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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건강한 가정의 패러다임(에베소서 5:22-6:4)

성령충만땅에천국 2015. 7. 1. 09:37

건강한 가정의 패러다임(에베소서 5:22-6:4) 

 

양해정목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래학자인 앨 빈 토플러라는 사람이 여러 해 전에 “미래의 충격”이라는 책을 써서 한때 센세이션을 일으킨 일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의 내용 가운데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의 발달과 또 급격한 가치관의 변화, 물밀듯 밀려오는 정보 떄문에 우리의 미래가 놀랍게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미래는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 영향이 우리 가정에 제일 먼저 침투해 들어오고 그렇기 떄문에 우리 가정의 미래가 매우 부정적이고 비관적이다.”

 

가정이 와해될지도 모른다고 예언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의 가정들이 병들었습니다.

가정이 큰 상처를 입고 살아갑니다.

결손 가정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해 주신 가정! 어떻게 병든 이 가정을 건강한 가정으로 만들 수 있을 까요?

그것은 국가도 아니고, 사회도 아니고, 대학도 아닙니다.

바로 우리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와 가정은 이웃 사촌간이라고 하는 말에 대하여 생각해 보셨습니까?

교회와 가정은 이웃 사촌간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병든 가정을 우리 교회가 책임지고 치유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 귀에 익히 들려지는 용어가 있는데 그것은 ‘패러다임’이라는 말입니다.

패러다임!

이 ‘패러다임’이라는 말은 우리말로 해석할 수가 없기 떄문에 원어 그대로 쓰는데 이것은 하나의 패턴, 양식, 가이드라인, 혹은 모형, 형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패러다임’이라고 해서 새로운 미래에는 ‘패러다임 쉬프트’라고 해서 “패러다임이 완전히 변하고 바뀌어야 된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가정은 과연 쉬프트가 될 것인가? 우리의 가정의 패러다임이 변화되어야 될 것인가?” 이것이 우리의 질문입니다.

감리교 감독 중에 워너 감독이라는 유명한 분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가정은 그리니치 천문대에 시간과 같이 변화될 수 없는 기본적인 단위이다.”

 

가정의 패러다임은 그리니치 천문대와 같이 절대로 변화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여러분의 가정은 절대로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건강한 가정의 패러다임”이라고 하는 제목의 배경이 되는 성경말씀은 결혼 예식의 주례 말씀으로 즐겨 사용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가운데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을 어떤 사람들은 “아내의 머리가 된다”는 말은 다 제거하고 해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성경말씀을 우리의 마음대로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가정에 주는 핵심입니다.

 

이에 오늘은 성경이 우리에게 엄격하게 증거하고 있는 이 말씀에 근거해서 “건강한 가정의 패러다임”이라는 제목으로 건강한 가정의 패러다임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올바른 관계성을 가진 가정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있는데 그것은 관계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관계,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이 관계성을 바로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를 믿을 때에 의롭게 된다는 것은 관계성이 바로 되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받을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관계성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요, 두 번째로는 우리 가정과의 관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관계성이 가장 잘 정립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가정입니다.

사랑의 관계, 신뢰의 관계, 행복의 관계, 우리의 삶의 성취의 관계, 기쁨의 관계 등 우리 가정은 관계성을 통해서 존재성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아내와 결혼했을 때 새로운 남편이라는 존재가 되고, 제 아내도 아내라는 존재가 됩니다.

자식을 낳을 때에 그 순간에 나는 새로운 존재가 되는데 아들의 아버지가 되는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이는 곧 관계성 때문입니다.

손자를 낳았습니다.

손자를 낳은 순간에 머리가 하얗게 되고 쉬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손자가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는 할아버지라는 새로운 존재가 되는데 그것은 관계성 때문입니다.

그런데 관계성이 가장 건실하게 이루어진 관계성이 우리들의 가정에서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가 올바르게 정립되었을 때 우리의 가정은 건강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 오늘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엡 5:22-23)

 

계속해서 성경은 증거합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엡 5:25-28)

 

여기에서 ‘사랑’이라는 말은 우리가 육체적인 에로스의 사랑이 아닙니다.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이는 무조건적인 희생적인 사랑으로 하나님께서는 “아내를 사랑하고 그를 보호하고 양육하라”고 하는 책임을 우리 남편들에게 주었습니다.

혹 여자에게 있어서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는 이 말씀이 거슬릴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이기 때문에 성경말씀대로 증거합니다.

여러분 중에도 편견을 가지고 “어떻게 남편이 나의 머리가 될 수 있느냐 내가 어떻게 남편에게 복종하느냐”고 이의를 제기할지는 모르지만 나는 내 인간적인 생각과 문화에 따라서, 현대에 어떤 사조에 따라서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영원 불변의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여러분에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남편이 여자의 머리가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보면 그 당시 헬라 문화라든지 유대문화에 따라서 바울이 이렇게 얘기하지 않았느냐 혹 생각지는 모르지만 여러분 예를 들어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기관에는 머리가 있습니다.

나라에는 대통령이라는 머리가, 학교에는 교장선생님, 대학에는 총장, 회사에는 회장이 있습니다.

 


어느 조직체이든 그 속에 머리가 있습니다.

그 분이 우리보다 더 뛰어나고 특별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유기체 속에는 책임질만한 머리가 있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가정에 머리가 누구겠습니까?

이는 남편 되는 사람이 가정의 머리가 되고 가정을 인도해 갈 책임이 있다는 뜻입니다.

조금 부인보다 능력이 부족하거나 여자가 열등하거나 가치가 덜하거나 그래서가 아닙니다.

이 가정이라는 유기체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역할분담을 해야 되고, 기능적인 면에서 질서가 있어야 되겠기에 남편 더러 이 가정에 머리가 되고 아내의 머리가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미 결혼하게 되면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됩니다.

이것이 가정입니다.

둘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가정이고 이 신비를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기관에 머리가 둘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것은 아주 괴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에 성경은 우리에게 이 가정의 머리, 아내의 머리는 남편이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성경은 모든 질서를 잡기 위해서 복종하여야 되는데 그 방법에 대하여 증거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21)

 

서로 복종하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내를 사랑한다고 할 때에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의 말에 남편은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아내의 말을 듣지 않는 남편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편견을 가지고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서로 복종해야 되고 그리고 가정의 책임을 누가 져야 하겠습니까?

주인이 되는 남편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질서를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아내의 머리가 되고 복종하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남편은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데 이는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바칠 정도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보호자가 되고, 그를 양육하고 돌보는 책임이 남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런 올바른 관계가 바로 될 때에 이 가정은 건강한 가정이 됩니다.

이 관계성이 깨지거나 잘못되게 되면 영적인 생활에도 상처가 오고 기도도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가정의 평화를 파괴하고 화목한 가정이 되지 못하고 때로는 결손가정이 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른 관계를 가지는 가정이 건강한 가정이 되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2. 협동성과 역할 분담이 잘된 가정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협동성’을 영어로는 ‘파트너십’이라고 얘기합니다.

가정은 협동성과 역할분담이 잘되는 공동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기체라고 말합니다.

결혼하게 되면 서로 다른 인격체가 하나가 되는 신비스러운 체험을 합니다.

이것은 둘이 아닙니다.

하나가 됩니다.

육체적으로 성적인 관계를 통해서 하나가 됩니다.

정신적으로 하나가 됩니다.

또 우리는 영적으로도 하나가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신비스러운 새로운 존재로 탄생됨을 말합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엡 5:3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몸이 된다는 말을 저는 ‘시멘트’에 비유합니다.

건설공사 현장을 가 보십시오.

늦은 오후 레미콘 차가 와서 ‘시멘트’를 붓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와서보면 딴딴하게 굳어 있습니다.

이것이 시멘트입니다.

하나님께서 짝 지워주신 짝은 이 시멘트와 같이 딱 굳어집니다.

깰래야 깰 수 없도록 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짝 지워 주신 것을 사람이 어찌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프랑스에 ‘레 살레’라는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내외가 하나가 되는 가정은 아교가 좋으면 두 개의 나무 조각이 잘 붙어서 서로 단단히 접착되었기 때문에 설사 다른 것이 떨어지더라도 아교로 붙은 것은 떨어지지 아니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남편과 아내를 그 자신의 피로서 아교와 같이 딱 붙게 하셨습니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될지언정 남편과 아내는 결코 분리 될 수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남편과 아내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관계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하나가 되어서 가정을 이루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임재하셔서 우리 가정을 건강한 가정, 행복한 가정으로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십니다.

어느 의사부부가 가족문제가 생겨서 목사님께 상담을 하러 찾아왔습니다.

목사님께 상담을 하는데 부인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목사님, 제 남편은 언제나 분석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제가 고민합니다.”

분석적으로만 본다는 것이지요, 왜 그랬을까요?

그러니까 남편이 옆에서 듣다가 말합니다.

“목사님! 내 아내는 언제나 저를 다른 남자와 비교해서 생각합니다.”

 

가정에서 분석해 보고 분류해 보는 방법으로는 하나가 될 수가 없습니다.

파트너십, 즉 역할분담을 잘해야 되고,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웨슬리 선생은 가정의 행복을 별로 누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부인은 웨슬리 선생의 복음 전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전도하러 가서 돌아오면 왜 이제 왔느냐고 웨슬리를 괴롭히는데 어떤 책을 보니까 웨슬리의 머리를 잡고 온 방을 끌로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니 웨슬리가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나중에는 부인이 웨슬리가 전도하러 갔을 때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에 88세에 세상을 떠날 때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 것이 제일 좋다.”

 

가정의 행복을 맛보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함께 계시므로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웨슬리의 아내는 역할분담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아내도 악처라고 합니다.

그의 아내는 늘 톨스토이에게 질투하고 의심을 품고 잔소리하고 불평을 했기 때문에 남편이 늘 마음이 불안하고 불행하게 지냈습니다.

나중에 톨스토이가 시베리아 어느 간이역에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톨스토이의 아내가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에 남편이 죽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톨스토이가 죽은 후에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죽음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자식에게 고백한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아내도 남편을 괴롭게 한 것을 스스로 고백했다고 합니다.

 

아브라함 링컨도 선량한 성품의 사람입니다.

남에게 존경을 받았지만 부인이 너무나 난폭하고 무례하기 때문에 점점 멀어져서 호텔에서 지내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남편의 건강은 아내에게 있습니다.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식생활 면에서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아내가 남편에 대해서 존중히 여기고 사랑하고 귀히 여기면 이 남편은 건강하게 해로할 수가 있습니다.

남편의 마음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우면 그는 무슨 병에 걸려도 걸리게 되어 세상을 떠납니다.

 

아내의 건강도 남편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 때문에 희생적으로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고 출근했다가도 제시간에 돌아와서 아내를 돌보고 가정을 돌보는 세밀한 관심을 가질 때 그때 아내는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성경은 잠언 21장 19절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가정의 파트너십이 안되면 사막에서 혼자 있는 것이 낫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가 바로 서야 합니다.

서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협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이 건강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역할분담!

신뢰하고 화평을 누리고 서로 자기의 성취를 한 몸으로 이루고 나갈 때에 우리의 가정은 건강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3. 서로 책임을 지는 가정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은 가장 높은 책임을 지는 단위입니다.

가정에서 의무감과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 나라를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책임질 줄 알고 의무를 감당할 줄 아는 지도자가 됩니다.

가정에 책임감이 없고 의무감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사회에 책임을 지고 어떻게 백성들을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가정에서부터 여러분의 자녀를 책임질 줄 알고 그를 위해서 의무를 가지는 자녀들이 될 때에 사회와 나라가 건강하게 될 것입니다.

 

한편 남편은 아내와 더불어 결혼생활을 함에 있어 깨끗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는 언제나 깨끗해야 합니다.

정결해야 합니다.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거룩하게 아주 깨끗하게 주님 앞에 구별된 가정이 기독교인의 가정입니다.

주름잡힌 것이 없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가정에서 주름 잡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가정에서의 주름이란 성격이 급하거나, 무례하게 분노를 터뜨리거나, 약속을 어기거나, 서로에게 무관심하여 서로의 생일도 모르고 결혼한 날짜도 모르고 무심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이럴 때 흠이 잡히는 것입니다.

오늘 사랑하는 아내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돌볼 때에 건강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7)

 

이것이 건강한 가정에 대한 성경의 증거입니다.

지극히 아내를 돌보고 사랑하고 동거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기도의 파이프라인이 끊어지지 않도록 서로 아끼고, 돌보고, 연약한 그릇으로 지키는 책임감 있는 인생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한편 남편이나 아내나 의식주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자녀를 양육해야 할 책임이 있어야 합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가정에서 자녀가 양육을 못하면 학교에서나 사회에서 제대로 양육할 길이 없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면류관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잘 양육하고 주의 말씀으로 훈계하고, 올바른 교육을 한 결과 자녀가 큰일을 했을 때 부모는 존귀히 여김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를 존귀히 여기고 양육하고 책임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에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이것이 아버지의 책임이요 어머니의 책임입니다.

자녀들에게 좋은 것으로 유산을 남겨 줄려고 하는데 가장 중요한 유산은 기도를 남겨 주어야 합니다.

가정예배 드리는 것을 남겨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것을 남겨줄 때 여러분의 자녀들은 건강한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잘 섬기면 틀림없이 그 자녀들도 부모를 잘 섬기고 교회를 잘 섬기고 건강하며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이 없는 곳에는 나라도 없고 사회도 없습니다.

거듭 얘기하지만 가정을 대신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미국 중부에 어느 소년이 책가방을 들고 늘 통학을 하는데 기차 철로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혼자 가방을 메고 학교를 가는데 홍수가 나서 그 기차가 지나가는 철로가 끊어 졌습니다.

 


이 소년은 당황했습니다.

조금 있으면 기차가 지나갈 때가 되었는데 철로가 끊어진 것을 모르고 지나가게 될텐데 어떻게 차를 멈추게 할 수가 없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저기 멀리서 기차가 달려옵니다.

아무리 웃옷을 벗어서 흔들어도 기차는 멈출 줄 모릅니다.

그 때 소년은 칼을 꺼내서 자신의 넓적 다리에 있는 대동맥을 끊어서 자신의 흰 셔츠를 벗어 그 피에 적셨습니다.

붉은 깃발을 만든 것입니다.

기차는 빨간 기를 보아야만 멈추기 때문입니다.

이에 소년은 피를 적신 기를 흔들며 “스톱! 스톱!”을 외치며 달려갔습니다.

그 때에 기관사가 붉은 깃발을 흔들며 달려오는 소년을 보고서 브레이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 소년 앞에서 멈췄습니다.

소년은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셔츠를 들고 얼굴이 창백한 채 쓰러졌습니다.

기관사가 급히 내려서 보니 철로가 끊어져 있었습니다.

기관사는 시체가 된 어린 소년을 붙들고서 말합니다.

“우리를 살리려고 네가 피흘려 죽었구나.”

기차에 탔던 수백 명의 승객들이 내려와서 그 소년 앞에 모자를 벗고 무릎을 꿇고 우리를 위해 대신 죽었다며 슬퍼했습니다.

그 기차에는 부통령이 타고 있었고, 이 소년이 메고 있던 가방을 보니 어린 소년의 손때가 묻은 신약성경이 들어 있었습니다.

소년은 친구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을 성경에서 배웠습니다.

가정에서 배웠습니다.

교회 주일학교에서 배웠습니다.

건강한 가정에서 배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가정이 병들었습니까?

상처투성이입니까?

여러 가지 병들을 앓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건강한 가정의 패러다임, 건강한 가정으로 돌아가는 여러분의 가정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과일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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