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세상이 아프게 다가올 때, 가을 하늘은 큰 위로가 된다. 청아하게 푸른 하늘, 거기 드리워진 변화무쌍한 구름 예술을 보노라면 자연의 묘미를 맛보게 된다. 특히 가을 노을이 보여주는 오묘한 색의 하모니는 미학의 진수를 가르쳐 준다. 작은 별에 살던 어린 왕자가 아주 슬플 때, 의자 위치를 바꿔가며 44번 노을을 보는 이유도 공감하게 된다. 지구 한구석에서 나 역시 슬플 때 노을을 보며 우주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위안을 얻는다. “예술은 절망에 굴복하지 않고 존재의 공허함에 해독제를 찾는 것”이라는 거트루드 스타인의 명언도 떠오른다.
3월·화요일, 화성은 지구 일상에 친근한 별
그래서 거장 리들리 스콧의 〈마션〉이 순식간에 백만 관객을 돌파할 정도로 한국에서도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리라. 〈마션〉(The Martian)은 화성인이란 뜻이다. 태양계 네 번째 행성인 화성은 ‘제2의 지구’ 대접을 받으며, 수많은 소설, 만화, 영화에 등장해왔다. 화요일 명칭은 붉은 화성으로부터 유래했고, 태양 빛 따뜻한 3월을 뜻하는 영어 마치(March)도 그 근거가 화성이다. 이렇게 화성은 지구 일상에 친근한 별이다. 일상화된 스마트폰도 아폴로계획으로 개발된 컴퓨터에서 태어났다고 하니, 우주 과학도 일상과 함께 돌아간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20년 후 가까운 미래로 이동한다. 아레스3 탐사대는 화성탐사 중 거대한 모래 폭풍을 만나 위기에 처한다. 실종된 마크(맷 데이먼)가 사망했다고 판단한 탐사대는 지구 귀향길에 오른다. 그러나 극적으로 살아난 마크는 화성인 되기에 도전한다.
그는 과학지식을 총동원해 산소와 물도 만든다. 감자가 싹을 키워내자, 그는 자신이 화성 최초 식물학자라며 뽐내기도 하면서 컴퓨터 영상일지를 쓴다. 포기 대신 도전정신으로 살아내는 마크도 외로울 때면 노을을 바라본다. 그는 적막감을 이겨내려 음악을 듣는다. 그런데 대장이 남기고 간 음악은 온통 70년대 디스코뿐이다. “이 디스코 음악만 듣다간 여기서 죽을 거 같아.”라는 그의 불평도 관객을 웃게 만든다. 기적적으로 접속하게 된 대원들과 영상 소통을 할 때도 “놀랐지?”라며 시작된 그의 유머는 (그를 두고 떠난) 대원들의 자책감 넘치는 고통을 치유해준다.
특히 목숨을 걸고 마크를 구하기 위해 우주 랑데부를 실행하는 루이스 대장의 비장한 모습에서는 〈에이리언〉, 〈델마와 루이스〉, 〈지 아이 제인〉등에서 씩씩한 여성을 멋지게 그려온 스콧 감독의 뛰어난 젠더감각이 감지된다. 어떤 난관에서도 유머로 스스로를 격려하는 마크의 생존술은 루덴스 기질의 위대함을 깨우쳐 준다.
푸르른 날, 화성 여행의 꿈이 단풍처럼 타올라
이런 기질은 현실에서 이미 발휘되고 있다. 문 걸어 잠그고 살던 이 땅에 첫발을 디딘 하멜의 나라, 네덜란드 출신 바스 란스도르프는 2011년 비영리 우주벤처업체 ‘마르스 원(Mars one)’을 창업했다. 2033년 화성에 인간정착을 목표로 내건 이 프로젝트에 202,586명이 지원했다. 화성생활을 지구로 중계하는 리얼리티 쇼도 계획 중이라고 한다.
마침 송창식의 노래 〈푸르른 날〉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노래를 따라 부르노라니 나도 화성에 가고프다는 우주여행의 꿈이 단풍처럼 불타오른다. 그런 마음으로 노을을 보니 대우주가 소우주인 내 몸에 접속하는 찰나의 순간이 저릿하게 다가온다. 슬픔도 그리움도 떠나는 여행의 꿈으로 치유하는 노을과 노래, 그리고 영화 보기의 매혹이 감사한 가을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