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기독교는 효(孝)의 종교입니다! (엡 6:1-3)

성령충만땅에천국 2015. 8. 20. 08:44

기독교는 효(孝)의 종교입니다! (엡 6:1-3)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성경은 가정의 의미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창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먼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면서 맨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인간을 위해 에덴동산을 창조하셨고, 마지막으로 가정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가정이 하나님의 창조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가정을 중요한 자리에 두셨을까요? 인간이 가정 안에서 천국의 행복을 미리 맛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공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곳이 가정입니다. 아무리 성공하고 출세해도 그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곳 가정이 없으면 그것은 기쁨일 수 없습니다. 또한 실패의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곳이 가정입니다. 아무리 큰 실패를 겪고 더 나아갈 수 없는 사면초가의 위기를 겪어도 가정이 있으면 추스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클린턴 가드너'라는 사회학자는 '모든 것을 다 잃어도 가정이 있으면 아직 다 잃은 것이 아니지만 모든 것을 다 가져도 가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기반이 무너지고, 삶의 의미도 무너지고, 삶의 의욕도 무너집니다.
  여러분! 우리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든지 돌아가고픈 곳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든지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든지 따뜻한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야말로 안식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행복한 가정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기 위해 물도 주어야 하고, 거름도 주어야 하고, 가지치기도 해야하고, 해충도 잡아주어야 하고, 잡초도 뽑아주어야 하고, 공들이는 노력이 끝도 없는 것처럼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땀을 흘려야 합니다. /아멘!/
  
  ▶아름다운 가정!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먼저 몇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⑴사랑의 원리입니다. 주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도 남편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형이 동생을, 동생이 형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린 왕자'의 작가 '생떽쥐베리'는 비행기 조종사였습니다. 하루는 그가 비행기를 몰고 상공을 날다가 난기류에 휘말려 도착한 사막에는 한 조각의 빵도, 한 모금의 물도 없었습니다. 그가 며칠 후에 기적적으로 구조되었을 때에 기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식량과 물이 없는 사막에서 당신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까?' 생떽쥐베리는 잠시 입가에 미소를 지은 다음 입을 열었습니다. '나를 사막에서 버티게 해준 것은 한 덩어리의 빵도, 한 모금의 물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사랑은 그리움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할/
  ⑵신뢰(믿음)의 원리입니다. 믿고 의지하며 맡기는 것, 가족 간에 이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⑶헌신의 원리입니다. 가족 서로간에 헌신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⑷감사의 원리입니다. 가족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부부가 서로 고마움을 표시하고, 부모가 자녀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자녀가 부모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아멘!/
  ⑸의사소통의 원리입니다. 서로 자주 대화가 있어야 합니다.
  ⑹함께 하는 시간의 원리입니다. 함께 식사하고, 함께 교회에 가고, 함께 놀러가고,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이 가지면서 가족 간의 사랑을 키워간다는 말입니다.
  ⑺용납하고 이해하는 화목의 원리입니다. /할/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한국교회가 어버이 주일로 예배를 드립니다.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나서 한평생을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부모의 은혜와 조국의 은혜, 이 3대 은혜 속에서 일생을 살아갑니다, 뿌리 없이 자란 나무가 없듯이,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할/ ◀제목 소개!▶

 

  ①기독교는 효를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평생을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부모의 은혜와 조국의 은혜, 이 세가지 은혜 속에서 일생을 살아갑니다, 뿌리 없이 자란 나무가 없듯이,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주제가 효도입니다. 성경을 보면 효도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단순한 인륜의 차원에서 마땅한 도리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비와 사랑의 차원에서 전하는 권고사항도 아닙니다. 지엄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기독교를 오해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독교를 몰아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몰라서 무식해서 하는 소리입니다. 기독교는 살아생전에 부모님을 잘 섬기라고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아멘!/
  기독교가 불효하는 종교가 아닌 증거는 먼저, 십계명을 보아서 기독교는 불효가 아닙니다.
성경에는 약 600여 가지의 계명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기본적인 계명이 십계명입니다.
  이 10계명은 또 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명령으로 1에서 4계명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명령으로 5에서 10계명입니다.
  출20:12절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그리고 신5:16절에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이 말씀들은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명의 말씀입니다. 1-4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입니다. 그리고 5-10계명은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입니다. 이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 중 첫 번째 계명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인 엡6:2절에 보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는 말씀입니다. /할/

 

  ㉠이 계명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교훈이 몇 가지 있습니다.
  ⑴효도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 중에 첫 번째 계명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인간다움의 우선적 요건이 효도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 오늘의 자기를 있을 수 있도록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그 은혜를 갚는 것이 인간다움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⑵효도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 중에 유일하게 적극적 계명이라는 점입니다.
  십계명 중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다른 계명들은 다 '...하지 말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이 효도에 대한 계명만은 '...하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효도는 적극적으로 찾아서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효도는 잘하면 잘 할수록 더 좋은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할/
  ⑶효도만이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다른 계명과 달리 약속이 있는 계명입니다.
  다른 계명들은 '...하지 말라'고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포괄적으로 '이 계명들을 지키지 않으면...' 하고 경고가 붙어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효도라는 계명만은 하나님께서 잘 지킬 경우 장수의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인센티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서라도 꼭 지키게 하시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이 십계명 외에도 효도에 대한 말씀은 성경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예를 들면 레19:3절을 보면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23:25절에 보면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잠16:31절에서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또 잠30:17절에 보면 '아비를 조롱하여 어미를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도 하셨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효도는 이처럼 하나님께서 힘주어 강조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래서 효도는 반드시 해야 하고, 만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효도는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점에서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아멘!/

 

  ㉡세상에서 가장 큰사랑을 어버이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람들이 알기 쉽게 비유로 말씀한 내용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눅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가 대표적인 비유입니다. 아버지를 버리고 외국에 가서 허랑 방탕하게 살다가 거지가 되어 돌아오는 아들은 아버지가 자기를 품꾼의 하나로만 써 주어도 좋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 생각 속에는 '아버지가 대문을 굳게 잠그고 나를 안 받아들일 수 도 있고, 하인들을 시켜서 내 쫓을 수 도 있고, 네가 오든 안 오든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다. 방치할 수 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한 생각'입니다.
  '그렇게 해도 할 수 없다. 할 말이 없다. 그저 너그럽게 생각해서 나를 품꾼의 하나로 써 주신다면 그저 고마울 뿐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아들에게 부모님은 그 아들이 생각했던 모든 가능성을 다 뛰어 넘어 아들이 상상할 수 없었던 사랑으로 대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탕자의 비유처럼 부모님의 사랑을 통하여 우리가 알기 어려운 하나님의 크고 무한한 사랑을 설명하는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이것은 바꿔 말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큰사랑은 부모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다음은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할/
  ▶다윗의 자식 사랑을 보세요! 구약 성경에 나오는 다윗 왕은 파란 만장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사랑을 잘 실천했던 사람입니다.
  다윗의 아들 가운데 압살롬이라는 정말 잘생긴 아들이 있었습니다. 다윗도 이 아들을 신임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자기가 왕이 되겠다는 못된 생각을 품고 아버지를 반역하여 난을 일으킵니다.
  갑작스럽게 당한 일인지라 다윗은 우선 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정도 상황을 수습한 다윗의 군대와 압살롬의 군대가 운명을 건 한판 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서도 다윗은 자기 부하들에게 '나를 생각해서라도 내 아들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고 신신 당부를 합니다.
  싸움이 한창 진행되는 가운데 압살롬이 말을 타고 숲을 빠져나가다가 그만 상수리나무에 머리가 걸려서 나무에 동동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이 장면을 목격한 다윗의 신하가 요압 장군에게 보고합니다. '죽일 수 도 있었지만 다윗 왕이 한 말을 들었기에 죽이지 않고 보고를 하는 것입니다.' 보고를 받은 요압은 뭘 지체하느냐는 듯 창을 던져 압살롬의 심장을 꿰뚫습니다.
  전쟁은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다윗이 승리한 것입니다. 다윗은 왕위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나라는 안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쁜 소식이었습니까?
  그런데 압살롬이 죽었다는 보고를 받은 다윗은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하면서 하염없이 울기 시작합니다. '네가 죽지말고 내가 죽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우는데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군사들이 민망할 정도로 그렇게 심하게 울고 있었습니다.
  효도한 자식이 죽은 것이 아닙니다. 장래가 촉망되던 아까운 자식이 죽은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를 배반한 자식이요 아버지를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려고 했던 배은망덕한 자식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안타까웠습니다. 내가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잘못 가르쳐서 저렇게 됐다고 자신을 책망합니다. 그러면서 우는 것이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이런 부모님의 마음이 곧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아무리 잘못하고 배은망덕하고 씻지 못할 죄를 지었다 하드라도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돌아오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다 용서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버이의 사랑보다 훨씬 크고 넓습니다. 그 가슴으로 품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할/

 

  ②왜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가?(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여기 '이것이 옳으니라'는 말이 원문에는 '왜냐하면 이것이 옳기 때문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부모 공경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부모에게 무엇을 바라서가 아니라 그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옳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의로운 말이다'라는 뜻입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합당하다는 의미라고 했고, '칼 바르트'는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창조의 질서'라고 했습니다. 또 '옳으니라'는 말은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봄이 오면 눈이 녹고 꽃이 피는 것은 당연합니다. 5월이 되었는데 싹이 나지 않는 나무는 죽은 나무가 틀림이 없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아멘!/

 

  ㉠그렇다면 왜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가?
  ⑴생명을 부모를 통해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할/
  ⑵부모님이 나의 스승이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대학에서 높은 학위를 얻었다는 이유로 교수를 스승으로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그런 학위는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학문적 진리를 가르치지 못했다 할지라도 나에게 생명의 기본 원리를 가르친 분들은 우리의 부모님이십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나에게 언어를 가르쳤습니다. 어린 시절 인간의 기본 됨에 대하여 부모에게 배웠습니다. /믿/
  ⑶아낌없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그 누가 나에게 아낌없이 주려는 분이 있습니까? 오직 부모님만이 자녀들에게 아무런 대가없이 주고 떠납니다.
  ⑷부모는 사랑의 원천입니다. 에로스 사랑은 시기가 있고 질투가 있고, 거짓이 있습니다. 친구의 사랑에는 배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은 진실이요, 순수한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⑸부모는 나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입니다.
  명절이나 어떤 일로 인해 부모가 계시는 고향 마을을 찾아가는 사람의 마음이 왜 그토록 흥분하겠는가? 부모의 집에 머무는 시간이 왜 그토록 평안하게 만드는가? 아무리 어려운 역경, 환경 중에서도 부모의 품안에서 사람은 왜 위로 받고 소망을 얻을 수 있는가? 그 곳은 순수한 사랑의 보금자리이며 마음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⑹신학적으로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와 같기 때문입니다. 내 생명이 부모로부터 왔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대리하여 나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생명 창조 역사에 함께 참여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처럼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⑺부모는 하나님의 계시자입니다. 아버지를 통하여 아버지 같으신 하나님을 배웁니다. 공의와 진노,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배웁니다. 어머니를 통해서 용서와 자비, 생명을 품는 성령이신 하나님을 배웁니다.
  부모는 하나님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스승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거역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할/


  ㉡부모의 사랑은 네 가지 성격이 있습니다.
  ⑴먼저사랑입니다. 사랑도 값이 있습니다. 먼저사랑이 더 고급사랑입니다. 부모사랑이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 보다 더 큰 것은 먼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⑵한 몸 사랑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자기 몸처럼 사랑합니다. 자식이 팔을 다치면 내 팔을 다친 것 같은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⑶불변한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자식에게 버림을 받은 부모들에게 인터뷰를 해 보면 마지막 한마디씩은 남깁니다. '그놈들 잘 살면 내가 보람을 느끼지요' 버림을 받았는데도 사랑이 변하지 않습니다.
  ⑷끝까지 사랑합니다. 책임지는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이런 요소가 있기 때문에 우리 자식이 아무리 부모를 사랑해도 부모사랑에는 비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성공하고 잘되면 기쁨의 눈물을 흘립니다. 자식들이 아프고 실패를 하면 그들의 불행을 안고 또 우는 눈물이 있습니다. /할/
  ▶성경에서 최고의 효자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하고 아버지 뜻을 이루려고 자기를 부정하고 마음을 비웁니다. 그래서 하늘로부터 들려준 음성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성경의 효자의 첫 사람이 이삭입니다. 이삭은 죽기까지 순종하면서 모리아 산에서 예수님의 모형을 이룹니다. 이삭은 성경에서 효자의 모형입니다. 두 번째 효자가 요셉입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어린 시절부터 효자였습니다. 요셉은 그의 삶을 통하여 예수님의 인격을 보여주는 모형이 되었습니다.
  룻은 시어머니에게 효도한 며느리였습니다. 룻은 그리스도를 맞이할 신부의 모형을 계시해 주었습니다. 잠1:8-9절에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
  부모를 공경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자는 그 머리에 아름다운 금 면류관을 쓴 것과 같고 목에 금 사슬을 건 것처럼 빛나게 됩니다.
  ▶창9장에 보면 노아가 술 취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오랜 홍수에 지친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장막에 벌거벗고 잠이 들었습니다. 이것을 본 함이 밖에 나가 흉을 보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겉옷을 가지고 들어가 뒷걸음질 쳐서 그 하체를 덮었습니다.
  노아가 술이 깬 후 이 사실을 알고 함에게 저주를 합니다. 창9:25절에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또 셈과 야벳에게는 축복을 합니다. 26-27절 에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이 일로 함의 가문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후손이 되었고 셈과 야벳은 하나님을 섬기는 축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멘!/

 

  ③우리의 공경의 대상이 누구인가?(1-2)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이라고 했고, 2절에서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부모는 성경에 여섯 가지로 설명합니다.
  ⑴육신의 부모입니다.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입니다.
  ⑵나라의 왕을 부모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나의 아버지여!'라고 불렀습니다.
  ⑶고용주나 주인에게 아버지라 불렀습니다. 종들이 나아만에게 '아버지여!'라고 불렀습니다.
  ⑷주의 종을 아버지라고 합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나의 아버지여'라고 불렀습니다.
  히13:17절에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⑸직장의 상관, 지도자들, 교회의 지도자도 아버지라는 개념이 됩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나의 자녀들아'라고 불렀습니다. 디모데가 바울을 보고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⑹인생의 삶의 무대에 있는 모든 연장자가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레19:32절에 '너는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라고 하였고, 딤전5:1-2절에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인생 역사의 무대 위에서 수많은 경험과, 수없이 많은 격전지를 통과한 노인을 공경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왕상12:1절 이하에 보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솔로몬 왕이 별세한 후에 그의 나이 41세에 세겜에서 왕이 됩니다. 이때 신하들이 왕에게 찾아와서 선왕 솔로몬 때보다 고역을 경감해주기를 청원했습니다,
  이때 늙은 신하들은 그것을 허락하라고 하고, 젊은 연소자들은 허락하지 말라고 하자, 이때 르호보암 왕은 늙은 신하들의 말을 버리고 연소자들의 말을 따랐다가 그 10지파는 배반하고 돌아서서 따로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고 애굽에 망명해있던 여로보암을 맞이하여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그리하여 르호보암은 남부에 있는 유다와 베냐민의 두 지파 만을 통치하게 되었고, 열 지파를 빼앗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풍부한 경험이 있는 노인은 지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노인들에게서도 지혜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욥12:12절에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라고 하였습니다.
  ▶'트루먼' 대통령은 백악관을 출입할 때마다 경비들에게 정중히 경례를 하였습니다. 측근들이 '왜 대통령이 경비들에게 그렇게 정중히 경례하느냐?'고 묻자 트루먼은 대답합니다.
  '나는 그들의 인격과 충성심에 존경을 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사람을 존경할 줄 아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그런데 연로하신 부모님을 공경하는 사람을 어찌 축복하지 않겠습니까?
  ▶병원에서 근무하던 의사가 목사님을 만나 개탄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병원에서 일하다보니 자식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왜 그런 말을 하십니까?' '자식이 아파서 병원에 온 부모들은 의사를 붙잡고 돈이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자식을 고쳐 달라고 사정을 합니다. 그런데 노부모를 모시고 온 자식들은 얼마나 사시겠냐고 죽는 날만 묻습니다.' 자식이 아프면 부모는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하지만, 부모가 아프면 살려 달라는 자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주는 말입니다. /아멘!/

 

  ④공경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힘을 다해 순종해야 합니다(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그렇습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은 순순히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순종은 계속 진행의 의미가 있는데, 한 번만 순종함이 아니고 계속해서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틴 루터'는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서슴없이 말합니다. 부모님의 말에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성도입니다.
  ▶어느 마을에 화목하기로 소문난 집이 있었습니다. 동네사람마다 그 집을 부러워합니다. 한번은 화목치 못한 집의 노인이 화목한 집에 방문하여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화목한 집의 노인은, '우리 집이 왜 화목한지 보여주겠다.'며 큰아들을 불렀습니다.
  '얘야, 내 앞에서 춤추고 노래 불러라' 나이가 40이 넘은 아들은 아무 대꾸 없이 아버지 앞에서 춤추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둘째 아들을 부릅니다. '뒷마당에 가서 감을 따오너라' 하고 명하였습니다. 감 열매가 겨우 맺히기 시작하는 철인데 둘째는 이유도 묻지 않고 감 열매를 따왔습니다.
  셋째 아들을 불러 '막내야, 외양간에 있는 소를 지붕에 몰고 올라가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셋째 아들은 소를 몰고 지붕에 올라가기 위해 사다리를 놓고 야단법석을 하더랍니다.
  그때 노인은 말합니다. '우리 집안의 화목은 자녀들의 순종에 있다네.'
  ▶한 소년이 바다를 정복할 꿈에 부풀어 뱃사람이 되리라 다짐했습니다. 소년은 배에 짐을 싣고 어머니에게 작별인사를 드립니다. 그 때 어머니는 아들을 붙잡고 눈물만 흘리며 만류합니다. 이때 소년은 생각을 바꿉니다.
  '어머니 눈에 이렇게 눈물을 흘리게 하고 내 꿈을 좇아갈 수 없다.' 다시 짐을 풀고 어머니에게 순종합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잡으며 말합니다.
  '성경에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는 복을 받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내가 근심하는 것 때문에 꿈을 포기한 너에게 하나님이 큰복을 주실 것이다.'
  그 뒤로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였으며, 소년은 훗날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되었습니다. 그가 어머니의 뜻을 저버리고 떠났더라면, 이름난 선장이 되었을지 몰라도 대통령이 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눈물을 거둔 순종이 대통령이 되는 축복까지 얻게 만든 것입니다. /할/
  여기 '순종하다'는 '휘파쿠오'란 단어입니다. '밑에서' 라는 '휘포'와 '듣는다'의 '아쿠오' 라는 말이 합쳐져 생긴 말로서 '아래서 듣는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즉 진지하게 진솔하게 듣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야 합니다. 부모의 말씀을 선택해 들어서는 안됩니다.
  어버이의 말씀을 들었을 때 납득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시하기도 하고, 때로는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버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납득하기 힘들 때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따를 필요가 있습니다. 따를 수 없을 때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골3:20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모든 일에 순종하십니까? 힘을 다하여 모든 일에 순종할 수 있는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전심으로 공경해야 합니다(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공경은 순종 이상의 미덕이며, 부모에 대한 순종의 기초가 됩니다.
  공경으로 번역된 헬라어의 원 뜻은 '높은 가격을 매기다. 소중히 여기다. 가치 있게 여기다'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어로 '카베드'인데 '간', '무거운 것', '영광된 것', '존경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부모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며 귀중히 여기라는 뜻이요, 자기의 간처럼 소중하게 여기라는 뜻입니다. /할/
  ▶미국의 20대 대통령 '가필드'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날, 시간이 다 되어도 식장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한참 후 대통령이 한 노인을 부축하며 식장에 들어섭니다. 다름 아닌 자신의 어머니였습니다.
  가필드는 늙은 어머니가 취임식장에 가지 않겠노라고 말하자, '어머니가 안 가시면 저도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어머니를 설득하여 모시고 나온 것입니다.
  그는 취임 연설에서, '제가 이렇게 영광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도 다 어머니의 은혜입니다.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하였기에 대통령 자리에 앉게 된 것입니다.'라며 어머니의 은혜를 보답하며 말하자 참석한 많은 이들이 감동하게 되었습니다. /할/
  ▶'나폴레옹'이 폴란드를 침략해 들어갈 때였습니다. 농촌에 있던 한 영주가 나폴레옹 황제를 만찬에 초대했습니다. 나폴레옹과 부하들을 위해 식탁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런데 영주는 좌석을 배치할 때 나폴레옹을 상석에 모시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좌석에 나폴레옹 황제를 앉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부하들이 화를 내며 '황제를 이렇게 대우할 수 있는가?' 말합니다. 그러자 주인이 대답합니다. '이 자리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앉으실 자리입니다. 나라에서는 황제가 최고 어른이시지만 집안에서는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제일 어른이십니다.'
  이 말을 들은 나폴레옹은 영주의 효성에 감탄하고 오히려 칭찬했다고 합니다. /할/

 

  ㉢진심을 가지고 부모님을 '기쁘게, 즐겁게' 해 드려야 합니다.
  ▶82세의 노인이 45세 된 아들과 거실에 마주 앉아 있습니다. 그 때 우연히 까마귀 한 마리가 창가의 나무에 날아와 앉았습니다. 노인이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저게 뭐야?' 아들은 말했습니다. '까마귀에요. 아버지!' 조금 후 다시 물었습니다. '저게 뭐야?' 아들은 다시 '까마귀라니까요.'
  조금 뒤 또 물었습니다. 세 번째였습니다. '저게 뭐야?' 아들은 짜증이 났습니다. '글쎄 까마귀라구요!' 아들의 음성엔 아버지가 느낄 만큼 분명하게 짜증이 섞여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뒤 다시 물었습니다. 네 번째였습니다. '저게 뭐야?' 아들은 그만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까마귀, 까마귀라구요! 그 말도 이해가 안되세요? 왜 자꾸만 같은 질문을 반복해 물으세요?' 그러자 아버지는 방에 들어가 때가 묻은 일기장을 들고 나왔습니다. 펴서 아들에게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읽었습니다. 거기에는 자기가 세 살 때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은 까마귀 한 마리가 창가에 날아와 앉았다. 어린 아들은 '저게 뭐야?' 하고 물었다. 나는 까마귀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런데 아들은 연거푸 23번을 똑 같이 물었다. 나는 귀여운 아들을 안아주며 끝까지 다정하게 대답해주었다. '까마귀라고!' 아들에게 사랑을 준다는 게 기뻤다.'
  어버이는 끝없이 우리를 기쁘게 해주셨는데 우리는 얼마나 어버이를 기쁘게 해드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까? 잠23:25절에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어버이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효를 행하는 일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생명의 연장으로 생각합니다. 자식이 잘되면 자기가 잘되는 것보다 더 기뻐합니다. 자기가 성공한 것보다 더 좋아합니다. 자랑하고 싶어서 못 견딥니다. 그것이 자식을 낳은 부모의 보람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의 퇴계 이황(李滉)은 효자로 유명합니다. 노년에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내려가기 원했습니다. 임금이 그 이유를 묻자 고향에 내려가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의 여생을 보살펴 드리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임금은 이황을 조금이라도 더 옆에 두고 싶은 생각에 '어머니를 한양으로 모셔 오지요. 그러면 나라에서 잘 돌보아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이황은 정중히 거절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제 어머니는 시골에서 태어나 평생을 흙과 더불어 살아오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면 제가 고향으로 내려가서 어머니와 함께 흙을 밟고 흙과 더불어 살아야만 합니다.'
  부모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할 때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할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 교포들은 연로하신 부모님들을 효도관광을 보내드릴 때 주로 미국 북동부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에 보내드린다고 합니다.
  좋은 곳이 많은데 하필이면 왜 나이아가라 폭포냐고 하겠지만, 나이아가라 폭포에 한번 갔다오면 10년 정도 더 젊어지신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부모님들이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 가서 '나이야 가라! 나이야 저리 썩 물러가거라!'하고 돌아오면 훨씬 젊어진다는 것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부모님에게 여행을 많이 보내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여행은 즐겁습니다. 그리고 자식 자랑의 소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릴 수 있지만 부모님이 좋아하시며 기뻐하시는 일을 해 드려야 합니다. /할/
  ▶조선 영조 때 이양필(李陽馝)이라는 정승이 있었습니다. 그는 양반 출신도 아니고 부잣집 아들도 아니었습니다. 부모는 농사지을 땅이 없어 품을 팔았습니다. 집이 너무 가난하여 서당에 다닐 수 없던 그는 혼자 책을 보며 공부했습니다.
  하루는 동네 어른이 지나가다, 마당 한복판에 자리를 펴놓고 공부하고 있는 여섯 살 난 양필이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상의도 입지 않은 몸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양필아,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공부하지 않고 왜 거기에서 하고 있느냐?' '예, 아버지 어머니가 지금 남의 집에서 고생하고 계시는데, 제가 어떻게 시원한 그늘에서 공부할 수 있겠습니까? 저도 고생하며 공부해야지요.'
  그런 자세로 부모를 기쁘게 하던 그는 서민의 아들로서도 신분이 엄격한 시대에 정승이 되었던 것입니다.
  ▶어느 아버지가 5남매 대학 공부시키고 결혼까지 시켰습니다. 몸이 쇠약해지면서 중한 병에 걸렸습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자식과 며느리, 사위를 불러모았습니다. 그리고 말을 꺼냅니다.
  '사실은 내가 사업하다 빚을 졌다. 이자가 불어서 7억이 됐구나. 그렇다고 빚을 남기고 죽을 수도 없고. 그래서 너희들이 조금씩 갚아주면 좋겠구나. 종이에 갚아줄 수 있는 액수를 적어라.'
  아버지의 말에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하고 서로 얼굴만 보고 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어렵게 사는 셋째 아들이 5천만 원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형제들도 마지못해 천만 원, 천5백만 원, 2천만 원 이렇게 적었습니다.
  몇 달 후 아버지가 다시 소집합니다. 또 무슨 말씀을 하시려나 걱정하며 모였습니다. 아버지가 입을 엽니다. '그동안 고민 많이 했다. 유산 조금 남은 것 갖고 내가 죽은 후에 너희들이 반목할까봐 걱정하다 이런 생각을 해냈다. 지난 번 적은 액수에 5배씩 계산해서 주겠다. 이것으로 상속은 끝이다.' 그 때 자녀들의 얼굴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할/
  ▶어느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새가 된다면 무슨 새가 되고 싶니?' 어린이들은 공작새가 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꾀꼬리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종달새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어린이가 말합니다. '선생님, 저는 까마귀가 되고 싶어요' 모두가 웃었습니다. 기이해 여긴 선생님은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다른 새들은 예쁘기도 하고 노래도 잘하지만 부모에게 무관심해요. 그러나 까마귀는 모양은 흉하지만 자란 뒤에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대요. 또 어떤 일이 있어도 어미보다 높은 가지에 앉는 법이 없대요. 나는 그런 까마귀가 좋아요.' /할/

 

  ⑤부모에게 효도하는 자식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여기 '네가 잘 되고'라는 의미는 '행운이 깃든다', '형통하다', '복이 된다'는 뜻으로 이것은 곧 형통의 복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곧 범사가 잘 되는 복이요, 경영하는 일에 복을 주시는 물질적 복이 다 포함되는 말입니다.
  또한 '장수한다'고 했습니다. 출20:12절에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였고, 신5:16절에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했습니다.
  장수란 당대에 자신이 오래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장수는 단순히 수명이 긴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고통과 불행 속에서, 또는 감옥에서 오래 사는 것을 복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참 만족과 기쁨과 평강이 넘치는 가운데서 오래 사는 장수, 곧 은혜와 평강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수명을 다 누리며 사는 것이 땅에서 장수하는 복입니다.
  효자가 장수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마음이 착하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 불효한 자는 마음이 악해서 명대로 못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보약 먹는다고 건강한 것은 아닙니다. 효자가 되어야 건강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장수도, 축복도, 형통도 효도하는데 있습니다. 부모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서는 평생 후회가 됩니다. 부모의 마음을 불효하는 자식이 편안할 일이 없습니다.
  ▶영국의 여류 문학가 '매컬리'는 자녀들에게 충고합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어머니의 인자한 눈, 부드러운 손, 친절한 음성이 존재하는 동안 이것들을 존귀하게 여겨라, 사랑하는 어머니는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를 특별히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일생동안 아무리 많은 친구들에게 사랑을 얻는다고 해도 어머니에게 받는 사랑만은 못 할 것이다.'
  부모의 사랑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랑입니다. 자식들은 부모의 사랑으로 부모를 사랑하지 못합니다. 부모와 같은 사랑으로 부모를 귀히 여기며 존경하는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미국 텍사스의 한 남자가 아내와 네 자녀를 버리고 캘리포니아로 가서 30년 동안 오직 자기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돈 한 푼 없이 죽었는데, 시체를 고향 텍사스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텍사스에 살고 있던 자식들은 그 소식을 듣고 분개했습니다.
  '그 사람이 우리와 무슨 상관 있어? 아버지로서 우리에게 해준 게 뭔데? 그 사람 때문에 어머니와 우리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왜 우리가 시체에 수고와 돈을 들여야 하지?'
  그러나 신앙심이 깊은 큰아들은 아무 말 없이 동생들의 불평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로 가서 아버지의 시체를 운구해 오기 위해 트랙터와 농기계들을 저당 잡혔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난 후 큰아들은 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성경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씌어 있을 뿐 어떤 부모라는 말은 없단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약속 있는 첫째 계명이 됩니다. 부모님을 받들어 공경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진실로 섬기는 방법이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참 행복한 성도들은 위로는 하나님을, 아래로 부모님을 정성과 마음을 다해 순종하며 그 은혜에 보답하는 부모 공경의 자녀들이 되어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014년 5월 11일 어버이주일설교)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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