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간증+믿음의 글

독실한 신앙인인 차범근 감독

성령충만땅에천국 2015. 4. 6. 12:57

      독실한 신앙인인 차범근 감독  

2015/04/06 12:51  

 
출처 Debora | 김보라
원문 http://blog.naver.com/kso805/20166116208

[위원석의 레전드를 찾아서]차붐,기적을 체험하다 (차붐의 영웅시대8)

 차범근을 좋아하고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인생에서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축구와 가족, 그리고 신앙이다. 이 세가지는 차범근의 인생을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축구에 대한 헌신과 열정,가정에 대한 무한 사랑,신에 대한 독실한 믿음과 절제된 생활은 차범근의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축구계에서 차범근을 싫어하는 사람들조차도 그가 '축구·가족·신앙'에만 몰두한다는 사실을 다 인정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다소 '냉소적인 뉘앙스'가 숨어있는 듯 하다. 어쨌든 신앙과 차범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게 분명하다. 신앙은 사적인 영역이다. 이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사적 영역인 신앙의 부분을 다루는 게 좋을지에 대해서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차범근이 한국이 배출한 최고의 슈퍼스타가 되는 과정에 신앙이 엄청난 힘이 됐다는 점에서 이야기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주에는 차범근이 어떤 계기로 독실한 신앙인의 길로 들어섰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독실한 신앙인인 차범근 감독은 지금도 수원의 경기가 시작하기 전 꼭 기도를 한다.


 ◇일생일대의 위기 :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던 무릎 부상, 수술이 불가피하다(월간축구 77년 12월호 참조)


 77년 하반기 차범근은 축구 인생 최고의 위기를 맞는다. 그동안 숨겨왔던 무릎 부상이 더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기 때문이다. 병력은 꽤나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신고 3학년 시절 추계연맹전 동북고전에 나섰다가 상대 선수와 충돌하면서 부상했다. 그 때는 단순한 타박상 정도로 생각했지만, 국가대표에 발탁된 72년 겨울에 통증이 다시 시작됐다. 이런 현상은 이듬해에도 계속됐고 74년에는 날만 궂으면 무릎이 시끈거렸다. 병원을 찾았지만 윈인을 찾기 어려웠다. 76년 공군에 입대한 후 통증이 심해져 걷는 것도 힘들 정도였지만 대형선수의 영입으로 팀이 잔뜩 기대를 걸고 있는 상황이어서 결국 주사를 맞아가며 무리하게 뛸 수밖에 없었다. 만년 하위팀이었던 공군은 차범근의 눈물겨운 고군분투로 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까지 차지했다.
 77년은 아르헨티나월드컵 예선의 해였지만 차범근의 다리 사정은 좋지 않았다. 한국축구에는 매우 불행한 일이었다. 쿠웨이트와 1차전(10월 9일 서울운동장) 때는 점프를 하거나 볼을 따라가기도 힘들 정도로 다리가 아팠다. 속사정을 모르는 팬들은 차범근의 부진에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이 경기는 차범근의 100번째 A매치였다. 이른바 '센추리클럽'에 가입하는 중요한 경기였건만 플레이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박상인의 골로 한국은 1-0으로 신승했다.


 이 경기를 마치고 차범근은 드디어 한 병원에서 병인을 알게 됐다. 고3때 다친 무릎이 완치되지 못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계속 운동을 하면서 종지뼈(무릎 앞 한가운데 있는 작은 종지 모양의 오목한 뼈) 밑에 염증과 멍이 생겼던 것이다. 원인을 발견한 차범근은 당시 대표팀을 이끌던 오완건 단장과 김정남 코치(최정민 감독은 중도 사퇴한 상태)에게 사실을 털어 놓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했던 호주와 2차전(10월 23일 서울운동장)을 앞두고 있던 팀 관계자들은 무리해서라도 경기에 뛰어줄 것을 간청했다. 결국 차범근은 염증을 제거하고 근육을 이완시키는 주사를 맞아가면서 훈련을 하고, 호주전에도 이를 악물고 뛰었다. 그러나 몸이 성치 않으니 좋은 경기를 할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한국은 호주와 0-0으로 비기며 아르헨티나행이 점점 멀어지고 만다.
 차범근의 부진에 팬들의 원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당시 유일한 축구전문지였던 '월간 축구'는 차범근의 몸상태를 처음으로 상세히 보도했다. '월간 축구' 77년 12월호에 실린 차범근의 생생한 육성을 한번 들어보자.
 
 <"지금까지 왼쪽 다리가 간헐적으로 아프긴 했지만 그 증상이 이렇게 심할 줄은 저도 최근에야 알았어요. 쿠웨이트와 1차전을 치를 때 볼을 차 넣고 쫓아가지 못할 정도로 다리가 아픈 거예요.(중략) (월드컵 최종예선에서)차라리 제가 뛰지 않고 다른 선수가 뛰었으면 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이란에 와서 게임 3일을 앞두고 부터는 도저히 뛸 수 없을 것 같았아요.(11월 11일 테헤란에서 벌어진 이란과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를 의미하며, 이 경기를 반드시 이겨야만 한국은 본선 진출의 희망을 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2-2로 비겼고 아르헨티나행 티켓은 이란이 차지하게 된다. 차범근은 아픈 몸을 이끌고 풀타임 출전했다.) 다리를 완치하기 위해서는 시즌이 끝나는대로 수술을 해야 한대요. 꼭 가수가 목구멍 수술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언짢습니다.>
                                              

주간스포츠 78년 3월 29일자 154호의 표지에 실린 차범근


 ◇안찰기도로 기적의 완치, 차범근 신앙의 길로 들어서다(월간축구 78년 2월호 참조)

 그러나 차범근은 무릎 수술을 받지 않았다. 안찰기도로 몸이 낫는 놀라운 경험을 한 것이다. 이러한 극적인 체험을 통해 차범근은 독실한 신앙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신앙은 그의 중심에 있다.
 차범근의 '황금 다리'가 고장났다는 보도가 나오자 전국은 떠들썩해졌다. '월드컵 예선에서 부진했던 것을 감추려고 쇼를 하고 있다'는 비아냥도 있었고, '당신의 다리를 내가 고쳐주겠다'는 전화가 집으로 폭주하기도 했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차범근은 부인 오은미씨의 소개로 오씨의 대학동창인 한 전도사를 만나게 됐고, 이 사람을 통해서 이천석 목사에게 안찰기도(목사나 장로 등이 기도받는 사람의 몸을 어루만지거나 두드리면서 하는 기도)를 받을 것을 권유받게 됐다고 한다. 77년 12월 24일(우연히도 성탄 전야였다) 차범근은 이천석 목사에게 20분간 안찰기도를 받았다. 그리고 몸이 완치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월간축구 78년 2월호는 차범근이 안찰기도로 몸이 완치된 뒤 복음 전도에 나서는 상황까지를 특집기사로 소개하고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이천석 목사는 손가락 하나로 차범근의 배를 문지르며 기도를 했는데 손가락 하나의 힘이 얼마나 센지 운동으로 단련된 차범근이 몸부림을 칠 정도였다. 기도가 끝난 뒤 차범근은 이제는 몰라보게 완치된 자신의 다리를 만지며 눈물을 흘려 주의 은총에 감사했다. 그리고 며칠 뒤 하나님에 대한 자기의 신앙을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해 한월산 기도원에까지 찾아가 철야기도를 드린 후 과학적인 현대의학의 메스에 의해 수술되어야 할 무릎 통증을 거뜬히 없애고 그날부터 의심없는 주님의 사도가 되기를 맹세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아직 종교를 갖고 있지 못한 필자의 입장에서는 차범근이 젊은 나이에 겪은 '놀라운 신앙적 경험'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서 실감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경험 이후 차범근은 신앙에 몰두하게 됐고, 신앙의 힘으로 축구 선수로서도 더 높은 수준에 올라서는 '선순환'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모든 이들이 신앙을 갖는다고 자기 분야에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차범근에게 있어서는 축구와 신앙, 가족이 마치 '삼위일체'같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런 면에서 77년 성탄 전야의 '기적'은 훗날 분데스리가를 뒤흔든 '갈색 폭격기'가 탄생할 수 있었던 중요한 계기였던 셈이다.
 그렇다고 차범근이 자신이 체험한 '기적적인 경험'을 통해 육체가 나아진 것만을 중요시했던 것은 아닌 듯하다. 그는 오히려 신앙을 가지면서 내면적인 변화를 이룬 것을 강조하고 있다. 차범근이 인터넷 사이트 '후추'와 가졌던 인터뷰 중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성령을 받으면 우선 그 내면적으로 변화가 생기지. 무슨 인생관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고, 이제 하나님의 어떤 그런 존재를 느끼고, 이제 내가 어떤 존잰지도 알게 되고, 내가 뭐를 앞으로 해야되는지 알게 되고. 하나님을 믿게 되면서 이제 내가 내면적으로 생활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하는(중략) 내가 이제 어떻게 살아야 되겠으며 우리가 왜 살아야 되는지에 대해서 알고 느끼게 되고 이제 그것 때문에 기도하고…."
 

78년 박대통럽컵을 앞두고 주간스포츠 9월 13일자 178호는 대표팀의 두 기둥 차범근(왼쪽)과 김재한을 표지에 실었다.


 ◇금식기도설에 고민하는 차범근(주간스포츠 78년 4월 19일자)


 차범근은 신앙을 알게 되면서 78년초 여러 교회를 다니면서 활발한 간증활동을 벌였다. 그런데 차범근이 독실한 신자가 되면서 축구계에서는 해괴한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차범근이 금식기도를 자주 하기 때문에 체력이 떨어져 운동장에서 제대로 플레이를 못한다'는 이른바 '금식기도설'이다. 물론 사실무근이었지만 차범근의 신앙생활이 얼마나 축구팬들에게도 관심사였는지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주간스포츠의 기사를 한번 살펴보자.

 <차범근의 팬들이 실망하고 있다. 지난 3월에 있은 78년도 춘계실업축구 연맹전에서 보여준 차범근의 플레이가 너무 저조했던 것도 그 원인이지만 일부 축구인의 입을 통해 "차범근이 태릉선수촌에서 합숙훈련하고 있으면서 금식기도를 드리기 때문에 기운이 없어서 경기를 잘 못했다"는 소문이 나돌기 때문. 과연 그 소문은 사실일까.(중략)"그런 소문이 왜 났는지 알 수가 없어요. 지난 1월 공군에서 합숙훈련 중 주말휴가 때 단 하루 금식기도를 한 일이 있었어요." 그러나 국가대표선수로 태릉선수촌에 입촌한 뒤부터는 훈련 도중 일부러 밥을 굶어 본 일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 차범근의 말이다. (중략)차범근은 "하느님이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실 때 나에게 준 사명은 축구를 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길은 축구를 좀 더 잘 하는 것 뿐입니다"고 말했다. 그러한 신앙이 있기 때문에 더욱 자신의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는 차범근이 기도를 드리기 위해 태릉선수촌에서 며칠씩 끼니를 거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신앙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인생의 목표를 새롭게 한 차범근은 이제 자신의 운명을 송두리채 바꿔놓은 '저팬컵' 출장을 눈 앞에 두게 됐다. 다음 주에는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하는데 결정적인 터닝 포인트가 됐던 '저팬컵'의 이야기를 해보자.

 위원석기자 batmaa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