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닮기 3./가능성 보기/눅 5;1-11(2016.8.14)
<예수님 닮기> 세 번째 시간입니다. 첫 시간은 <배척>, 두 번째 시간은 <용서>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 시간으로 <가능성 보기>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예수님을 닮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믿기>에서 <예수 닮기>로 업그레드되어야 합니다. 감리교 목사님 중에 화가 목사 있습니다. 그는 평생 예수님 그림만 그렸습니다. 인천에서 목회하는 김 의중 목사님입니다. 그는 은퇴를 앞두고 45년 동안 그린 예수님 그림만 모아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김 목사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젊은 날부터 예수가 좋아 예수를 그리기 시작했고, 조금 커서는 예수 닮은 사람이고 싶어 예수를 그리었고, 조금 더 커서는 예수를 가르치고 싶어 예수를 그리었고, 조금 더 커서는 예수를 전하고 싶어 예수를 그렸습니다.”
예수님을 닮는다는 말은 다른 사람들의 가능성을 보는 눈을 가지는 것이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보실 때 현재를 보지 아니하시고 그 사람의 미래 가능성을 보셨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잠점 발견자이셨습니다.
라만차의 사나이 뮤지컬
나는 <라만차의 사나이> 뮤지컬을 본 것이 평생 잊혀지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어느 날 라만차의 사나이가 말을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거리에 사람들이 둘러서서 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야! 이 창녀냐? 더러운 년아!”
라만차의 사나이는 말에서 내려 그 여인에게 달려 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여보세요! 용기를 가지세요. 내가 보니 당신은 창녀가 아니라 귀부인입니다.”
창녀가 피를 흘리며 말합니다.
“당신은 누구신 데 나에게 귀부인이라고 말하십니까? 나는 저 사람들이 말하는 창녀예요. 나는 담배꽁초같은 여자입니다. 남자들이 담배에서 달콤한 것만 빨아 먹고 꽁초는 버리는 것처럼 남자들이 내 육체에서 쾌락만 빨아 먹고 육체는 꽁초처럼 버리는 여자라오.”
라만차의 사나이가 다시 말했습니다.
“아니요. 내가 보니 당신은 창녀가 아니라 귀부인입니다.”
그리고 헤어졌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라만차의 사나이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침상에 귀부인이 나타났습니다. 라만차의 사나이가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 여인이 대답합니다.
“나는 창녀였습니다. 모두가 나를 창녀라고 손가락질할 때 당신만이 나를 귀부인이라고 불러 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내게도 귀부인의 가능성이 있구나. 그리고 귀부인이 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오늘 귀부인이 되었습니다. 당신 덕분입니다.”
라만차의 사나이의 눈이 바로 예수님의 눈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사람을 가능성으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가능성을 보아 주었습니다. 세 가지 가능성을 보는 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1. 다른 사람 가능성 보기
2. 내 가능성 내가 보기
3. 다른 사람이 보아 주는 가능성을 인정하기
이 세 가지가 예수님을 닮는 눈입니다.
1. 다른 사람 가능성 보기
예수님을 닮는다는 구체적인 언어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가능성을 보아주고 길러 주는 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약점을 잡아 공격하고 아프게 하는 것은 사탄입니다.
모세의 가능성
모세가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애급에서 종살이할 때였습니다. 세월이 흐를 수록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많아졌습니다. 애급왕 바로는 점점 더 강팍하여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억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인구수를 줄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이스라엘 인구수가 애급 인구보다 더 많아져서 유사시에 폭동을 일으키면 반대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학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모세가 나섰습니다. 그러나 혈기로 애급인을 죽여 모래속에 파묻었습니다. 바로왕이 이 사실을 알고 모세를 잡아 죽이려 하였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40년 동안 도망가서 양을 치면서 살았습니다. 이제 80세가 되었습니다. 얼굴에는 무름살이 밭고랑처럼 패였습니다. 머리는 백발이 되어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인생을 조용히 정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가 양을 치다가 가시떨기에 불이 붙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상하여 가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4-5)
하나님은 모세 이름을 확실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고통중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4번 못 한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오리이까?”(출 3;11)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내가 할 말이 없나이다”(출 3;13)
“말을 잘 못 하나이다”(출 4;10)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출 4;13)
하나님은 화가 나셔서 노를 발하시며 네가 가면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출 4;14) 모세는 자기가 자기를 보기에 전혀 할 능력이 없다고 거절하였지만 하나님은 가능성을 보고 계셨습니다.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하나님이 나를 더 잘 아십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조용히 여러분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너는 할 수 있다.”
“네게는 가능성이 있다.”
예수님을 닮으려면 우리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볼 때 현재를 보지 말고 가능성을 보고 이끌어 주고 격려하여 주고 길러 주어야 합니다.
가능성을 믿어 주기
그 사람속에 가능성을 믿어주는 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 감리교 목회자 성막 쎄미나를 인도하던 중 잠간 골든 브릿지 다리를 관광하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금문교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 최초의 현수교입니다. 밧줄로 다리를 매달아 만든 다리입니다.
죠셉 스타리우스가 당시 시공비 3천만불로 시공하였습니다. 63빌딩을 두 개 지을 수 있는 돈입니다. 그가 다리를 설계하고 나서 은행에 자금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그러나 은행에서는 뚱딴지같은 생각이라고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설계도를 가지고 이 은행 저 은행 다녔습니다. 어떤 은행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200개 은행을 다녔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포기 상태가 되었습니다. 끝에 매달려 있는 다리 부부만 1400m였습니다. 전체 다리 2000미터중 거의 다 끈에 매달려 있습니다. 남해대교는 600미터가 끈에 매달려 있는 현수교입니다.
철사 37500개를 꼬아서 밧줄을 만들었습니다. 이 밧줄을 연결시키면 지구를 네 바퀴 돌 수 있습니다.1933년 시작 1937년에 완성하였습니다. 4년 걸렸습니다. 그리고 다리를 만든 사람 죠셉 스타리우스는 그 다음 해 1938년에 죽었습니다. 너무나 스트레스가 심하였기에 완성하고 긴장이 풀어지면서 죽었습니다. 생명을 바친 다리였습니다.
지금 그 다리는 통행료 5불을 받고 있습니다. 하루 10만대가 다닙니다. 하루 5억원을 벌어 드리고 있습니다. 매일 투자없이 5억원을 버는 사업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 때 200개 은행이 안 믿어주며 돈을 빌려 주지 않을 때 오직 한 은행 이탈리아 은행 하나가 그를 믿어 주었습니다.
이탈리아 은행은 그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밀어 주었습니다. 오늘날은 돈방석에 앉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목사의 가능성 밀어 주기
나는 갈라디아서를 읽으면서 놀라운 발견을 하였습니다. 만일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의 가능성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지지 못 하였었더라면 바울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처럼 기독교가 온 세계에 퍼지지 못 하였을 것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바울은 혈기가 많은 목회자였습니다. 그래서 바나바와 싸울 때 헤어져 버렸습니다. 마가를 제2차 전도여행에 데리고 가자 말자로 대판 다투었습니다. 둘 사이에 양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따로 따로 다른 곳으로 갈 정도로 고집이 세고 혈기가 하늘을 찌르는 목사였습니다.
그리고 다메섹 도상에서 해보다 강한 빛이 비춰지면서 눈이 멀었었습니다. 그래서 눈도 잘 보이지 않은 반 장님같은 목사였습니다.
그리고 가시같은 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설교도 제대로 못 하고 있었습니다. 시험거리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최고 휴양지인 갈라디아 지방으로 휴양을 갔습니다. 그 곳에서 갈라디아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가능성을 보고 열심히 뒷받침하며 사랑하여 주었습니다. 천사처럼, 예수처럼 그리고 눈을 빼어 줄 정도로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바울다워지는 계기를 주었습니다.
어느 정도 병을 고치고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갈라디아 교회를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좋아서 쓴 편지가 갈라디아서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14)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15)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갈 3;13-16)
목사의 가능성을 보고 길러 주는 교회가 갈라디아 교회였습니다.
교인들은 목사를 잘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목사는 교인들을 잘 만나고 싶어 합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울산 시민 교회에서 부목으로 5년간 일하던 정 순행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그는 이 종관 담임 목사님을 모시고 5년간 부목으로 일하고 나서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나도 담임 목사로 나가서 일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기도하던 어느 날 테니스를 치면서 몸을 보았을 때 이상한 부스럼이 생기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동네 조그만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 보았더니 큰 병원에 가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하면 조짐이 좋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큰 병원에 가서 정밀 진단을 받아 보았습니다. 피부암이었습니다. 벌써 온 몸에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피부암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얼굴까지 이제는 완전이 병자인 것을 알아 보게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심각하였습니다. 그 때 소마산 교회 목사님이 신학교 동기 동창인데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정 순행 목사님이 동기인데 성실하게 목회를 잘 할 터이니 한번 모셔다 설교를 들어 보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유학을 떠난 후 정 목사님을 초청하여 예배를 드리며 설교를 들었습니다. 온 교인들이 설교를 들으며 암이 온 몸에 퍼진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임원회가 열렸습니다. 모두가 설교는 좋은 데 암 투병으로 머리가 다 빠지고 언제 돌아 가실 지 모르는 저 목사님을 모실 수 없다는 데 의견이 일치되었습니다. 이제 회의가 끝날 즈음이었습니다. 집사님 한 분이 일어서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생각은 다릅니다. 저 목사님을 우리 담임 목사님으로 초빙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미쳤다는 듯이 집사님을 쳐다 보고 있었습니다. 이 때 집사님이 말했습니다.
“나는 저 목사님을 모시면 우리 모두 비장한 설교를 들을 수 있을 것같습니다. 언제 돌아가실 지 모르시는 목사님이시기에 한 편 한 편 설교가 비장할 것입니다. 단 한번 설교하고 돌아 가신다 하더라도 그런 설교를 듣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 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건강하여도 내일 죽을 수 있고, 아파도 하나님이 기적으로 고쳐 주실 줄 수 있습니다. 저런 암투병하는 목사님을 우리가 모시면 하나님도 너무나 기뻐하실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집사님의 제의는 회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꾸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하기로 하고 그 목사님을 담임 목사님으로 초빙하였습니다. 놀란 것은 정 목사님이었습니다. 정 목사님은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자기를 담임 목사로 초빙하여 준 교회가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그는 기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자기 병을 낫게 하여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그 교회를 담임하고 목회 잘 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정 목사님은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저같은 암 환자를 초빙하여 준 저런 교회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저렇게 아름다운 교회에 좋은 담임 목사님이 오게 하시고, 모두 축복받게 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아름답게 기도하다가 병이 나았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를 지금 담임하고 훌륭하게 목회하고 계십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남들이 보지 못 하는 것을 보는 눈이 가능성을 보는 눈입니다. 이런 가능성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이들은 예수님을 닮은 이들입니다.
2. 내 가능성 내가 보기
내 속에 있는 가능성을 내가 보는 것도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으면 자기 속에 있는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가능성을 볼 줄 압니다.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나갑니다.
베드로의 가능성
예수님이 가장 크게 사용한 제자는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도 단 한번도 마음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은 생각을 가져본 일이 없습니다. 복음의 사도가 되겠다고 기도한 적도 없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그 날 그 날 고기를 잡아 생활하여 나가는 어부였습니다. 그 날따라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는 데 단 한 마리도 잡지 못 하였습니다. 실망속에 그물을 씻고 있는 데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베드로는 목수가 어부에게 충고하는 것이 안 맞다고 생각하면서 말했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그리고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니 나를 따르라.”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베드로는 하루에 3천명, 5천명씩 회개시키는 대 사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가능성을 보시는 눈이 없었더라면 베드로는 평생 갈릴릴 호수에게 고기 잡아 먹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눈은 그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가능성을 보아 주시는 눈입니다.. 다른 사람속에 들어 있는 가능성을 보아 주고 길러 주고 용기를 주는 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미국 새 소망 교회
이 교회를 세운 데일 겔로웨이 목사는 12년 동안 같이 살던 아내와 이혼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하였습니다.
“과연 이혼한 사람이 복음적인 교회의 목사가 될 수 있는 것인가?”
물론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살고 있는 퍼시픽 노스웨스트는 미국에서 가장 세속적인 도시였습니다. 더구나 반 이상이 이혼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이혼한 것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자기가 자기 속에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본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이혼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자기를 통하여 이혼한 이들에게 복음을 줄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로버트 슐러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환상과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야외 극장에
서 1972년 50명을 모아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첫 예배였습니다. 슐러와 같은 방법이었습니
다. 슐러가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로스엘젤스는 비가 오지 않는 곳이기에 가능하였지만
겔로웨이 목사가 개척을 시작한 곳은 비가 오는 곳이라 달랐습니다. 오레곤 포트랜드였습니
다. 그래서 자주 우의를 입고 설교하였고 우의를 입고 설교를 들어야 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성장하는 교회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자기 가능성을 자기가 보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능성을 보아 주는 분이십니다. 다른 사람의 가능성과 자기 속에 가능성을 보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호두과자 할머니 심복순 권사님의 기도
요즈음 꽉 막히는 도로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것이 호두과자를 파는 모습입니다. 과연 호두과자를 제일 먼저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 호두과자를 개발한 사람은 바로 천안 성심교회의 심복순 권사님입니다.
천안에 호두가 많은 것을 최대한 이용해 이것으로 과자를 만들었고 이것이 히트를 쳐 천안에서는 물론 광고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전국 각지에서 주문을 했고 미국, 중국, 일본에 이르기까지 수출하게 된 것입니다. 심권사님은 이 사업은 하나님이 번창케 하여 주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돈이 조금씩 들어오자 심 권사님은 하나님께 이런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업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버는 돈의 절반은 하나님의 것으로 믿고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겠습니다." 권사님이 만드는 호두과자 봉지에는 "주 예수를 믿으라" 라는 성경 말씀이 인쇄되어 있습니다.
심 권사님은 지금까지 혼자서 예배당을 일곱 개나 지었습니다. 이것은 심 권사님이 어렵게 살 때 "평생 혼자 힘으로 예배당 일곱 개만 짓게 해주세요"하고 드린 기도가 응답받은 것입니다. 심 권사님은 하나님이 오라 하실 때까지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내가 내 속에 있는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눈을 예수님처럼 바라 보아야 합니다.
3. 다른 사람이 보아 주는 가능성을 인정하기
막달라 마리아의 가능성
막달라에 살고 있는 마리아는 귀신들린 여인이었습니다. 7 귀신이 들어간 오늘 날로 말하면 미친여자였습니다. 모두가 폐인취급하였습니다. 모두가 버린 여자였습니다. 아마도 가족들도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 여자에게서 7 귀신을 내쫓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 3년 동안 따라 다니던 제자들이 모두 도망갔습니다.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하던 베드로도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운명하시는 순간까지 끝까지 십자가 밑에서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무덤을 제일 먼저 찾아간 여인이 마리아였습니다. 그래서 부활의 주님을 제일 먼저 만난 여인이 마리아였습니다.
예수님 닮아가려면 사람들을 지금으로 보지 말고 내일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가능으로 보아 주어야 합니다. 단점을 보고 버리지 말고 장점을 보고 붙잡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를 닮는 것입니다.
안델센 할머니
그는 어려서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10살 때였습니다. 글을 써서 선생님에게 보여 드렸습니다.
“이것도 글이라고 썼니?”
야단만 맞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었더니 반응이 없었습니다. 누구도 안델센을 인정하여 주지 않았습니다. 속이 상하여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안델센은 할머니에게 기분 나쁜 사실을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조용히 안델센을 데리고 꽃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막 싹트고 있는 꽃몽오리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안델센아! 이 꽃몽오리 좀 보아라. 지금은 이렇게 보잘것없은 싹이지만 조금만 지나면 아주 아름다운 꽃이 될 것이다. 너도 그래. 지금은 보잘것없이 보이지만 큰 사람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할머니가 한 마디 하여 준 것이 안델센을 세계적인 동화 작가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것에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맥아더 할머니
인천 상륙 작전으로 우리 나라를 공산당으로부터 구한 은인은 맥아더 장군입니다. 그는 어려서 골목대장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두드려 패고 싸움만 하는 말썽꾸러기 아이였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꾸중만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맥아더야! 너는 군인기질이 많아. 군인이 되면 큰 군인이 될 기질이야.”
이 말 한 마디가 맥아더를 흥분시켰습니다. 그는 자라서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고 싶어졌습니다. 드디어 큰 군인이 되었습니다. 다 안 된다고 할 때 할머니 한 분이 가능성을 보고 말해준 것이 세계적인 장군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눈입니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가능성을 보아 주어서 길러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내게 있는 가능성을 바라 보는 것도 예수님을 닮아가는 눈입니다. 자기 속에 있는 하나님이 주신 가능성을 바라보는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1. 다른 사람 가능성 보기
2. 내 가능성 내가 보기
3. 다른 사람이 보아 주는 가능성을 인정하기
과거로 보는 사람들
사탄은 사람을 바라 볼 때 과거로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미래로 보십니다. 미국 큰 회사에서 운전기사를 뽑을 때에는 과거에 큰 사고를 낸 경력이 있는 지 없는 지를 물어 봅니다. 그래서 큰 사고를 냈다고 하면 합격입니다. 큰 사고를 낸 운전수가 좋은 운전 기사입니다. 앞으로는 더 조심하게 되고 큰 사고를 거울 삼아 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큰 사고를 냈었다고 하면 불합격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사람은 과거로 보고, 미국은 사람을 미래로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안성지역으로 이사가서 생활하는 하 영애 전도사님이 있습니다. 그가 나가는 교회에 들렀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담임 목사님은 낚시질을 좋아 하였습니다. 낚시를 좋아 한다기 보다 차라리 낚시 광이었습니다.
어느 수요일 아침이었습니다. 낚시질 갔다가 빨리 와서 수요예배를 드리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낚시를 좋아 하는 장로님이 한 분 있었습니다. 장로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장로님! 저 건너 저수지에 고기가 잘 잡힌다는 데 같이 낚시 갑시다.”
그러나 장로님도 같이 가고 싶었는 데 그 날 따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에게 수요일이니 혼자 가셨다가 빨리 오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 따라 고기가 잘 잡혔습니다. 정신없었습니다. 재미도 있었습니다. 한 편 교인들이 수요일 저녁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와 보니 목사님이 안 계셨습니다. 장로님은 무슨 일이 생겼는 지 알았습니다. 빨리 목사님이 가시자고 한 저수지로 달려가 보았습니다. 목사님이 정신없이 낚시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론은 그 목사님은 그 교회를 사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것이 마지막 결론은 아니었습니다. 그 날로 그 목사님은 그렇게 좋아 하던 낚시를 끊었습니다. 그렇게 비싼 낚시대를 꺽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다시는 낚시질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교회로 부임하여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습니다. 그 후 그가 나간 이 교회로 다시 초청을 받아 다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항상 우리에게는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오그만 디노가 예수님을 넝마주의와 비교하면서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넝마줍는 이입니다. 거리에 못 쓰는 종이를 주워서 쓸모 있는 종이로 만드는 넝마줍는 이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거리에 못 쓸 사람들을 불러 꼭 필요한 사람으로 만드는 넝마 줍는 이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 새로운 사람으로 탄생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능성을 보아 주시고 그 가능성을 길러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는다는 말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을 길러 주어야 합니다. 용기를 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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