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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벗고,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은 모세! (출3:5/4:1-4,10-20)
구약의 대표적인 두 인물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입니다. 아브라함은 오실 예수님의 계시를 받은 최초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씨가 하늘의 별 같고, 대적의 문을 얻으며, 천하만민이 복을 얻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씨가 예수님이 십자가의 구속의 피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 씨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런 축복을 받을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창세기는 아브라함의 믿음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런데 출애굽기는 모세의 생애를 일관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위대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적인 인물이기에 위대합니다. /할/ 사실 구약의 모든 인물들은 예수를 가르쳐 주는 교사들입니다. 만약에 예수를 볼 수 없다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사업 잘하는 사람을 통해서 사업을 배우고, 정치 잘하는 사람을 통해서 정치를 배우고, 과학을 많이 연구한 사람을 통해서 과학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의 인물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은 그 사람들을 통해서 예수를 배워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모세는 예수를 보여주는 면에서 구약의 대표입니다. /아멘!/
①이스라엘의 위대한 영도자인 모세를 연구해 보자! 모세는 120세를 일기로 그의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스릴과, 감동과, 신비에 싸인 찬란한 업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뿐만 아니라 불가사의한 신화적 존재로 역사는 그를 추앙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일생을 크게 3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40세까지를 1기, 80세까지를 2기, 120세까지를 3기로 해서 40세 단위로 그의 생애의 구분이 됩니다. 출생으로부터 40세까지는 바로의 궁궐에서 학문을 닦고 인격을 성장시킨 청소년기라고 말한다면, 40세부터 80세까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연단을 받았으며, 80세부터 120세까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붙들려 하나님의 일을 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한 남자아이로 태어났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은 바로의 치하에서 노예생활을 했기에 모세는 노예로 태어난 아이입니다. 당시에 바로 왕은 노예의 수가 증가됨으로 위협을 느끼고 노예 중에서 출생하는 모든 남자아이는 전부 죽이도록 했습니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 용모가 준수하고, 그 눈빛이 비범하고 남다른지라 부모가 차마 이 아이를 산파의 손에 죽일 수 없어서 3개월 동안을 숨겼으나 이 아이를 더 이상 감출 수 없어 갈대로 상자를 만들어 나일강에 띄웁니다. 그때 마침 바로의 공주가 나일강에 목욕하러 왔다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건져다가 바로의 궁궐에서 양자를 삼아 기릅니다. 모세는 공주의 아들이 되어 당시 전 세계 문화의 중심지인 애굽의 문화를 배우게 됩니다. 무예를 배우고, 지성을 배우며, 궁궐의 지식을 배우면서 미래에 바로의 뒤를 이어갈 위대한 왕자로서의 교육을 받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 아래 바로의 궁궐 속에서 성장해 갔습니다. 그가 나일강에서 건짐 받을 때 어머니가 보모로 바로의 궁궐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모세는 어머니의 젖을 먹으면서 신앙교육을 받습니다. '아이야, 너는 히브리인의 피를 받은 사람이다. 네가 호화로운 궁궐에서 자랄지라도 너는 언제나 네 백성을 기억하라' 어머니의 무언의 기도를 받고 자란 모세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심이 그 속에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밖에 나가서 자기 백성들이 노예생활 하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탄식하다가 애굽 인이 자기 백성을 때리는 것을 봤습니다. 그것을 보고 분노한 모세는 나가서 애굽 인을 쳐죽여 모래 가운데 묻고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것이 탄로되어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쳐서 그때부터 망명객의 삶이 시작됩니다. 그의 나이 40세에 미디안에 가서 이드로라는 사람의 대릴 사위가 되어 40년 풍운아의 망명객의 생활이 시작됩니다. 그는 거기에서 양치는 목동이 되었습니다. 미디안 광야 생활에 하늘을 지붕 삼고 떠도는 도망자의 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늘을 보니 눈물이요, 바람 소리 스쳐가니 자기 백성들의 한숨 소리요, 양떼를 보니 자기 백성들의 초라한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어느 듯 40년 흘러 모세의 나이 80세 노년이 되던 어느 날 석양 노을이 산천을 붉게 물들이는 황혼 시간에 모세는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 이상한 광경을 보려고 돌이켜 가는 모세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모세야 모세야 너는 이리 가까이 하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모세는 신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두려워 엎드렸습니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리니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딱 하나였습니다. '모세야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신을 벗어야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을 수 있습니다. 사실 모세는 광야 40년을 통해서 발에서 신을 벗는 일을 했습니다. 신을 벗는다는 말은 곧 자기를 포기한다는 말이요, 자기를 겸손하게 낮춘다는 말이요, 자기 모든 소유를 포기한다는 말입니다.
②'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⑴거룩한 사람이 되라! 지금까지 모세는 바로의 궁궐에서 위대한 학문을 배웠습니다. 지식을 배웠습니다. 무술을 닦았습니다. 그는 굉장한 자존 감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인물이 뛰어났습니다. 그의 가슴속에는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심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너는 사람으로서 사람은 되었다. 그러나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그렇습니다.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신을 벗어야 합니다. /할/ 여러분, 높은 학문을 가지고 있습니까? 인물이 잘났습니까? 사회적인 명예가 있습니까? 지위가 있습니까? 분명한 인생관을 가지고 있습니까?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누구의 사람이 되려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고 믿는 것입니다. /믿/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신을 신으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합니다. 가고 싶은 대로 갑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자기 신을 신기 시작하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신을 신지 않고 있을 때는 말을 잘 듣는데 신을 신으면 그때부터는 제 고집대로 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신을 벗으라는 말은 자기 고집과, 마음과, 인간의 모든 주장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기라는 신을 신은 지 40년, 그것을 벗는데 40년이 걸렸습니다. 바로의 궁궐에서 자기 신을 신고 자기를 세우는데 40년이 걸렸고 이것을 벗는데 40년이 걸렸습니다. 일반적으로 교육학에서 말하기를 '배운 것을 버리기까지는 그만큼의 세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형성된 성격과 고집과 인간성을 버리는데 그만한 햇수가 걸린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기가 능히 자기 백성들을 지도할 인물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백성들이 모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인도해라' 지금까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백성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야, 네 백성이 아니고 내 백성이다.'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자기'라는 것을 포기할 때까지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할/ 모세는 하나님께서 신을 벗으라는 명령을 내릴 때 거기에서 자기 자신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곧 사라지지 않는 불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모세는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정의감과, 의협심과, 애국심으로 불이 타올랐습니다. 그런데 그 타오른 불로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애굽인을 죽이는 살인자가 된 이후에 그는 모든 타던 불이 다 꺼진 채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 40년 동안 잿더미로 거기 있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열심을 내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런데 열심을 내다가 그 불이 꺼질 때가 있습니다. 언제 꺼지느냐? 누가 말 한마디하면 꺼지고, 목사가 안 알아준다고 꺼지고, 그럽니다. 모세도 자기가 열심을 냈습니다. 그런데 살인자가 된 이후에 그 불이 꺼지고 미디안 광야에서 잿더미가 되어버린 그에게 하나님께서 사라지지 않는 불을 주십니다. /할/ ⑵거룩한 일을 하라! '신을 벗으라'는 말은 지금까지 네가 하던 일을 포기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이력서라는 말을 한문으로 풀이하면 밟을 이(履), 걸어올 력(曆), 글 서(書)입니다. 그래서 '지나오면서 밟아온 내력을 쓴 것'이 이력서입니다. 자기 발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왔는가 이것이 바로 이력서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는 말은 이력서를 다시 쓰라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네가 쓴 이력서, 네 발로 걸어온 생애를 다 포기하고 새로운 이력서를 쓰라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주님의 은혜로 네 인생을 새 출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됩니다. 지금까지 내 이력서를 썼다고 한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이력서를 써야 합니다. ▶슈바이처 박사가 20살 되던 때, 그가 대학 졸업 논문을 쓰던 때였습니다. 부활절 다음날 아침 밖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아침 성경을 읽으면서 명상하는 시간에 이런 감동이 왔습니다. '내가 30세까지는 나를 위해서, 30세 이후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리라' 그는 30세까지 자기를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신학 박사, 철학 박사, 음악 박사 3개의 박사 학위를 얻었으며 유명한 대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30세가 되던 때에 다시 의과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해서 의학 박사가 됩니다. 그리고 40세가 되던 해에 아프리카로 건너갑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내 인생의 행복한 날을 나만을 위해서 살 수 없다.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나눠야 한다' 결국 그는 아프리카에서 의사로서 그의 생애를 마쳤던 것입니다. ▶영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늘 국회에서 짜증내고 스트레스 받으면서 회의에 임하는 하원의원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인상을 쓰면서 집으로 퇴근하면서 골목길을 지나오는데 청소부가 골목길을 노래하면서 기쁘게 쓸고 있습니다. '형제여, 그렇게 기분이 좋습니까?' '예, 너무 너무 좋습니다.' '청소하면서 뭐가 그렇게 좋은 일이 있던가요.' '하나님이 창조한 이 아름다운 세계의 지구 한 모퉁이를 정화하고 있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때문에 너무 좋습니다.' 하원의원이 그 말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 그렇다' 그러면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찾아낸 것입니다. /할/ ⑶주님과 같이 살라! 신을 신으면 함께 못삽니다. 신을 벗었을 때만 함께 사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가족들이 함께 사는 시간은 신 벗고 집안에 들어왔을 때만 사는 것이지 정장하고 신 신고 나서면 이미 헤어진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은 '너와 같이 살자'는 말입니다. 신 벗고 집 안에 들어올 때만 한 가족입니다. 신 벗고 누웠을 때만 안식입니다. 신 벗고 함께 있을 때만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가셨는데 마르다는 밖에서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마리아는 신발 벗고 예수님 발아래 앉아 말씀을 들으면서 은혜를 받고 있었습니다. 마르다가 한참 일하다 보니 동생이 안보입니다. 문을 열고 보니 마리아가 예수님 발 앞에 있습니다. 그래 예수님보고 '예수님, 내 동생을 명하여 나를 좀 도와주라 하소서' 할 때 예수님께서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나 한가지만으로 족하니라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신발 벗고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이것이 함께 사는 경지입니다. /할/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중요한 원리를 알아야 됩니다. 뭘 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을 벗으라'는 말은 '나와 같이 살자'는 말입니다. 천국은 어떤 곳이냐? 신 벗어야 들어가는 곳입니다. 신 벗어야 안방에 들어갑니다. 신 벗어야 하나님 품안에 안깁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그리고 출3:8절에 '너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라고 말합니다. 신 벗어야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수5:15절에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데 가장 큰 성이 여리고 성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군대장관 사자를 보내서 여호수아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그리고 여리고 성을 들어가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자기를 포기하고 썩어져 가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살라는 것입니다. /할/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야 할 강이 셋이 있습니다. 첫째는 유프라테스강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건너간 강이었습니다. 둘째는 이스라엘 민족이 건너간 홍해 강입니다. 이 강은 애굽에서 건너야 광야에 갈 수 있는 강입니다. 셋째는 광야를 건너야 할 강이 있습니다. 이 강은 요단강입니다. 유프라테스강은 아브라함이 건너서 이스라엘 민족의 선민의 약속을 받은 강이요, 홍해 강은 노예를 청산하고, 하나님의 불신을 청산하고 건너간 세례의 강입니다. 요단강은 완전히 자기 자신을 죽이고 건너가는 별세의 강입니다. 이 강을 건널 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약속하십니다. /아멘!/ 세 종류가 신자가 있습니다. 애굽 신자, 광야 신자, 가나안 신자가 있습니다. 애굽 신자는 아직도 세상에 있는 사람들, 하나님을 아직 온전히 섬기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노예로서 종살이하는 것처럼 세상의 종노릇하고 있으면서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광야 신자는 세상에서 하나님 편으로 나오기는 나왔지만 육신의 소욕을 버리지 못하고 세상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와서는 '주여'하고 나가면서는 '나여' 하는 사람들입니다. 가나안 신자는 나도 세상도 간 곳 없고 오직 예수로 만족하는 신령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발에서 신을 벗은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벗습니까? 날마다 기도하면서 벗어내야 합니다. 말씀으로 벗어내야 합니다.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으므로 벗어내야 합니다. /아멘!/
③하나님의 사명 앞에 변명하는 모세를 보세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처음으로 부르셔서 일을 시작할 때 그는 계속해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성을 가지고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못합니다.' 변명이나 핑계를 계속 다섯 번이나 했습니다. 오늘 모세의 핑계가 우리의 핑계입니다. 모세의 핑계와 변명이 무엇인가? ⑴첫 번째 변명은 출3:11절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데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모세의 첫 번째 변명은 '내가 누구인데, 내가 뭔데, 그런 일을 합니까?'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하나님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뭐가 된 것처럼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자신도 모르게 교만해 질 수 있습니다. 이 때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자기 자신만 바라본 나머지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열등의식에 빠져 일을 못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딤전1:15-16절에 보면, 하나님은 죄인의 괴수도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사랑의 표본을 삼으시기도 하시며, 마3:9절에,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고, 세상의 교만한 자를 낮추시되 티끌과 먼지 같게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자신을 바라보지 마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할/
▶모세의 이런 변명에 대해서 하나님이 주신 대답이 무엇입니까?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그렇습니다. 내가 누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 아니냐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고, 그와 반대로 아무리 무능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기적의 주인공이 됩니다. /믿/ ⑵모세의 두 번째 변명은 출3:13절입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모세는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몰라서 맡겨진 일을 못하겠다고 하나님께 변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복음을 전할 때,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십니다. /믿/ 눅12:11-12절 '사람이 너희를 회당과 정사 잡은 이와 권세 있는 이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 것을 염려치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할/ ⑶모세의 세 번째 변명이 오늘 본문 1절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모세의 3번째 변명은 '그들이 내 말을 믿지도, 듣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증표를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는 지팡이를 던질 때 지팡이가 변하여 뱀이 되고 다시 꼬리를 집을 때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 증표는 손을 품에 넣을 때 문둥병이 발하여 눈같이 희게 되었고 다시 손을 품에 넣을 때 손이 깨끗해 졌습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전도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사단은 성도들의 입을 막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입을 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이러한 변명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출4:31절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보시고 그 고난을 감찰하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 /할/ 모세는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부딪쳐 보았을 때, 백성은 모세의 말을 믿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십니다. 딤후4:2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듣느냐 안 듣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고 우리가 할 일은 전하는 일입니다. 듣든지 안 듣든지 간에 씨를 뿌리는 것만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싹이 나게 하시고 자라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그러므로 모세처럼 우리도 '듣지 않을 것이다,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복음의 입을 닫아버리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까지 막아버리게 되는 결과입니다. ⑷네 번째 변명이 10절입니다.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모세의 4번째 변명은 한 마디로 '저는 말 할 줄을 모른다.'는 변명입니다. 지금 모세는 하나님 앞에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행7:22절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신32:2절에서 모세는 스스로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 비로다' ⑸사실 모세는 말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일을 하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절에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대신 갈 사람을 찾습니다. 계속 모세는 다섯 번이나 '나는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능력이 없습니다. 나에게는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자신에 대해서 부정하고 있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14절에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고' 노를 발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진노하셨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내가 죄를 지을 때만 진노하고, 악한 짓 할 때만 진노하는 줄' 알았는데, '나는 못합니다.'하고 핑계 대고 변명할 때도 하나님이 진노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믿/
④모세의 변명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무엇입니까? 11절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그렇습니다. 입을 지으신 자가 말을 못 주시겠습니까? 말을 주시는 분이 그 말을 지혜롭게 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믿/ 그 당시 모세의 변명이나 오늘날 우리들의 변명이나 비슷합니다. 오늘날 많은 신앙인 들이 다른 이야기는 잘 합니다. 세속적인 이야기를 하면 혼자서 대화의 주도권을 잡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전도하는 일을 시키면 '말을 못한다'고 도망을 칩니다. 탤런트나 영화배우 이야기, TV 연속극 이야기, 스포츠 이야기 등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잘하면서 '기도는 막히고, 전도는 아예 생각'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전도가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보십니다. ▶전도할 때 능력도 주십니다. 마10:7-8절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막16:17-18절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일꾼들은 보상도 있습니다. 마10:10절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주인을 위해서 일하는 일꾼은 삯, 보상을 받습니다. 딤전5:18절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일하는 사람은 일한 것만큼 보수를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일하는 소를 굶겨서 죽이겠습니까? 열심히 일하는 소는 일하게 하고, 빈둥빈둥 놀고 먹는 소는 잡아서 잔치에 사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더해 주십니다(마6:33). ▶이 땅에서 백 배의 축복을 받고 내세에도 영생을 얻게' 됩니다(막10:29-30). /할/
⑤하나님이 모세에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처음 창조하실 때에 없는 것을 있게 하셨습니다. 이게 처음 창조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고 없는 것을 있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없는 것을 가지고는 하나님이 일하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이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할/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시는 것은 '네 손에 있는 것이 뭐냐, 네게 있는 것이 뭐냐, 네 마음속에 있는 것이 뭐냐' 이렇게 물으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묻고 계십니다. '네게 있는 게 뭐냐?'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오너라' 그러십니다. '네게 있는 것이 뭐냐?' '예, 병입니다.' '그 병을 가지고 오라 내가 그 병을 통해서 일하리라'고 하십니다. '네게 있는 것이 뭐냐?' '예, 문제이옵니다.' '그 문제를 가지고 오라 문제가 없는 사람은 내가 일할 수가 없다. 문제를 가진 자에게 내가 일을 하느니라' /할/ 여러분,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괴로움이 있습니까? 질병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못한다고 하는 그 변명하는 모세를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물으시는 질문이 '네게 있는 것이 뭐냐' 이렇게 물으십니다. 하나님은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에게 '하나님도 할 수 없다.'고 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있는 자에게 있게 하시고 또 하나님은 이제 내게 있는 것을 찾으셔서 일을 하시고 기적을 주십니다. /믿/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기에게 있는 것을 찾아내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나를 믿지 않는 것은 이게 바로 불신입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나 자신도 믿어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고 또 나를 통해서 하나님은 계획하신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아멘!/ 그런데 우리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언제나 무능한 존재라고 탄식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우리 모두 자신감을 갖으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을 성공적인 승리자로 만드는 것은 자신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무시할지라도 내가, 나를 무시하면 안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좋아하지 않을지라도 나만이라도 나를 좋아해야 됩니다. 이 세상 사람 모두가 다 나를 사랑하지 않을지라도 나만은 나를 사랑해야 됩니다. 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나를 가장 사랑해야 할 자가 누구입니까? 나 자신입니다. /아멘!/ 하나님은 모세에게 남아 있는 것을 찾고 있습니다. 성경 속에 보면 하나님은 큰 일을 행하실 때마다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아무것도 없는 자에게는 일하실 수 없습니다. 과거와 미래의 것으로도 하지 않고 현재 있는 것으로 일하십니다. ▶요6장의 오병이어의 기적은 한 어린아이의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내어놓을 때, 우리 주님이 그것을 받으시고 축사하시고 떼어놓을 때, 기 만 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를 남겼습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아 백성들이 굶주림에 있을 때, 사르밧 과부는 그가 가지고 있는 밀가루 한 움큼과 기름 한 방울을 엘리야에게 받쳤더니 그 가뭄이 다 가도록 가루 통에 밀가루가 넘쳤으며 기름병에 기름이 넘쳤습니다. ▶록 펠러가 처음 월급 2달러를 주급으로 받았습니다. 너무 너무 가난한 집에 태어난 록 펠러가 그 돈을 받고 감사하고 있는데 주께서 묻습니다. '록 펠러야, 네 손에 있는 것이 뭐냐?' '예, 2달러입니다.' '십일조를 바쳐라' 드디어 록 펠러는 20센트 십일조를 처음으로 바쳤습니다. 그는 훗날 100만 달러의 십일조를 바치면서 '내가 주급 20센티를 바칠 때의 그 감격을 하나님이 받으시고 이 축복을 내게 주셨노라'고 간증했습니다. /할/ 하나님은 지금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을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많이 벌어서 가져오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일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우리들에게 내일 무엇을 가지고 오라고도 안 하십니다. 현재 있는 건강가지고, 현재 가지고 있는 사랑가지고, 믿음가지고, 은사가지고, 기술, 재능가지고 와서 일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현재 나에게 있는 것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현재 남아 있는 것을 헤아리는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없어진 과거만을 생각하면서 원망하고 자신에게 없는 것만 생각하면서 탄식하며 세월을 보냅니다. '모세야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창하게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지금 우리들의 손으로, 입으로, 발로 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하십니다. 모세를 40년간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면서 가장 익숙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모세 손에 들려진 지팡이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 지팡이로 기적을 이루시고자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여기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윗을 골리앗을 이길 때에 칼과 창으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양을 칠 때 사용하던 지팡이와 물매 돌만 가지고 거인 골리앗을 향해 갔습니다. 이 모습을 본 골리앗이 '네가 나를 개로 알고 막대기로 나왔느냐?' 비웃고 저주하며 '내가 네 시체를 새와 들짐승들에게 주겠다'고 외쳤습니다. 이때 다윗은 큰소리로 '너는 칼과 창을 가지고 나왔지만 나는 전능하신 여호와,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왔다'고 하면서 달려가 주머니에서 돌 하나를 끄집어내어 물매로 그에게 던졌더니 그 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아 꽂히고 그는 땅에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다윗의 승리는 가지고 있던 물매 돌을 던진 것입니다. 사실 그것이 얼마나 힘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뒤에 능력을 베푸시는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⑥모세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양치는 지팡이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손에 들려질 때,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어집니다. 20절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던 지팡이가 이제 권능의 지팡이,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세와 같이 주저함과 두려움으로 임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위대한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를 통해서 인류가 구원되고,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병자가 일어나고, 사업이 회복되어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얼마든지 기적은 일어납니다. 지금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물건을 드리면 물질의 복이 옵니다. 몸과 시간을 드리면 건강을 얻습니다. 재능 바치고, 정성 바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면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입술을 열어 복음을 전하면 저 하늘나라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아멘!/ ▶이제 모세는 이 지팡이로 기적을 일으킵니다. 모세는 이 지팡이를 들고 당당하게 애굽의 바로 앞에 섰습니다. 그의 지팡이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지팡이가 큰 독사로 변합니다. 나일강이 피로 변합니다. 개구리 떼로, 파리 떼로, 독종으로, 우박으로, 메뚜기 떼로 온통 애굽의 신들을 지팡이 하나로 재앙의 도구로 이용합니다. 애굽은 이제 모세의 지팡이, 하나님의 권능의 지팡이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이제 모세의 지팡이는 애굽의 우상과 권력에 이기는 능력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지휘하는 지팡이가 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 걸어가는 이스라엘 회중에 수없이 많은 난관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모세의 지팡이는 홍해를 갈라 바다를 육지 같이 건널 수가 있었고, 목마름으로 이스라엘 회중이 지쳐 있을 때, 그 지팡이로 반석을 쳐 생수가 터져 나오게 했습니다. /할/ 모세는 손에 든 지팡이를 하나님께 드렸더니 능력의 지팡이, 기적의 지팡이, 나라를 살리는 구국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⑦오늘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이 '하나님의 지팡이'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나가야 합니다. 이것 없이는 주의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 지팡이가 어떤 지팡이인가? ⑴능력의 지팡이입니다. 모세는 이 지팡이를 들고 바로 앞에 던질 때 뱀이 되었습니다. 그때 애굽의 술객들도 똑같이 던져 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지팡이는 그것을 삼켰습니다. 애굽 같은 세상에서 아무리 사탄의 권세 같은 바로 왕과 술객들이 달려든다 할지라도 주의 지팡이를 가질 때 거뜬하게 정복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으로 진군하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큰 어려움이 놓였습니다. 앞에는 홍해, 뒤에는 애굽군대 양옆에는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 그야말로 진퇴양난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밤새도록 기도하며 능력의 지팡이를 내어 밀 때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우리 앞에 홍해와 같은 어려움이 놓여 있습니까? 능력의 지팡이를 가진 자는 조금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를 가지고 내려치면 문제 투성이가 갈라지면서 새 길을 열게 될 것입니다. 영혼이 심히 메말라 견딜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를 가지고 내리치면 딱딱한 반석에서 시원한 생수가 터져 나옵니다. ⑵순종의 지팡이입니다. 내 손에 잡고 있지만 이것은 내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대로 내 멋대로 휘두르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지팡이를 던지라 하면 던지고 잡아라 하면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 하시는 대로 할 때 큰 기적과 축복이 일어납니다. 내가 가진 것이라고 내 것이라 생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가 가진 재능, 물질, 시간, 은사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라 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그대로 해야 합니다. 순종하면 대단한 능력의 역사가 있습니다. ⑶영광의 지팡이입니다. 모세가 가진 것 별 것 아닙니다. 보잘것없는 마른 막대기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모세의 손에 잡힌 지팡이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지팡이를 가지고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습니다. 바로 앞에서도, 애굽 백성들 앞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도 큰 이적을 일으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습니다. 보리떡 같은 것이지만 주의 손에 올려지기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여기서 막대기는 모세 일수도 있고, 이스라엘일수도 있고, 오늘 날 저와 여러분들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하나님의 지팡이가 됩니다. ⑷보호의 지팡이입니다. 우리는 광야 길을 걸어가야 하는 나그네 인생입니다. 언제 홍해를 만날지, 언제 맹수를 만날지, 언제 바로의 군대를 만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있다면 홍해도 문제없고, 바로의 추격도 험한 광야도 문제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팡이가 보호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23편에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신다'고 말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이런 약속을 주셨습니다. 즉 첫 번째 약속은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리라'(요14:18)라는 말씀이고, 두 번째 약속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마28:20)는 약속입니다. /할/ ▶어느 기도원 입구에 '암은 병이 아니다. 낙심이 병이다.'라는 말이 써 있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죽이는 것은 낙심이요 절망이지, 암도 실직도 역경도 칼도 권세도 아닙니다. 암은 고칠 수 있어도 자기절망은 고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막9:23절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할/ (2010년 4월 25일 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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