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호 목사 설교

[스크랩] 그가 믿는 바 하나님은(롬 4;16-25 /2016.3.27. 부활주일)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3. 25. 16:10

그가 믿는 바 하나님은(롬 4;16-25 /2016.3.27. 부활주일)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초등학교 다니는 어린 아들과 아버지가 골동품 가게에 들렀습니다. 아버지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성화가 걸려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끔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처음 보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이 그림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이 때 아들이 주인 말을 가로채면서 아버지에게 설명을 하였습니다.

아버지! 저 분이 내가 믿는 예수님이예요.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짊어 지고 죽으시는 장면이예요. 그 옆에 칼과 창을 든 사람들은 로마 병정이구요, 십자가 밑에서 울고 있는 여자가 막달라 마리아예요. 그리고 저 군중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던 이들이예요.”

열심히 설명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간단히 대답하였습니다.

알았다.”

그리고 둘이는 손을 잡고 골통품 가게 밖으로 나왔습니다. 한참을 걸어 갔습니다. 그 때 아들이 갑자가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다시 갈 데가 있어요.”

그리고 아버지 손목을 잡고 다시 골통품 가게로 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그런데요. 아버지! 아까 중요한 한 마디 설명을 빠뜨렸어요. 저 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셨어요.”

 

오늘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모든 믿는 자의 모델입니다. 모든 믿는 자의 멘토입니다. 모든 믿는 자의 스승입니다.

그래서 모든 믿는 자는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걸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어떤 믿음을 가졌는 가요? 우리가 가질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요?

 

절대 희망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아브라함의 믿음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절대 희망의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우리 믿음의 모델인 되고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바랄 수 있는 것을 바라는 것은 상식입니다.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이 믿음입니다. 상식은 과학이고, 믿음은 신앙입니다. 상식은 이성이고, 믿음은 영성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바라는 믿음을 보여 줄 때가 많았습니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알같이 자녀를 번성시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00살이 되어도 자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랐습니다.

드디어 100살에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종으로 바치라는 것이 아니라 죽여서 번제로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쉐바에서 3일 걸어 모리아까지 갔습니다. 같이 가는 이삭에게 그 감정을 감추는 3일은 고역이었을 것입니다.

모리아까지 간 아브라함은 산 밑에 두 사환을 두었습니다. 데리고 가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죽이지 못 하도록 할 것만 같았습니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랐습니다. 이삭을 죽이러 가면서 이삭과 함께 내려 오기를 바랐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상황을 초월한 말이 이루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산을 올라가면서 이삭으로부터 비통한 결정적 질문을 받았습니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이때 아브라함은 바로 네가 어린양이다라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삭이 도망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는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라고 가슴 찢어지는 듯한 음성으로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삭대신에 어린양을 준비하여 두시기를 바랐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준비하셨습니다.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이 믿음입니다.

 

만년설이 하얗게 덮여 있는 히말라야를 바라보는 마을이 있습니다. 어느 날 프랑스의 처녀가 찾아와서 방을 얻어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쁘장한 처녀는 아침이면 히말라야로부터 흐르는 냇가에 앉아 물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저녁이면 돌아가곤 하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슬그머니 웃기만 하였습니다. 계절이 바뀌어 갑니다. 해가 바뀌어 갑니다. 그러나 그 처녀의 습관적인 행동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한결같았습니다. 이제 얼굴에 주름살이 잡히기 시작하였습니다. 늙은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시체 하나가 둥둥 떠내려 왔습니다. 그 시체를 건진 할머니는 부등켜 안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입을 맞추며 울었습니다.
이제야 당신이 돌아 왔군요. 약혼하고 히말라야 등산을 떠나 조난을 당하여 눈속에 파묻혔지요. 시신을 찾을 수 없어서 조난 구조대가 포기하였지요.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눈이 녹으면 언젠가는 당신이 내 곁으로 돌아 올 줄 알았어요.”
몸부림치며 처녀는 울었습니다.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랐습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아브라함의 믿음을 받았습니다. 홍해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을 때 바로 군대가 도로 잡아 가려고 따라 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모두가 새파랗게 질렸습니다. 홍해에 빠져 죽든지 다시 붙잡혀 가서 종살이 하든지 둘 중에 하나가 될 것이 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모세는 외쳤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14:13-14)

 

다 절망하였어도 모세 한 명만 절대 희망을 가졌습니다. 희망대로 되었습니다.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 가요? 200만명이 지금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데 그 중에 단 한명이라도 따라오는 애급 군대들이 다 죽을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을 가요? 모세는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랐습니다. 이것이 모세의 믿음이었고,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6.25때 피난 나올 때 생긴 이야기입니다.

목사님이 피난민 대열에 섞여 있었습니다. 공산당들이 갑자기 둘러싸고 한 명 한 명 조사를 시작하였습니다. 군인 가족, 경찰 가족, 목사, 기독교인들을 죽였습니다. 필요한 사람은 북으로 끌고 갔습니다. 한 줄로 서서 차례로 조사받을 때 목사님은 하나님께 기도드렸스니다.

하나님! 나는 어떻게 할가요?”

목사는 거짓말하면 안 된다. 목사는 목사라고 그래라.”

그러면 죽이는 데요.”

내게 맡겨라.”

이런 기도를 하던 목사님은 목사라고 말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살려 주실 줄 믿고 희망을 가졌습니다. 드디어 목사님 차례가 되었습니다. 공산당이 물었습니다.

너는 무엇하던 놈이냐?”

목사님은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 목사입니다.”

공산당이 갑자기 말했습니다.

? 목수! !”

절대 희망은 절대 믿음입니다.

 

나도 지금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빚을 금년내 다 청산할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스케테 수도원이 100곳에 생기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절대 순종

아브라함의 믿음은 절대 순종의 믿음이었습니다. 성경에 자녀를 하나님이 바치라고 명령하신 사람은 아브라함 한 명 뿐입니다. 입다가 딸을 하나님께 드렸지만 하나님께서 드리라고 하여 드린 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서원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딸을 번제로 드린 것을 알고 있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원어 성경을 보면 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11;37-38)

 

이렇게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처녀로 당장 죽인 것이 아니라 처녀로 늙어 죽었다는 의미입니다. 원어는 베투라이 알이라고 되어 있는 데 이는 늙어 죽을 때까지 처녀로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자녀를 자기 손으로 죽여서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기까지 순종한 사람은 아브라함 한 명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절대 순종의 믿음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어느 마을에 크게 농사하는 농부가 있었습니다. 성격이 고약하고 못 되었습니다. 일군들을 들들 볶았습니다. 그 밑에서 일하는 일군중에 일년 견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워낙 그의 성격이 고약하여 맞출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군이 말했습니다.

내가 도전하겠다. 그에게 가서 일년 이상을 견디는 것을 보여 주겠다. 참고 견디면서 그의 농사법도 배우고 말겠다.”

그리고 그 농부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주인님을 위하여 일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농부가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나는 나를 이해하고 나와 함께 일하려고 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다.”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농부는 일군을 밭으로 보내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낮에는 물을 퍼올리는 수차를 사용하지 않는다. 밤에만 물을 퍼올린다.”

이 말을 들은 사람이 대꾸하였습니다.

참 지혜로우십니다. 밤에 물을 퍼올려야 산짐승들이 와서 마실 수가 없지요. 새들도 그 물을 마시지 않을 것입니다. 물을 절약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밭을 갈 때가 되었습니다. 농부가 일군에게 말했습니다.

밭에 고랑 하나에는 밀을 심어라. 다른 고랑에는 편두통을 심어라. 그 옆 고랑에는 보리를 심어라. 고랑마다 다른 곡식을 심어야 한다. 내 방법이다.”

이 말을 들은 일군이 대꾸하였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우십니다. 점점 지혜가 더 하시군요. 그런 식으로 씨를 뿌리면 밭이 다양하여 지겠습니다. 그리고 꽃도 아름다울 것입니다.”

드디어 뿌린 씨앗들이 싹을 내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직 곡식이 생기지도 않았는 데 주인 농부가 말했습니다.

추수하러 가자. 추수 때가 되었다.”

일군이 말했습니다.

주인님은 정말 지혜로우시네요. 미리 추수하면 이삭 하나 남지 않고 모두 거둘 수가 있겠습니다.”

일군은 모두 베어 마당에 쌓았습니다. 알곡은 하나도 없고 모두 쭉정이와 잎사귀뿐이었습니다. 농부 주인이 말했습니다.

바구니를 가져 와라. 모두 모아 쌓아 두었다가 내년에 거름으로 사용하여야 한다.”

일군이 말했습니다.

주인님의 지혜는 지금까지 어떤 지혜보다 더 탁월합니다. 내년에는 거름이 충분하겠네요. 내년 농사는 풍작이겠네요.”

이 말을 듣고 주인 농부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모든 일을 내가 원하는 대로 하였다. 나와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다. 나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당신만이 나와 함께 살 자격이 있다.”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한 수도사가 하였습니다. 다른 수도사가 물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해석하여 주십시오.”

이 이야기를 한 천사 수도사가 해석하였습니다.

농부는 하나님입니다. 그 분이 명령한 거친 말은 자기 사람을 찾으려는 시도였습니다. 시련과 역경을 통하여 사람을 골라내십니다. 참고 견디고 자기 주인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차출하십니다. 나는 그 분의 종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 분의 뜻대로 살아야 하고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 분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도 그 분 말이기 때문에 따라야 합니다. 나는 바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종이 됩니다. 환란과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순종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고 하였습니다(고전 3;18)”

 

아브라함의 믿음은 절대 순종의 믿음이었습니다.

어거스틴에게 제자를 삼아 달라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어거스틴은 그들에게 배추 한 포기씩 주면서 땅에 심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거꾸로 심으라고 하였습니다. 한 참 후 보니 한 명만 거꾸로 심고 나머지는 다 바로 심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어거스틴이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배추를 먹고 살만 하다. 그러나 저 사람만은 먹고 살 길이 없다. 저 사람만 내가 데리고 살아야 겠다.”

그리고 배추를 거꾸로 심은 사람만 제자로 삼았습니다. 절대 순종하는 사람을 찾으려는 시도였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이 무슨 명령을 내리시든지 듣는 절대 순종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절대 순종이 아브라함이었습니다.

노아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산꼭대기에 배를 만들어라.”
지구 역사상 산꼭대기에 배를 만든 사람은 노아 한 명뿐입니다. 이것이 절대 믿음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니 온 세상이 산꼭대기까지 물로 덮였습니다.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깊은 곳은 고기가 없는 곳입니다. 갈릴리 호수는 아침이면 고기를 못 잡을 시간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그리고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절대 순종은 절대 믿음입니다.

 

절대 믿음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믿었습니다. 조금도 흩으러짐없이 믿었습니다. 본문에 절대 믿음을 의미하는 말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4:19)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4:20)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4:20)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4:21)

 

아브라함은 좋은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주실 줄 절대적으로 믿었습니다.

폭설이 내리는 밤이었습니다.

밤 자정이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주말 여행을 마친 어느 여자가 밤 길을 혼자 걸어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뒤를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긴장하였습니다. 걸음이 빨라졌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도 걸음이 빨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점점 거리가 좁혀졌습니다. 그 여자는 긴장하였습니다. 집까지는 아직 거리가 좀 남아 있었습니다.

추웠습니다. 무서웠습니다. 그 남자가 바짝 다가 왔습니다. 얼굴을 보니 험상 궂었습니다. 그 여자는 뒤로 보며 자기가 들고 있던 짐을 내밀면서 그 남자에게 말했습니다.

저를 좀 도와 주시겠어요? 여행갔다 오는 길인 데 가방이 무거워요. 선생님. 아주 무거워요.”

그 남자는 아무 말 없이 그 여자의 짐을 받아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란히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여자가 팁을 주려고 하자 그는 머리를 저으며 말하였습니다.

부인, 나는 아무 것도 받지 않겠습니다. 사실 나는 당신의 핸드백을 날치기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부인을 따라 왔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저를 믿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방을 맡겨 주셨습니다. 나는 당신이 믿고 맡겨준 가방을 가지고 도망칠 수가 없었습니다.”

절대 믿음은 상대방을 끌어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중보기도 사역자 하워즈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아프리카 선교사로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비행기표를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비행장까지 기차를 타고 가야 합니다. 주머니에 돈있는 것만큼 기차표를 샀습니다. 반 정도가고 내려야 했습니다. 기차 역에서 누군가가 표를 사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가 표를 사줄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반갑다고 인사하고 거냥 갔습니다. 대합실에 앉아서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기차표가 필요하면 표사는 이들과 함께 줄을 서라.”

하워즈는 순종하였습니다. 무조건 줄을 섰습니다. 매표하는 곳까지 이제 3명 남았습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두 명 남았습니다. 한 명이 매표구로 가고 나니 한 명이 남았습니다. 그가 표를 하고 있는 데 앞 사람이 갑자기 손에 쥐고 있던 돈을 주면서 말했습니다.

저 갑자기 못 가게 되었네요. 이 돈으로 당신 표를 사세요.”
그리고 밖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절대 순종은 절대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절대 부활

그리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은 부활의 믿음이었습니다. 절대 부활의 믿음입니다.오늘 성경 본문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17)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은 부활의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었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11:17-19).

 

이삭을 죽여서 하나님께 바쳐도 하나님은 이삭을 부활시켜서 민족의 조상이 되게 만들어 주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칼을 댄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날 우리는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었기에 부활의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에 부활의 믿음을 가졌었다는 것은 본받을 만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의 근거는 부활 믿음이었습니다. 부활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남다르게 살 수 있습니다.

 

죽어도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죽으면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 부활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죽으면 어때요? 다시 사는 데요.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무디 목사님이 죽기 직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어느 날 신문에 무디가 죽었다는 기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 신문 기사를 믿지 마십시오. 나는 죽은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더 좋은 곳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히틀러 학정 밑에서 순교당한 본 회퍼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독재자 히틀러에게 항거하다가 본 회퍼 목사님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감옥에서 그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이제 나의 신앙에 관하여 완전히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신앙은 무거운 짐 아래서도 깨어지지 않고 항거한다. 주저하거나 절망하는 일은 없게 되었다. 좀 이상하게 들릴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감옥 안에서 기뻐하는 것을 배웠다."

처형당하는 날 간수가 그를 불러 냈습니다. 그 때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이제 끝이다. 그리고 생명의 시작이다."

 

부활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과 역행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살에 난 이삭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반대입니다. 애지중지하여야 합니다. 부활을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 자녀를 하나님께 죽여서 드린다는 것은 세상과 역행하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였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부활 믿음때문이었습니다. 이삭을 도로 살려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히브리서 기자가 확실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11:17-19).

 

독일의 시인 괴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고 다시 산다는 도리를 알기까지 너는 아무래도 처량한 나그네이다.”

 

바이올린 최고 제작자가 만든 바이올린이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 바이올린에는 이런 글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살아 있는 나무였을 때 나는 말없이 자라났다. 그러나 나는 죽은 뒤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늘은 부활 주일입니다.

아브라함은 절대 희망, 절대 순종, 절대 믿음 그리고 절대 부활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조상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렇게 결론으로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4;22)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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