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는 그래서 용사였다(삿 7;1-8. 2016.9.25)
지금은 목사가 된 김 신조가 잡혔을 때 기자회견장에 한 말이 세계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왜 왔습니까?”
“박 정희 모가지 따라 왔습니다.”
무장공비 31명은 특수 훈련을 받고 청와대 앞까지 왔었습니다. 모두가 놀랐습니다. 31명은 이북 군인중에 용사중에 용사였습니다.
강대국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몹시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와서 가지고 가기만 하면 됩니다. 정성껏 양을 길러 양털을 만들어 놓으면 와서 가지고 가기만 하면 됩니다. 이스라엘은 힘이 없어서 미디안 군대가 와서 달라고 하면 주어야 했습니다. 힘이 없으니 대항할 수도 없었습니다. 왕도 없던 시대입니다. 지도자도 없었던 시대입니다. 어느 누군가가 나타나서 나라를 살려야 할 때였습니다. 그 때 기드온이라는 농사꾼이 있었습니다. 미디안이 보는 데서 밀타작을 하면 또 와서 빼앗아 갈가 두려워서 포도주를 짜는 틀속에 들어가서 몰래 밀타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삿 6;12)
기드온이 놀라서 말했습니다. 농사꾼에 지나지 않는 자기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큰 용사라고 하니까 너무도 놀라서 물었습니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삿 6;13-14)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삿 6;14)
기드온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양털을 가지고 증거를 보여 주셨습니다. 한번은 양털만 젖고 땅은 말라있는 증거이고 다음 날 다시 한번 보여 달라고 요구한 증거는 반대로 양털만 말라 있고 땅은 젖어 있는 증거였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하나님만 믿고 나가서 군사를 모집하려고 나팔을 불었습니다. 32,000명이 싸우러 나가 겠다고 모여 들었습니다. 32,000명이 모레산 밑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삿 7;2)
그래서 기드온은 32,000명 앞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제 미디안과 전쟁을 하러 나가려고 한다. 적은 메뚜기같이 많고 낙타 떼같이 수를 셀 수가 없다. 마지막 길인지도 모른다. 전쟁이 두려운 사람들은 돌아 가라.”
기드온이 소리지르자 22,000명이 두려움을 느끼고 떠났습니다. 10,000명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그리고 물 마시는 것을 보고 군사를 뽑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10,000명을 데리고 하롯샘으로 갔습니다. 모레산에서 흐르는 샘물이 흐르는 냇가였습니다. 목이 마른 그들은 모두 엎드려서 물을 정신없이 마셨습니다. 그러나 300명이 적을 살피면서 물을 손으로 떠마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300명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다 집으로 돌려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300명 용사를 데리고 미디안을 치러 나갔습니다. 승리하였습니다. 이 본문을 놓고 기도하는 데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300명 용사는 32000명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민족의 생명을 모두 살린 용사들이었습니다. 저는 마지막 목회는 우리 성도들 중 300 용사를 불러 영원한 생명을 살리고 마무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오늘 300명을 부르실 것입니다.
오늘 결단한 300명 한 명 내지 그 이상 영혼 구원을 마치며 갈보리 교회에서의 저의 사명을 마치겠습니다. 저의 이 교회에서의 마지막 사명입니다. 300명은 어떤 각오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까?
1. 하겠다는 사람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용사입니다.
나라가 위기입니다.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습니다. 항상 당하고만 살 때입니다. 그 때 농삿군 기드온에게 하나님이 앞장 서라고 명하셨습니다. 기도온은 전쟁의 전자도 모르는 이가 나섰습니다. 300 용사는 기드온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하겠다는 이와 함께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것이 용사입니다. 나서는 이에게 힘을 실어 주는 이가 용사입니다.
우리가 지금 평화로운 대한 민국에서 살고 있는 것은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희생한 용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백범 김구입니다. 일본이 우리 나라를 빼앗았습니다. 그 때 대한 민국 임시 정부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문지기가 되고 싶다. 같이 일할 동지들을 구하고 싶다.”
그 때 모여든 용사들이 전 덕기, 안 창호, 이 봉창, 윤 봉길 이런 분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모여서 신민회를 만들어 독립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봉창이 나서서 말했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독립운동을 한다고 하면서 일본 국왕을 죽이지 못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는 31년 동안 할 것을 다 했습니다.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내가 가서 일본 국왕을 죽이겠습니다.”
김 구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웃으면서 마지막 사진을 찍으면서 말했습니다.
“지하에서 같이 만나자.”
그는 일본 국왕 히로히토를 죽이러 일본으로 갔습니다. 저격하였습니다. 실패하였습니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그 후 윤 봉길 용사가 또 떠났습니다. 윤 봉길은 떠나면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시계는 2월짜리이고 내 시계는 6원짜리입니다. 나는 이제 시계가 필요없습니다. 바꾸십시다.”
시계를 바꾸었습니다. 김 구는 폭단 두 개를 주면서 말했습니다.
“한 개로는 일본 국왕을 죽이고 한 개로는 네가 죽어라.”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1932년 4월 29일이었습니다. 그는 상해 홍구 공원에서 시리카 대장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사형당하였습니다.
이것이 용사입니다. 하겠다는 사람과 같이 하는 것이 용사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16장 긴 편지를 쓰면서 마지막 장에서 세 사람을 소개하였습니다.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고전 16:17-18)
스데바나, 브드나도 그리고 아가이고는 우리 마음을 시원하게 하여 준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를 시원하게 하여줄 용사를 모집합니다. 훗날 그 분이 마지막으로 나를 시원하게 하여 주었다고 고백할 사람이 용사입니다.
바울이 죽기 직전에 쓴 글이 디모데 후서입니다. 그 중에 마지막 4장은 바울이 목회를 총 정리한 글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저는 마지막 정리를 생각하였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아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 오라"(딤후 4;10-13)
본문에는 17명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4 가지 종류였습니다.
(1) 배반자
한 명은 10절에 등장하는 데마인데 그는 믿음을 갖는 것같다가 세상을 사랑하고 데살로니까로 떠나 신앙을 떠나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다른 한 명은 14절에 등장하는 알렉산더인 데 데마보다 더 하였습니다. 바울에게서 은혜를 받고 바울을 떠나 욕하고 해를 끼치고 다녔습니다.
"구리 장색(匠色)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
바울은 하나님께서 갚으실 것을 알고 있기에 말없이 인간관계의 아픔을 감옥에서 혼자 회상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쓸 때 바울은 눈물을 흘렸을 지도 모릅니다. 이 두명은 성경에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기에 세상 끝날까지 영원한 치욕의 사람으로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2) 동력자
그러나 바울은 감옥에 있지만 바울대신에 여기 저기 파송되어 복음을 전하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레스게는 갈라디아에서, 디도는 달마디아에서, 두기고는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소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3) 마음뿐인 자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중에 하나는 드로비모는 복음을 전하다가 병들어서 밀레도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20)
(4) 끝까지 협력자
누가는 바울과 끝까지 같이 복음을 전하다가 같이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누가만 나아 함께 있느니라"(11)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군을 너무나 사랑하고 계신 증거가 있습니다. 바울은 가시와 같은 병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병을 고쳐달라고 하나님께 3번을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에게 은혜받은 것이 많기에 그 많은 은혜를 간직하려면 기도를 많이 하여야 하고 그러러면 기도를 하여야 하고 기도하게 하는 아픔이 있어야 하기게 병은 은혜를 유지하게 하게 하기 위하여 안 고쳐주시겠다고 역설적인 응답을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죽는 날까지 그 병을 그대로 간직하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사인 누가를 바울과 늘 같이 있도록 좋은 동력자를 주셨습니다. 감옥에까지 같이 있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제 저와 함께 300 용사가 되어 한 명, 또는 두 명 그 이상 천국에 같이 갈 영원한 생명자를 찾을 용사가 되어 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그래서 저희 목회 끝을 아름답게 장식할 300용사로 오늘 다 지원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모두를 시원하게 하여 줄 사람입니다. 하겠다는 사람과 같이 하는 사람이 300 용사입니다.
2. 희생할 줄 알아야 용사입니다.
위험한 일에 지원한 이들이었기에 용사입니다. 이는 자기 희생입니다. 미디안이 나라를 위협할 때 누구도 막을 엄두를 내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망막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이 나서셨습니다. 농삿군을 선택하셨습니다. 기드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큰 용사여!”
그 때 기드온은 미약한 사람이라고 펄쩍 뛰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나타나셔서 큰 용사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큰 일 할 사람들이라고 인정하고 계십니다. 오늘 이 시간 그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강권하심을 따라 군사를 모집하려고 나팔을 불었습니다(삿 6;34) 그랬더니 32,000명이 지원하였습니다. 사실 32,000명은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날 군대를 모집하듯이 억지로 징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진하여 나온 사람들입니다. 애급에서 나올 때 군사수만 60만명이 넘게 나왔습니다. 지금은 가나안에서 정착하고 살고 있으니 100만명은 넘었을 것입니다. 조금 후 다윗이 통일 왕국을 만들고 인구를 조사하니 150만명 가량을 되었던 것같습니다. 100만명 넘는 군사수 가운데 나라를 살려 보겠다고 지원한 이가 32,000명이었습니다. 그 중에 300명 용사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나라를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이들이었습니다. 좋은 일에는 빠지고 어려운 일에는 나서는 이들이 100여만명 중에 32,000명이었습니다. 이들은 다 칭찬받을 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부르면서 <큰 용사>라고 부르셨습니다. 큰 용사를 따르는 이들은 용사였습니다.
깡패를 따르는 이들은 결국은 깡패입니다. 공산당을 따르는 이들은 결국은 공산당들입니다. 생명을 걸고 미디안과 싸우겠다고 지원한 이들은 용사들이었습니다.
영굴 빅토리아 여왕은 프러시와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전한 군인들은 모두 죽음을 각오하여야 했습니다. 모두 전쟁을 기피하였습니다. 그 때 빅토리아 여왕은 자기 아들을 앞장 세웠습니다. 모두 만류하였습니다.
“앞으로 여왕님을 받들어야 하고 앞으로 나라를 위하여 큰 일을 할 사람이니 만일을 위하여 전쟁에 나가지 않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때 빅토리아 여왕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 누구인들 자기 아들을 총알이 나라오는 전쟁터에 앞장 세우고 싶어 하겠는가? 그러나 내 아들부터 앞장 세워야지.”
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머니의 명을 받들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장렬하게 싸우겠다고 전쟁터에서 앞장 섰습니다. 이것이 영국을 감동시켰습니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입니다. 큰 용사 앞에 작은 용사입니다. 전쟁에 이겼습니다. 이것이 용사입니다.
마치 아브라함같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하니까 이삭은 아버지에게 자기를 죽이라고 순종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입니다. 둘 다 훌륭합니다. 이것이 용사입니다.
지금부터 100년전 일입니다. 1905년 월드시리즈 야구 경기에서 크리스티 매튜슨이라는 투수는 총 3 경기에 등판해서 3 경기 모두를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야구의 신동이라고 세상 사람들이 불렀습니다. 남다른 뛰어난 야구 실력을 갖추었습니다. 38살이었습니다.
그 때 1차 대전이 일어났습니다. 1918년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군인 나이가 넘었습니다. 그리고 야구라는 중요한 게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살리겠다고 프랑스와의 전쟁에 지원하였습니다. 안 가도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미국의 야구에서 그가 빠지면 안 되기에 미국 야구를 빛내 줄 것을 주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선으로 나갔습니다. 독일군이 쏜 독가스에 중독되어 버렸습니다. 폐가 크게 손상되어 기침을 하게 되었습니다. 병상에서 고생을 하다가 45세에 죽었습니다. 야구의 천재가 아깝게 죽어습니다. 이것이 용사입니다. 자기 희생이 있는 것이 용사입니다.
일산 어느 교회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집 교회를 짓자고 하니까 교회 앞마당에 콘테이너 두 대가 놓여지더라는 것입니다. 알고보니 두 가정이 집을 팔고 교회 마당에 컨테이너를 놓고 하나님이 다시 집을 주실 때까지 기도하면서 교회에서 살겠다고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영적 용사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밀알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내 돈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한 명이상을 대상으로 정하고 같이 지내며 그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는 것입니다.
교회는 담임목사 릴레이 경기입니다.
목회자 혼자 이루는 것이 교회가 아닙니다. 같이 연합하여야 합니다. 에펠탑은 할아버지가 설계만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건축만 하고 죽었습니다. 아들이 열매를 따기 시작하였습니다. 릴레이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바톤을 주고 받을 때입니다. 이 때 한번 실수하여 바톤을 떨어뜨리면 결코 우승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첫 바톤을 인수인계하여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교회는 독창이 아니라 합창입니다.
저는 은퇴를 2년반 앞두고 다음과 같이 교회를 건강하게 마무리시키겠습니다. 시작보다 중요한 것은 끝마루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절대적인 협력이 마지막으로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기독교 감소시대
기독교인 감소시대로 접어 들고 있습니다. 위기가 이미 다가 왔는 데 위기를 모르는 것이 정말 위기입니다. 이슬람이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데 실감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Pew Reserch Center 2012년 통계입니다.
기독교 31.5%
천주교 15.8%
개신교 11.7%
정교 3.8%
이슬람교 23.2%
힌두교 15%
불교 7.1%
유대교 0.2%
유대인 작가이면서 수학자 Micheal Hart는 1989년 세계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준 100명을 선정하여 발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3위이고,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Muhammad ihn Abad Allah)가 1위였습니다.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교단 예정 합동 2009년 2,936,977명이었습니다. 최고 정점입니다. 2014년 272만으로 21만명 줄었습니다.
두 번째 교단 예장 통합은 2010년이 정점으로 2,852,311명이었습니다. 그러나 281만으로 4만명 줄었습니다.
감리교는 2010년이 최고 정점으로 1,587,385명이었습니다. 그 후 계속 감소되어 2016년 1월 통계는 1,397,918명으로 19만명이 줄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모든 교단이 공통입니다. 기독교 감소 시대입니다.
우리 성동 광진 지방도 같습니다.
2011년 13,219명에서 작년 2015년 11,421명으로 1,798명이 줄었습니다. 어느 곳을 보아도 줄었습니다. 지금 주일학교가 없는 교회가 56%입니다. 앞으로 20년 정도 지나면 56% 교회가 사라져야 합니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을 때 상향 곡선을 그려야 참 교회입니다. 별은 어두울 수도록 빛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제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성장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성장 전략을 호소합니다. 모두가 동참하여야 합니다.
3. 담대함이 있어야 용사입니다.
어떤 일에도 두려워 하지 않기에 용사입니다. 용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용사입니다.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두려워하는 이는 결코 그 일을 해낼 수가 없습니다. 기드온은 32,0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디안 군대는 메뚜기같고 약대떼같고 해변의 모래같이 많았습니다.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삿 6;12)
그런데 하나님은 32,000명이 너무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미디안 군대는 135,000명입니다(삿 8;10). 그런데 32,000명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었습니다.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삿 7;2)
그래서 기드온은 32,000명 앞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제 미디안과 전쟁을 하러 나가려고 한다. 적은 메뚜기같이 많고 낙타떼같이 수를 셀 수가 없다. 마지막 길인지도 모른다. 전쟁이 두려운 사람들은 돌아 가라.”
기드온이 소리지르자 22,000명이 두려움을 느끼고 떠났습니다. 10,000명 남았습니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그 일을 두려워 하는 이가 어떻게 그 일을 해낼 수 있겠습니까?
10,000명 남은 사람들 중에 300명 용사가 있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이 용사입니다. 기드온이 두려운 자는 집으로 가라고 하니까 22,000명이 두려워서 갔습니다. 그러나 300명 용사들은 남았습니다. 두렵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가기 위하여 출애급한 후에 제일 먼저 생긴 문제는 홍해였습니다. 홍해가 가로막혀 있는 데 애급군사가 따라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서 떨었습니다. 심히 두려워 떨었다고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출14;10-12)
이 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두려워 하지 말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3-14)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 하였고 모세는 두려워말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워 하지 않는 이들을 용사로 사용하십니다. 문제가 생겨도 두려워 하지 말고 도전하여야 합니다. 도전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 나게 됩니다. 이것이 용사입니다.
우리 이제 한 명이 한 명 전도하는 사명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예수믿고 한번도 전도 못 하였어도 이제 시도하여 본다는 담대함이 있어야 용사입니다.
4. 집중하는 것이 용사입니다.
300명 이들은 사명만 바라 보기에 용사입니다. 32,000명중에 이제 10,000명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직도 많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 데리고 나가지 말고 또 뽑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물 마시는 것을 보고 군사를 뽑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10,000명을 데리고 하롯샘으로 갔습니다. 모레산에서 흐르는 샘물이 흐르는 냇가였습니다. 나는 하롯셈에 가서 발을 담그고 앉아 이 말씀을 묵상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모습이 상상되었습니다. 목이 마른 그들은 모두 엎드려서 물을 정신없이 마셨습니다. 그러나 300명이 적을 살피면서 물을 손으로 떠마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300명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다 집으로 돌려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용사입니까?
사명을 잊지 않는 사람이 용사입니다. 9700명은 물만 보았습니다. 당장 목이 마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300명 용사는 물을 마시며 적을 보았습니다. 사명이 적을 물리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농사꾼 기드온이 전쟁을 하러 가자고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모인 것입니다. 누가 나팔을 불던지 상관없습니다. 목적만 거룩하면 사명감을 느끼는 이들이었습니다.
32,000명이 같이 사명감을 가지고 나왔지만 두려워서 22,000명이 탈락하였습니다. 사명보다 육신을 생각하는 9,700명이 불합격되었습니다. 오직 300명 용사만 남았습니다. 늘 내가 하여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잊지 않는 이들이 300명 용사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학생이 뉴욕 박물관 임시직 직원으로 취직하였습니다. 그는 매일 남보다 한 시간씩 일찍 출근하여 마루를 닦았습니다. 그리고 항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성실하게 일하였습니다. 어느 날 박물관장이 그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박물과 마루를 닦는 것이 부끄럽지 않는가?”
그는 웃으면서 대답하였습니다.
“이 곳은 거냥 바닥이 아닙니다. 박물관 마루바닥입니다.”
청년은 성실성을 인정받아 정식직원이 되었습니다. 그는 알래스카를 다니면서 고래와 포유동물을 연구하였습니다. 그가 바로 세계적인 고래학자 앤드류스 박사입니다.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지 잊지 않아야 용사입니다.
300 용사들은 늘 미디안만 바라 보았습니다. 사명만 바라보는 300명 그들은 용사였습니다. 오늘부터 사명만 바라 보십시오. 지금부터 할 일만 바라 보십시오. 이제부터 목적만 응시하십시오. 300명 용사처럼 물을 마시면서도 사명을 잊지 마십시오.
5. 전략이 있어야 용사입니다.
300명 용사들은 승리의 전략이 있기에 용사입니다. 300명 용사들은 기드온과 같이 메뚜기떼같이 많은 미디안을 300명으로 이길 전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승리 전략은 이것이었습니다.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었습니다. 100명씩 세 팀으로 나누었습니다. 각각 손에 나팔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빈 항아리를 들었습니다.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적들을 에워샀습니다. 그리고 깊은 밤 보초들이 교대할 시간에 나팔을 요란하게 불어 댔습니다.
성경은 <이경 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삿 7;19). 이스라엘 백성들은 밤을 삼경으로 나누었습니다. 일경은 저녁부터 밤 10시까지, 이경은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삼경은 2시부터 새벽까지입니다. 2경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니까 교대시간이니까 밤 10시경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고 항아리를 천지가 무너지는 소리가 나도록 깨뜨렸습니다. 그리고 횃불을 들었습니다. 미디안 군사들은 자다가 깨어 보니 천지가 개벽하는 것같았습니다. 엄청난 적들이 둘러싸고 있는 듯이 요란하였습니다. 이들은 잠도 깨지 못 한 채 도망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드온 300명 용사들은 도망가는 길목에 숨어 있다가 하나 하나 죽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완벽한 승리를 얻었습니다.
300 명 용사들은 세 가지 도구를 전략에 사용하였습니다.
항아리를 깨뜨렸습니다. 항아리는 성경에서 그릇을 의미합니다. 그릇이 깨져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깨짐속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깨져야 합니다.
횃불이 사용되었습니다. 빛이 있어야 합니다. 항상 빛된 생활을 하면 하나님이 역사합니다.
나팔이 사용되었습나다. 나팔은 성경에서 증거입니다. 우리가 증거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같이 하여 주십니다.
우리 오늘 하나님께 승리의 전략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으렵니까?
오늘 축복의 전략을 달라고 매달리지 않으렵니까?
적은 수지만 큰 적을 물리칠 하나님이 주신 전략을 가지고 있으면 승리의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한 분 한 분에게 지금 말씀하고 계십니다.
“큰 용사여!”
큰 용사들이여!
당신들의 이름은 용사입니다. 300명은 용사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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