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호 목사 설교

[스크랩] 예수 닮기(4)/온유(마 11;28-30..2016.8.21)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8. 27. 19:58

예수 닮기(4)/온유(마 11;28-30..2016.8.21)




 

요즈음 불교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미국인으로 한국에 와서 스님이 된 현각 스님이 있습니다. 불교 현각 스님이 있습니다. 그는 예일대학교와 하버드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진리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읽었습니다. 그는 성경 읽다가 출가하여 중이 되었습니다. 본질이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불교를 떠나면서 말했습니다.

돈만 아는 한국 불교를 떠난다.”
그리고 미국으로 가버렸습니다. 그 후 불교만 아니라 기독교에도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절에는 부처님이 없고, 교회에는 예수가 없다.”

우리는 <예수 믿기>에서 <예수 닮기>로 한 차원 신앙생활을 높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는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그의 성품인 온유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11:28-30)

 

예수님을 닮는다는 말은 예수님처럼 온유하여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온유라는 말은 헬라어로 <프라오테스>라고 합니다. 바클레이는 성경을 주석하다가 가장 어려운 단어가 바로 이 프라오테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온유라고 하면 그저 참는 성격을 말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참기 어려운 것에는 과감하게 참지 못 하는 성격이 온유입니다. 온유라고 하면 화 안내는 성격을 연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화를 내야 할 때에는 반드시 화를 내야 하는 성격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11:28-30)

 

그러나 성전에서 장사하는 것을 보고는 견디지 못 하고 화를 내셨습니다. 온유가 무엇입니까? 화를 내야 할 때는 화를 내고 화를 내지 않을 때는 화를 내지 않는 것입니다. 중용이 온유입니다. 온유는 연약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강하다고 하는 의미도 아닙니다. 중용입니다. 그래서 온유는 <다스려진 인격><훈련된 인격><길들여진 인격><조절된 인격>이라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대에는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프라오테스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1. 사나운 짐승이 길들여졌을 때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예를 들면 사자가 써커스단에서 얌전히 말을 잘 들을 때 프라오테스라고 하였습니다. 신기할 정도로 고분고분하지만 잘못 다루면 잡혀 먹을 수도 있습니다. 항상 위험이 따르고 있지만 길들여진 짐승입니다.

 

2. 거친 장정들이 군에 입대하여 길들여졌을 때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군대에 입대하면 주는 대로 먹고, 시키는 대로 하고, 때리는 대로 맞을 때 프라오테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화를 낼 줄 안다. 그러나 온유한 자만이 정당한 때 정당한 방법으로 정당한 사람에게 정당하게 화를 낼 줄 안다.”

 

예수님은 온유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한없이 높으신 분인 데 한없이 낮아지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말할 수 없이 강하신 분인 데 말할 수 없이 약해지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무엇이나 많으신 분이신 데 모든 것을 비우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다 가지셨는 데 모두를 비우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나 이길 수 있는 분이신 데 무엇에나 져 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것도 피할 수 있는 분이신 데 모두를 당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경우에도 살 수 있는 분이신 데 죽음을 자초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어느 곳이든지 올라갈 수 있는 분이신 데 한없이 내려 가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받으실 수 있으신 분이신 데 모든 것을 주신 분이십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은 온유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닮는다는 말은 온유한 성격으로 바뀐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온유하여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온유한 분이시라는 것을 알려주는 확실한 사건들이 많습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는 이야기.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가룟 유다가 로마 군병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습니다. 베드로가 앞에 있는 대제사장 종을 칼로 내리쳤습니다. 귀가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을 땅에 떨어진 귀를 집으셨습니다. 그리고 귀에 붙여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26:52)

 

예수님을 잡아 죽이러 온 이를 사랑하여 주시면서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셨습니다. 이 말씀은 역사상 놀라운 진리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12 군단 이야기

로마 군병들이 유대인들 몇 명이 예수님을 잡으러 왔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순순히 잡혀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26:53)

 

당시 일 구단은 10만명이었습니다. 12 군단이면 120만 천사를 동원시킬 수 있으신 능력있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천사를 동원시키지 않으시고 잡히셨습니다. 온유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새벽 미명에 기도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입니다. 그는 본체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새벽 미명에 일어나 기도하신 분이십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1:35)

 

겸손하고 온유하게 기도하신 분이십니다. 이같이 예수님은 온유하신 분이시기에 우리가 예수님을 닮는다는 말은 온유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닮아서 온유하여 질 수 있을 가요?

 

1. 참을 때 온유하여 집니다.

어떤 일을 당하여도 참고 나가면 온유가 주어집니다. 인내와 온유는 붙어 있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참음으로 온유를 이룬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1) 다윗

다윗은 압살롬의 반란을 피하여 피란길에 올랐습니다. 다른 사람이 반란을 일으켰으면 당장 진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이기에 같이 싸울 수가 없어서 피하고 말았습니다. 다윗이 신하 아비새와 함께 궁중을 떠나 피신할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베냐민 지파 사람인 시므이가 다윗을 따라오면서 돌을 던지면서 비루한 자라고 조롱하여 계속 따라 왔습니다. 한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계속 되었습니다. 이 상황을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삼하 16;7-8)

 

이 때 이를 보고 참지 못 하던 아비새가 말했습니다.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대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삼하 16;9)

 

이 때 다윗이 한 말은 온유의 상징입니다.

 

왕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또 아비새와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삼하 16;10-12)

 

그러나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저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티끌을 날리며 따라왔습니다. 나중에 압살롬의 반란은 평정되었고 시므이는 다윗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다윗이 승리자였습니다. 온유한 자가 이깁니다. 다윗은 길들여진 온유한 자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2) 모세

민수기는 모세에 대하여 이렇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12;3)

 

이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잡족들이 광야에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잡족중에 한 명인 구스여자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정략결혼이었습니다. 이 때 모세의 깊은 속을 알 리가 없는 사람들이 모세를 비난하였습니다. 이방인 그 중에서도 검둥이와 결혼하였다는 것이 비난의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가장 비난을 많이 한 사람은 모세의 형인 아론과 모세의 누나인 미리암이었습니다. 원수는 집안에 있었습니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12:1-2)

이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는 가 보십시다.

 

여호와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이르시되 너희 삼 인은 회막으로 나아오라 하시니 그 삼 인이 나아가매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서 강림하사 장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는지라.

그 두 사람이 나아가매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12:4-8)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고 모세를 오지 못 하게 하신 가운데 미리암과 아론에게만 책망을 하였습니다. 모세가 교만하여 질가 걱정스러워서 그렇게 하신 것같습니다. 책망을 하고 났을 때 미리암은 문둥병 환자가 되었습니다.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아론과 미리암이 같이 모세의 결혼을 비방하였는 데 왜 미리암만 문둥병에 걸렸을 가요? 그 이유를 미드라쉬는 설명하여 주고 있습니다. 아론보다 미리암이 더 의롭게 살았습니다. 아론은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미리암은 지금까지 이렇다 할 죄를 하나님께 범한 적이 없습니다.하나님은 같이 죄를 지어도 의인의 죄를 더 크게 보신다는 증거입니다. 의인의 작은 죄는 악인의 큰 죄보다 더 큰 법입니다. 그래서 미리암만 문둥병이 발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문둥병이 들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문둥병이 들었는지라. 아론이 이에 모세에게 이르되 슬프다 내 주여 우리가 우매한 일을 하여 죄를 얻었으나 청컨대 그 허물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그로 살이 반이나 썩고 죽어서 모태에서 나온 자같이 되게 마옵소서”(12:9-12)

 

모세는 형의 부탁을 받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하였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하나님이여 원컨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12:13)

 

모세는 겨우 다섯마디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이여><원컨대><그를><고쳐><주옵소서>

미드라쉬는 이런 재미있는 기도 이야기를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한번은 아키바의 학생중에 한 명이 기도를 하는 데 너무나 짧게 하였습니다. 다른 학생들이 기도가 그렇게 짧을 수 있느냐고 비난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아키바 랍비가 말했습 니다.

비난하지 말아라. 모세가 그의 누의 미리암이 아플 때 한 기도보다는 길었다. 모세는 꼭 다섯 마디만 하였다. 모세가 그 때 왜 그렇게 기도를 짧게 하였는 지 아느냐? 모세는 누이 미리암을 위하여 기도할 때 누나니까 편애하여 그렇게 오래 기도하여 주었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지혜롭게 기도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후 그 학생이 기도를 하는 데 이번에는 너무나 길게 하였습니다. 학생들이 또 기도가 너무 길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아키바 랍비가 또 말했습니다.

비난하지 말아라. 모세가 기도한 것보다 길지 않았다. 금송아지 사건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하려고 하셨다. 그 때 모세는 민족을 위한 기도요 중요한 기도이기에 산에 올라가 40일간을 집중적으로 기도하였다. 기도는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는 것이다. 기도의 길이가 문제가 아니라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응답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의 아비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을지라도 그가 칠 일간 부끄러워하지 않겠느냐. 그런즉 그를 진밖에 칠 일을 가두고 그 후에 들어오게 할지니라 하시니 이에 미리암이 진밖에 칠 일동안 갇혔고 백성은 그를 다시 들어오게 하기까지 진행치 아니하다가 그 후에 백성이 하세롯에서 진행하여 바란 광야에 진을 치니라”(12;14-16)

 

하나님께서는 미리암의 병을 고쳐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7일간 진밖에 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7일간 떠오르지 않게 하였습니다. 한 영혼을 위하여 하나님은 200만명을 일부터 7일간 머므르게 하셨습니다. 한 영혼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미리암은 진밖에서 혼자 살면서 죄를 회개하며 다시는 주의 종을 비난하지 않겠다고 회개기도를 많이 하였을 것입니다. 미리암은 나일강에 빠진 모세를 지켜 본 보상을 이 때 받은 것이라고 미드라쉬는 주석하고 있습니다. 이 때 모세의 자세는 온유함의 표상이 되고 있습니다. 참으면 온유함이 임재하게 됩니다. 온유함이 임재하여야 예수님을 닮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온유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받아드릴 때 온유함이 주어집니다.

참을 때에 온유함이 임재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받아 드리면 온유함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이렇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1;19-21)

 

사울과 다윗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사울은 땅을 빼앗겼고 다윗이 땅을 차지 하였습니다. 결정적인 차이는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드리지 못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드렸습니다. 그래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는 말씀이 실현되었습니다. 사울이 아멜렉과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전하였습니다.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 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삼상 15:6)

그러나 사울은 이 명령을 받아 드리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애굽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삼상 15;7-9)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리지 아니한 사울과 사무엘이 이렇게 말을 나누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원컨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사무엘이 가로되 그러면 내 귀에 들어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찜이니이까? 사울이 가로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이다”(삼상 15;13-21)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지 못 하였습니다. 그래서 땅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하였습니다. 이 때 나단 선지자가 와서 책망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성경에서 보려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와서 저에게 이르되 한 성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부하고 하나는 가난하니 그 부한 자는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가난한 자는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하나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저와 저의 자식과 함께 있어 자라며 저의 먹는 것을 먹으며 저의 잔에서 마시며 저의 품에 누우므로 저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다윗이 그 사람을 크게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저가 불쌍히 여기지 않고 이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사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삼하 12;1-7)

 

다윗은 나단의 책망을 받고 통곡을 하였습니다. 시편 51편은 다윗이 회개하며 쓴 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철저히 회개하는 다윗의 모습을 역역히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51;1-19)

 

이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리지 못 한 사울은 책망을 받고 왕에서 물러나고 이스라엘 땅을 다스리지 못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책망을 잘 받아 드릴 때 이스라엘 땅을 기업으로 받고 더 사랑받는 왕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받아 드리면 온유하여 질 수 있습니다.

1950년 대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우수한 문학 지망생들이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정기적으로 모여서 자기들이 쓴 소설이나 시나 문학작품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스스럼없이 조금도 거리낌없이 냉정하게 비판하였습니다. 서로 잘 되게 하려고 하는 의도였습니다. 창작에 도움을 주는 것같았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 모임에서는 혹평은 일절 피하였습니다. 그리고 좋은 장점만 칭찬하였습니다. 10년 뒤 이 모임에서는 훌륭한 작가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비평한 모임에서는 좋은 작가들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95% 좋은 것과 5% 나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쁜 5%를 지적하기 보다는 좋은 95%를 지적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단점을 바꾸려 하지 말고 장점을 길러 주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강한 것보다 부드러운 것이 사람을 길러준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릴 때 온유함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드릴 때 온유하여지고 온유하여져야 예수님을 닮을 수 있습니다.

 

3. 성령받을 때 온유가 주어집니다.

참을 때 온유가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받을 때도 온유함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성령받을 때에 가장 확실하게 온유가 주어집니다. 온유는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온유와 거리가 멀게 거친 사람이라 할 지라도 성령받으면 온유가 선물로 주어지게 됩니다. 성경 3대 인물을 들라면 모세 그리고 바울 그리고 베드로일 것입니다. 놀라웁게도 이 세 사람들은 모두 사람을 죽였거나 죽이려고 하였던 성격이 거칠고 온유하지 못 하고 참지 못 하는 이들이었습니다. 모세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바울도 스데반을 죽으는 데 동참하였습니다. 베드로도 말고를 죽이려고 칼로 치는 데 말고가 피하여 귀가 떨어져 나가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이들은 완전히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되었습니다.모두가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참아 나가는 온유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성령받으면 모두가 변합니다. 성령은 변화시키는 영입니다. 성령받고 변화되지 아니 한 사람이 없습니다.

 

온유한 자에게 주어지는 복

그러면 온유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복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5;5)

 

온유한 자에게 주어지는 상은 땅을 기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사울과 다윗의 예를 이미 살펴 보았습니다. 아브라함과 롯도 마찬가지입니다. 롯이 먼저 땅을 차지 하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그러나 온유한 아브라함은 먼저 상대방에게 땅을 주고 나중에 자기가 차지 하였습니다. 나중에 롯은 모두를 버리고 항복하고 아브라함에게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은 모두 아브라함의 땅이 되었습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을 감옥에 가두고 노예로 부렸습니다. 형들은 미워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온유한 요셉이 땅을 차지 하였습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 합니다. 온유는 성령을 통하여 주어지는 열매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5;22-23)

 

이런 성격은 성령이 역사할 때만이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믿기에서 예수님 닮기로 한 차원 올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성격은 온유입니다. 그렇기에 온유하여야 예수님을 닮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온유하여질 수 있나요?

1. 참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3. 성령받아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독일에서 이민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이 이런 간증을 하였습니다. 어느 교회 초빙을 받아 부임하였습니다. 교인들을 보니 다 양같지 않았습니다. 이리같이 공격적이고 거센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내가 호랑이 같이 목회하지 않으면 이 교회에서 견딜 수가 없겠구나!”

그리고 그 다음부터 목회를 엄하게 하였습니다. 항상 무섭게 하였습니다. 꼼짝 못 하게 하면서 목회하였습니다. 공격적인 목회를 하였습니다. 1년 지났습니다. 교인들이 다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철저한 실패였습니다. 그 후 다른 교회에 부임하였습니다. 그 교회 교인들은 상처받고 병들은 양같았습니다. 세상에 찢기고 아파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혼자 생각하였습니다.

이 교회에서는 선한 목자처럼 목회하여야 겠구나!”

그리고 열심히 목회하였습니다. 온 성도들은 목자가 양을 돌보듯이 같이 울고 같이 웃고 같이 사랑하며 목회하였습니다. 그 교회는 얼마 후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닮으려면 온유하여야 합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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