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수*이동원 목사+목사님들설교

[스크랩] 주를 보는 기쁨 / 강종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9. 18. 20:35

동영상 설교


주제
주를 보는 기쁨


눅1:40-44 ‘40.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41.엘 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 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42.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43. 내 주의 어머니 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44.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아멘. 오랫동안 잉태치 못하던(눅1:18) 제사장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이를 잉태하게 되었으니 세례요한입니다. 13절에 ‘.. 너의 간구함이 들린 지라’ 는 말씀을 보면 나이 들어도 아이를 갖기 위해 계속해서 기도 를 했다는 말입니다. 본문은 엘리사벳이 아이를 잉태한지 여섯 달이 되었을 때 친족인 마 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한 직후에 곧바로 엘리사벳 집을 방문한 장면에 서 엘리사벳이 잉태한 아이,세례요한이 뱃속에서 기뻐하며 뛰노는 일 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마리아의 태중에 있는 아기 예수를 인식한 뱃속에 있는 세례요한의 기쁨을 보면서 <주를 보는 기쁨>이란 주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주님을 만난 자의 기쁨 예수님을 믿는 자는 기본적으로 형용할 수 없는 영혼의 기쁨을 얻습 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얼굴은 대부분 평안과 기쁨이 베여 나옵니다. 1)죄인으로서 구원자를 뵈니 기쁨 세상 사람들은 지옥 갈만큼 스스로 죄인인 줄은 생각지 않습니다. 그 러나 성도는 주를 만나자말자 죄인인줄 알고 주를 보며 기뻐합니다. 본문 43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여기서 엘리사벳이 주(主),퀴리오스(κύριος)라는 말을 사용한 것 은 마리아의 복중에 있는 아이가 메시아인줄 인식이 되었다는 말입니 다. 아주 특별한 감각적 지식입니다. 태중에 아이라도 구주를 인식합 니다. 성령의 지식입니다. 세례요한은 메시아를 증거할 마지막 선지자로서 주를 기뻐했습니다 (마11;13). 그는 요3: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 노라’고 했습니다. 요4:에서 주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도 주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어 큰 기쁨을 얻고 흥분된 마음으로 마을에 들어가 전도를 했습니다. 그 리스도인이 된 우리도 구원의 주님을 알게 되었을 때 큰 기쁨을 얻었 습니다. 구원이 너무 기뻐서 방방 뛴다는 말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말도 잘 듣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제자들이 전도 나가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와서 기쁨 을 표시할 때, 눅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진정 한 기쁨은 영생이라는 말입니다.하나님의 백성이 됨을 기뻐하는 것입 니다. 2)성령이 감동하시니 기쁨 예수님이 누구신지 안다는 것은 성령님의 조명과 지혜로 아는 것입니 다(고전12:3). 마리아가 집안에 오자마자 엘리사벳은 영적 감각으로 주님이 오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복 중에 세례요한이 기뻐하면서 모친도 함께 기뻐한 것입니다. 본문 41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 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44‘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사람이 억지로 웃고자 하는 웃음철학은 순간입니다. 영적변화는 없습 니다. 그러나 구원의 주를 만나는 영적 기쁨은 영생에 이르는 기쁨이 요 평강입니다. 구원을 확신 할 때 기쁨은 저절로 나옵니다. 예수 믿고 큰 기쁨의 경험이 없었다는 것은 구원이 애매합니다. 구원 을 확신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2. 주를 위하는 자의 소망으로 인한 기쁨 세상 일 중에 교회의 충성과 복음 전도에 동참하는 일을 크게 기뻐하 는 일만큼 귀중한 일이 없는 사람은 구원이 아주 분명한 사람입니다. 세례요한은 주님을 위하는 마음이, 요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고 했 습니다. 주를 위한 자기희생이 즐거운 세례요한이었습니다. 기쁨을 얻지 못하고 논리로만 아는 신학지식은 유익이 없습니다.아무 리 깊은 신학이라도 그것이 기쁨이 있는 신앙이 안 되면 소용이 없습 니다. 복음(福音)의 뜻이 기쁜 소식(Good News)입니다. 렘 15:16 ‘...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 시 119:92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 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혹 교회의 일로 인해 기쁨을 상실하고 서로 싸우거나 괴로워 자살까 지 한다면 하나님이 그런 일을 맡기셨다는 차원에서 나쁜 신이 됩니 다. 그러니까 구원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교회생활을 하거나 교회의 일을 하다가는 그런 불상사가 생깁니다.교회의 일이 아무리 어려워도 기쁨 을 상실할 처지로 가지는 않습니다. 벧전4:13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는 소망 때문에 주님을 위하며 고난을 받을 때에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마5:11-12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 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 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 그러므로 주를 믿고 살아가는 과정에 비록 고난을 받아야 할 경우가 있겠으나 기쁨을 상실하고 좌절할 만큼 괴롭지는 않아야 합니다.주님 은 그렇게 괴로움으로 따르라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로 돌아가실 주님도 찬미하셨다고 했습니다(마26:30).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 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행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 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고후12:10) 성도는 고후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 하심대로 영적으로 늘 기쁨을 속에 안고 살아야 합니다. 시 16: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그리스도를 위한다면서 괴로워한다면 주께서 그 충성을 편하게 받으 시겠습니까? 헌금도 즐거이 내고(에스라8:28,고후9:7) 봉사도 즐거운 심령으로 해야 합니다. 영생을 소유한 자는 세상 살기 힘들다고 영혼의 기쁨마저 상실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날에 우리의 고난과 슬픔에 대한 큰 위로가 있을 줄 알고 기쁨으로 섬기며 복음대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원 합니다. --------------------------------------------------------------- 출처:글쓴이:nulserom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늘새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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