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수*이동원 목사+목사님들설교

[스크랩] 서로 받아 주십시오(롬15장1-7) / 이동원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7. 18. 08:55

서로 받아 주십시오(151-7)

출 처이동원목사

오늘 주일은 공식적으로 모든 목장교회가 준비를 마치고 목장을 오픈하는 주일입니다.

우리는 최근에 서울 어느 아파트 청약 경쟁률에 44:1이라는 사상 최고를 기록하며 밤새 인산인해를 이룬 청약자들의 물결이 쇄도했다는 기사를 읽은바가 있습니다.

지구상 어느곳에도 유례가 없는 이런 기이한 현상은 소위 시세차익을 노린 떴다방을 동원한 비정상적인 아파트 투기열기 때문이라고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런 세태속에서 우리교회도 아파트 오픈 하우스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여기에 청약을 넣으시면 우리의 가정의 경계선이 확장되어 몇 개의 집을 내 집처럼 드나들게 될 것입니다.

새 가족, 새 친구를 사귀시면서 가족의 영역이 확대되는 경험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몇 푼의 시세차익이 줄 수 없는 참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아파트 평수를 넓혀가도 채워지지 못했던 마음의 외로움이 극복되고 진정한 사랑의 충만함을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참된 사랑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사는 이웃들을 섬기고 돕고 살면서 우리의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 사랑하게 된 지체들과 더불어 영원히 거하게 될 천국맨숀을 더욱 흠모하게 될 것입니다.

이 오픈하우스 행사에 참여하시는 방법은 열린 마음으로 잠간의 시간만 내시면 됩니다.

아직도 주저가 되시면 우리교회 떴다방-목장사역 센타에 연락하시면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 떴다방이 노리는 것은 시세차익이 아닌 여러분의 행복입니다.

목장안내서를 잘 읽어보시고 적어도 두 개 이상의 목장을 방문한후 청약을 넣으시기 바랍니다.

 

한가지 이 행사에 참여하는 모든 분들이 가져 주셔야 할 단 한가지의 마음자세는 이미 목장안에 있는, 혹은 목장을 방문하는 누구라도 기쁘게 받아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기쁘게 서로를 받아드리는 마음'--이것은 앞으로도 건강한 목장공동체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되기 때문입니다.

 

1세기의 로마제국은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하고 당시의 전세계에 안정적인 정치적 평화-'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선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현상과 상관없이 로마인들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고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의 사도였던 바울은 이런 로마의 희망은 로마에 이미 존재하던 가정교회뿐이라고 확신했고(16:3-5에 보면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의 집에 있는 교회를 위시하여)이런 로마교회의 복음전도의 노력을 격려하면서 로마교회가 더많은 이방인들을 수용하기 위해서는(15:9절이하) 무엇보다 서로를 수용하는 열린 자세임을 강조하고자 로마교회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그의 3차 전도여행의 말미에서(주후57-59년사이) 그리스 고린도에 머무는 동안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 그러면 이제 우리가 목장교회를 정비하고 오픈하면서 새롭게 만나게 될 이웃들을 어떻게 잘 받아 드릴 준비를 할 수 있을까요?

 

1. 주님의 조건없는 용납을 기억하십시오.

7절에서 바울사도는 우리가 서로를 수용하기 위한 제일 중요한 출발점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드린 것"을 묵상하라고 가르칩니다.

그가 어떻게 우리를 수용하셨습니까?

한마디로 하면 '무조건적인' 것이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우리를 받아주시고 사랑하시고 우리대신 십자가에서 죽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아는자들이 되었다면 이제 우리도 우리의 이웃을 조건없이 받아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도 우리 공동체안에 나아오는 사람들을 일단 받아주는 연습을 해야합니다. 당신이 회개하면 받아 주겠다고 하지 마십시오. 받아주고 회개하도록 도우십시오.

 

제가 신학교에서 소위 조직신학(기독교 교리)을 공부하는데 칼빈주의 구원론에서 '구원의 서정'이라는 것을 다루게 되었습니다.

이 순서에 의하면 믿음이 먼저이고 회개가 나중에 나옵니다.

저는 이것을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탕자의 사건'을 묵상하다가 이해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네가 진심으로 회개하면 받아 주겠다고 하였다면 그 회개가 진정한 회개가 되었을까요?

돌아오는 아들을 그 모습 그대로 받아주신 아버지의 사랑을 경험하고 나서 그는 정말 아버지께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으로 뉘우치지 않았겠습니까!

 

그것이 진정한 회개이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회개도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나요?

나같은 죄인 이 모습 이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 예수를 구주와 주님으로 시인했더니 나를 자녀로 받아주시고 용납해주신 그 큰사랑을 깨닫고 비로소 "아버지, 저는 죄인입니다"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우리의 이웃을 그렇게 받아주는 연습을 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2. 이웃의 연약함을 담당할 각오하십시오.

이웃을 조건없이 수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웃들의 연약함이 내 눈에 보일 때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그 연약함을 우리가 담당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내 이웃의 연약함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저 사람, 저럴 수 있나?"하기보다 그래서 "저 사람 곁에는 내가 필요하겠다"고 느끼며 그 곁에 서서 그의 조력자가 되어 그를 섬김으로 그를 유익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태도야말로 부부관계의 본질이요, 가족이 존재하는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인간성의 불완전성 때문에 연약함은 인간됨의 피할 수 없는 존재의 양상인 것입니다. 건강한 가족은 상처주지 않는 관계가 아니라, 상처까지도 끌어안을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진 가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건강한 목장교회 생활을 위해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밥퍼 최일도 목사님이 쓰신 최근의 책 "참으로 소중하기에 조금씩 놓아주기"마지막 문단에는 이런 말이 씌어져 있습니다.

--"피를 나눈 가족만이 가족은 아니다.

한 핏줄이기에 가족이 아니라, 가족이 되었기에 우리는 한 핏줄이다.

이기적인 사랑은 조그만 위기에도 무너지지만 나눔의 사랑은 크고 깊은 뿌리를 내린다.

 

그래서 이제는 굳이 자식에게서, 아내에게서, 내게서만 희망을 찾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내 원하는 희망의 보따리가 너무 크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희망의 존재들, 가족. 하지만 기쁨과 믿음과 사랑만 나누는 것이 가족은 아니다.

아파하고 미워하다가 화해하고 용서하고 상처까지 끌어안아야 비로소 가족이다."

 

그러나 이런 관계형성을 위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끊임없이 도전해야할 숙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기쁘게 아니하고 이웃을 기쁘게 하는 연습입니다.(1-2절의 말씀)

 

그러나 여기서 기쁘게 한다는 말은 감상적인 제스츄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이웃의 유익을 추구한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기쁘게 내가 죽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라는 게임의 숙제인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단회적 사건이었지만, 이 십자가로 새 삶을 얻은 사람들은 다시 이 십자가에서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사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바울은 가르칩니다.(로마서6:10-11)

본문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자신에 대하여 죽고(자신을 기쁘게 아니하고), 이웃을 대하여 사는(이웃을 기쁘게하는) 부활의 연습을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바로 이웃의 연약함을 담당하는 연습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용납하는 공동체가 되어갈 수 있습니다.

 

3. 주님께 돌려야할 영광을 묵상하십시오.

우리가 이웃의 연약함을 담당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큰 그림을 보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이웃이 우리에게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낼 때 제일 쉽게 보일 수 있는 반응이 무엇이겠습니까?

비판하는 것입니다.

 

제일 어려운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상대방의 행동이 내 맘에 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격려하는 일입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그리스도인이 하는 일은 어떤 프로젝트를 성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사람을 세우는 일입니다.

 

사람이 우리의 프로젝트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의 믿음을 세우고 그리하여 공동체의 믿음을 세울 수 있다면 이 더 큰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좋아함과 안 좋아함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 어거스틴의 표현을 빌리면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관용을, 그리고 모든일에 사랑으로"인 것입니다.

 

교회역사에 보면 교회가 어두울 때는 예외없이 교회가 본질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상실하고 비본질적인 것을 이슈화하고 논쟁에 빠져 들어갔을 때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콘스탄틴대제가 기독교 국교를 승인하고 교회당 건축을 한후 제일 먼저 일어난 교회내 논쟁가운데 하나가 교회내 어떤 그림으로 장식할 것인가, 그 그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프레스코 논쟁).

 

중세기 암흑기 카톨릭 교회내 논쟁가운데 하나는 바늘위에 얼마나 많은 천사들이 올라설 수 있는가 라는 이슈였습니다.

 

러시아 정교회가 망하기 직전에 이슈중의 하나는 사제가 입는 가운의 길이가 얼마가 되어야 하는가 라는 문제였습니다.--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의 교회내에는 이런 일이 없을까요?

어떤 교회는 교회당 건축후 커텐 색깔 가지고 싸우다가 갈라진 교회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교인들은 교회 와서 제일 큰 관심이 벽에 무슨 그림 걸어 놓았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교인들은 교회 와서 제일 큰 관심이 주보입니다.

 

좋은 교회는 교회의 본질에 충실하는 교회입니다.

좋은 교인은 어떻게 전도 할 것인가?

어떻게 더 잘 말씀을 배우고 순종할 것인가?

어떻게 더 잘 이웃들을 사랑할 것인가를 가지고 고민하는 교인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것들이 바로 더 큰 그림인 것입니다.

 

큰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작은 불만을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5-6, 다시 7절의 강조)자신의 생각이나 기호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 주된 관심이 되어야 한단 말입니다. 내 이웃들이 구원받고 교회의 건강한 지체가 될 수만 있다면 나는 내 생각을 언제든지 유보하고 이웃을 받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유명한 엘리자베스 1의 일화하나만 소개함으로 말씀을 마치려합니다.

한때 남아프리카연방의 통합을 위해 전략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던 남아프리카 추장 여러 명을 여왕의 왕실에 초청하여 만찬을 베풀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리 사전 오리엔테이숀이 있었지만 추장 한명이 포크와 나이프가 불편하게 느껴지자 손으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함께 있던 영국 각료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긴장하기 시작하자 갑자기 여왕이 빙그레 웃더니 나이프와 포크를 제쳐놓고 손으로 먹기 시작하더랍니다.

어떻게 하겠어요?

모든 만찬객들이 여왕을 따라 손으로 음식을 먹었다고 합니다.

 

아프리카 손님들은 기분좋게 식사를 마쳤고 여왕의 남아프리카 통합제의에 흔쾌히 협력을 다짐했다고 합니다.

 

여왕은 그날 더 큰 그림을 본 것입니다.

만일 그 날 여왕이 이 손님들에게 무례하다고 큰 소리쳐 책망을 했다면 얼마나 국가적으로 더 큰 손해를 보았을까요?

지혜로운 여왕이 아니었습니까!

 

저는 우리교회 모든 교우들이 이런 큰 그림을 보며, 큰사랑으로 목장안에 들어가 목장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과일향♡ 원글보기
메모 :

이동원 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