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수*이동원 목사+목사님들설교

[스크랩] 감찰하시는 하나님(잠15장13) / 한경직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8. 18. 15:23

감찰하시는 하나님(1513)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잠언 521절에는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

욥기 3021절에는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느니라.

시편 949절에는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종종여호와께서 보시매 좋았더라하는 구절과여호와께서 보시매 악하였더라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눈이 우리 인간을 보십니다.

감찰하십니다.

주목하십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와 같이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 하리라.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흔히 자기가 자기 자신을 보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인간은 거울()을 발명하였습니다.

옛날 동판이나 철판을 갈아서 거울로 사용하였습니다.

현대는 유리로 거울을 더 많이 만듭니다.

 

문명할수록 거울이 더 커지는 모양입니다.

미국에 가서 여관에 들어 보면 그저 방마다 문짝 같은 거울을 달아 놓은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말대로 현대 문명은 거울의 문명이라고 합니다.

아마 그 이유는 사람마다 자기 얼굴을 보기를 좋아하고 또 보통 자기가 잘 생긴 줄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남이 나를 어떻게 보나, 이런 관심을 가집니다.

그리해서 할 수 있는 대로 잘 보이기 위해서 얼굴도 단장하고 좋은 옷도 입으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칭찬을 하면 기뻐하고 다른 사람이 비난하는 말을 듣게 되면 분노합니다.

 

그리해서 정부 당국자들도 여론을 때때로 조사합니다.

또는 국민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나 알기 위해서 정보원을 각처로 파송 합니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는 데 있는 것도 아니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 데 있는 것도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무리 나 스스로 잘난 줄 생각하고 아무리 세상 사람들에게 일시 칭찬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않는 사람이면 오래 가지 못합니다.

 

옛날 바벨론 왕 벨사살은 자기 자신도 자기를 높이 보았고 모든 신하들과 국민들이 그를 역시 높이 보았습니다. 큰 나라의 제왕이요, 금은 보옥(寶玉)이 많습니다. 지위가 높습니다.

 

하루 저녁은 천여 명의 귀객들을 초청하고 큰 연회를 배설하였습니다. 술과 많은 음식을 만들고 예루살렘 선전에서 쓰던 그릇까지 가져다가 술을 마시며 굉장한 잔치를 배설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담 벽에 이상한 손가락이 나타나서 글씨를 쓰는데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글을 기록하였습니다.

 

그 뜻은메네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함이요,데겔은 왕이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보였다함입니다.

 

그 날 저녁으로 메데, 파사 연합군이 들어와서 바벨론 이라고 하는 나라는 멸망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굉장히 크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요컨대는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서 얼마나 중량이 잇느냐? 하나님 보시기에 그 사람을 어떻게 보시는가? 그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누구나 그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사람을 관찰하시는 여호와의 눈은 어떠한 눈입니까?

여호와는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역대 하 169절에는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어디나 있습니다.

높은 데가 없고 깊은 데가 없습니다.

먼데가 없고 가까운 곳이 없습니다.

이 지구, 이 우주, 어디나 어느 거석이나 다 꼭 같이 하나님의 눈앞에 놓여 있습니다.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나 감찰하시고 언제든지 살피는 눈입니다.

졸며 쉬지 않는다고 하는 시편의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의 눈은 졸 때도 있고 잘 때도 있으나 하나님의 눈은 졸거나 잘 때가 없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아침이나 저녁이나, 어두우나 밝으나, 흐릴 때나 개일 때나, 우리가 잘 때나 깰 때나, 일할 때나 쉴 때나, 언제든지 계속적으로 우리를 살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현재만 봅니다. 하나님의 눈은 과거도 현재와 같이 보시고 미래도 현재와 같이 보십니다.

 

그러기에 시편 139편에 있는 말씀과 같이 모태에서 내 형체가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나를 보셨습니다그 뿐만 아닙니다. 이 다음에 우리가 죽을 것도 주의 눈은 미리 현재와 같이 보십니다.

 

이 주의 눈은 인간 생활의 모든 방면을 살피십니다. 사적 생활, 공적 생활, 사회 생활, 문화 생활, 직장 생활, 정치 생활, 모든 인간의 활동 상황을 살피십니다. 인간의 역사와 모든 하는 일을 살피십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 가운데서 기름 부어서 장차 이스라엘 왕을 삼으라고 하는 명을 받고 베들레헴에 갔을 때에 키가 크고 용모가 잘 생긴 이세의 맏아들 엘리압이 왔습니다.

사무엘이 척 보니 아주 잘 생겼습니다.

! 이 사람이 필연 왕이 될 모양이다.름 부을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사무엘 에게 속삭이는 말씀은외모와 신장을 보지 말아라. 나는 이미 이 사람을 버렸노라.

하나님이 보는 것은 사람이 보는 것과 다른데, 사람들은 외모를 보지마는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 사람의 행동을 보는 것이 아니고 그 행동의 배후에 숨은 동기를 보십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그 욕망, 그 사람, 그 야심, 그 상상, 그 심리의 증상, 요샛말로콤플렉스 옵세션(Complex Obsession)까지, 프로이드의 현대 심리학이 발전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벌써 우리 마음속 깊은 자리를 보고 계십니다.

 

에스겔 8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어떤 곳으로 인도했는데 보니까 큰 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벽에 조그만 구멍이 하나 있습니다. 그 구멍을 아무리 들여다보아야 잘 안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그 벽을 헐어라!그 구멍을 크게 만들고 헐었습니다. 그 다음에 보니까 또 큰문이 닫혔습니다.그 문을 열어라그 문을 열어 보았습니다. 보니까 방이 하나 있는데 그 방 속에는 온갖 더러운 벌레와 더러운 짐승들과 그 방의 벽에는 모든 우상을 그려 놓았습니다.

 

놀라지 마세요! 이스라엘 장로 70명이 그 우상들에게 분향을 하고 섰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하시는 말씀이너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는 일을 아느냐? 이 사람들이 입술로는 나를 섬기노라 하지마는 실상 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는 더러운 것들이 많고, 실상은 우상을 섬기며 이 사람들이 내가 이것을 보지 못하는 줄 알지만 그러나 나는 이것을 보노라.

 

사람의 마음을 담으로 쌓아 놓고 문으로 꼭 닫은 다음에 내 속을 누가 알겠는가 합니다.

사실이지요!

사람은 모르지요!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마음은 모르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보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눈은 피할 수 없습니다.

숨길 수 없습니다.

호와 앞에는 비밀이 없습니다.

 

시편 기자가 139편에 부르짖은 바와 같이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할 수 없습니다.

 

이런 눈으로 하나님께서 악인을 감찰하십니다.

이런 눈으로 노아 때에 모든 사람들의 악한 생각과 행동을 감찰하시고 꼭 그대로 보응 하였습니다.

이런 눈으로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을 감찰하시고 그대로 보응 했습니다.

이런 눈으로 아합과 이세벨을 감찰하시고 그대로 갚았습니다.

이런 눈으로 압살롬을 보시고 그대로 갚았습니다. 이것은 성경 역사만이 아닙니다.

 

세계 역사가 역시 그렇습니다.

이런 눈으로 무솔리니는 보았고, 이런 눈으로 히틀러를 보았고, 하나님께서 감찰하신 대로 보응 했습니다.

이런 눈으로 지금까지도 작은 무솔리니, 작은 히틀러를 감찰하시고, 또 보응 하십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일동일행은 하나 하나가 하나님의 안전에서 한다고 하는 이 사실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나는 은밀한 가운데 죄를 짓지마는 하나님의 목전에서 짓는 것입니다.

 

다윗과 밧세바가 은밀한 방안에서 죄는 지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그 후에 깨달았고 시편 50편에 고백한 대로주님이시요, 내가 주님의 목전에서 이 악한 일을 하였나이다.고백하였습니다.

 

우리가 무슨 죄를 짓든지 하나님의 목전에서 짓습니다. 아간이 의복과 금은을 감출 때에 은밀히 감추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전에서 그 일을 했습니다.

 

유다가 은 30량을 받을 때에 은밀히 대제사장과 단 둘이 그 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전에서 받았습니다. 작은 죄나 큰 죄나 하나님의 목전에서 행하는 악한 일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은 안이나 밖이나 꼭 같이 보시는 하나님인 까닭으로 우리의 악한 생각을 악한 생동과 같이 미워하십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음욕을 품으면 벌써 너희가 마음속에 간음을 행하였느니라하였습니다.마음가운데 누구를 미워하면 네 속에 이미 살인을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는 모든 죄를 미워하시지마는 특별히 외식하는 이를 미워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 도다.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곁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모든 죄가 가증하지마는 외식하는 죄는 두 가지 죄가 겸했습니다.

더러운 속에 있는 죄, 그것을 가리우는 거짓 죄그러기에 성경은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깨끗이 할지어다.하였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그것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목도하십니다.

여호와의 이 눈은 공의의 눈일뿐더러 사람의 눈이요, 자비와 긍휼의 눈이요, 아버지의 눈도 되십니다.

 

어린 아기 모세가 나일강 변 갈대밭에 버림을 받고 외롭게 울 때에 하나님의 눈은 그 아기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를 보호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무고하게 압박을 받으며 말할 수 없는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 하나님의 눈이 이스라엘 백성의 곤고 한 것, 그 슬프고 억울한 것을 내려다보셨습니다. 그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나오미와 룻, 외로운 두 과부가 모압을 떠나서 베들레헴을 향해서 옵니다.

그 외로운 모습, 도와줄 사람이 없는 그 불쌍한 여인들, 하나님의 눈이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도우셨습니다.

 

엘리야가 이세벨에게 쫓겨서 멀리 광야(曠野)길을 갈 때에 피곤하였습니다. 더 걸을 수 없었습니다. 로뎀 나무 아래서 죽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다가는 피곤해서 앉아서 잠이 들었습니다.

 

외로운 광야 길에 피곤(疲困)히 잠든 하나님의 사자를 하나님께서는 보셨습니다. 다른 이는 볼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셨습니다. 먹을 것과 물을 주어서 새로운 원기를 회복하게 만드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나다나엘아,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이미 보았다.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아마 나다나엘이 조용하고 은밀한 가운데 무화과나무 아래서 기도하던 모양입니다. 은밀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하나님은 보십니다.

 

고넬료라고 하는 사람은 군문(軍門)에 있는 백부장 이올시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은밀히 기도를 하고 남모르게 다른 사람을 도와줍니다. 자선사업을 많이 합니다. 하나님의 눈이 고넬료를 보셨습니다. 기도하는 모습과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모습을 하나님의 눈이 보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청해서 온 가정을 처음으로 구원하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행하며 그를 진심으로 의지하는 이를 찾아서 그를 보호해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필요한 모든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올시다. 이 하나님은 우리의 외로운 사정을 보십니다.

 

우리의 배고픈 사정도 보십니다. 우리의 억울한 경지도 보십니다. 우리의 눈물을 보십니다. 우리의 간절한 소원을 보십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사정을 살펴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하나님의 눈은 선한 사람을 감찰하시고 그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의 눈이올시다.

 

몇 해 전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 갔는데 옛날 천여 년 전에 지은 오랜 예배당이 있어서 구경하러 갔습니다.

거기 헬라 정통교회에 들어가면 천주교와 좀 다른 것은 천주교는 예배당 안에 마리아의 성상과 성화를 만들어 놓았지만 그러나 이 헬라 정통교회에서는 성상은 아주 폐지했습니다. 주후 세기에 아주 폐지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성화만 허락했습니다. 그래서 그 예배당에 들어가면 천장과 담으로 여러 가지 옛날의 성화를 그렸습니다. 그런데 예배당에 들어가면 이 강대, 저 아치 맨 위에 무슨 그림이 있는고 하니 큰 눈()을 그렸습니다.

 

그래서 그 예배당에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그 눈입니다. 그 눈이 나를 내려다봅니다.

아마 그 뜻은 이 예배당에 들어오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눈이 너를 보신다 하는 그 뜻을 알리기 위해서 그려 붙인 모양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그 예배당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예배당에도 계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십니다. 이 하나님의 눈은 성전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 가든지, 온 세계에 이 하나님의 눈을 피할 데가 없습니다. 우리 동양의 성현들도 옛날 이런 사상을 좀 깨달았던 모양입니다.

 

그러기에 고서에 무슨 말이 있는고 하니신목여전(神目如電)이란 말이 있습니다. 신의 눈이 번갯불과 같다는 말입니다. 제일 밝은 것이 번갯불 아닙니까? 하나님의 눈이 번갯불과 같이 밝게 우리들을 살피십니다.

 

하나님의 눈이 우리를 살피시고 나를 보십니다.

내 생각과 내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 보시기에 거슬리는 것은 없습니까?

하나님의 눈이 여러분 하나 하나를 지금 보시고 여러분의 양심에 말씀해 주십니까?

사도 요한 은 말씀하셨습니다.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요.

 

스스로 속이지 맙시다.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고 의로우사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한 가운데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하나님께서 몰라서 자백하란 말 아닙니다.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볼지어다 지금은 구원의 때요, 오늘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 이 시간 구원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직까지 하나님 보시기에 죄를 자백하지 아니하고 자고새가 알을 품고 있듯 그냥 죄를 마음 가운데 품고 있는 이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죄를 보고 계십니다.

이 시간 그 죄를 자백하고 내놓아야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경직 목사(서울 영락교회)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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