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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주일설교]하나님 나라의 것으로 우리 생각을 채워야 한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4. 24. 05:04

♣2011년 4월 24일  부활절
  성경 ; 행10:34-43, 골3:1-4, 요20:1-18
  제목 ; 하나님나라의 것으로 우리 생각을 채워야 한다
   

    이 달걀을 보십시오. 이 속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이 달걀
속에는 생명의 씨가 있어서, 암탉이 이 달걀을 21일간 품고 있
으면, 이 속에서 병아리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암탉이 없더라
도, 우리 인간의 체온과 비슷한 37도의 온도로 21일간 계속 유
지해주면, 이 달걀 속에서 병아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닙니까? 이처럼, 죽은 듯이 아무런 움
직임도 보이지 않는 이 달걀이 어떻게 병아리가 될 수 있을까
요? 그야말로, 창조주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입니다. 어쨌든, 이
달걀이 수정이 된 것이라면, 암탉이나 부화기를 통해서 일정한
온도로 21일간 유지해주게 될 경우, 이 달걀 속에서 어김없이
앙증맞고 예쁜 병아리가 되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달걀뿐만 아닙니다. 죽은 것처럼 보이던 나무들이 이제 서서
히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습니다. 머지않아 모든 나무의 가지마
다 새순이 솟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미 개나리는 오래 전에 활
짝 피어서 새봄을 노래하고 있고, 교회의 돌계단 사이에 있는
꽃잔디들도 곧 아름다운 꽃들을 피우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해마다 봄이 되면, 언제나 변함없이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
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봄이 오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부활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처
럼 부활절을 맞이할 때마다, ‘생명의 신비’를 되새기면서 새로
운 깨달음과 교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봄이 되어 개나리가 피고 진달래가 만발하는 것을 보고서도,
생명의 신비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
만, 이들에게도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소식은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그들 중에서도 올해에는 생명의 신비와 부
활의 진리를 깨닫는 축복을 누리고, 우리와 함께 부활하신 예
수를 찬양하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골로새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말하기를 ‘옛
사람은 죽었으며, 이제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서 새로
운 인생을 사는 것이다.’라고, 부활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
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대한 미련과 욕심 때문에 헛되이 시간
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 그것이 바로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이런 부활의 삶을 살게 하시려고, 예
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께서는 그 예수를 다시 살리심으로써, 우리 인류에게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썩어 없어질 것들을 위해서 살면 안 되고, 하나님의 진
리를 실천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리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생명의 진리를 붙들고 살면, 우리는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
다. 이 달걀 속에 생명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진리 안에 참
생명이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살아
가게 된다면, 우리는 죽어도 다시 살 수 있습니다.

 

    한말(韓末)과 일제강점기를 거쳐서, 우리나라의  진정한 독립
을 위하여 애쓰신 월남 이상재 선생을 모를 사람은 거의 아무
도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월남 선생이 하루는 어느 일본 신문 기자와 인터뷰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자가 질문하기를 “간디는 평소에
100세를 산다고 했으며, 누구는 몇 세를 산다고 했는데, 선생
님은 몇 년이나 사실 작정이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 일본
기자의 이 질문은, ‘인생은 짧은데, 그 짧은 인생을 계속 고생
만 하면서 살 필요가 있겠느냐? 일제에 협력함으로서 남은생애
를 편안하게 살면 어떻겠느냐?’는 뜻으로 말했던 것입니다.
    이에, 선생은 그 기자를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사람
이 한 번 났으면 영원히 사는 것이지, 죽기는 왜 죽는가?”라고
말씀했다고 합니다. 이로 보아서, 월남 이상재 선생은 부활과
영생에 대한 신앙이 아주 확고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몸으로 실천하신 예수 그리스
도를, 우리가 열심히 본받고 따를 경우,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
습니다. 우리 안에 주님의 생명이 있으면, 우리는 언제든지 부
활하여 다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우리의 참생명은 예수와 하나님 안에
있다(골3:3)’고 했습니다. 그러니,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
리 마음에 모시고 살면,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물론,
때가 되면 우리의 모습과 형태는 변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의 참생명은 영원히 변함없이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참생명을 소유할 수 있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세상에 대한 욕심을 품고
살면 죽게 되거니와, 하나님의 진리를 추구하면서 그 진리에
따라 살면 참생명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진리에 따라
올바른 인생을 살 경우, 참생명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무더운 여름철이 되어 목이 마르
면, 우리는 가끔 콜라나 사이다를 마시게 됩니다. 그런데, 페트
병으로 된 음료수를 구입해서 마시게 될 경우, 때로는 그 음료
수가 남아서 냉장고에 보관하게 됩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 음료수를 다시 마시려고 하면 탄산가스가
사라져서, 음료수 본래의 맛을 느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음료수를 ‘맛이 갔다’라고 말합니다. 한 마
디로 말해서, 음료수가 생명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사람다운 맛을 지니려면, 인간 본래
의 모습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인간본래의
모습은, 그 안에 참생명이 남아있어야만 잃어버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야 할 길
을 가고 있을 때, ‘생명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마땅히 가야 할 그 길, 그 길이 바로 진리입니
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바로 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신 그 길이 바로, 우리
인간이 가야 할 ‘생명의 길’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진리와 생명의 길을 온전히 가고자 한다면,

 

    1.우리 마음과 생각에 하늘나라의 것으로 채워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세상에 대한 욕심으로 채워져 있다면,
우리는 진리의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 욕심을 이
루려고 애쓸 경우, 어쩔 수 없이 우리는 편법과 부정을 행하게
되고, 또는 불의를 행하며 죄를 짓게 됩니다. 한 마디로 말해
서, 죽음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목숨은 붙어 있으나,
실제로는 ‘죽은 존재’가 됩니다. 콜라가 그 맛을 잃어버리듯이,
진실성과 인간미가 없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부활의 진리가 그 귀에 들어갈 리가 만무
합니다. 그들의 관심은 온통 세상에만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하늘나라의 이야기를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
들은 ‘어디로 가면, 어떤 음식이 맛있고 얼마나 즐겁게 놀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해야 귀를 기울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에 따라 바르게 살아보자,
좀 더 진실하게 사는 방법을 연구해보자’ 이렇게 말하면, 그들
은 아주 따분하게 여기거나 듣기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머릿속에는 천국에 관한 지식도 없고 관심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기 전에는
그와 동일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누차 부활에 관한
말씀을 하셨건만, 그들은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관심이 없었던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부활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그들의 머릿속에는 ‘예수님이 왕이 되면 어떻게 하던지 한 자
리 차지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만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주께서 부활하신 그날 아침, 제자들은 주님이 묻히셨던 그
무덤에 찾아갔습니다. 그때, 그들은 주님의 시신은 없고 빈 무
덤뿐이라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서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
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서, 요한복음 기자는 ‘그때까
지도 그들은 주께서 부활하실 것이라고 한 성경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요20:9)’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열심히 따라다녔던 막달라 마리아도 마찬가지입니
다. 그가 예수님께로부터 큰 은혜와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
처럼 정성스럽게 주님을 섬겼지만,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믿
지 못했습니다. 마리아가 주께서 묻히신 무덤에 찾아갔을 때에,
주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슬피
울었습니다. 그녀가 만일 부활을 믿었다면, 그처럼 눈물을 흘리
면서 슬피 울었을 리가 만무합니다. 나중에 예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마리아여”하고 부르시니, 그제서야 마리아는 주님
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뵐 수가 없습니다. 성경
에 기록된 말씀만 볼 수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더더욱 부활
을 믿기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을 이 땅이
아닌 하늘에다 두고 살 경우, 부활에 관한 진리를 아주 쉽게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알다시피, 하늘나라는 우리가 죽은 다음에만 갈 수 있는 것
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거하고 있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뜻
을 이루어 살게 될 경우, 우리가 사는 이곳이 바로 천국이 되
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까지든지 진리를 벗어나지 않게 된다
면, 우리는 영원토록 천국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육신은 세월이 흘러서 기한이 차면 벗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육신은 벗어버리더라도, 우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새 집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사
이다를 컵에 따라서 먹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이다의 본질
(참맛)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 사이다 음료수가 병속에 있거
나 아니면 컵에 있든지,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참된 것이라면, 우리 몸은 늙어서 죽게 됨으로써 땅 속에
묻히게 되더라도, 참된 것을 소유한 우리의 본질은 영원할 것
입니다. 아무튼,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은 사람들, 곧 진리
안에서 새로운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영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예수를 믿는 저와 여러분은

 

    2.항상 부활의 기쁜소식을 열심히 전하면서 부활의 참생명을
생활로써 보여주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영국의 스펄젼 목사님이 하루는 새장 속에 있는 새를 계속
괴롭히고 있는 불량소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소년에게 “새를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하고 물었습니다. 그러
자, 그 소년은 “이렇게 계속 괴롭히다가 나중에는 죽여 버릴
거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스펄젼 목사님은 그 소년에
게 2파운드를 주고서 그 새를 샀습니다. 그런 다음, 목사님은
그 새를 멀리 날려 보내고 말았던 것입니다.
    마침 이틀 후가 부활주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이렇
게 설교했다고 합니다. “마귀는 우리 인간을 계속 괴롭히다가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독생자를 내
주는 엄청 난 값을 지불하고서 우리에게 자유를 허락하셨습니
다. 이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요, 부활의 역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은 이 세상의 모든 얽매임에서
자유롭게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
니까, 이 세상에 대한 욕심과 집착 때문에, 우리 마음은 자유롭
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일들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안 되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항상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동안 지은 죄로 인한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그 무거운 짐을 벗겨주려
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
가 그 십자가의 죽음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받아들이게 된
다면, 우리는 지난날의 모든 구속과 억압에서 해방이 되거니와,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부활의 삶을 산다는 말은, 세상에 대한 욕
심과 집착을 버리고, 진리 안에서 참 자유와 기쁨을 누리며 살
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부활을 믿는 기독교인들
은, 이 세상 욕심 때문에 서로 다투거나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고서, 내 것을 희생하며 양
보하는 ‘십자가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부활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내게 주어진 십자
가를 달게 질 때, 부활의 기쁨과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인
간의 행복은, 사람이 애쓰고 노력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
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에 따라 기쁜 마음으로 십자가를 질
때,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심으로써 누릴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 모두,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깊이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영원한 하늘나라를 바라보
고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부활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도록 합시
다. 그 결과, 세상 사람들에게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저와 여
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스와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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