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간증+믿음의 글

[스크랩] **김 순이 간증(5)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5. 13. 18:58
김순이 간증(5)


"하나님의 사랑밖에 진실한 것이 없네"

남편은 음악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는 분이다. 젊어서는 가수, 영화배우, 연 극배우를
지망했던

예술가의 소질을 타고 난 분이었다. 원래는 마음이 한없이 여리고 섬세한 사람이다.

주님은 모든 시련을 통해서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심을 확실히 간구 할 때 기적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찍 집에 들어온 남편이 힘도 없어 보이고

시무룩한 표정 을 하더니 불쑥 말했다.

"이제 술을 끊어야지."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거짓말로라도 술과 담배를 끊는 다는

말을 결코 한 적이 없었다. 멍청하게 바라보는 내게 남편은 말했다.

"오늘 밤 손님 접대로 술을 마시는데 술이 파란 바닷물처럼 보이더니 그것을 입에 대는

순간 혀가 끊어지는 줄 알았어! 어찌나 쓰고 독한지 나 원...."

말하는 본인도 마치 전기를 맞은 사람처럼 멍멍한 표정이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나는 성령님께 감사하며 슬그머니 화장실 로 들어가 감사,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그날 이후 알콜 종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후에도 담배를 끊지를 못했다.

교회 가서 인사하다 담배 갑이 툭 떨어져 망신을 당하더니 다음부터 는 양말에

숨겨 다녔다. 여전히 나는 새벽마다 담배 마귀 쫓아내는 기도를 했고 그러는

나를 우리 목사님은 서둘지 마라, 때가 되면 하나님이 처리해 주신다고 위로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엔 새벽기도를 가겠단다. 나는 너무 기뻐서 말문이 막혔다.

그때부터 2년이 지난 오늘까지 한 번도 새벽기도를 쉰적이 없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하룻저녁엔 갑자기 위가 아프다고 난리였다.

나는 체했나 해서 소화제를 먹였는데 점점 더 심해졌다.

병원 응급실로 달려가서 진통제를 몇 대씩 맞아도 진통이 진정되질 않았다.

다음날 오후까지 계속된 진찰 결과 쓸개에 돌이 들었는데 너무 커서 잘라내야 한단다.

염증이 너무 심해서 25일 정도 입원했는데 입원 기간에 술 같이 먹던 그 좋은 친구들은

형식적으로 한 번 들리거나 아예 오지 않았지만 우리 교인들은 새벽 기도가 끝나면

집사님들과 목사님이 아침 6시부터 시작해서 밤 12시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들리면서

죽을 가져오고 과일을 가져오고 온갖 정성을 다하는 사랑에 남편은 완전히 녹아지더니

"내가 세상 헛 살았네. 하나님의 사랑밖에 진 실한 것이 없네"

그러더니 그 이후론 담배 냄새도 맡기 싫어하고 깨끗하게 끊어버렸다.


쓸개 빠진 짓을 하니까 쓸개 하나 떼어 가시고 그 모든 더러운 습관들을 순간적으로 끊게

하고 새벽기도, 공식적인 예배에도 빠짐없이 나가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하시는 등 순서도 정확하게 나의 기도에 다 응답하여 주셨다.

집사 직분 받고 성가대도 서고 금년엔 주일 학교 교사 가 되고 이젠 전폭적으로

주님께 모든 삶을 맡기는 생활을 한다. 월요일과 화요일 저녁은 주일학교 교사교육에

나가고 낮에는 생명의 전화 교육에 가고, 수요일은 수요예배, 목요일은 성경대학 공부,

저녁에는 일대 일 제자 양육 공부, 금요일엔 구역예배, 철야예배,

토요일은 교회청소(관리부장임), 저녁 엔 성가연습, 주일은 교사, 성가대 등으로

새벽에 교회 가면 밤 10시가 넘어 야 집에 들어오신다.


가끔씩 인간적인 염려가 들 때가 있다. 저러다가 사업에는 영 신경을 안 쓰는 것이 아닌가

싶어 "여보, 사무실에도 좀 나가보세요!"하면 "왜? 걱정 돼? 내가 누구야?

하나님 아들인데 그 분이 자기 아들 굶길까봐 염려하는 거야?


이 믿음이 작은 자여!"하고 응수한다. 나는 할 말이 없어진다.

"세상 사람 다 믿어도 믿지 않을 사람이..."

예전엔 돈을 벌어도 염려, 근심으로 현관문 열고 집에 들어오는 그 순간부터 갖은

짜증을 다 내던 사람이 이제는 문을 열면

"할렐루야! 여보, 나 왔어!"한다. 매일 계속되는 일인데도 매번 나는 코끝이 매워지고

"주님, 고맙습니다!" 라는 고백이 나온다.


남편은 아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약골이었는데 이제는 건강해져서 한쪽도 먹지

않던 과일류, 떡, 밥을 이젠 교회에서 제일 많이 먹는 사람이 되었고 라이온스나 모임에

가면 점잔 떨며 교만하던 그 체면치레는 간 곳 없고 조금 모자란 사람처럼 농담을

잘하고 때로는 여자 집사님이나 친구 집사님에게 악의 없는 핀잔을 들으면

"어허, 내가 쓸개 없는 사람인거 몰라!"하며 속없는 사람처럼 웃기도 한다.

집안에 성구를 써서 붙인 쪽지 때문에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즐거운 비명을 지르다.

금년 들어 주일 학생을 15 명 정도 전도를 하였고 차 안에 사탕 과자를 항상 가지고

다니며 어디서고 어린이만 보면 나누어주고 아이스크림을 몇 개씩 사서 들고 어린이

있는 이 웃집을 찾아다니며 꼬신다(표현이 좀 뭐하지만 사실 그대로다).

한 번 낚시 에 걸린 그 아이들은 틀림없이 다음 주일 8시경이 면 그이의 차에 태워지고


부지런히 이집 저집 다니며 교회로 아이들을 실어 나른다. "내 년에 차를 바꿔야지!

아이들을 많이 태울 수가 없어서 불편해!"

나보고 들으란 건지 혼자 중얼거린다.

어쩌다 지하 성전에 있는 주일학교를 들여다보면 그이의 어깨에 도 목에도 양 무릎에도

아이들이 과일 달린 것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시간만 나면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듯이 말씀을 읽고 또 읽는 다. 방안에선 그이의 성경 읽는 소리가 또랑또랑 들리고

부엌에서 밥하는 나는 찬송을 부 른다. 어느 기도원 원장님이 말씀하셨듯이 빨래를 하면서는

"주님, 내 죄를 이렇게 깨끗이 씻어 주세요!"하고 청소를 하면서는

"주님, 내 죄를 이렇게 깨끗하게 쓸고 닦아주세요!"한다.

이 집이 천국이고 성전이 된 것이다.


그런 속에서도 아이들은 자라서 교회에 잘 다니고 큰딸은 고등학교를 졸업 하고 서울

가서 대한 주택 공사에 취직했고 작은딸은 미용기술을 배워 미장 원에 근무하고

막내아들은 고등학교 3학년으로 밤 12시까지 공부하며 착하게 자라고 있다.

그 고통의 세월 속에서 나와 우리 가정을 경영하신 하나님 의 그 놀라운 솜씨를 보며

어찌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내가 어둠에 둘러 싸여 있을 때에 그리스도의 얼굴이 모든 어두움을 빛으로 만드신 것이다.

할렐루야! 나는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슬픔과 좌절을 만날 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예비하시는지 그 계획을 잠잠히 바라볼 줄 아는 지혜와 인내만 배운다면

어떤 연단과 시련이 와도 그 시련을 통하여 주님과의 내적 교제를 할 수 있으므로

내 영이 더욱 부요 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다 성취했다는 안일은 절대 금물이며 어떤 마귀의 시험에도 빠지지 않고

오직 앞으로 전진만 하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항상 깨어 기도하고 내 영이

주님의 음성을 듣는데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다짐한다.

내가 이런 글을 쓸 결심을 한 것도 행여 이 글이 뽑혀서 활자화된다면 우리 김 집사나

나 자신이나 이런 간증까지 세상에 알려졌고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렸으니 믿음의

뿌리를 잘 내려서 어떤 폭풍에 도 흔들림 없이 주님 나라 갈 때까지 전진만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데 작은 밧줄의 역할이 될까 해서이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주님의 선하신 사랑이며 소중한 선물인 것으로 믿는다.


한번은 남편이 성가대에 있는 것을 보고 어떤 초신자 남자 한 분이 목사님 께

"저 분이 언제부터 교회에 나오십니까"하고 물었다고 한다.

"왜 그러세요? 한 3년 됩니다. " 목사님이 대답하시자

"희한한 일 다 보겠네. 세상 사람 다 믿어도 저 사람은 예수 믿을 사람이 아닌데"

라고 했단다.

"여보세요, 뭐가 이상합니까? 우리 하나님이 능치 못할 일이 어디 있는지

당신이 직접 체험해 보세요. 우리 주님은 얼마나 신기하고 완전하게 때를 맞추시는지

그 적절한 시기의 성취하심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한답니다."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남편 자랑하는 김에 하나 더 해야겠다.

다른 것은 못하는 것 없이 무엇이나 배우면 다 잘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도가 좀처럼 늘지 않는다.

심지어 처음 새벽기도 다닐 무렵에는 기도가 얼마나 서툴렀는지 어린아이가 마치 자기

아빠와 얘기하는 것보다 더 유치했다.

한번은 주일 새벽인데 목사님이 기도를 마치고 나가면서 들으니까

(일부러 들으시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하셨음)

마침 그때 남편도 기도를 마무리 짓는 데

"하나님 아버지, 이제 집에 갑 니다. 11시경에 다시 찾아 와서 인사 드리겠습니다.

하더란다. 목사님은 그 것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다음 철야 기도 때 그 이야기를 빙빙 둘러가며 하셨고 전 교인은 배꼽을 잡고 웃는데 나도 한참 웃다보니 웃음 헤푼 남편은

얼굴이 벌개질 뿐 웃질 않는다.

나는 생각할수록 우습고 재미있어 남편을 주먹으로 두드려 가며 웃다가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불퉁한가 생각하면서 별 생각 없이

"목사님, 그 착하고 예쁜 기도를 한 사람이 누구예요?"하고 물으니까

우리 목사님은 원망스럽게도 웃지도 않으시고

"김정호 집사님이에요 "했다.

나는 순간 무안하고 부끄러워서 머쓱했지만 남편을 쳐다보는 순간 울것 같은 인상이

너무 귀여워서 이젠 아주 폭소를 터뜨렸다.

남편이 키가 작나, 나이가 어리나. 전 교인은 다시 웃음바다가 되고 끝내는

남편도 눈물이 나게 웃었다.


그러더니 이 순진한 양반,

다음날 기도집을 시리즈로 몇 권 사오더니 열심히 기도를 연습한다.

그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사랑스러우실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 기도 실력은 지금도 발전이 없음. 그러나 주님이 기뻐 받으실

기도임에 틀림없으리라고 생각함).

복음 성가 가수 최미 집사가 내게 "어쩜 저런 분이 있어요! 저렇게 순수하고

사랑이 넘치는 분은 처음이에요!


전국에서 내 노래를 듣고 전화도 하시고 지방에 가면 접대도 받지만 이런

사랑이 넘치는 접대는 처음이에요"라고 말한 일이 있었다.


작년(1983년) 여름에 최미 집사님이 아세아 방송 제주 본부 주최로 함덕 해수욕장에서

열린 찬양의 광장 공개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제주로 왔는데 남편은 자기에게 그토록

눈물을 많이 흘리게 한 분이 누군지 직접 보겠다며 땀을 뻘뻘 흘리며 그곳에 찾아갔고

다음 날에 그 일행 20여명을 바닷가 횟집으로 초대해서 김민식 집사님, 전용대 전도사님

그 외 많은 분들게 점심 접대를 했다. 그 접대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찬양을 통해 받은 은혜를 감사 할 줄 알고 믿음의 형제들과 사랑의 교제를 갈망하는

남편의 순수한 사랑을 최 집사님은 발견한 것이다.


그 후로 우리는 최미 집사님과 깊은 교제를 이루고 있고 최 집사님은 새로운 노래를 취입

하면 테이프를 보내 주시고 전화를 해주신다.

이런 것이 주안에서의 행복이고 열매들을 맺어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삶이 조금 힘들고 돈이 조금 모자라고 우리의 이상과 현실이 조금 빗나간다

한 들 그것이 뭐 그리 슬퍼할 일인가? 부부가 서로의 미완성 부분을 사랑으로 감싸주고

애정 이 넘치는 가정을 형성하며 가정에서부터 작은 천국을 이루어 간다면 그것 이 바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임을 믿으며 기도만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싶다.

(인내, 연단 그리고 소망, 베드로서원)

출처 : 여호와는나와함께
글쓴이 : 이관순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