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밀 (요12:23-33)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다시 살려주신 나사로의 집에 유하시게 되고 잔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마리아는 비싼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겨드리는 봉사를 했습니다. 온 집에 향이 가득했습니다. 삼백
데나리온의 값이 나가는 이것은 노동자의 거의 일년 치의 품값이니 약 2천
만 원이 넘는 비싼 향유였습니다.
이것을 보고 돈 욕심에 유다는 예수께 봉사하는 그녀의 행위를 비난하고
가난한 자를 생각이나 하듯 그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좋다는 말을 했으나,
본 장 6절에,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
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고 하심을 볼 때 그의 언변
은 사악한 거짓말이었습니다(눅 22:3-6).
주께서는 그녀의 이러한 봉사는 자신의 죽으심을 위한 일로 받으셨습니다.
7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이런 장면이 있은 후 주께서는 이제 세상에 오셔서 인생을 변화시키시려고
자신이 해야 할 중요한 임무를 말씀하시기 시작했습니다.그것은 우리를 위
해 죽으시게 될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23절에서 십자가로 돌아가시게 되는 일이 오히려 영광스런 일이라
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자신의 죽으심이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스런 업적으
로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활이나 기적을 통한 사람들의 주목이 영광이 아니라 십자가로 돌아가시
는 이 메시아의 업무를 수행하시는 것이 진실로 영광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24절에서 우리에게 주신 한 알의 밀에 대한 말씀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자
합니다.
1. 많은 열매를 위한 밀알입니다
한 알의 밀알 하나 그대로의 의미는 없습니다. 단순히 한 알의 밀일 뿐이
지만 그것이 땅에 떨어져 썩어서 뿌리를 내리고 순이 돋고 자라서 열매를
맺게 될 때 그 한 알의 열매는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주께서
우리를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셔서 죽으시고 우리에게 주실 열매의 본질
은 영생입니다.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
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라고 했습니다.
롬 5:7-8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
는 자가 혹 있거니와,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
니라' 라고 하신 내용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은 일반인의 죽음과 달리 우리
를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신 것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군인과 장군의 죽음, 사회에 봉사하다가 순직하는 것, 희생의 어떤 죽음
등이 있으나 이 세상 어떤 교주나 현인이라도 예수의 죽으심 같은 고귀한
죽음을 당한 사람은 없습니다.
2. 희생의 밀알입니다
25절,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
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자기 생명이란 말의 원어는
푸쉬케(yuch;n)로 인간적인 육신의 생명을 필로(filw'n), 즉 세상적인 자
기 생명을 사랑하여 보존하기 위해 애쓰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세상 목숨을 위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쪼엔 아이온)을 얻지 못하
고 잃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어떤 희생이 없이는 영원한 가치를 얻
을 수 없다는 교훈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건데, 이적을 행하신 예수님은 교주로서 넉넉하게 큰 소리
치면서 역사를 남기실 분인데, 왜 죽으시기까지 하셨는가 하는 의문을 품
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형벌을 대신 하여 죽으실 뿐 아니라 이 세
상의 목숨을 담보로 영원한 생명,부활 영생을 입으시고 우리에게 또한 그
러한 몸을 주시기 위해 세상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요 11: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마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교회가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 능력을 얻어
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생이 요구됩니다. 주께서 능력으
로 모든 것을 처리 한 것이 아니라 기도의 희생과 죽으시기까지 헌신하신
것입니다.
모든 일이 능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은 헌신적인 봉사
로 오히려 증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적으로 잘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으나 그리스도를 위해 또는 복음을 위해 순교를 하는 신앙인
의 최후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3. 영광스런 밀알입니다
예수께서는 구약 성경의 예언에, 슥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
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
귀새끼니라'고 하심대로 겸손과 평화의 상징인 나귀새끼를 타시고 성으로
들어오시니 많은 이들이 환영하고
13절에,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
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고 했습니다.
호산나(wJsanna)는 도와 주십시오, 구원해주옵소서, 라는 뜻입니다. 이런
환영을 뒤로 하시고 결국 예수께서는 십자가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그
러나 예수님은 결국 영광스런 부활을 입음으로써 땅위에서 기적과 가르침
으로 주목받은 것을 훨씬 넘어 서서 온 세계에 당신의 존귀한 이름이 알
려지게 된 것입니다. 때문에 한 알의 밀로 돌아가시게 된 것은 영광스런
죽으심이 된 것입니다.
행 1:9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골 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주님이 교회에 주신 영광이라는 단어의 바른 영감적 메시지는 세속주의에
빠져있던 그 때 당시의 종교 지도자나 유대인들처럼, 43절, '저희는 사람
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고 하심대로 세상의 영광
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교훈입니다.
오늘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영광을 입으려고 종교계에서도 머
리 싸움을 하는 지 모릅니다.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자신의 영광을 위해
부정을 저지르는 일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죽음을 앞에 두고 교훈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의 삶을 다시 재고해야 할 줄 믿습니다. 사람이 살기도 잘 살아야 하겠지
만 죽음을 제대로 죽어야 귀한 인생을 사는 것이라 여깁니다.
주께서는 죽음을 귀하게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고,자신이 또한
영광스런 부활의 첫 열매로 온 세계인들의 무릎을 꿇게 하신 것입니다.오
늘 이 시대는 쉽게 살아가려는 과학만능주의에 빠져 사람들이 봉사와 헌
신을 회피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지금도 주님은 우리에게 한 알의 밀처럼 살고 한 알의 밀처럼 영
광스런 존재가 되기를 바라시는 줄 믿습니다. 주께서 죽으신 그 뜻을 따
라 주의 복음과 영광스런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삶의
성질을 표현할 줄 아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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