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수*이동원 목사+목사님들설교

[스크랩] 빌라도의 재판 (요18:36-40)

성령충만땅에천국 2015. 9. 15. 09:04

빌라도의 재판 (요18:36-40)


 
본디오 빌라도는 유다 사마리아 에돔을 다스린 로마의 다섯째 총독
(주후 26-36)으로 창을 잘 쓴다 하여 빌라도라 불렀다고 합니다.그
는 로마군대를 예루살렘의 헤룻 궁으로 옮겼고 예루살렘에 황제 화
상이 있는 군기를 걸고 경배케 하고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을 학살했
던 자로 악한 일에는 용기가 있고 선한 일에는 우유부단한  자였다
고 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심문하게 되었을 때,유월절 특사로 예수를 석방하
려 했으나 군중의 동요를 두려워하여 아내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사
형 선고를 내려 죽이게 했으므로 그는 우리들의 신앙고백문에서 예
수를 죽인 자로 낙인되어 버렸습니다(마27:19).

당시에 유대인은 스스로 사형을 집행 할 수 없어서 로마 법에 고소
하여 빌라도의 명으로 예수를 죽이려 했습니다.그런데 고소 사실을
변명하지 않는 예수를 빌라도는 이상히 여겼습니다(막15:5).빌라도
의 재판이란 제목으로  그의 잘못된  판단을 통하여 주님이 받으신
빌라도의 오판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상고하려고 합니다.




1. 세속주의 권위 때문에 잘못한 재판

빌라도의 실수는 예수님의 변호에 귀를 제대로 기울이지 않고 세상
의 권좌에 대한 위험을 받고  사형에 처하도록 버린 잘못된 재판이
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예수에 대해 죄를 찾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버린 것은  그의 세속적 권좌에 대한 욕심을 채우려
는 의도 때문에 백성들의  무지한 소리에 밀려 자기를 보호하기 위
한 처사였습니다.

38절,'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
라'

막 15:5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기이히 여기더라'


특히 빌라도가 예수를 심문할 때,그의 아내가 지난 밤 꿈에 예수로
인하여 애 쓴 것을 참고로 말해주었으나  결국 예수를 버리는 결과
를 낳았습니다.전설에 의하면 빌라도는 자살했고 그의 아내는 구원
을 얻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마 27:19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
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하더라'


그의 아내는 당시 베스타 여신에게 몸을 헌신한 6처녀의 한 사람으
로 전해져 오고 있고 당시  로마의 명문 가정에서 태어난
클라우디
아 프로큐라
라고 하는 이름의 여자로 알려졌습니다.

빌라도는 예수의 천국에 대한 영적 나라를  관심 가질 이유도 없고
들을 생각도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상대로 떠오르는
사회적 인물도 없었는데 갑자기 예수라는 청년을 두고 유대가 들끓
어 기가 막혔지만 막상 예수를 쳐다보니 전혀 예수에 대해 죄를 찾
지도 못했고 별스런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예수의 체포와 심문 및 처형에 관하여 가이사에게  보낸 빌라도의
보고서(報告書)]로 로 알려진 소위
빌라도의 보고서라는 글에 의하
면 빌라도가 예수를 볼 때,'십자가 옆에서 [말커스]가 말한 것처럼
나는 진실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라
고 적혀 있습니다.
또 예수에 대해 말하기를 '그는 30세 가량으로 보였습니다.저는 지
금까지 그렇게도 마음을 끄는  평온한 얼굴을 본 일이 결코 없었습
니다'고 적었다고 합니다.




2. 진리 문제를 무시했던 재판이었습니다

37절,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
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예수님의 말씀은 3년 간 진리에 대한 예언이었고 구약에 비쳐진 메
시아에 대한 자기 증거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대인들의 죄악
상을 폭로하는 말씀도 하시게 된 것입니다.사회적으로는 가난한 자
를 먹이시고 병든 자들 고치시고 교훈에도 사랑이 중심이었기 때문
에 고소당할 아무런 사유가 없습니다.

가난한 자 먹이시고 병든 자 고치신  예수를 심문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으나 종교적 이유로 유대인들의 외식적 죄악성 때문에 고소 당
했습니다. 본래 악한 자는 선한 자를 시기합니다.세상은 사단이 지
배하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사단의 요구에 응하여 시기하고 질투하
고 멸망을 자처하는 것입니다.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죄를 지적해
주시는 예수님을 잡아 고소한 결과를 낳았습니니다.

다만 악한 심정의 유대인의 마음에 예수의 직설적인 하나님의 뜻과
본인이 하나님의 아들되심에 대한 신성한 말씀의 선포에 반감을 사
게 된 것입니다.진리 운운 할 때, 빌라도의 심문은 아주 가벼운 태
도였습니다.

38절,'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
라'


진리? 진리가 뭔데? 뭐 이런 말투입니다. 관심을 표한 것이 아니라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어째거나 지금 죄인 취급받으신 예수님과 심
문하는 내용에서 그의 언변은 경망스럽습니다.빌라도로서 할 수 있
는 말이 아닙니다.

원문 상 37절에서  예수님이 진리를 말씀하실 때는 그 진리라는 정
관사를 사용하시어 참 진리를 뜻하셨고 38절에 빌라도가 물을 때는
관사가 없이 그냥 하는 말입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참 진리를 말
씀하신 것인데 빌라도는 가볍게 여겼습니다.

기독교 역사 속에  교회의 판단이 잘못되어 진리를 버린 일이 많습
니다. 결정적인 사건들이 더러 있는데,로마 카토릭에서는 진리보다
인간의 권위(교황, 마리아) 위주로 교법을 만들었습니다.

사회적인 위치와 입장을 고려해서 마리아 교황,덕을 끼친 사람들은
성인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성경의 진리에는 마리아 경배
가 없으며 사람이 성인이 될 수 없습니다.사람의 권위를 먼저 생각
했기 때문에 그런 오판이 난 것입니다.

일제 때는 진리보다  사회 상황 위주로 진리가 거부되고 일본의 칼
에 밀려 목사들이 배도를 했습니다.성도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자기 가정에서는 빌라도처럼 심각한 판단이 있을 시에 진리 문제를
놓고 자세히 살펴야 할 것입니다.

일제 때 어두운 시절이었지만 좀 진리를 두려워하고 생각을 했으면
송도  앞 바다에서 목사가  일본 천조대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우서운 일이 없었을 겁니다.빌라도의 사건은 2천년 전의 일이나 불
과 백년전의 일제의 배도 목사들이  후에 그 행위를 잘했다고 합니
다.

안이숙 선생이 출옥 후에 간증할 때,  동료들이 신사참배를 거부한
때, 자신은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기엔 양심적으로  할 수 없었다고
한 것은 당시의  배도자를 꾸짖는 것보다 더 무서운 말입니다.신사
참배자는 양심을 저버렸던 자란 뜻입니다.

성도의 모든 생활 속에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놓고 제대로 판단하고
선택하며 사는데, 중요한 것은 먼저는 하나님이라는 원칙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진리냐 아니냐를 판단해야 합니다.  상황따라 생각하
면 빌라도의 재판이 되어 버립니다.




3. 바라바의 선택은 예수를 두 번 오판

39절,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
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
하느냐 하니'

언제부터인지 그런 전례가 있었는데,결국 바라바를 놓아주는 실수
를 범했습니다.바라바는 반로마적 혁명 운동을 주도했던 정치법이
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막 15:7;눅 23:19).

진리를 따르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꼭 더 큰
실수를 감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면 다른 것을 신
이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친일파의 양심이 그랬습니다.요즘 사회
적으로도 친일파 가려야 한다고 야단인데,친일파들은 조국을 쳤습
니다. 사람은 의에 붙어 있지 않으면 죄에 붙어 의를 치는 인간입
니다.

의를 따르지 않으면 불의를 행하게 되어 있는 법입니다.예수를 버
리고 악한 바라바를 놓아주는 희한한 재판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우상을  섬기게 되어 있고 하나님을 반박하
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죄의 근성입니다.

호신용으로 준비한 단검으로 대제사장 말고의 귀를 짜를만큼 혈기
넘치던 베드로는 죽을지라도 주를 따르겠다 했으나(마26:33-35)결
국 예수님 잡히시던 날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홀로 심문을 받으실 때 빌라도의 오판에 대한 예수의 제
자의 항변 하나 없이 십자가 처형을 언도 받고 말았습니다.이것은
결정된 하나님의 뜻이었고 주님은 이것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
하실 때 받아들이기로 작정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은혜를 끼쳤고 능력 받은 사람들은 다 어데 갔습니까?우리
사람이 얼마나 간사합니까? 죽임 당하는 예수 앞에 아무도 나타나
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구경꾼으로 섰습니다.제자 하나 나와서 항
변하는 사람 없었습니다. 끝까지 주님 혼자 진리를 위해 가셨습니
다.



빌라도의  재판은 매 순간 성도들이 세상을 살아  갈 때 오판되지
않는 선택의 지혜를 경고해주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주님
은 순전히 복음의 역사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사회 상식적으로는 제대로 된 심문도 판단도 얻지 못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연고 없이 미움의 대상이 된 성도들도 그런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요15:25).중요한 것은 빌라도같은 처지에 있는 재
판관이 아니라도 일상의 생활 속에서 선택을 할 때,  그 분별력은
진리가 기준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실수를 용납하신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로 돌아가셨
습니다.바라바 같은 우리는 주님 대신 옥에서 풀려나 광명을 찾은
것처럼 영생을 입게 되었습니다.  빌라도의 재판의 실수가 없도록
진리를 사모하고 진리에 귀를  기울이고 진리의  예수를 보는대로
이행 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가장낮은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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