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訴訟]=자유 평등 정의

[야! 한국사회] 판결문, 민주주의 교과서 / 임범

성령충만땅에천국 2015. 2. 24. 13:38

[야! 한국사회] 판결문, 민주주의 교과서 / 임범

한겨레신문 등록 : 2015.02.23 18:49수정 : 2015.02.23 18:49

모처럼 시원한 판결문을 봤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2심 판결문이다. 시원하게 느낀 건, 1심에서 무죄였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집행유예 대신 실형을 선고한 주문이 아니다. 주문이유에서 밝힌 자유민주주의 의미와 이 사건 범죄의 위험성에 대한 재판부의 견해다. 거기에 이례적이다 싶을 정도로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법원 판결 기사를 쓰면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나는 판결문에 불만이 많았다. 길게 늘어지는 복문은 인용하기 힘들고, 남발되는 지시대명사와 관형사는 요약 인용도 어렵게 하고…. 인용할 경구를 찾기는 더 힘들었다. 어쩌다 나오는, 진보적이거나 권력에 비판적인 판결도 마찬가지였다. 정치적으로 읽힐 수 있는 사안일수록 사실관계와 법 적용 여부만 언급하고 판사의 견해는 자제했다. 주문은 감동적인데, 막상 판결문은 건조했다. 이건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5·18 특별법에 합헌 결정을 내려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고, 국회가 결의한 대통령 탄핵안도 위헌으로 판결하는 등 민주주의의 본질과 직결된 결정이 많았음에도 국민들이 기억하는 경구 하나라도 남겼던가.

 

어쩌다 요즘 판결문을 보면 문장은 단출해졌지만, 정치적인 사안에선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임에도, 판결문에서 사건을 대하는 동시대 사람의 시선을 보긴 쉽지 않았다. 물론 판결문에 자기 생각을 집어넣는 게 자칫 품위 없고 경망스러워 보일 수 있고, 또 아무리 공부 많이 한 법관이라고 뜬금없는 소리 하지 말란 법도 없다. 그래도 사건이 민주주의의 본질과 관계돼 있다면 그 관계가 어떤 건지, 어떤 가치를 왜 우선시해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한 언급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지난해 말 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누군가 원 전 원장을 비난하면서 “국정원이 이래도 되냐”고 비분강개해 분위기가 썰렁해진 적이 있다. 요즘 정치 얘기를 하면 썰렁해지는 게 일반적이긴 하지만 그렇게 말해도 마찬가지다. 왜 썰렁할까. 당연한 게 지켜지지 않은 채로 오래가면, 그 당연한 말을 하는 게 식상해진다. 그 식상함 사이로 냉소가 스며들 거다. 그런데 단 한 명, 법관이 법정에서 그 당연한 말을 하면 달라진다. 피고인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주문과 함께 그 말을 할 때 무게감이 얹혀 식상함이 사라지고 긴장감이 생긴다. 거기에서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말하면 냉소 대신 감흥이 일고 감동까지 생길 수 있다. 민주주의에 대해, 이 이상의 교육이 있을까.

 

원 전 원장 사건 2심 판결문의 일부를 인용한다. “… 국민들은 이제 사이버 공론장의 순수성과 자율성을 의심할지도 모르게 되었다. … 국민의 활발한 정치 참여 및 표현이 혹여나 위축되어 사이버공간에서의 적극적 소통이 가진 긍정적 효과가 줄어들지도 모르게 되었다. … 헌법에 의하여 보장된 정치적 기본권의 범위 안에 있는 국민의 생각과 의견을 심리전의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을 무릅쓰고 이를 강행함으로써 바로 앞서 언급한 부정적인 결과와 우려를 가져온 것이다. … (이 사건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한 활동이었다고는 하나 정작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훼손한 것임이 명백하다.”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정보기관의 잇따른 정치 및 선거 개입과 이를 막기 위해 국정원법이 마련되기까지의 과정을 언급한 뒤, 엄하게 처벌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국민 전체의 뜻이 강력하게 반영된 법(국정원법)을 위반한 행위에 대하여 마찬가지로 국민 전체의 뜻이 반영된 그 법을 엄정하게 적용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거의 공정성을 해친 행위에 대한 법원의 그동안의 엄단 의지가 이 사건에서도 관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판결문이야말로 살아 있는 민주주의의 교과서가 아닐까.

 

임범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