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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문 생성의 근본은 성경이다. (류현수 목사의 한자 원리 강의)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4. 27. 11:49

漢字(한자)의 생성의 원리

 

중국 황제인 헌원과 그의 9대 조상이라는 염제 신농씨에 그 분들 모두 웅씨로 배달국의 천왕들까지 이어지는 나의 집안 족보를 바탕으로 고대역사를 본다면 한분은 분명하게 대한민국의 시조국가인인 배달나라의 글이다.

그리고 그 한자는 철저히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 성경의 뜻에 그 근원이 있다.

 

성경을 마음에 일어나는 영적 현상으로 풀지 못해 지금까지는 그 근원을 분명하게 밝힐 수 없었지만, 마음이라는 세상에 성경을 맞추고 세상의 변화가 아닌 개념과 신념과 버려야 할 행동과 신의 성품으로 변해야 할 성품과 타인을 즐겁게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살면서 보여주는 행동을 말하는 개혁 선언을 한 이제부터는 그 정확한 근거를 밝혀나갈 것이다.

 

성경의 시작은 창세기 1장으로부터 시작된다.

1장부터 시작되는 창조사건의 마무리가 2장으로 이어지는데, 그 곳에는 1-10으로 이어지는 날(日)의 수가 있다.

 

한문이 철저한 성경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맛보기로 한문의 숫자와 창조사건 안에 있는 그 수의 의미를 찾아본다.

 

 

일(一) 이(二) 그리고 삼(三)

 

창조의 첫째 날로 보는 일(一)은 통일성을 그 바탕에 둔다고 하지만, 창조의 둘째 날에 하늘과 땅의 물이 나누어지는 것으로 이(二)가 되고, 창조의 셋째 날에 하늘의 물과 땅의 물 사이에 드러난 뭍이 보이는 날이 삼(三)일이 되는 것을 기준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게 보면 일(一)은 하늘의 물과 땅의 물이 나누이지 않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를 설명하는 창세기 1장 2절에 그 근원이 있어, 그 일(一)은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사람의 마음에는 그 무엇이 있고 사람이 살아가는 원리가 무엇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오직 자기의 기준을 따라 자기기분대로 세상이 움직여 변화되기를 바라는, 세상이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자라는 숫자가 된다.

 

그러므로 일(一)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 받는 일을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를 설명하는 것으로 그 일(一)에서 완전함을 이루는 십(十)을 향해 출발하는 것이다.

 

이(二)는 위에 있는 일(一)은 하늘을 뜻하는 것이며, 아래에 있는 일(一)은 땅인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삼(三)은 위 하늘과 아래의 땅 사이에 있는 사람들의 본성을 통한 행동을 뜻하므로 가운데에 있는 일(一)은 사람과의 관계를 상징한다.

 

 

사(四).

 

사(四)는 나라 국(囗)자 안에 어진사람, 궤(儿)자가 있어 나라 안에서 어진사람으로 변했다는 뜻이 된다.

창조 사(四)일의 기록을 보면 괴로움을 당하는 밤의 일에서나 평안이 있는 낮에도 하나님이 주시는 빛만 바라보며 세상 전부를 하나님이 주장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는 삶이란 뜻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이미 드러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본성을 드러내는 마음속의 행동을 보면서 하나님께 자신을 고쳐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정의한다.

 

그 사람은 사람에게 행하는 자신을 위한 모든 행위가 하나님께 악을 행하는 것을 알게 되어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으로 타인을 대하기 위한 삶을 영위한다.

 

그것이 지구 창조의 넷째 날에 있는 사람의 마음인 영의 상태가 변화하는 과정으로 한문 사(四)는 마음이라는 나라에 사람을 대하는 어진생각을 추구하는 숫자이다.

 

 

오(五).

 

오(五)는 <음양중교(陰陽中敎) 다섯 오>라는 주석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음과 양의 가운데를 가르친다>라는 뜻이다.

 

음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기중심의 일들로 어두움이고, 양은 자기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타인을 사랑해야 하는 행동이 궁극적 목적인 빛이다.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는 참 목적을 인간의 성품을 신의 성품으로 변화를 받는 것이 핵심으로 그 결과가 성품을 따라 사람들을 위한 행동을 하여 타인들이 사람의 성품을 바꾸시는 그 능력을 칭송하도록 되어져있다.

 

사람의 근본이 바뀌는 것은 마음에 있는 인간의 성품이다.

 

창조사건에서 1-4일에 나타난 일들은 그 자기성품을 신의 성품으로 교체 받는 그 오일에 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닦은 것으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기중심의 성품을 유지하기 위한 생각과 이념 개념 관념 통념 신념을 바꾸고 자기의 행동에서만 찾을 수 있는 영의 행동에서 조차 하나님을 원망하고 타인을 원망하던 모든 행동을 멈추는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다섯째 날의 창조모습에 그런 행동들을 하게 만드는 인간의 기본 성품을 하나님께 맡김으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기중심의 성품들을 하나님이 죽이시는 것으로 기록되었다.

 

다섯째 날에 땅 아래에 있는 물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과정이 설명된다.

 

 爾地 自大一丸  世界中火震   海幻陸遷 乃成見象 
     
이지 자대일환  세계중화진  탕  해환육천 내성견상
 

 

너 땅아, 너 스스로 크게 둥글다고 하지만 너의 세계 가운데에는 불도 있고 번개도 있다.

너를 씻고 바다가 변하여 뭍이 되고 날아 오르면, 이내 (너의 세상 가운데에 있는) 남방대수장비아 보는 것을 이루리라.

 

10을 이루는 과정의 가운데에 있는 5라는 숫자는 인간의 눈에 보이는 행위를 결정하는 성품을 고치는 날로 그 핵심에 땅을 중심으로 하던 성품이 하늘을 중심으로 하는 성품으로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성경을 기록한 히브리어에서도 '다섯(五, 하미쉬)'은 '뜨거워지다'의 '하맘'에서 시작된 글로 '뜨거워지다. 분노, 열망, 사모, 격노, 불만 등, 모든 단어가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는 감정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음과 양의 차이는 생활의 모든 것 중에 가장 가운데에 있는 성품이 인본주의적 자기중심의 음(陰)에서 하늘을 사는 사람들인 이타중심의 온전한 성품인 양(陽)으로 변화 받는 그 중심을 나타낸다.

 

한문의 오(五)라는 숫자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육(六).

 

육(六)은 여덟 팔(八)자 위에 두 이(二)가 있는 것이다.

팔자에 가서 나오는 것이지만 여덟 팔(八)자는 새 을(乙)자 좌변에 삐칠 별(丿)자가 달렸는데 이자는 보통 물이나 말이 흘러가는 모양으로 기록됐다고 한다.

 

새의 입모양 앞에서 다시 땅으로 내려가는 그 모양은 새의 말을 땅으로 보낸다는 뜻이다.

 

성경에서의 새는 호(好) 불호(不好)의 뜻, 두 가지이나 신을 닮아가는 과정에서는 호(好)의 뜻으로 풀어야 한다.

그 호(好)로 풀어야 하는 새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가득하여 죄 된 것들만 잡아먹고 좋은 것들을 찾게 하는 가르침을 베푸는 새였다(계18장).

 

문제는 그냥 팔(八)이면 그 자체가 되지만 하늘의 땅과 사람인 땅의 그 밑에 그 여덟이 있다는 것이다.

 

보편적인 하늘이 사람과 동떨어진 우주 꼭대기에 있는 하늘을 말하지만 창세기 1장의 하늘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어 하는 의지나 말씀들로 가득차야 할 사람의 생각이며, 땅은 행동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그 사람이 가르치기 위한 말씀이 가득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배하는 몸을 가르치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가득한 상태에서 행동이 하나님과 같이 온전한 행위를 낼줄 아는 사람으로 그 머리가 드러났다고 하는 것이다.

 

즉 육의 부활을 말하는 사도행전에서 안디옥교회에 가서야 비로소 크리스트인이라는 칭호를 받는 것과 같이 세상 사람들에게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인정받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칠(七)

 

일곱 칠(七)은 2획으로 두 이(二)의 변형이다.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이(二)자 중에 땅인 아래의 일(一)자가 하늘을 넘어 머리를 두고 있다.

하늘을 베고 누운 것!! 안식의 상태이다.

 

창조의 날 중에 일곱째 날은 타인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안식의 날이다.

그 안식의 모양이 칠(七)인 것이다.

 

 

팔(八).

 

육(六)에서 설명되었듯 여덟 팔(八)자는 새 을(乙)자 좌변에 삐칠 별(丿)자의 합성어로, 행동 중에 있는 잘못된 모든 것을 잡아먹고 율법이나 계명에 있는 모든 행동대로 온전하게 행동하도록 하는 새의 말은 땅에 전하는 것이다.

 

팔(八)이 말하는 행동의 변화는 자신의 행동을 바꾸게 되는 육(六)과는 다른 것은 이미 타인을 가르치기 위한 사명을 받았다는 뜻이 있는 칠(七)의 과정을 넘었기 때문이다.

 

성경의 원문에서도 팔(八)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가득하다, 소금창고가 되다, 뚱뚱하다, 살찌다, 풍부하다’는 뜻으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에게 있는 하나님의 풍성함이다.

 

이 풍성함을 가지고 타인을 향해 소리친다,

기분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성질 상태인 마음의 행동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그래서 팔(八)은 사람을 고치도록 개념을 완전하게 바꿀 수 있는 성경 전체를 풀어놓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께 받아 완전하게 채워가는 과정을 나타내는 숫자이다.

 

 

구(九).

 

구(九) 역시 획이나 구성글자는 팔(八)과 같다.

그러나 팔(八)은 새의 입 앞에서 말이 내려간다.

 

하지만 구(九)는 그 삐침이 새의 주둥이를 꿰고 하늘로 올라갔다.

입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인생으로 치자면 이는 가르침의 사역이 끝이 났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아홉 구(九)는 아홉으로도 사용되지만 모을 규(九)자로도 사용된다.

 

이는 가르치는 자의 자격에 팔(八)을 통해 말씀이 채워지면 사람을 모으게 되는 것이며, 그 사역은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믿어 말로 행동을 지적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그 타인들에게는 하나님이 별도로 기름을 부으심으로 인해 그가 변화 된다는 참 그리스도의 원리 하나님의 기름부음의 원리를 이해하여 행동지침이 아니라 마음을 하나님께 받기는 법을 가르치게 된다는 의미이다.

 

가르치는 자는 하나님과 피교육자 사이에서 존재하면 안 된다.

이는 피교육자의 눈에는 자신이 하나님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가르치는 자는 피교육자가 생활에서 항상 하나님을 찾으면서 자기의 잘 못된 것들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마음으로 제사 할 수 있는 환경을 가르쳐야 한다.

 

이 의미는 피교육자의 손과 하나님의 손을 맞잡게 해주는 것이 교육자의 사명으로 피교육자의 인식에 교육자도 하나님 앞에 한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아홉 구(九)자는 가르치기는 하되 교육을 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가르치는 자가 된다는 의미이다.

 

 

십(十)

 

십(十)은 완전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십(十)자는, 위 아래로 통할 신, 세울 곤(丨)자와 한 일(一)자의 합성어인데 그 일(一)자는 한 가지 동(同)자와 같은 의미로 같을 일, 순전할 일, 자로 사용되어 사람들과 하나로 동화된 상태를 나타낸다.

 

그래서 십(十)은 하늘과 자신이 통하고 타인과 자신이 통하여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생이 십(十)의 경지에 오르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마음인 영이 그 십(十)의 경지에 있으면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타인도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살고 싶어 하여 그 타인을 위해 기도하게 된다.

 

타인의 잘못을 지적해도 타인이 부끄러워 아니하게 된다는 의미로, 성경의 전부를 깨달았다는 뜻으로 요한계시록의 그 마지막에 <사람의 마음에 하늘의 성을 짓고, 그 마음이 예수의 생명나무와 하나 되게 하시는 주 예수여 각 사람의 마음에 어서 오시옵소서> 라고 하는 고백이 있다.

 

지금까지의 신학자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각 사람에게 따로따로 임한다고 한 말을 버리고 지구의 종말에 나타나는 재림예수로 착각하여 즐거움의 탄성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지만!!!

 

 

결론

 

 

맛보기로 보인 것이지만 이와 같이 삼신오제본기를 통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을 그대로 증거하고, 삼일신고를 통해서는 성경의 주제와 같이 사람의 성품이 신의 성품으로 관통하는 성통공완을 주제로 하고, 사람의 본심이 태양의 마음으로 변하는(본 심 본 태양 앙명 인중천) 것을 주제로 하는 천부경을 통해서는 하나님이 말하는 우주가 사람의 눈에 보이는 우주가 아니라 사람의 영이 하나의 우주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모두 창세기 1장과 2장에 설명되는 것으로 그 설명을 지금까지 모른 것은 창세기를 가시적인 우주의 창조로만 보았지, 한 사람의 영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과정으로 풀지 못했기 때문이다.

 

맛보기이지만 결론을 짓는다면 중국에 한문이라는 글이 있기 전에 배달나라에서 사용하던 것이 한문이며 그 한문은 배달나라를 계승한 대한민국의 글이며 그 글들은 우리 대한민국의 근본 신앙이 기독교였음을 증거하고 있고 그 한문은 철저히 성경에 그 근본을 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몇 몇 분이 한문을 성경적으로 해석했지만 그 몇 글자로 한문 전체가 성경의 뜻을 나타낸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했다.

 

나는 이제 그 기본 글자 하나하나를 모두 풀어 한문이 성경의 뜻을 풀어놓은 것을 증명할 것이다.

 

2011년 2월 22일.

     버들골에서 류현수.

출처 : << 생명의 강 >> 완전한 하나남의 사람
글쓴이 : 류현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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