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간증+믿음의 글

차범근감독의 신앙간증

성령충만땅에천국 2015. 4. 6. 12:48

차범근감독의 신앙간증


과거와 달리 나를 보면 싸인해달라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정말 팔이 아플지경이지만
그래도 나와 축구로 인해 기쁨을 줄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한편으론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팬들 중에는 두 부류가 있다.
기독인들은 나를 보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돌린다"고 말하고
불신자들은 "당신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이것을 볼때 기독인들이
얼마나 복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지난해 12월 9일 월드컵 지역 예선전 경기가 끝났을땐 온 몸에 열이 올라
입술이 퉁퉁 붓고 갈라져 딱지가 생길 정도였다. 끊임없는 긴장감과 훈련,
경기가 끝나자 온 몸에 긴장이 풀렸었나보다.
이런 상황에도 6월 13일 우리 팀과 첫경기를 하는
멕시코가 사우디와 경기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21시간이나 걸려 사우디로 날아갔다.
그런데 옷가지를 넣은 가방을 분실했다.
다행히 사우디 현대 지사에 근무하는 어느 집사님의
도움을 받아 낭패를 모면했는데 그분의 부탁으로 간증하러 찾아갔던
사우디 지하 새벽기도회는 아직도 잊을수 없다.
정부의 철저하고 심한 감시 속에서 시 외곽에 위치한 예배처에서 교대로 망을 보며
예배드리던 그들의 신앙을 보면서 내 신앙의 부끄러움을 느꼈다. 새벽마다 2백여명이 기도하고 찬송하고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걸고 애쓰는 것을 볼때 큰 감명을 받았다.

내가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은 1972년부터 1978년까지 한국 국가대표 축구선수 생활을 할 당시였다.
태릉 선수촌에서는 예수 믿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그중 유일하게 예수님을 믿던 사람이
이영무 선수였다. 지금은 목회자가 됐다. 항상 복음을 전하는 그를
대부분의 선수들이 외면했지만 미션스쿨에 다녔던 나는 거부반응은 없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 최고의 축구선수, 최연소 국가대표 선수로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던 나는 굳이 종교를 받아들일 필요가 없었고 그 누구의 도움도 조언도 필요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무릎이 갑자기 아팠다. 잠시후 사라지더니 다시 주기적으로 통증이 찾아왔다.
1년 후 1976년에는 고통이 너무 심해져 왼쪽으로 중심을 맞출 수가 없었다.
운동선수에겐 중심이 중요한데 왼쪽으로 중심을 낮추지 못하기 때문에 자세가 높아
공이 자꾸 도망갔다. 축구선수로서 부와 명예를 짊어졌던 나는 그것을 잃 어버리는 것이 두려워 정말 부끄러운 치료방법까지 다 동원해 고쳐보려했다. 그러나 고통은 더 가중될 뿐이었다.

76년도에도 월드컵 경기가 벌어졌고 중동 원정경기를 치루었다. 경기 내용은 엉망이었다.
축구선수로서의 나의 인생을 지탱하고자 뭔가 기댈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간절히 필요했다.
그러던 중 이영무 선수 생각이 났다. 그에게 성경과 하나님에 대해 말해달라고 하니
신이나서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나 내게 그의 이야기는 단지 이야기로 들릴 뿐이었다.

서울로 돌아와 보니 아내가 "친구가 우연히 우리집을 방문했는데 당신 보고 예수 믿으래요"
라고 말했다. 나의 상황과 그 사건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 친구를 다시한번 집에 초대했고 이영무 선수도 동행했다. 당시 예언의 은사를 받았었던 그 친구가 이상한 말로
기도하는 것을 들었다. 내가 알아들을수 있게 말해달라고 했더니

"당신이 하나님을 외면했을 때에도 하나님은 당신을 버리지 않았다. 이제 당신이
하나님의 팔에 매달릴 시간이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순간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나의 인생 역경이 머릿 속에 떠올랐다. 어린 시절 가난이 싫어 아버지를 졸라 축구를 시작했다.
내가 다니던 미션스쿨 중학교에 축구부가 해체돼 서울 경진중학교로 전학했다. 미션스쿨이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않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수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최연소 국가대표 선수이지만 연습할 때 보면 나처럼 못하는 선수가 없다. 정말이다.
그런데 시합에만 출전하면 펄펄 날아다닌다. 72년도 말레이시아에서 일본과의 경기에서
나보다 열살이나 많은 선배들이 열아홉살짜리 후배한테 4,5명이 교체됐고
결국 일본과 3대 1로 승리했다. 이때부터 나는 신인으로서 유명하게 된 것이다.

그후 73년도에 축구경기가 열렸을 때는 광화문 네거리에 차가 다니지 않을 정도로
인기가 치솟았다. 내가 신앙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76년도 당시 서울운동장이었다.
말레이시아와 대통령배 국제 축구대회에서 우리 팀이 말레이시아한테 4대 1로 지고 있었다.
후반 경기시간 7분 남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2분이 남을때까지 5분동안 나 혼자서 세골을 넣어 4대4 동점이 됐다. 기적이었다. 수많은 관중들은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고
어떤 이들은 넋을 잃 었다. 이 경기는 내가 한 것이 아니었다.

태릉으로 돌아오는 버스창가에 기대어 생각했다. '내가 할수 없었던 이것,
분명 누군가의 힘의 능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라는 강한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아내 친구의 기도가 생각났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날 밤 잠에서 깬 나는 소파위에 놓여진 성경책을 발견했다.
웬지 그것을 펴보고 싶은 생각에 책장을 넘겼다.

창세기 1장 1절 말씀이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렇다 내가 몰랐구나' 성경을 읽어 내렸다. 신약에 병든자가 치료되고 죽은자가 살아나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순간 나는 아픈 무릎을 만지며 '나도 치료받을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아내와 아내의 친구와 함께 어느 목사님을 찾아갔다.
그분은 나의 눈과 배에 손을 대고 기도를 해주셨는데 어찌나 아프던지
심한 훈련으로 단련된 내 몸이 그렇게 아팠던 적은 없었다. 15분이 흘렀을까? 기도는 계속됐다.
내몸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목사님이 '할렐루야'를 말하며 따라하라고 했다.
나는 '할렐루야'를 말했다. 그런데 귀에 들리는 말은 이상한 말, 나도 알지 못하는 말이었다. 한번 더 따라했다. 다섯번이나 따라했는데 계속 혀가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때 아내의 친구는 놀라며 내 아내에게 소리쳤다. "어머 너의 남편이 방언의 은사를 받았어" 그때 나는 하나님이 나한테 임한 것을 알수 있었다. 무릎 통증이 사라진 것이다.

하나님을 만난 후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성경을 읽으면서 내 생각이 달라졌다.
가치관이 완전히 변화된 것이다. 이영무 선수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갈급한 심령을 채우고자 기도원에 올라갔다. 거기서 나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과
이전까지 내 자신만을 위해서 축구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새로운 소망이 생겨났다.

그것은 아시아 제일의 축구선수였지만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축구리그,
세계적인 선수들이 모이는 독일 연합리그 분데스리가에 출전하고픈 소망이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 다른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말했더니 마치 요셉의 꿈을 듣고 비웃던 형제들처럼 모두들 비웃었다. 그러나 그 소망은 점점 강렬해졌고 내 기도는 더 강해졌다.
"세계적인 축구선수들이 있는 곳에서 축구를 하게 해 주시고 좋은 축구를 배우게 해주셔서
한국의 후진 양성에 기여하고 복음을 전파할 수 있게 해주세요"

히브리서 11장 1절 말씀과 로마서 14장 7,8절 말씀을 깨닫게 하신 하나님은
소망 그대로 응답해 주셨다. 10년 동안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었고
더 영광스러운 사실은 지금까지 분데스리가 선수로 뛴 뛰어난 3백여명의 외국 선수들 중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선수로 내가 지목된 것이다. 오직 하나님이 행하신 것이다.
모든 일이 기도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성경에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의 말씀이 있는데
처음엔 그 의미를 몰랐었다. 그런데 나야말로 그 축복을 실제로 체험한 사람이었다.
79년도 당시 나의 봉급은 9만원이었다. 그런데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받은 연봉은 40만 마르크, 1억 6천만원으로 아마 당시 한국에서 봉급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9만원짜리 월급쟁이가 연봉 1억 6천만원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평탄한 길만을 인도하진 않으셨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고난에 처하게도 하시어 교만에서 이끄시고 하나님께 더욱 다가갈 것을 원하신다.
나는 1년만에 요추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설상가상으로 보험에 가입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평생 축구를 못 할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았다. 가까스로 경기에는 임하지만
좋은 경기실적이 나올리가 없었다. 슬럼프에 빠져있던 1년동안
한국과 독일 언론이 쏘는 비판의 화살이 더욱 힘들게 했다.
신앙인이라는 사실도 도마위에 올라가 있었다. 그럴때마다 아내는 기자들을 향해
"우리 남편이 어려운 환경에서 하나님을 찾는것은 남편만이 가지는 슬럼프 해결 방법이다"라고 나를 변호하기도 했다. 더욱이 하나님은 주변의 도움의 손길을 모두 끊어 놓으셨다.
아무도 의지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수 밖에. 나는 그때에 어려울때에 사람도,
권력도, 돈도 무용지물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1년에 한번씩 한국 목사님이 독일에 오셔서 부흥회를 집도했다. 부흥회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는데 경기일정과 스케쥴 때문에 참석할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목사님에게 상담을 했다.
목사님은 "우리의 생활 전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네.
아침에 눈을 떠서 하나님을 먼저 찾고 기도하고 말씀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면 참 좋을 거야" 이 말씀을 들은 후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찬송했다.
이렇게 10년동안 생활했더니 하나님은 너무나 많은 축복을 내게 내려 주셨다.
이름도 높여주시고 물질도 주시고 기도했던 모든 것들이 이루어졌다.

그해 송구영신 예배에 하나님은 또하나의 말씀을 내게 주셨다.
'나같이 아무일도 안하는 백수에게 왜 이런 도전적인 말씀을 주셨을까' 의아해했는데
일주일이 지나서야 알게됐다. 1월 7일 결혼20주년 기념일에 한국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된 것이다. 하나님이 멋지게 갚아주신 것이다. 제일 먼저 목사님을 찾아갔다.
하나님의 은혜로 축구감독생활을 했더니 그후 2개월간 축구 때문에
전 국민이 얼마나 신바람이 났었는가?

평소에 늘 '나의 직업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시고 우리 국민들이 한민족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그 기도가 응답된 것이다.
월드컵 예선전 매경기마다 하나님이 얼마나 도와주셨는지 모른다.
교회 다니는 선수들과 기도모임을 하려고 알아봤더니 아무도 없었다. 혼자 기도하다가
따르는 선수 몇명과 기도모임을 했고 월드컵 1차전 홍콩전을 치룰때에 다섯명으로 늘었다.
두려워하던 선수들이 3대 1로 홍콩을 격파했다. 그날 나는 선수들에게
'우리가 그토록 떨었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역사하신 능력을 보라'며 기뻐 외쳤다.
기도모임을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경기전 준비기도는 극도의 긴장과 두려움에 떨던
선수들을 진정시키고 분명히 승리하리라는 강한 승리의식과 자신감을 제공했다.

사람들은 나를 용병술에 능하다고 한다. 신앙인이지만 선수를 기용할때는
철저히 실력을 따져 내보낸다. 그때그때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선수들을 기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팀의 대상인
네델란드, 벨기에, 멕시코 모두 다 어려운 상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월드컵을 통해 경제한파로 얼어있는 우리 민족을 녹여주시고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몇명뿐이던 기도 용사들이 이젠 열다섯명으로 늘었다.
기도의 용사들이 함께 뭉쳤다. 대한 축구를 빛낼 우리 선수들은 월드컵 축구를 통해
한국 민족의 기량을 세계 축구계에 떨치고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대한의 건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면모를 승패와 관계없이 유감없이 발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