 나무가 많고 실과가 풍성하게 열렸을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강물이 좋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문화의 발생지는 모두가 강에 있습니다. 시1:3절에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할/ 성령운동이 일어나는 곳에는 재목처럼 기둥 같은 일꾼들이 많을 줄로 믿습니다. /아멘!/ ⑵낮은 데로 내려가면서 점점 바다를 이루었습니다(8). ⑶생수가 흘러가는 곳에 바다가 소생되고 해초와 고기가 살았습니다(9). ⑷어부들이 각처에 있고 고기가 심히 많았습니다(10). 초대교회가 성령 충만할 때에 폭발적 교회의 부흥이 일어난 것처럼 은혜 충만하고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많아질 때 교회는 크게 부흥됩니다. /믿/ ⑸실과가 많고 잎사귀가 약재료가 되었습니다(12). 성령의 열매 역사로 정치, 경제, 문화, 종교의 모든 병이 치료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⑹진펄과 개펄을 소성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됩니다(11). 여기서 말하는 진펄과, 개펄은 예수님의 냄새만 맡았을 뿐 은혜의 강물에 뛰어들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은혜에 강가에 구경만 했지 발을 들여놓지 않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히12:15절에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라' 소금 땅이 된다는 것은 아무 쓸모 없는 땅을 의미합니다. 염분이 있는 곳은 식물도 자라지 않습니다. 농사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는 복음을 거절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거절하고 성령의 생수를 거부하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그 땅과 나라가 망할 것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할/ 여러분, 은혜에 강물에 우리의 발목을, 무릎을, 허리를, 가슴을, 그리고 창일 하게 범람하는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혀 주의 큰 역사를 일으키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2010년 10월 10일 대예배 설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