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김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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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53 호 |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
김 정 남 (언론인) |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다. 영랑의 시구(詩句)처럼 모란이 아직 피지 않아서가 아니요, 신동엽의 ‘해마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가난’이나 ‘배가 고파서 연인 없는 봄’ 때문도 아니다. 지나간 1년 동안 세월호 가족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기보다는 차라리 망각이 강요되고, 이 나라 이 공동체가 어느새 ‘오적(五賊)공화국’이 되어버려 ‘온 봄이 봄 같지 않아서’(春來不似春)도 아니다. 나는 지금 한 마리의 새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그 새와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작년, 지금보다 이른 봄날이었다. 그 날도 나는 이른 새벽, 나만이 다니는 등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이제 막 얕은 능선에 올라섰을 때 내 앞에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나타났다. 몸은 비둘기만 하고, 기상이 높은 장닭의 모습에 공작처럼 꼬리를 길게 늘어뜨린 작고 아름다운 새였다. 그 새는 도망가지도 않고, 마치 제가 내 가는 길을 안내하겠다는 듯이 한참을 인도하더니 총총히 숲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금계와 봉암새
이와 같은 그 새와의 조우와 동행은 날마다는 아니지만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주변에 농장이나 동물원 같은 곳이라곤 없는데 어디서 날마다 그 아름다운 자태를 내게 보여주는 것일까, 이제는 내 쪽에서 그날 그 새를 보지 못하면 괜히 허전하고 서운해지는 것이었다. 그 새는 굳이 나를 경계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더 이상 거리를 좁히거나 달리 친근감을 표시하지도 않았다. 우리의 이러한 관계는 초겨울, 첫눈이 올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숲 속에서 쫓고 쫓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새는 푸드득거리고, 사람들의 발길이 부산하더니, 젊은이 세 사람이 빈손으로 숲 속에서 나왔다. 그 새가 잡히지 않은 것이 내게는 다행스러웠다. 나는 그들에게 더 이상 그 새를 괴롭히지 말 것을 사정하면서 그 새의 이름을 물어봤더니 금계(金鷄)라고 했다. 금계와의 아침 동행을 거듭하면서 내게 생각난 것은 젊은 날 감옥에서 듣고 본 ‘봉암새’의 전설이었다.
그때 나는 6·3사태와 관련하여 그 배후조종 혐의로 독거수(獨居囚)가 되어 1년 가까이를 감옥에서 보냈다. 감옥 안에서는 5년 전에 사형당한 조봉암(1898~1959)이 전설적인 인물로 회자되고 있었다.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216만 표를 얻은 조봉암에 위협을 느낀 이승만은 그에게 국가변란과 간첩의 혐의를 씌워 마침내 사법살인을 하기에 이른다. 조봉암에 대한 이야기 중 하나는 그의 담담한 죽음에 대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봉암새에 관한 것이었다.
사형장에서 집행관이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느냐고 묻자 조봉암은 “나에게 죄가 있다면 많은 사람이 고루 잘 살 수 있는 정치운동을 한 것밖에는 없다. 나는 이(승만)박사와 싸우다가 졌으니 승자로부터 패자가 이렇게 당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나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그 희생물로는 내가 마지막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하면서 입회목사에게 누가복음 23장 22절을 읽어줄 것을 부탁했다.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빌라도)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읽기가 끝나자 눈을 감고 듣고 있던 조봉암은 일어나 교수대로 향했다는 것이다. 조봉암을 죽인 이승만은 9개월 뒤, 4.19의 분노와 함성에 쫓겨 하와이로 망명길에 올랐고 조봉암은 2011년 1월 20일, 대법원의 재심판결로 5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금계는 나의 망기지학(忘機之學)
20개월 가까이 서대문감옥에 갇혀있던 조봉암은 매일 먹던 밥을 남겨, 그것을 창틀 사이로 내민 손바닥에 펴서, 새들이 날아와 손 안의 밥알을 쪼아먹게 했다고 한다. 그가 죽자 때가 되면 그 새들이 조봉암이 살던 감방을 맴돌며 ‘봉암, 봉암’하고 울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봉암새’라는 말이 나왔다.
사람에게 기심(機心)이 없으면 새가 그 사람을 피해 도망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훨씬 뒤의 일이다. 전설 같은 봉암새의 이야기는 결국 조봉암이 이미 망기(忘機)의 경지에 올라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내가 금계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도망가지 않는 것을 보며 한때는 “내게서 기심이 없어졌는가”하는 착각의 자유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하찮은 세상일에도 분노와 증오를 참지 못하는 내가 어찌 언감생심 기심없는 사람이기를 꿈이나 꿀 수 있으랴.
다만 나는 금계와의 동행을 계속하면서 나의 망기지학만은 계속하고 싶었다. 금계는 내게 기심을 버리라고 깨우쳐주는 도반(道伴)이 되어주길 바랐던 것이다. 겨우내 산에 오르면서, 길에 쌓인 낙엽이 헤집어진 것을 보고 금계가 산속 어딘가에서 겨울을 나고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진달래가 피고, 벚꽃이 피었다 흩날려도 아직 나의 금계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 겨울의 추위와 기아를 이겨내고 금계가 살아있기나 한지, 그리고 나의 망기지학은 여기서 멈추어야 하는지 조바심이 더해가고 있다. 금계가 다시 나타나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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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정남 |
· 언론인 · 前 평화신문 편집국장 · 前 민주일보 논설위원 · 前 대통령비서실 교문사회수석비서관
· 저서 〈이 사람을 보라 -어둠의 시대를 밝힌 사람들-〉두레, 2012 〈진실, 광장에 서다 -민주화운동 30년의 역정-〉창작과 비평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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