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수*이동원 목사+목사님들설교

[스크랩] 응답받는 기도(느1장6-11) / 이동원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2. 21. 06:03

응답받는 기도(16-11)

 

 

성경본문느혜미야 1:6~11

6.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 흩을 것이요

9. 만일 내게로 돌아와서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찌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컨대 기억하옵소서

10. 이들은 주께서 일찍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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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이동원목사

 

영국에 F.B.Meyer라는 유명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가 한번은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긴 여행중에 그를 알아본 선객들이 그에게 선상예배를 인도해 달라고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마이어 목사님이 흔쾌히 허락하고 예배를 인도하시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 무신론자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의 권고로 참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날 마이어 목사님"기도의 응답"이라는 제목으로 설교 하셨다고 합니다.

예배가 끝난후 그를 예배로 인도한 친구가 설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난 절대로 기도의 응답이라는 것을 믿을수 없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 무신론자가 예배후에 갑판위를 거닐다가 어느 부인이 창백한 안색으로 안락의자에 앉아 반쯤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이 부인의 의자위로 펴져있는 그녀의 양손에 오렌지 두 개를 쥐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친구가 "당신 이 부인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하면서 그냥 심심풀이 장난이라고 대답하더랍니다.

 

그가 그리스도인 친구와 갑판을 한동안 거닐다가 다시 이 부인 곁을 지나게 되었는데 잠을 깬 부인이 아주 명랑하고 상기된 표정으로 자기가 주었던 오렌지를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오렌지 맛있게 드시네요."하니까,

부인이 갑자기"하나님을 찬양합니다"고 말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는 정색을 하고 "왜 하나님을 찬양하십니까? 사실은 이 오렌지 두 개는 제가 부인에게 드린 것입니다."하니까,

 

이 부인이 그 무신론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 그랬군요. 당신이 바로 하나님의 기도응답의 도구 이셨군요. 사실 저는 배 멀미가 너무 심해 갑판에 나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오렌지 두 개만 먹고 싶다고 기도했거든요"

 

마이어 목사님은 나중에 이 이야기를 전해듣고 "기도를 비웃는 무신론자를 웃기시고자 무신론자를 사용하신 하나님의 기도의 응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의 본문에도 유사한 이야기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신흥제국 페르샤의 아닥사스다 왕 1세는 무엇보다 이스라엘 재건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왕이었습니다.

(에스라서 4장에는 이미 한차례 아닥사스다 왕이 예루살렘 성곽의 건축을 자신에 대한 반역으로 해석히여 공사 중단을 명령한 역사적 사실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에스라4:11-22)

 

그러나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기도를 응답하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 재건에 가장 부정적인 왕을 기도응답의 도구로 쓰셨습니다.

하나님의 유머라고나 할까요?

하나님은 이 유머스런 사건을 통해 기도 응답의 비밀을 모든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아직도 최선의 기도응답을 기대할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응답받는 기도-어떻게 드려야 할까요?

 

1. 기도의 장애가 옮겨져야 합니다.

기도응답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장애가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장애는 기도하는 사람들 자신의 죄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은 기도 대상자의 삶속에 있는 죄문제들입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사야59:1-2에 보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의 자리에 나아올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기도 응답의 장애를 옮기는 일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죄의 장애를 옮길 수 있을까요?

그것은 자복 혹은 신약적으로 말하면 자백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일서1:9"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하신 말씀처럼 성도의 신실한 죄의 자백은 죄에서 우리를 께끗케하며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힘없는 기도의 통로를 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기도를 시작하며 먼저 자신과 자기의 조상들의 범죄함을 자복합니다.

본문의 6-7절입니다.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는 자기의 조상들의 범죄함을 자복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또한 포함시키고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나와 나의 아비집이 범죄하여---"

 

그는 또한 자신들의 죄와 악을 합리화시키거나 미화시키지 않습니다.

축소하지도 않습니다.

"--심히 악을 행하였다"고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어떤 교인들이 주차 금지된 곳에 차를 주차하며 양심에 꺼렸던지 한분의 아이디어로 창문에 메모를 남겼다고 합니다.

"15분간 이 근처를 돌았습니다. 주차안하면 직업을 잃을 것 같아 할수 없이 여기에 주차합니다. 우리죄를 사하여 주옵소서"했더니 나와 보니까 위반 티켓이 붙어 있었는데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이 근처를 15년간 돌고 있습니다. 티켓을 드리지 않는다면 직업을 일을 것같아 할수 없이 위반 벌금을 드립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이것을 우리는 관점의 차이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볼 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래 자백이란 말은 죄를 보시는 하나님의 관점에 동의하고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진지한 기도는 우리의 죄를 자백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기도의 장애가 옮겨지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기도의 통로가 열리는 것입니다.

 

2. 기도의 근거를 주장해야 합니다.

응답받는 기도의 한가지 현저한 특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응답받는 기도에는 기도의 성경적 근거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4:3)고 말합니다.

즉 야고보는 응답하지 못하는 기도에는 잘못된 근거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기심이라는 비 성경적 근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의 성경적 근거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약속의 말씀은 결국 하나님 자신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무엇이든 기도할수 있으나 그 기도가 응답받을수 없는 기복적인 기도인지 아니면 응답받기에 합당한 기도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기도의 근거인 것입니다.

 

기도의 가장 확실한 근거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말씀을 알고 그 말씀을 믿고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기도는 맹목적이 아니고 기복적이 아닌 성경적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그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8-9절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지금 느헤미야는 주께서 모세에게 약속하셨던 말씀을 주장하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구하고 있는 기도인 것입니다.

성경적 기도의 가장 분명한 정의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방편 혹은 통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36:36-37의 말씀을 보십시오.

여기 주께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시며 "내가 이루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이루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37절에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같이 내게 구하여야 할지니라--“

주께서 약속하셨지만 그래도 주의 백성들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약속하신바를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약속해 놓고 우리가 기도하기를 기다렸다가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실현하는 방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기도하는 백성들이 되기위해 약속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 하십시오.

기도한다는 사실이상으로 무엇을 기도하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교인한분이 앵무새를 샀는데 유일하게 한마디 하는말이 "키스해 주세요"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놓고 황당한 경우들이 많아 이 앵무새에게 경건한 말을 가르칠 필요를 느꼈다고 합니다.

 

마침 어떤 목사님이 기르는 앵무새가 경건한 말을 잘한다고 해서 목사님께 훈련을 부탁했더니 목사님 댁에 그 앵무새를 보내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교인 앵무새가 도착하자 목사님이 자기 앵무새장에 함께 집어넣었습니다.

목사님 앵무새가 먼저 인사를 하면서 "다같이 기도하십시다."하니까,

교인 앵무새가 "키스해 주셔요"하더랍니다.

 

이때 목사님 앵무새가 지금까지 한번도 안한 말을 했다고 합니다.

"오 주께서 기도를 응답하셨습니다".

 

기도의 사실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기도의 내용입니다.

약속의 말씀이 기도의 내용을 형성할 때 주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기쁨으로 응답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우리의 기도의 근거가 되게 하십시다. 그것이 바로 응답받는 기도의 비밀입니다.

 

3. 기도의 대상을 신뢰해야 합니다.

누가 기도의 대상입니까?

물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서 당연히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얼마나 자주 세상을 보고 사람의 눈치를 보고 있는지요?

마치 하나님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제 아내가 저와 대화중에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 아내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아내의 공통된 특성입니다. 대화하다가 다른 사람 쳐다보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전적인 관심을 달라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나누어지지 않은 관심과 신뢰의 표시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어느면에서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마음을 다, 목숨을 다, 힘을 다, 뜻을 다하여 사랑을 요구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것은 기도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만이 소망임을 믿는다면 그 하나님께만 소망을 걸어야 합니다.

 

지금 느헤미야의 경우 현실적으로 가장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은 자기가 모시고 있는 아닥사스다 왕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날마다 그를 만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자기의 문제를 왕에게 아뢰이지 않은 것을 주목하십시오.

지금 그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 것입니다.

물론 그는 현실적으로 아닥사스다 왕의 행정적인 결재가 없이는 예루살렘성의 중건이 불가능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의 결재에 앞서서 하나님의 결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는 기도응답의 싸인을 받고 싶어한 것입니다.

사람이 허락하더라도 하나님이 그 사람을 움직이셔서 허락하시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가 많이 듣는 말이 '만사는 인사' 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인사는 천사'입니다. 사람의 일은 궁극적으로 하늘의 일인 것입니다.

사람을 움직이시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왕을 통해 이 허락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11절의 기도를 읽어보십시오.

지금 그는 "--이 사람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아닥사스다 왕을 움직이셔서 그의 신임과 허락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쉽게 이 문제를 왕에게 말하지 않고 기도만 계속했다는 것은 그가 궁극적으로 하나님만을 신뢰한 것을 보여 주지 않습니까?

 

이것은 우리의 모습과 얼마나 다른 모습인지요?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자주 아니 더 많이 이 세상이나 사람들의 도움을 구하는 것은 아닌지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청년이 산을 타다가 미끄러져 벼랑끝 나무위에 걸렸습니다.

나무 가지를 잡고 있는데 점점 힘이 빠져 갑니다.

마침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와 주셔요,하나님."했더니 소리가 들립니다.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손놔, 내가 받아줄게

 

그러자 그는 다시 이렇게 소리쳤다고 합니다.

"누구 다른 분 없어요?"

 

시편기자처럼 고백할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시편62:1-2)

 

기도의 응답을 소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무엇보다 기도의 대상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십니다.

그의 자녀들을 자상한 사랑으로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전능하시고 전지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하나님을 보여주시고자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로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안에서 살아가도록 죽으신지 사흘만에 다시 사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성경은 약속합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그의 능력을 신뢰하시고 기도할 수 있으시다면 무엇을 걱정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제 당신의 문제를 갖고 하나님앞에 나오십시오.

그분을 슬프게 했던 당신의 모든 죄를 자백하며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그 앞에 엎드리십시오.

 

그리고 이제 오직 그분만을 하나님만을 신뢰하겠다고 고백하여 보십시오.

당신의 황폐한 삶의 마당에 견고한 은혜의 성곽이 건설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안에서 당신은 날마다 기도의 응답을 경험하는 신기한 삶을 살아가시게 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설교 적용 질문>

1. 본문 1:6-7의 느헤미야의 자복의 기도의 특성들을 살펴 보십시오.

2. 본문 1:8-9에서의 기도에서 느헤미야는 무엇에 근거하여 기도의 응답을 주께 호소하고 있습니까?

3. 본문 1:11에서 느혜미야가 기도하는 대신 왕에게 할 수 있었던 일은 무엇이며 그렇게 하지 않고 기도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지 나누어 보십시오.

4. 우리가 이런 느헤미야의 기도에서 배우고 적용해야 할 교훈들은 무엇들인가요?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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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 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