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 5:18-21)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4. 1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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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 5:18-21)

 

  요즘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소리들이 요란하게 들려옵니다. 그 가운데 꼭 들어야 할 소리가 있는가 하면 듣지 말아야 할 소리도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소리가 있는가 하면 죽이는 소리도 있습니다. 희망을 주는 소리가 있는가 하면 절망에 빠뜨리는 소리도 있습니다. 잘못된 소리도 거짓된 소리도 너무 많습니다.
  저마다 의인인 듯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도 왜 세상은 이렇게 어두워만 가는 것입니까?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일찍이 이렇게 민족 앞에 회개하며 울었답니다. '저는 우리 민족 앞에 죄인이올시다. 저는 민족을 위해 한 일이 없습니다.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일본도, 이완용도 아닌 바로 나입니다.'
  지난 역사 속에 숱한 정치가나 지도자들이 망국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남에게서 찾는 무책임한 의인들 때문에 역사의 악순환을 우리를 지켜봐야 했습니다. 이제 모든 책임은 '나 때문이다'라고 하는 의인의 소리를 이 시대는 들고 싶어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또 믿음의 사람이 믿음의 사람답게 살려면 양심에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나를 잘 알려주는 소리는 양심에서 들려오는 소리입니다. 바울은 행23:1절에서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윤리와 도덕이 땅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이는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는데서 오는 비극입니다. 이제 개인이 살고  민족이 사는 길은 하나님이 주신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국민의 소리를 바로 들어야 바른 정치를 할 수 있습니다. 교육하는 사람들은 학생들의 소리를 바로 들어야 합니다. 사업가는 노동자의 소리를 바로 들어야 밝은 사회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 인들은 누구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두말 할 것도 없이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빛으로 살라'고 하신 그 음성을 들어야 하고, '소금이 되어 세상의 썩어짐을 막으라'는 음성도 들어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천하를 주고도 바꾸지 못할 한 영혼들의 생명을 구하라'는 그 음성을 듣고 예수 밖에 죽어 가는 영혼들을 예수 안으로 전도하는 삶이 바로 사명을 따라 사는 길이랍니다. /아멘!/
  그런데 우리가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할/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빛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의 올바른 철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8절에서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했습니다. 빛의 자녀들아 너희는 이렇게 살라는 생활의 실천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9절에서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빛의 열매를 맺으라고 했고, 10절에서는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고 했고, 14절에서는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고 했고, 15-16절에서는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하시면서 오늘 본문인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던질 중요한 세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뭡니까? 첫째는 '당신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했습니까?'하는 것이고, 둘째는 '당신은 성령을 받았습니까?'이고, 마지막 질문은 '당신은 성령으로 충만하십니까?'입니다. 중요한 질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거리에서 호두 과자를 사서 먹었는데, 그 호두 과자 속에 호도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사꾼에게 따졌더니 그 장사꾼이 하는 말이 걸작입니다. '여보! 붕어빵 속에 붕어 들어 있는 것 봤소?' 그래서 아무 말도 못했답니다.
  그렇습니다. 붕어빵 속에 붕어가 없어도 붕어빵이라고 부르고, 호두 과자 속에 호두가 없어도 호두 과자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안에 성령이 없으면 그건 절대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가 없습니다. 롬8:9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12년째 세계 최고의 갑부이자, 현대 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컴퓨터 분야에서 선두주자로 달리고 있는 '빌 게이츠'는 '생각의 속도'라는 책에서 '정보가 힘이다'고 했습니다. 정보가 있어야 돈도 벌고, 정보가 있어야 남보다 앞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힘과 능력은 '성령'입니다. /믿/ 그래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아멘!/ ◀제목 소개!▶

 

  예수께서 부활 후 승천하시면서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곧 성령이 임하실 것이니 기다리고 있다가 성령을 받으라' 이것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사도행전의 약속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을 말합니다. 예수 탄생의 사건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사건입니다. 육신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승천 후 영으로 다시 오순절 날을 기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종횡무진으로 사역하고 계십니다.
  요14:25-27절에 예수께서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가 오시면 너희를 가르치시고 내가 말한 모든 것을 알게 하고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성령은 그렇게 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성령은 역사하고 계십니다. 바람이 어디서 불어와 어디로 가는 것을 모르듯이 성령의 역사도 눈으로는 보이지도 알지도 느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성령은 지금도 우리 곁에 오셔서 아주 강하게 그러나 아주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활동하고 역사하고 계십니다.

 

  ①오늘도 주님은 우리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행19:2절에 보면 바울 사도가 3차 선교 여행 중에 에베소 교회에 들여 그들에게 단도직입적 적으로 묻기를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란 그들이 '믿고 난 후에 성령의 사역이 구체적으로 나타났느냐?'라는 질문입니다. '너희가 믿고 난 후에'가 더 정확한 말입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는 이 질문은 그 당시 제자들에게만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이 물음은 오늘 우리를 향하여 똑같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믿/
  ▶왜 이런 질문을 했습니까? 성령을 받아야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⑴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써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고(요16:13),
  ⑵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신앙을 고백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며(고전12:3),
  ⑶성령은 우리를 끝까지 보호해 주십니다(요14:16-18).
  아마도 바울은 그들에게 큰 기대를 가지고 던진 질문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대답은 바울을 실망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사실 이들이 몰라서 그런 대답을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이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었다는 것은 성령의 은혜 아니고는 고백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구원받은 제자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믿/
  다만 그들이 성령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미 성령도 모시고 있지만 성령의 충만함을 전혀 경험한바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는지는 자기 자신이 잘 알 수 있습니다. 성령에 부들임 바 되었다는 것은 자기가 봉사해 봄으로 알 수가 있습니다.
  자기의 신앙생활을 한번 정검 해 보세요, 기도 생활, 봉사 생활, 헌신 생활, 이 모든 신앙 행위가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그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입니다. /믿/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야 두말할 것이 없이 독생자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여 우리를 구원하신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려고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죽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들의 구원을 완성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또다시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의 선물입니다. /아멘!/
  성령은 우리에게 어머니와 같은 일을 하십니다. 우리를 신앙 안에서 나아서 길러서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일은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신앙을 자라게 하고, 깨닫게 하고, 믿게 하고, 감화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또 성령은 파워, 능력입니다. 그래서 약한 우리에게 힘이 되어 주시고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고 철저하게 성령을 의지하고 살면 성령 님은 절대로 우리를 배신하거나 배반하지 않습니다. 굳센 힘, 강한 힘을 주셔서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큰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란 이 질문은 우리에게 주님께서 성령에 대한 세 가지의 명령을 기억나게 해 줍니다.  
  ⑴요20:22절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 그들은 실의와 허탈과 좌절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부활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다른 말씀은 하시지 않고 '성령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의 능력만이 저들의 삶을 치료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믿/
  예수님은 저들에게 '왜 겁을 먹고 숨어 있느냐? 왜 벌벌 떨고 있느냐? 개척교회를 세우고 전도하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마디는 '성령을 받아라'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만이 실의에 빠진 제자들을 일으켜 세우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할/
  오늘날도 우리들의 마음속에 성령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거듭 났는지, 예수 안에서 새 생명을 가지고 있는지 전연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구원의 확신도 신앙의 기쁨도 천국의 의미도 아무것도 발견치 못하고 교회에 나오는 것이 무거운 부담이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성령의 체험을 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첫 번째 부탁한 것은 '성령을 받으라'였습니다. 성령을 받는 것이 그 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⑵그 다음 두 번째 부탁의 말씀은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있다(행1:8)'고 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영이 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주를 위해서 일할 수가 없습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구약선지자 스가랴의 입을 통해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6)'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비록 부족하고 가진 것이 없다 하더라도 성령의 능력이 나에게 강하게 임하기만 하면 그 능력 안에서 무엇이든지 우리는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하셨으며, 바울은 빌4: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능력을 가지고 산을 옮기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⑶그 다음 예수님이 성령에 대한 세 번째 명령은 '성령을 받되 시시하게 받지 말고 충만하게 받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인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할/ 몇 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②술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그 당시 에베소는 소아시아, 곧 지금의 터키 서부 지역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였습니다. 그곳에는 풍요의 여신이라고 불리는 아데미(Artemis)를 섬기는 신전이 있었습니다.
  아데미의 신전은 고대세계의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여겨질 만큼 매우 웅장했습니다. 그 당시 에베소 사람들은 수시로 이 신전에 올라가서, 아데미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자신들의 풍요로운 삶을 기원했습니다.
  그 당시의 이방 종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나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는데 그것은 제사를 지내는 자들이 제사 행위와 아울러서, 완전히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그들은 자기들이 믿는 신과 접촉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행2:4절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방언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새 술에 취한 것이라고 조롱했습니다. 그 당시의 이방 신전에서는 술에 취해 주정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이방인들에게는 술에 취하는 것이 하나의 종교 행위였습니다. 술에 취하고 나면, 그 뒤를 이어서 온갖 방탕한 일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왔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배경에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당부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성경은 성령 충만한 것과 술 취한 것과 서로 대조시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술 취하게 되면 소극적인 사람도 적극적으로 변합니다. 대담해지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겁이 없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소극적인 사람도 적극적인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믿/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기쁨이 샘솟습니다.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게 되고 그 사랑을 담대히 전하게 됩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조그마한 계집종 앞에서도 예수를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으나 그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나서는 자기를 죽이려고 서슬이 시퍼런 산헤드린 공의회 앞에서도 '우리가 너희 말 듣는 것과 하나님의 말을 듣는 것, 어느 것이 옳은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듣는 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대답하고 용기 있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술 취한 사람들을 보면 말이 많아집니다. 술기운에 가슴속에 넣어 두었던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들을 모두 쏟아 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예수 구원, 예수 천당, 예수 사랑, 예수 권능,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말하고 또 말하게 됩니다. /아멘!/ 우리가 여기까지 가야 합니다.
  또 술 취한 사람들을 보면 세상 근심 걱정 모두 잃어버리고 즐거워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세상 근심 걱정 모두 잃어버리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령의 충만함과 술 취함의 현상은 비슷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아주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술 취하는 것은 타락한 육의 본성의 지배를 받는 것이지만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은 새 영을 받은 새 사람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영의 지배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할/
  술 취한 것은 순간이지만 성령의 충만함은 영원한 것입니다. 술 취한 것은 술이 깨면 가슴속에 더 큰 후회와 죄책감을 가져다주지만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더욱 놀라운 기쁨과 감격으로 변화를 가져옵니다.
  술 취하게 하는 것은 인간을 망하게 하고 타락하게 하지만, 그러나 성령의 충만한 것은 우리에게 더 놀라고 풍성한 생명과 삶을 누리게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충만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을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아멘!/
  ▶어떤 사람이 간밤에 3차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먼저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셨습니다. 그러다가 배가 고파서 중국집으로 가서 짬뽕 한 그릇에 고량주를 또 마셨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 또 단란주점에 들러서 맥주를 마셨습니다. 소주는 25도, 고량주는 45도, 맥주는 7도입니다. 그러면 그가 마신 것이 도합 몇 도가 됩니까?
  복잡하게 계산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정답은 '졸도'입니다. 독한 술을 그렇듯 짬뽕 했으니까 몸이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 이성을 잃어버리고 개처럼 되는 것입니다.
  중국 '이태백'이가 술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다가 마지막에는 물에 비친 달을 잡는다고 물에 뛰어들어갔다가 아직까지도 안나오고 있습니다.
  의인 노아도 술을 먹고 실수를 했습니다. 자식들 앞에서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덥다고 옷을 훌렁 다 벗어버리고 드러누워 잠을 잤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노아는 자기 아들 함을 저주하는 일이 버려졌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이 문장 속에는 몇 가지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⑴이 문장은 명령문입니다. 성령 충만은 받아도 좋고 안 받아도 좋은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받아야 된다는 명령문입니다.
  ⑵계속적인 명령문입니다. 한 두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소멸됩니다. 자동차가 달리면 기름이 소멸되듯이, 성령도 일할 때 소멸됩니다. 그러니 자꾸 충전해야 합니다./믿/
  ⑶이 명령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내린 명령입니다. 왜 이런 명령을 내렸습니까?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항상 승리로운 믿음의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아야 죄를 끊을 수가 있고, 어떤 유혹에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먼저 자신이 기쁨이 충만합니다.
  또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원하는 뜻대로 살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하나님의 공급하는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성령을 받아야만 하는가?'를 생각해 보자!
  ⑴성령을 받아야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됩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내주 하시면서 제일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았음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여러분이 지금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아멘'하였다면 이미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주 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아무나 '아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입니다.
  고전12:3절에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이처럼 성령은 우리의 마음속에 계셔서 내 자신이 이미 천국 백성으로 구별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살고 있음을 증거 해 주시고 입으로 시인케 하여 주십니다.
 여러분은 어느 곳에서든지 자신의 신분이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담대히 시인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성령 받은 사람의 분명한 태도인 것입니다.
  ⑵성령을 받아야 새사람이 됩니다.
  성령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바로 죄로 인하여 죽은 인생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수양을 하고 반성을 하고 노력을 한다고 해서 새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새사람이란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과거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며 살았던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으나 예수님을 만난 후 비로소 하나님을 발견했고 그분이 나를 지으신 나의 아버지 되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성령도 우리 안에 계셔서 하나님께 복종케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게 하고 천국을 바라보며 소망 중에 기대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새 사람이 갖는 변화입니다.
  우리가 육체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일만 생기지만 우리가 성령에 이끌려 순종하여 살면 영원한 생명을 얻어 승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우리의 속 사람이 강건하여져서 날마다 새롭게, 그리고 구원의 기쁨을 안고 감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멘!/할/
  ⑶성령을 받아야 환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행7장에 초대 집사였던 스데반이 그리스도를 증거 하다가 폭도들에게 둘러싸여 돌에 맞아 순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소서'하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가 이처럼 원수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하늘 문이 열리며 하나님의 영광과 주님의 보좌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성령께서 우리에게 권능을 주셔서 죄와 사망과 병마의 권세를 이기게 하시고 또한 우리의 삶 가운데 다가오는 수많은 위기와 위험을 막아주시고 또한 견디게 하여 주십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실패하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들이 주를 믿고 성령을 받았다면 그렇게 자신의 목숨을 버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늘 기도로 무장하여 권능을 받고 모든 다가오는 악한 세력을 물리쳐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사역 몇 가지만 알아봅시다(요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여기 '책망한다'는 말은 헬라어로 '밝히 드러내다', '폭로하다'라는 말로 성령께서 인간들로 하여금 스스로 죄를 깨닫게 하시며 그 죄를 밝히 드러내어 꾸짖으시고 바로잡아 주심을 의미합니다.
  ⑴죄에 대하여 책망하십니다.
  요16:9절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죄라는 말은 헬라어로 '빗나감', '악행', '위법' 등의 뜻입니다. 또 죄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 신앙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죄에 대하여 성령은 책망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을 죄로 인정하려 하지 않으나 이것은 오늘 가장 큰 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⑵성령은 장래 일을 알리십니다.
  요16:13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은 믿음의 본질을 이해하게 하는 지식의 근원이 됩니다. 성령은 성도가 생각지도, 깨닫지도 못한 것을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갈 길을 인도하십니다.
  ⑶성령은 우리를 잘되게 해 주십니다.
  슥4:6절에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 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베드로를 보세요! 그가 성령의 충만한 사람이 되었을 때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그가 성령이 임하지 않을 때는 비겁한 사람, 배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⑷성령은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⑸성령을 받으면 은사가 나타납니다.
  값없이 주시는 이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신령한 은사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고전12:8-10절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병 고침의 은사, 능력 행함의 은사, 예언의 은사, 영 분별의 은사, 방언의 은사, 통역의 은사' 등 9가지입니다. 성령론의 대가인 '토레이' 박사는 '성령 충만을 받으면 하늘로써 오는 놀라운 능력(힘)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⑹성령을 모독하면 사함 받을 길이 없습니다.
  마12:31-32절 '각종 죄와 모독은 사람들에게 용서가 되나 성령을 거스르는 모독은 사람들에게 용서될 수 없느니라 또 누구든지 인자를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받을 수 있어도 누구든지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받을 수 없느니라'
  ⑺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성령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누가 그리스도의 사람입니까?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자가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아무리 윤리적으로 완벽하게 살고 도덕적으로 착하게 산다 할지라도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비록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성령의 명칭을 살펴보면 '거룩한 영, 하나님의 영, 진리의 영, 그리스도의 영, 중재자, 위로자, 약속의 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⑻성령은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할/ 고전12:3절에 '성령이 아니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은 알게 하시고 고백하게 하고 만나게 하고 믿게 하시는 영이십니다. 베드로가 '주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을 때 주님은 '이것은 네가 안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알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하나님을 연구하지만 하나님은 연구해서 만나고 알고 발견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영적인 세계이고 은혜의 세계입니다. 그 세계는 은혜를 입고 성령의 도움으로 발견하고 느끼고 체험하게 되는 세계입니다. /아멘!/
  ⑼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성령의 조명이 없이는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⑽신앙의 성장도, 교회의 성장도 성령의 능력으로 되어집니다.
  교회의 부흥은 목사가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성장의 영이시고 선교의 영이십니다. 사도행전은 선교의 주체는 사도들이 아니고 성령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성령 행전'이라고도 부릅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놀라운 변화가 내 안에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전도하고 싶은 열정이 솟아나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선교하게 하시는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장하는 교회는 모두 성령을 강조하며 성령이 역사하시는 교회들입니다. /할/

 

  ▶성령 받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⑴성령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⑵회개한 심령 속에 성령은 임하십니다.
  ⑶주의 종에게 안수 받을 때, 성령이 임합니다.
  ⑷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다가 성령이 임합니다.
  눅11:13절에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기도하다가 불같은 성령이 임하는 체험이 임합니다. /믿/
  ▶기도에는 세 가지 힘이 있습니다.
  ㈀놀라운 위안의 힘입니다.
  사람들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고난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삽니다. 병으로 고생하는 자, 사업에 실패한 자, 이별의 아픔을 겪은 자, 죄악으로 괴로워하는 자, 절망 속에서 신음하는 자, 기타 여러 가지로 저마다 고난과 슬픔이 있기 마련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따스한 위로를 원합니다. 그런데 기도는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기도는 어머니의 따뜻한 음성과 같고 부드러운 손길과 같습니다. 우리 주님은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하십니다. 
  ㈁놀라운 영감의 힘을 줍니다.
  기도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와 정열을 한데 묶어 어떤 소원을 이루게 해 달라고 간절히 염원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정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한 목표와 한 초점에 집중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내부에는 놀라운 영역이 있습니다. 인간 속에는 위대한 천재가 잠자고 있습니다. 무한한 영적 에너지가 깃들어 있습니다. 이 잠재력을 끄집어내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영역을 끄집어내는 것이 기도의 힘입니다. 
  ㈂기도는 신앙의 힘입니다.
  신앙은 기적도 낳고 훈련은 천재를 만듭니다. 세상의 신앙의 힘처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신앙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기도에서 옵니다. 믿음은 산을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신앙은 산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움직이고 역사도 움직입니다. 이런 귀한 힘이 있기에 사도바울은 항상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아멘!/

 

  ③우리는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아야 합니다(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 성령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능력과 은사를 주시고, 지혜도 주시고, 풍성한 열매도 거두게 하십니다. 거기에다가 모든 시험을 능히 이길 수 있는 믿음과 힘을 주십니다. 이처럼 성령님이 우리에게 행하시는 일은 모두 좋은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일은 대단히 손해 보는 일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우리 때문에 근심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믿음의 성도에게 많은 축복들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속에 성령님을 모셨음에도 불구하고 축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제목에서 나와 있듯이 '성령을 근심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믿/

 

  ▶어떤 일들이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가?
  ⑴믿기 이전의 불신자의 죄의 상태로 돌아가는 일이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성경은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과 같다.'라고 말합니다.
  ⑵믿음으로 행하지 않고 육신의 욕심을 따라 사는 것을 보시고 근심하십니다.
  ⑶경건생활의 게으름으로 인하여서 성령님은 근심하십니다.
  ⑶우리의 마음이 세속화가 될 때에 성령 님은 근심하시게 됩니다. 너무나 많은 세상 적인 재미에 빠질 때에 성령 님은 근심하시게 됩니다. 주일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재미보다, 저수지에 앉아서 낚시하는 것에 더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성령 님을 근심하게 만드는 일이 됩니다. /믿/

 

  ▶어떻게 인을 쳤습니까?
  ⑴성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을 쳤습니다(창조의 인).
  계14:1절에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그 이마에 새겨져 있다'고 했습니다. 이는 성부 하나님의 창조의 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 사람의 창조를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적인 인을 받은 것입니다. /아멘!/
  ⑵어린양 예수의 이름으로 인을 쳤습니다(구속의 인).
  계14:1절은 다시 말하기를 '어린양의 이름이 그 이마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인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가 죄로 인하여 타락하여 잃어버려졌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그를 다시 사서 하나님의 소유인 것을 확인시킨 것입니다. /할/
  ⑶성령의 인을 쳤습니다(성화와 영화의 인).
  엡1:13절에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성령으로 인을 쳤다'는 말은 '성령께서 감동하사 신앙 고백을 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게 하시고, 그를 증거케 하심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하면 인을 받은 성령을 내 안에 영원히 모실 수 있을까요?
  ⑴순결해야 합니다.
  성령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나의 마음에 모시기는 했으나 한 쪽에서는 죄가 부글거리면 성령이 내 안에 안주하시는 것이 아니라 근심하고 괴로워하십니다. /할/
  ⑵화평해야 합니다.
  성령이 거하시는 곳은 늘 화평합니다. 부모님을 주안에서 평안히 모시는 가정, 형제간에 우애가 있는 가정, 예절을 지키는 가정, 이 가정은 바로 화평의 가정이며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축복의 가정입니다. /할/
  ⑶우리 육신의 성전을 '더럽히지'말아야 합니다.
  '더럽힘'이란 '파괴한다. 부패케 한다'는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더러워지니 하나님께서 파괴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성령을 모시고 사는 성도들이 더러워지고 부패하면 하나님께서 벌하십니다. 질병으로 벌하시고, 물질로 벌하시고, 고난과 고통으로 벌하십니다. 심지어 죽음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그나티우스'는 '하나님의 집, 성전을 더럽히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⑷구별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여기 '거룩'이란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세상사람들과는 우리는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행복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할/

 

  ④성령의 충만한 삶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⑴신령한 노래 속에 살게 됩니다(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여러분, 성령 충만한 삶의 첫 번째 특징이 무엇입니까?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아닙니다. 예언하는 능력도 아닙니다. 천사의 말과 같은 방언도 아닙니다. 단순합니다. 마음 속에 새 노래, 신령한 노래, 찬송으로 충만한 마음이 바로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술 취한 사람을 보면 어떻습니까? 노래방에 가서 한 곡조 뽑습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한 사람도 노래를 부릅니다. 어떤 노래를 부릅니까? '사랑은 눈물의 씨앗' 이런 노래가 아니라 새 노래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신령한 노래를 부릅니다. 성령 충만한 마음 속에는 언제나 하나님을 찬미하는 노래 소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할/
  ⑵감사하며 살게 됩니다(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⑶섬기는 자로 살게 됩니다(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빌2:3절에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갈5:13절에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소와 사자가 서로를 죽도록 사랑하다가 결혼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 변치 않기로 굳게 맹세를 했습니다. 소는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풀을 날마다 사자에게 대접했습니다. 육식동물인 사자는 싫었지만 참았습니다. 사자도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살코기를 날마다 소에게 대접했습니다. 초식동물인 소도 괴로웠지만 참았습니다. 하지만 참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결국 소와 사자는 크게 다투고 끝내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헤어지면서 서로에게 한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난 최선을 다 했어!'
  '나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최선, 상대방의 상태를 헤아리지 못하는 최선' 그 최선은 최선일수록 최악을 낳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상대를 대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 자기 중심적인 이기적인 최선도 문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대방을 헤아리는 아름다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멘!/
  말씀의 결론도 '성령 충만을 받자'입니다. /할/ (2010년 10월 4일 대예배 설교)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송수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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