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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원천이 되시는 여호와여! (삼하22:1-7/시18:1-6)
옛날에 금을 아주 좋아하는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돈을 벌면 무조건 금을 사서 아무도 모르는 땅 속에 파묻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는 그 땅 속에 금덩이 뿐 아니라 그의 마음도 함께 파묻었습니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하루에 한 번씩 그곳에 가서 금 덩어리를 만져 보고 확인하는 것만이 세상사는 즐거움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항상 누가 금 덩어리를 도적질하지 않을까? 밥을 먹다가도 걱정 잠을 자다가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의 태도를 수상하게 생각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집 머슴 놈이었습니다. 어느 날 머슴은 부자의 뒤를 밟았습니다. 부자는 숲 속으로 들어가서 땅 속에 금 덩어리를 만족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 저런 비밀이 있었구나!' 머슴은 그 사실을 알고 부자보다 먼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주인 앞에서는 아는 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날밤 머슴은 몰래 집을 빠져나가서 숲 속에 땅을 파헤치고 금 덩어리를 꺼내고 그 대신 커다란 돌멩이를 넣고 흙을 덮고 나서 입가에 만족한 웃음을 띠고 멀리멀리 도망쳤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부자는 다음날 아침 숲 속에게 간 부자는 땅이 파헤쳐진 것을 보고 '앗!'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뒤로 쓰러졌습니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일어난 부자는 땅 속에 묻었던 돌멩이를 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점잖은 사람이 돌멩이를 안고 왜 우느냐?'고 묻자 부자는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어떤 한 사람이 그 부자에게 '울지 마시오, 없어진 금 덩어리나 지금 당신이 안고 있는 그 돌멩이나 다 당신에겐 아무 힘이 될 수 없는 것들이요, 오히려 금은 불안과 근심만 안겨 주었을 뿐이요' 여러분, 부자는 금 덩어리가 힘의 원천으로 알았지만 실상은 불안과 걱정만 주는 것이랍니다. /할/ ◀제목 소개!▶
역사를 이룩한 사람들이나 각 분야에서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들의 공통된 고백을 들어보면 '할 일은 많고 시간을 적다'고 말합니다. 등수 안에 드는 학생들의 고백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할 양은 많은데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이와 똑같은 비중을 둔 고백이 하나가 있습니다. '할 일이 많은데 사람이 없다. 할 일이 많은데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무엇인가를 이루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외치며 고백하는 말속에는 '해야겠는데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밀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우리의 힘과 노력을 앗아가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이런 노래가 나오고 있습니다. 장기간에 걸친 경제의 침체 상황에서도 지치지 말고 '힘내자'는 기원을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 갈 때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힘이 없어서 굶주리고, 힘이 없어서 소외당하고, 힘이 없어서 멸시받습니다. 힘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⑴베풀 수가 없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없는데 어떻게 줍니까? 내 믿음이 없는데 어떻게 전도합니까? 사랑의 힘이 없는데 남을 어떻게 사랑합니까? ⑵힘이 없으면 자신감도 없어집니다. 힘이 있어야 동기가 생기고 일 할 의욕이 생깁니다.
⑶힘이 있어야 이길 수 있습니다. 경쟁에서이깁니다. 힘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고, 힘이 있어야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믿음 안에 사는 사람들의 절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왜 내게는 힘이 없습니까? 하나님! 왜 나는 이 사건 앞에 힘이 없습니까?' 이런 절규는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은 사람이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공통된 삶의 표현일 것입니다.
오늘 저는 믿음의 사람들의 힘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고 현대인의 문제의 해답을 얻고자합니다. 여러분 인생을 사는데 '누가 더 큰 힘을 붙들었느냐? 누가 힘의 원천을 찾았느냐?' 하는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의 원천이 돈에 있는 줄 압니다. 부자도 재물이 힘의 원천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딤전6:10절에 '돈은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해를 잘해야 합니다. 돈이 필요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돈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자처럼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돈이 힘이 되기는커녕 사람을 얽어매는 역할을 할 뿐이랍니다. 오래 전 우리나라 자유당 시절에 당당한 세도가였던 어느 정치가가 사형장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힘의 줄을 잘못 잡았다'고 후회하더랍니다. 그렇다면 권력도 영원한 힘의 원천이 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점을 치는 것을 좋아한답니다. 미국의 전 대통령 레이건도 점쟁이를 백악관에 불러들였다가 언론에 질타를 당했습니다. 무엇을 말해줍니까?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 권력이 점쟁이보다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힘의 원천을 바로 잡기를 바랍니다. 잘못 잡고 나면 후회합니다. /믿/ 성경은 말합니다. '능력은 이것이니 여호와 하나님이시로다' /할/ 우리가 믿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이 힘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역사를 이끄는 것도 하나님의 손길이요,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도, 한 생명이 가는 것도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그뿐입니까? 한 국가가 일어나는 것도 한 정부가 넘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높이기도 하고, 낮추기도 하며, 들어 쓰시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십니다. 다윗의 고백이 무엇인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힘'이라고 고백합니다. 어린 다윗이 목동에서 시작해서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성군이 되기까지 온갖 어려움과 시련, 여러 가지 모함과 시기 그리고 많은 생명의 위협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하나님을 자신의 힘으로 삼았더니 그의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자신을 구원해 주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이 고백은 신앙체험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사울을 포함한 자신의 원수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찾아다닐 때에 생명의 위급한 순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을 의뢰하여 기도하였고,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망의 위협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시18:3절에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4절 이하에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할/
▶다윗은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뒤돌아보고 그 대적들로부터 구원받은 후에 지켜주신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삼하22: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지난날의 고생스러웠던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생각해 보니 너무나도 감개무량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고마운 것을 느꼈습니다. 그가 깨달은 것은 원수 골리앗을 이긴 것도 하나님의 힘이요, 십여 년 동안 사울의 칼날에 위협을 당하면서도 생명을 보존한 것도 하나님의 힘이요, 마침내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열방 왕들의 존경을 받는 위치에 오른 것도 생각해 보니 하나님의 절대적인 힘이요 은혜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회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송축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2009년도가 저물어 가고 있는 이때에 주님의 은혜와 부모와 이웃의 은혜를 생각해 보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이 사울의 칼날을 피할 때 많은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를 깨달았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군사 3,000명을 거느리고 수색할 때 다윗은 굴속에 숨었습니다. 굴은 입구가 하나여서 도망갈 길이 없습니다. 다윗의 신복들은 두려워서 떨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에 다윗은 기도합니다. 그런데 사울의 군대가 그 굴을 수색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사울의 배가 아파 와서 급히 용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사울 혼자 그 동굴 속으로 들어 왔습니다. 다윗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그 때 다윗의 신복들이 사울을 죽이자고 하였는데,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고 그의 옷자락만 벱니다. 또 한 번은 사울과 그 군대가 다윗을 에워쌌습니다. 속수무책입니다. 그 때에도 다윗은 기도합니다. 그랬더니 한 병사가 사울에게 전갈하기를 지금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전쟁을 시작했다고 알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울은 군대를 철수하여 전쟁터로 나갑니다. 다윗은 사울의 군대가 떠난 다음에 그 곳 이름을 '셀라하맛느곳'이라고 이름을 짓습니다. '도피하는 바위'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위기일발 직전에서 구원하여 주심을 드러낸 것입니다(삼상23:24-29). 다윗은 자신에게 이렇게 응답하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긴박한 순간마다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지켜주신 하나님, 그 어려운 순간에 지혜를 주신 하나님을 어찌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힘'은 '게브라'(GEBRA)라는 말로 이 말이 상당히 의미심장합니다. 오래 전에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영양제로 한국에서도 즐겨 복용했던 '게브랄티'라는 종합 비타민제가 있었습니다. 그 '게브랄티'는 유대인들이 만든 약품인데 그 이름의 배경에는 바로 하나님의 힘이라는 '게브라'에서 착안해 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많은 것들이 힘이라고 말하지만 힘의 근본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힘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믿/
▶이 '게브라'의 하나님의 힘은 3가지의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특성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힘도 영원하지 못합니다. 재물의 힘, 권력의 힘, 명예의 힘, 과학의 힘, 의학의 힘도 유한합니다. 사실 권력이 있으면 사람들이 앞에서 굽실거리고, 어려운 일들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권력이 얼마나 좋은지 일단 한번 그 맛을 보면 헤어나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권을 유지하려고 기를 씁니다. 그러나 권력은 유한합니다. 權不十年(권력은 십 년을 가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한계가 있습니다. 언젠가 다 사라질 힘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힘만이 영원합니다. 그 힘을 믿으십니까? /할/ 두 번째 특성은 '불가능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합니다. 아무리 인간이 대단하고 놀라운 과학의 혁명을 개발해 낸다 해도 언제나 문제가 부딪힙니다. 인간의 지식, 과학으로 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죄의 문제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불가능한 것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그래서 은근히 요행을 바랍니다. 기적을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세 번째 특성은 '신실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변덕부리지 않는 힘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힘을 가졌다 하면 그때부터 변덕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권력의 힘, 돈의 힘 등 그 힘을 맛보면 그때부터는 변덕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변덕을 부리시지 않는 신실한 힘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 인생들은 변해도 하나님은 결코 변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우리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시는 것입니다(히13:8).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할 때 이 힘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아멘!/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힘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돈을 사랑하면 그 돈에서 힘을 얻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에게서 힘을 얻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녀를 보면서 힘을 얻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습니다. 잠8:17-18절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게 됩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살아 계신 분이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서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믿/ 그런데 이 사랑관계는 예민합니다. 그리고 사랑관계는 상대적인 것이지 혼자 하는 사랑은 짝사랑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를 삼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주님을 더 더욱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고 우선순위의 일 순위이십니다. 사실 신앙 인은 주님 외에 모든 것은 그 다음입니다. 예수님을 생활에서 우선순위 일 번에 놓고 사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갈등이나 망설임이 없습니다. 마6: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예수님을 우리의 삶에 우선순위로 삼으면 우리가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은 하지만 우리 생활의 우선순위를 보면 예수님은 뒤로 밀려나 있습니다. 솔직히 우선순위 1번은 예수님이 아닙니다. 요즘 보면 자신의 사업이 우선순위 1번이요, 직장이 1번입니다. 예수님이 뒤로 밀려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주일날 예배드리기보다는 사업장으로, 직장으로 먼저 갑니다. 어떤 사람은 취미가 예수 보다 우선순위에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취미 때문에 예수님은 저 멀리 밀려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자식이 우상인 경우도 있습니다. 자식 일이라면 예수도 저 멀리 밀려나 버립니다. 자식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걱정하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예수님을 위해 잠을 설쳐본 일이 있습니까? 예수를 위해 노심초사 골똘히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주님을 더더욱 사랑합시다. 다윗의 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데서 얻어진 힘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우리가 어떻게 섬길 수 있습니까? 예배입니다. 구약 성경은 예배드린다는 말과 섬긴다는 말씀과 같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배가 섬기는 것입니다. 모세가 430년 간 종살이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오려고 바로 왕에게 가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십시오'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10가지 재앙을 퍼부을 때마다 바로에게 가서 한 말은 이것입니다. '광야로 나가 하나님을 섬기게 해 달라, 이 곳을 떠나 하나님께 희생제물을 드리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예배하려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축복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의 자리에 참석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 그래서 히10:25절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좋아하는 대로 하려고 애쓰고 닮으려고 노력합니다. 미국의 행동과학자 볼비(Bowlby)는 사람은 사랑에 빠졌을 때 상대방의 좋은 점을 닮으려는 '동조 현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는 좋아하는 감정이 크면 클수록 더 닮고자하는 욕구가 더 강하게 나타나는 데, 그래서 사랑하면 좋아하는 음식도 같아지고, 취향이나 취미까지 같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연애하는 사람들을 보면 똑같이 커플링을(반지) 낍니다. 신혼부부들을 봐도 커플 룩으로 옷을 똑같이 맞춰 입습니다. 사랑하면 이런 동조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싶어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르게 살아서 하나님께 잘 보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를 듣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공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아멘!/ 지구상에서 최고의 학문인 탈무드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세상을 세 기둥 위에 세우셨는데 하나는 토라 기둥, 또 다른 기둥은 선행기둥, 그리고 예배기둥'이라고 했습니다. /할/
▶다윗은 지금 모든 대적과 사울의 손에서 자기를 건지신 여호와의 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힘의 역사입니다. 옳고 그름의 역사가 아닙니다. 이긴 자가 역사를 쓰고 역사를 만들어 갑니다. 사회는 힘의 사회입니다. 힘이 있는 자가 사회를 지배하고 사회를 만들어 갑니다. 힘이 있는 정치집단이 정치를 독식하고 지배합니다. 힘이 있는 종교는 군중을 흡수하는 카리스마를 가집니다. 오늘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힘을 노래합니다. 역사를 지배하는 힘, 사회를 지배하는 힘, 정치를 지배하는 힘, 종교를 지배하는 힘, 자기의 인생을 지배하는 힘, 그 힘을 노래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라는 다윗의 고백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은 다윗의 힘이 되셨습니다. 어떤 힘이 되셨습니까? 하나님은 다윗의 반석이시요, 요새시오, 건지시는 자시요, 피할 바위시요, 방패시요, 구원의 뿔이시요, 산성의 힘이 되어 주셨다는 고백입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이 고백 속에는 '자기의 물리적인 힘, 경제적인 힘, 정치적인 힘, 종교적인 힘'을 의지하지 않겠다는 고백이 묻어있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에게는 '물리적인 힘이나 경제적인 힘은 배설물'과 같습니다. /아멘!/ '여호와 하나님이 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을 줄 믿습니다. /할/
▶다윗은 힘의 원천이 되신 여호와를 열 가지로 표현했습니다. 여기 나오는 표현들은 대개 팔레스타인의 특수한 지형과 관련된 것이나 혹은 군사적인 용어들입니다. 다윗이 얼마나 유리방황하며 고난을 겪었는지, 전쟁의 위기를 얼마나 많이 봉착했었는지 암시해 줍니다. ⑴나의 반석이시오: 반석은 단단한 암반을 의미합니다. 이곳은 폭풍우가 몰아치고 홍수가 나도 그 기초가 무너지거나 흔들리지 않는 안전한 곳입니다. 여러분, 환란은 폭풍우와 같고, 성난 홍수와도 같이 달려듭니다. 그러나 반석 되시는 하나님은 자기를 믿고 의지하는 자들을 이러한 반석 위에 보호하심같이 존귀하게 보호하시며 구원해 주십니다. /믿/ ⑵나의 요새시요: 요새는 사람의 힘으로 짓지 아니한 천연적 지리조건을 갖춘 피난처를 의미합니다. 적군의 동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공격을 피하거나 저지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칼날을 피하여 동굴 속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이 요새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 주심을 의미합니다. 삼상23:14절 '다윗이 황무지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황무지 산골에도 유하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붙이지 아니하시니라' ⑶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요새와 같으신 하나님께서는 환란의 늪에 빠져 죽어 가는 당신의 백성들을 건지시는 자로써 절망가운데 처한 성도들을 건져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말합니다. /할/ 그렇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에서 건지시고, 실패와 좌절과 질병에서도 건져주시는 분이십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어떤 역경과 환란가운데서도 능히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시70:5절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니 여호와여 지체치 마소서' ⑷나의 하나님이시오: 여기 하나님은 엘로힘의 하나님으로 모든 환난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의 공급자가 되시며 한마디로 모든 환난을 극복하는 힘을 주시는 바로 힘의 원천자이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롬11:36절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⑸나의 피할 바위시오: 우리는 서부영화에 보면 바위를 지형조물로 삼고 싸우는 모습을 봅니다. 총알을 피하게 하는 바위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바위처럼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시89:26절 '저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 ⑹나의 방패시오: 전쟁에 임한 군사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무기입니다. 화살을 막아주고 도끼와 칼날을 막아줍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방패와 같이 성도의 육신과 영혼을 상하지 않도록 지켜주신다는 말입니다. 시3:3절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⑺구원의 뿔이시오: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환난과 싸워 이기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동물들의 무기는 바로 뿔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이 뿔의 권세로 원수마귀사단의 권세를 꺾습니다. 눅1:69절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⑻하나님은 나의 높은 망대시오: 망대는 적의 동태를 살펴 경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즉 깨어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⑼피난처: 원어 적인 뜻은 '사막의 모래바람과 폭풍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는 말로, 연약한 자들이 안전하게 거할 수 있는 곳을 의미합니다. 6.25 사변 때, 포탄을 피해 굴로 피했습니다. ⑽나의 구원자시라: 원어는 '야솨'입니다. 원수의 모든 도전을 꺾고 성도들을 모든 위협으로부터 건져내시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시106:21절 '애굽에서 큰 일을 행하신 그 구원자 하나님을 저희가 잊었나니' 우리를 구원해 주실 힘을 가지신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믿/ 모든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셨다가 주님 재림의 그 날 안전하게 천국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힘이 구원이십니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힘의 원천이 되신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진리는 단순합니다. 능력이 있는 분과 교제하면 능력이 생깁니다.
①하나님의 교재가 곧 힘의 원천이 됩니다. 여러분, 세상의 힘도 힘을 가진 사람하고 가까이 하면 힘이 있어집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곧 힘의 원천이 됩니다. 세상의 권력가도 조금만 알아도 안 되는 일들이 풀립니다. 명암 한 장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도바울을 보세요! 고후6장에 보면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며 배고픔과 갇힘과 매 맞고 쉬지 못하고 있을 때' 이런 상황 속에서도 바울에게서는 놀라운 힘이 있었습니다. 빌립보의 감옥을 무너뜨렸고, 로마를 무너뜨렸고, 힘있는 사람을 휘어잡았습니다. 하나님과 교재에서 나온 힘입니다. 환난과 긍핍과 고난 가운데 있었던 바울이 힘 자랑을 합니다. 고후4:8-9절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아멘!/ 이 외침은 당대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의 힘 앞에서 외쳤던 소리입니다. 엄청난 힘입니다. 고후7:6-10절에 보면 바울은 또 다른 표현으로 하나님과 교제해서 얻은 힘을 말합니다. ⑴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⑵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⑶죽은 자 같으나 우리가 살고, ⑷징계를 받은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⑸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⑹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고 ⑺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할/ 다윗은 본문에서 뭐라고 고백합니까?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하는 역사적 배경은 당시 왕이었던 사울은 큰 힘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이 힘을 가졌던 사울 왕에게 떨어진 것이 아니며 유대 언덕 풀밭에서 양이나 치던 목동 다윗에서 임했습니다. '내가 너를 세웠고, 너를 일으키리니 네가 내 역사를 이루리라' /할/ 이때부터 유대 언덕 푸른 풀밭 위에서 다윗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하나님과의 교제 시간이 깊으면 깊을수록 하나님의 깊은 힘이 임합니다. /아멘입니까?/ 성경에 보면 다윗을 목동으로 있을 때, 사자의 입을 찢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기에서 강조하는 여호와의 힘은 육에 그 어떤 힘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힘의 원천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힘을 얻은 다윗에게 때가 되매 많은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사울 왕에게는 권력이 있고 힘이 있는 자들이 모였으나 다윗을 따르는 무리들은 하나같이 죄지은 사람, 살인한 사람, 먹을 것이 없는 사람, 도망 다니는 사람, 파멸한 사람, 오고 갈 때 없는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지금 말하는 정치적 시국사범들이 다윗에게 모여들었답니다. '다윗에게 가면 뭐가 보인다더라. 거기 가면 뭔가 있다더라' 이런 소문을 듣고 수 없는 무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이런 사람들은 도저히 새 힘을 일으킬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힘없었던 자들이 다윗이 가졌던 위대한 힘의 줄인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힘을 소유했을 때, 그들에게도 엄청난 새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었답니다. /믿/ 그 뒤 그들은 다윗과 함께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요, 방패가 된다.'고 소리 높여 찬양했습니다. 부족하고 좀 모자라도 하나님과 생명력 있는 교제를 통하여 그 시대를 이끌 수 있는 큰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할/ 여러분,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과 보내는 시간이 그 어떤 시간보다 깊고 높고 확실하기를 바랍니다. 행여 오늘 이 시간에 형식적으로 습관적으로 나오신 분이나, 마지못해 나오신 분이 있다면 오늘 한 걸음, 주님 곁에 가까이 다가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드리는 자에게 기쁨과 소망과 사랑을 주시며 모든 것을 합력 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아멘!/ ▶우리 성경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을 보세요! 그들은 무엇보다도 힘의 원천이 되신 하나님과의 교제를 자기면서 삶의 새로운 장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예로 듭니다. 이 사람도 결코 처음부터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⑴믿는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을 위하여 기도해 준 사람이 전혀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⑵조상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해 얘기를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전혀 하나님과 상관없는 집에서 태어나 하나님 없이 살던 인생이 하나님과 교제를 시작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그에게 나타났습니다. 장로교의 대부이신 칼빈 선생은 이런 하나님과의 교제를 무엇이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불가항력적인 은혜'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교제를 가지시고 당신의 사람으로 세워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멘!/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이런 불가항력적인 은혜 속에 불러 주시고 당신의 사람으로 복을 주시기를 원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여러분, 오늘 우리 환경을 한탄하지 마십시다. 부모형제를 또 네 이웃을 한탄하지 마시고 아브라함이 했던 것처럼 하나님과 깊은 교제해서 우리 속에도 믿음의 역사를 일으키시기를 바랍니다. 분명한 것은 오늘도 기적은 일어나고 하나님의 은혜는 내려옵니다. 다만 믿음의 문제입니다. 네가 얼마나 하나님과 깊게 교제했으며 봉사와 희생이 따랐는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할/
②힘의 원천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의 근거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힘의 원천도 말씀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고, 말씀의 능력으로 오늘도 우주만물을 운행하고 계십니다.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입니다. 호렙산 가시떨기 나무에 어느 날 하나님이 불이 임했습니다. 모세가 그 광경을 구경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으라'는 말씀입니다. 모세는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믿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이루어지며 대 애굽 바로 왕 앞에서 하나님의 힘의 원천을 받아 갖가지의 능력을 나타냈습니다. 말씀을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믿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믿음의 관계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32,500가지의 축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축복의 말씀을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말씀대로 구하십시오, 믿고 찾으십시오. 담대히 문을 두드리세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자가 사람도 움직이고, 하나님도 움직이며 기사와 이적도 나타냅니다. /믿/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습니다. 생명력이 있고, 좌우에 날선 검과 같아서 우리 영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힘이 있습니다. 무서운 살인범 고재봉도 이 말씀의 힘 앞에 꼬꾸라졌습니다. 말씀을 믿는 복이 제일 큰복입니다. 오늘도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③기도가 힘의 원천이 됩니다. 여러분, 기도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며 불경기를 호경기로 이끕니다. 믿음의 기도는 환경도, 시간도 사람까지도 초월합니다. 초대교회는 '저들은 전혀 기도에 힘썼더라'라고 했습니다. 이 기도가 초대교회의 힘이었고 능력이었습니다. 오늘날 현대교회가 힘이 없고 무능력한 것도 기도에 힘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예수님 안에서 체험이 없는 불 꺼진 신앙은 기도에 힘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우리 하나님은 많이 기도하는 자에게 많은 것을 주시고, 적게 기도하는 자에게 적게 주시고, 기도하지 않은 자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명령이 나옵니다.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이 주님의 첫 명령입니다. 그리고 '내게 배우라' 이것이 두 번째 명령입니다. 다음은 '기도하라, 그리고 나가서 외치라,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주의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기도해야 믿음의 증거가 나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힘을 덧입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같이 하시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붙들어 줍니다. /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많으나 기도하는 사람이 적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많으나 기도에 불이 꺼졌다고들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참 행복한 교회는 기도하는 집입니다. 어느 때고 달려 나와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행여나 어떤 사람 앞에서나 어떤 문제 앞에서 힘이 없었다면 오늘 이 시간부터 기도하십시오, 절대로 늦지 않습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하나님이 다 시행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이 3년 간 예수님을 따라 다닐 때 힘이 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할 때 힘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배우므로 힘이 오는 줄을 알고 있습니다. 교회만 따라 다니면 힘이 오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기도해야 힘이 옵니다. 기도해야 응답이 옵니다. 기도해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아멘!/ ▶오늘 본문 삼하22:7절에 환난 날에 부르짖는 다윗의 기도를 보겠습니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다윗은 마치 두려움 앞에서 부모를 찾는 어린아이의 울부짖음보다도 더 절박하게 자기의 환난 날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들으시고 다 응답해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⑴기도의 시간입니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다윗은 환난 중에서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그 환난의 배후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히스기야도 환난 속에서 주님을 만났고, 욥도 환난 속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⑵기도의 장소입니다.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렇습니다. 성전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뜻입니다. 물론 우리는 어느 곳에서나 할 수 있습니다. 또 아무 곳에서나 기도해야 합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했습니다. 바울도 옥중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성전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성전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솔로몬도 성전에서 기도했고 히스기야도 성전에서 기도했습니다. 한나도 성전에서 기도할 때 응답 받아 사무엘을 얻었습니다. 예수께서도 막11:17절에서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성전에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할/ ⑶기도의 방법입니다. '나의 부르짖음의 그 귀에 들렸도다' 그렇습니다.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물론 기도할 때 묵상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큰 소리로 부르짖어야 합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링컨은 풍랑을 만날 때마다 새벽에 성전에 나아가 '하나님이여 이 국난을 해결해 주시옵소서'하고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들의 문제를 하나님께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④진리에 영, 성령에 잡힘이 곧 힘의 원천이 됩니다. 여러분, 진리의 영은 하늘에 영이요, 예수의 영입니다. 우리가 이 거룩한 영에 잡혀야 더러운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진리의 영에 잡혀야 거짓을 이길 수 있습니다. 능력의 영에 잡혀야 연약함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할/ ⑴그리스도의 지배를 받는 삶이 됩니다. 바울은 갈2:20절에서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은 바울의 인격이 없어졌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죄악의 권세 아래 포로가 되었던 옛 세계에서 해방이 되어 은혜의 왕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안에 거하게 된 은총을 고백한 것입니다. /할/ ⑵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롬8:9절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우리 참 행복한 교회는 성령이 임하는 교회입니다. 진리의 영이 있는 자만이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순한 복순이를 쓰는 것이 아니고, 말 잘 듣는 철수를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의 원천에 잡힌 자들을 크게 쓰십니다.
'나는 여호와의 신으로 권능을 받았다'라는 고백이 오늘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할/ (2009년 11월 29일 대예배 설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