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피해를 주는 가정(창19:12-22)
출처/강문호목사
물리학 용어 가운데 엔트로피 법칙(the entropy law)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에너지와 사물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질서에서 무질서로, 쓸모있는 것에서 쓸모 없는 것으로 변하여 간다는 법칙입니다.
열은 높은 온도에 낮은 온도로 흐르고, 모든 물질은 사용할 수 있는 형태에서 사용할 수 없는 형태로, 질서가 있는 상태에서 질서가 없는 상태로 변해가며 되돌이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엔트로피 법칙입니다.
이 법칙은 가정에도 해당된다며 물리학의 법칙을 가정으로 끌고 온 것이 가정학자들입니다.
결혼을 합니다.
사랑이 뜨겁습니다. 그러나 점점 식어갑니다. 자동차를 삽니다. 점점 고장이 나기 시작합니다. 질서있게 잘 돌아가던 기계들이 무질서하게 됩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입니다.
처음에는 영토 전쟁이었습니다. 땅을 빼앗으려고 전쟁을 하였습니다. 그 후 종교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종교끼리 갈등을 일으키며 전쟁을 하였습니다.
그 후 전쟁은 이념전쟁이었습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전쟁같은 것이 이념전쟁이었습니다. 그리고 인종전쟁이 지금 계속 되고 있습니다. 인종 청소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가족 전쟁이라는 말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제는 밖에 전쟁이 아니라 안에 전쟁입니다. 가정에서 알게 모르게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부부 갈등, 고부 갈등, 부모와 자녀 갈등, 친척간에 갈등입니다.
가정 파괴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한 가정속에 산다는 것은 정말 행복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피해를 주는 가정이 있습니다.
롯의 가정을 보면서 세상에 없어야 할 가정을 비극적으로 살펴 보려고 합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데아 우르를 떠날 때에 아브라함을 따라 갔습니다. 그리고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최선의 가정이 이었습니다.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는 가정이었습니다. 롯의 가정은 세상에 피해를 준 없어야 할 가정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졸졸 따라 다니던 롯은 아브라함과 같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기는 놈 위에 걷는 놈이 있고, 걷는 놈 위에 뛰는 놈이 있습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놈보다 더 한 놈이 있답니다. 나는 놈위에 붙어 있는 놈이랍니다.
롯은 아브라함에게 붙어 있는 조카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같은 두 가지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선 아브라함 때문에 영적인 축복을 받았습니다. 롯이 아브라함과 헤어진 후에 소돔과 고모라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가 너무나 음란한 땅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더러워지면 땅이 더러워집니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 땅을 유황불로 멸망시키셨습니다.
모두가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롯의 가정을 구원시켜 주셨습니다. 오직 한 가정만 살아 남았습니다. 갈데아 우르에서 아브라함 가정 한 가정만 이끌어 내신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의 가정 한 가정만 이끌어 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창 19:29)
또 받은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롯에게 아브라함과 동일한 물질적인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말했습니다.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고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리라.”
롯의 가정은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축복을 받은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롯의 가정은 그야말로 콩가루 가정이 되었습니다. 롯의 두 사위는 소돔과 고모라를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유황불속에 타죽었습니다.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어 죽었습니다. 남자들이 없는 소알로 롯과 두 딸이 도망쳐 나왔습니다. 살 곳이 없어 동굴에서 살았습니다. 언니가 동생에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배필될 사람이 이 땅에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창 19;32)
둘이 같이 아버지에게 술을 퍼마시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언니가 아버지의 씨를 받았습니다. 그 자손이 모압 민족을 만들었습니다. 다음 날은 동생이 그렇게 아버지의 씨를 받았습니다. 그 후손이 암몬 족속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적대 국가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민족이 되어 버렸습니다. 세상에 피해를 주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롯의 가정이 그렇게 엉망인 가정, 엔트로피아 가정이 된 원인은 무엇인가요? 있어서는 안 되는 안 되는 가정이 된 원인이 무엇일가요?
잘 되는 집은 잘 되는 이유가 있고, 안 되는 집은 안 되는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롯의 가정은 이런 영적인 사람 한 명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4가지 없었습니다.
1. 일치가 없었습니다.
롯의 가정은 6식구였습니다. 롯 부부, 두 딸, 두 딸이 결혼하였기에 두 사위가 있었습니다. 남자 3명, 여자 3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하나가 되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유황불로 소돔과 고모라 땅을 멸할 것이니 나가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생명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위는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농담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 중요하고 심각한 예언을 농담으로 여길 정도로 믿음이 없었습니다. 롯의 아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 곳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뒤를 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보았습니다. 궁금하여서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 재산이 아까워서 뒤를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 순간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믿음이 있는 것같았으나 없었습니다. 순종하는 것같았으나 불순종하였습니다. 앞으로 가는 것같았으나 뒤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같았으나 세상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말씀드린 대로 롯의 두 딸이 가관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술로 취하게 한 후에 같이 잤습니다. 그것도 두 딸이 교대로 아버지와 잠자리를 같이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그것을 모르고 계속 술을 마셨고 두 딸과 함께 잤습니다. 6식구가 다 믿음의 분량이 달랐습니다. 하나가 되지 못 한 가정이었습니다. 신앙의 일치가 되지 못 한 가정이었습니다. 결국 그 가정은 파멸되고 말았습니다. 영적인 사람 한 명만 있었어도 식구들을 설득하여 나가고 인도하여 나갔을 것입니다.
역사학자 토인비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족제도는 한국에 있다.”
한 지붕밑에서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가 같이 사는 나라는 이스라엘과 한국이라는 것입니다. 1953년 미국의 사회학자들이 한국을 연구하러 들어 왔습니다. 연구 과제가 이런 것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면 전염병으로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른들이 많었기 때문에 고아들이 많습니다. 있는 자와 없는 자가 극심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도둑, 강도가 들끓게 되어 있습니다. 폭탄과 놀람으로 기형아가 많이 출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국은 625 전쟁 후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원인을 사회학적으로 조사하려는 방한이었습니다. 미국 사회학자들은 두 가지 모습에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하나는 시골집 마루에 할아버지와 손자가 나란히 앉아 식사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자 입에 반찬을 넣어 주는 모습이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어머니가 발가벗은 아들을 등에 업고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걷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린아이가 정신없이 평안하게 자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등에 업고 다니는 모습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온 식구가 하나가 되어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가정은 목적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돈도 하나여야 합니다. 교회도 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예배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롯의 가정은 같이 살고 있었지만 일치가 없었습니다. 이런 가정은 나중에 콩가루 가정이 됩니다.
2. 양보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한 롯은 아브라함과 같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목축을 하는 데 너무나 가축이 많아져서 풀과 물이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들과 롯의 종들이 물과 풀을 가지고 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가난할 때는 같이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자가 되고 나니까 같이 살 수가 없었습니다. 돈없을 때보다 돈이 많을 때가 문제입니다. 실패하였을 때보다 성공하였을 때가 더 위험합니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 하냐? 나를 떠나 가라.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창 13;8-9)
양보하는 마음은 넓은 마음입니다. 양보하는 마음은 큰 마음입니다. 모두를 포용하는 마음입니다. 양보하는 마음은 하나님께 모두를 맡기는 마음입니다. 양보하는 마음은 남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양보가 없는 곳에는 분쟁이 있을 뿐입니다. 아브라함은 양보하였습니다. 그러나 롯은 양보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정도로 양보하였을 때 롯도 양보하여야 했습니다. 이렇게 말
했어야 아랫 사람의 도리입니다.
“삼촌!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나는 삼촌을 따라다니며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삼촌 때문에 이렇게 축복을 받았습니다. 내 목자들을 혼내겠습니다. 다시는 싸우지 못 하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못 할 바에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삼촌!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삼촌도 가축이 많아졌고 나도 가축이 많아져 물과 풀이 모자라니 어쩔 수 없이 조금 떨어져 사는 것이 좋을 것같습니다. 저들이 싸우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삼촌이 어른이시니 먼저 선택하세요. 나머지 땅을 제가 가지겠습니다.”
그러나 롯은 자기가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하였습니다. 그 땅이 바로 소돔과 고모라 땅이었습니다. 음란한 땅이었습니다. 양보를 설득할 사람이 한 명만 있었어도 사정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양보를 설득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어머니가 그런 능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딸이 부모를 설득할 수도 있습니다. 누구도 좋습니다. 그런데 한 명도 없었습니다. 양보가 없었던 롯의 가정은 결국은 사회에 피해를 주는 가정으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뉴욕 대학 톨로레스 크리저 박사가 말했습니다.
“사람의 손에는 감촉을 느낄 수 있는 기관이 500만개가 있다. 또 손을 서로 마주 잡으면 혈액 속에 있는 헤모그로빈 산소 운반 작용을 크게 촉진시킨다. 재생 능력이 생긴다는 말이다. 이것을 실험하여 보았습니다. 두 환자에게 나란히 반대 실험을 하였다. 한 환자 가족에게는 자주 와서 환자를 어루 만져 주라고 하였다. 다른 환자 가족에게는 환자를 건드리지 말라고 하였다. 결과는 달랐다. 자주 와서 만져주었던 환자가 빨리 회복되었다.”
만져준다는 것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잠들어 있는 자녀를 쓰다듬어 주고 만져주는 아이는 언제나 평안하다는 심리학적인 분석도 나왔습니다.
3. 소통이 없었습니다.
롯의 가정은 서로 소통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실 것을 아브라함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의 식구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받는 수준이 달랐습니다. 농담으로 받는 이가 있었고, 대강 받는 이가 있었고 그대로 받은 이가 있었습니다. 가정 식구니까 서로 소통하면서 의견을 같이 하여야 했습니다. 식탁에서 식사를 하면서 토론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고 마지막 결론을 롯이 내려야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한 식구니까 같이 행동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니까 확실히 소돔과 고모라는 유황불로 망한다.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라. 이제 피난간다. 갈 때 주의 사항이 있다. 절대로 뒤를 보지 말아라. 하나님의 명령이다. 다같이 떠난다.”
그리고 롯이 끌고 나갔으면 롯의 가정은 콩가루 가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딸과 동침하여 자녀를 낳는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암몬과 모압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적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소통이 없는 가정은 엄청난 비극을 저지르게 됩니다.
지난 번 미국에 들어갔을 때 할머니 한 분이 자살하는 사건을 보았습니다. 부부와 두 자녀 그리고 할머니가 미국으로 이민갔습니다. 부부는 맞벌이 부부로 직장에 새벽에 나가서 밤 늦게 돌아 왔습니다. 두 딸은 한국말을 못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영어를 못 하였습니다. 한국말로 할머니가 손자 손녀에게 물어 보면 한 마디 합니다.
“한국 말 하지 말아요.”(Don’t speak korean again.)
TV를 틀면 한국 방송은 나오지 않습니다. 영어 방송을 알아 들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인 친구도 없습니다.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말을 못 하고 살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밖에 나가 나무를 만지며 말합니다.
“나무야! 너도 나처럼 말을 못 하는 구나. 얼마나 답답하니? 나와 같은 신세구나. 네 심정 나도 이해한다.”
그리고 집안에 들어와 고양이를 품에 안고 쓰다듬으면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괜히 미국에 왔다. 한국에서 살면 이 집 저 집 다니며 이 얘기, 저 얘기 할 텐데...입있어도 말 못 하고, 발이 있어도 차가 없어서 가지 못 한다.”
외로움을 이기지 못 한 할머니는 어느 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소통이 없는 집은 고독한 식구들의 모임입니다. 롯의 가정은 소통이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 거머리같은 가정이 되었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가정이 되어 버렸습니다.
4. 영안이 없었습니다.
롯의 가정이 그렇게 하나님앞에 부끄러운 가정으로 전락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영안이 없었습니다. 일치가 없었고, 양보가 없었고 소통이 없었지만 영안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먼저 땅을 선택하라고 하였습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 땅을 가지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를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 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같고 애급땅과 같았더라”(창 13;10)
영안이 없었기에 떨어지는 벼락을 쫓아가서 맞은 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멸하시기 직전이었습니다. 롯은 보이는 것만 보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빛을 보고 있습니다. 어둡지 않고 환한 이 자체가 빛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빛중에 5%만 보고 있고, 95%는 보지 못 하고 있습니다.
빛을 프리즘으로 비추어 보면 7가지 색깔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속에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그리고 보라색이 들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선악과를 먹고 에덴 동산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영적인 눈이 열려야 합니다.
영적으로 분위기를 조정하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그 가정이나 모임은 영적 분위기가 됩니다.
이북에서 피난나와서 먹지도 입지도 않고 돈을 모아 빌딩을 가지고 있는 과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사업을 한다고 빌딩을 달라고 어머니를 욱박질렀습니다. 행실이 좋이 않은 아들이었습니다. 주었습니다. 다 날려 버리고 거지가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물었습니다.
“아들 사업이 망할 줄 몰랐어?”
“알았지.”
“알면서도 왜 주었어?”
“아들은 나를 돈많은 과부로 알았지. 이제는 나를 가난한 어머니로 알아. 나는 빌딩을 잃고 아들을 찾았어.”
돈보다 중요한 것이 가족입니다. 돈은 다 없어졌어도 아들다운 아들이 되었고, 엄마다운 엄마가 되었고, 가정다운 가정이 되었습니다.
하나가 되는 비결을 영적으로 볼 줄 아는 어머니는 가정을 가정되게, 아들을 아들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가족중에 한 분이 국립 묘지에 묻혀 있습니다.
묘지에 가서 비석에 써있는 말들은 모두 진실을 담고 있는 그리움의 말들입니다. 모두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하는 눈물 글썽이게 하는 말들입니다.
“육군 중위 김 만수 아내 유 경순.
당신과 이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넓고 넓은 저승길 반만년 헤메어서라도 당신 품안에 안기어 당신의 입술에 입맞추리.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하던 그 사람. 그 때에도 역시 난 당신의 아내가 되리.”
“육군 대위 김 준환.
여보! 천지가 변하여도 살아오마던 당신! 어쩌다 한 줌의 재가 되어 돌아 오셨소? 여보. 우리 주님 앞에서 다시 만날 때에는 이별이란 슬픔을 갖지 맙시다!”
“육군 중위 우 준호 어머니.
사랑하는 아들아! 이 어머니는 아무 말없이 너를 보내노니 하나님 품안에서 고이 잠들거라!”
모두 애절한 가족들의 울부짖음입니다. 같이 있을 때 잘 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의 가정은 이 세상에서 존경받고 사랑받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롯의 가정과 같이 누가 보아도 혀를 차는 가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롯의 가정이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가정이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가정 식구들 사이에 일치가 없었습니다.
양보도 없었습니다.
소통도 없었습니다.
영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가정이 되었습니다. 가정의 달입니다. 가정다운 가정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신비가 있습니다. 70년 7월 9일 나라를 빼앗겨 1948 5월 10일 독립한 이스라엘의 신비입니다.
나라도 없이 여기저기 방황하면서 다시 강대국을 건설한 신비에 대하여 기자가 유대인에게 물었습니다. 다른 부족은 수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예를 들면 강대국 바벨론도 사라졌고, 유럽을 덮었던 사라센 제국도 없어졌고, 그토록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블레셋도 지구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2000년 동안 건재합니다. 그 비결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간단하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주십시오.”
이런 질문에 유대인들은 대답하고 있습니다.
“회당과 가정입니다. 회당과 가정을 연결시키는 고리가 안식일입니다. 유대인 속에는 안식일 DNA가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우리를 지켜 주었습니다.”
유대인들의 가정은 특이합니다. 그래서 나라가 완전히 파괴되고 망한 후에 유대인들은 이렇게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다 파괴되었어도 가정은 남아 있으니 감사합니다.”
모든 가정들이 다 가정다운 가정으로 주님이 축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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