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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원한 사랑(렘31:1-6)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4. 24. 09:31

2011년 4월 24일 칠정교회 부활주일 설교

예레미야 31장 1절로 6절 말씀 설교자 / 조한우 목사

 

영원한 사랑

 

할렐루야!

다 같이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 부활했으니, 나도 부활합니다.”

“예수 부활했으니, 너도 부활합니다.”

“예수 부활했으니, 우리 모두 부활합니다.”(믿습니까?)

옆에 계신 성도님들과 인사하시면서 부활의 기쁨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참 잘 오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옛날에는 부활절 계란을 받아먹는 재미에 교회에 나왔다가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제법 많았는데, 요즘에는 하도 먹을 것이 많으니까 계란 하나 준다고 해서 누가 ‘얼씨구!’나 하고 교회에 나올 사람이 없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에 계란을 하나씩 나누어 드릴 건데요. 계란을 받으시고 나면 계란에 포장된 예쁜 그림들을 보시면서 오늘 설교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활절에 계란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십자군 전쟁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11세기 말에 시작을 해서 13세기까지 약 200년 동안 8차에 걸친 전쟁이었는데요, 그때 모자린드(Mozarlind)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십자군 전쟁으로 남편이 전쟁에 끌려가서 생사조차도 모르게 되었고 집도 다 빼앗겨서 살 길이 막막해졌답니다.

그래서 남편을 찾아서 헤매다가 어느 마을에 정착을 해서 살게 되었는데, 먹고 살 것도 없고, 기거할 집도 없었는데 그래도 마침 좋은 사람을 만나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었나 봐요.

모자린드라는 이 여인이 자기에게 여러 가지로 배려를 해 준 동네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보답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닭을 사서 기르기 시작을 했답니다.

차차 닭이 알을 낳기 시작을 하니까 그걸 모아서 부활절 아침에 모자린드라는 여인이 계란을 예쁘게 색칠을 하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좋은 글귀를 써서 동네 아이들에게 계란을 나누어 주었대요.

그런데 마침 지나가는 아이 하나가 이 계란을 받아서 주머니에 넣고 가다가

한 병사를 만나게 되었답니다.

이 병사는 오랫동안 전쟁을 하는 동안 지치기도 하고 적의 총칼에 상처를 입기도 해서 아마 길가에 쓰러져 있었던 모양입니다.

 

길을 가던 아이가 길가에 쓰러져 있는 병사를 보고서 불쌍해보였었나 보죠?

모자린드 부인에게서 받은 계란을 그 병사에게 주고 간 거예요.

그런데 그 병사가 계란을 받아들고서 보니까 그 계란에 이런 글이 쓰여져 있더랍니다.

“우리를 지켜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자! 하나님은 사랑이 있고 마음 착한 사람을 도우신다”

이 글을 읽은 그 병사는 깜짝 놀라서 소년에게 물어 보았답니다.

“이 계란을 누가 주던? 이 계란을 어디서 받았니?”

“예 이 계란은 아무 아무 동네를 지나가다가 어떤 아주머니에게서 받은 겁니다.”

그 말을 듣고 이 병사가 수소문을 해서 모자린드 부인을 만나게 되었답니다.

이 두 사람은 전쟁 때문에 헤어졌던 부부였던 거예요.

그리고 그 계란에 써 있었던 그 문구는 모자린드 가정의 가훈이었답니다.

 

그때부터 부활절에 계란을 나누어 주면서 서로에게 힘과 용기를 전해 주었다는 건데요, 저는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물론 지금 우리들이 사용하는 부활절 계란은 깨질까봐 삶은 계란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마는 사실 계란은 움직이지 않아서 그렇지 이 속에는 생명이 살아 있는 것이거든요.

어미닭이 3주 동안 품에 꼭 품고 있으면 이 속에서 병아리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에 돌무덤에 장사지내졌는데, 돌아가신 지 며칠 만에 다시 살아나셨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단 말입니다.(할렐루야!)

이 계란 껍데기는 마치 예수님께서 묻혀계셨던 돌무덤과도 같은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돌 무덤을 깨뜨리시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상징적으로 부활절엔 계란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 오늘 본문 3절 말씀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영원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해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 나온 것 아니겠어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할렐루야!)

 

오늘 새벽에는 공관복음 속에 기록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전해드렸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부활의 사건보다는 부활의 의미를 더 깊이 묵상하고 깨닫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주시기 위해서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1절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베드로 사도도 일찍이 그렇게 선포하지 않았어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2:9)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하는 것은 바꾸어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왕이 되어주신다는 겁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노래가 있잖아요?

“주님이 다스리시는 그 나라가 되면 사막이 꽃동산되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 되시면 그 나라에 폭력이 있겠어요?

하나님의 우리의 왕이 되시고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면 그 나라엔 가난도 없어질 겁니다.

질병이나 고통이나 사망이나 눈물이나 곡하는 것이 다시는 없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계21:3,4)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면 세상의 모든 죄악의 문제는 다 해결이 될 거예요.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아주시려고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겁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 왜 부활하셨느냐?

우리들을 처녀 이스라엘로 다시 세워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4절 말씀을 다 같이 봉독하시겠습니다.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를 들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춤추며 나오리라.”(아멘!)

저는 남자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짐작은 가요.

처녀가 시집을 가서 아이들을 낳고 산다고 칩시다.

그러면 이 사람은 다시는 처녀로 되돌아 올 수가 없는 겁니다.

누가 봐도 이 사람은 아줌마이지 처녀가 아니에요.

남자도 마찬가지죠.

총각이 장가가서 애 낳고 살면, 그게 아저씨이지 그 사람이 어떻게 다시 총각으로 되돌아갈 수가 있겠어요? 안 그래요?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다시 처녀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서 온갖 죄악 세상에 물들어서 살고 있었거든요.

열왕기상 19장에 보면, 대부분의 보든 사람들이 바알에게 입 맞추면서 살았어요.

하나님의 백성들이면 하나님과 입을 맞추면서 살아야 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우상들과 놀아났습니다.

세상의 물질이 좋아서 물질에 놀아났습니다.

다 바알과 입을 맞추면서 살아간 거예요.

시편 기자는 시편 2편 마지막 절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시2:12a)

영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이미 처녀성을 잃어버리고 만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다시 처녀로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처녀성을 잃어버렸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다는 뜻이거든요.

일그러진 하나님의 형상, 파괴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주심으로써 고멜처럼 방탕했던 이스라엘을 다시 처녀로 회복시켜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옛날 출애굽을 할 때에 미리암이 나와서 소고를 들고 춤을 춤며 찬양했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가 다 영적으로 하나님의 딸들이 되어서 하나님만 바라보는 처녀 이스라엘로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우리 주님께서 왜 부활하셨느냐?

우리를 하나가 되게 해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6절 말씀을 다 같이 봉독하시겠습니다.

“에브라임 산 위에서 파수꾼이 외치는 날이 있을 것이라.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나아가자 하리라.”

 

지금 세상은 온통 양극화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 좀 보세요!

내가 잘났다 네가 잘났다 서로 싸우고 난리를 치면서 사생결단을 낼 모양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은 점점 더 갈등의 골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들 사이에도 서로 보이지 않는 갈등과 반목이 있습니다.

도무지 뜻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 거예요.

이게 다 죄악 때문입니다. 욕심의 결과예요.

 

그런데 에스겔 37장 15절 이하의 말씀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통일 이스라엘의 비젼(소망)을 보여주셨습니다.

“인자야, 너는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가지고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그 막대기들을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할렐루야!)

 

6절 말씀도 동일한 말씀입니다.

에브라임 산 위에서 파수꾼이 외치는 날이 올 거래요.

뭐라고 외칩니까?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나아가자!”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아세요?

그 당시에 이스라엘은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남쪽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있었고요, 북 이스라엘 쪽에는 에브라임 지파를 비롯한 열 지파가 있었습니다.

남 유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고 있으면서 다행히 예루살렘 성전이 자기네 나라 땅에 있으니까 자기들은 신앙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북 이스라엘 사람들은 축복의 산,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으니 굳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갈 것이 없다고 하면서 자존심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여쭈어 보았던 것이 바로 그거예요.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도대체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 되는 겁니까?”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뭐라고 대답을 해 주셨어요?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지니라.”

 

싸우다 싸우다 이제는 예배하는 장소까지 가지고 싸웠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에브라임 땅에서 파수꾼 하나가 외칠 거래요.

뭐라고 외친다고요?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가자”

지금까지는 자기 고집을 부리면서 ‘너희는 거기서 예배드려라! 우리는 여기서 예배드리마!’라고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자기들 스스로 하나님을 만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겠다는 거예요.

교회가 하나가 되고, 민족이 하나가 되고, 그렇게 되면 나라도 하나가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주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해 주시기 위해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부활절에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두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우리 모두가 다 처녀 이스라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으로 분열을 극복하고 주 안에서 하나가 되는 아름답고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어서 성찬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주셨습니다.

나도 지금 주님의 이름으로 이 떡을 나누며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몸을 기념하여 주님의 성찬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며 사랑하는 우리 칠정교회 성도들이 모여서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속에 주님의 영원한 생명이 살아있게 하시고 이 세상을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기도합니다. 아멘!

세례를 받으신 분들은 한 분씩 나오셔서 떡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 22 : 1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 : 3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병을 위한 내 살이로라.”하시니라.(요 6 : 47 - 51)

 

떡을 받으신 분들은 다시 한 분씩 나오셔서 잔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너희는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눅22:20, 고전11:25)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 : 28)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 : 1 - 5)

 

기도하시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자비로우신 은총으로 주님의 백성된 우리가 이 성찬에 참여케 하시고 사죄와 구원의 은혜를 새롭게 하여 주심을 감사하옵나이다. 우리를 복음에 합당하게 행하여 항상 주님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을 우리의 몸에 새기게 하여 주시고 그리스도의 빛을 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가니라.”(막14 : 26)

찬송가 165장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하이얀고무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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