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수*이동원 목사+목사님들설교

[스크랩] 불가능을 넘어서려면 (막 9:17-24) / 이동원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11. 25. 20:17

불가능을 넘어서려면 (막 9:17-24)


자신의 힘이나 지혜나 능력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상황, 환경,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우리 가 두가지 극단적인 반응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불가능 은 없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개척 정신에 투 철한 사람, 매우 적극적 사고 방식 을 가진 사람들은 아마도 문제 앞에 부딪쳐 보자라고 도전을 할 것입니 다. 실제로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인생의 많은 역경과 시련이 극복되 고 그리고 문제들이 해결되는 그런 놀라운 장면들을 우리는 자주 볼 수 가 있습니다. 이러한 삶의 자세를 매우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로 인생에서 정말 어떤 불가능도 존재하지 않을까요? 그렇지는 않습 니다. 불가능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서 죽음의 문제,아무리 과 학이 발달되어도 인간은 죽음의 문 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입니다. 죽음 을 연장시킬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또 죽음을 가져왔던 원인인 이 죄 문제 를 우리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죄를 개선할 수는 있습니다. 좀더 죄를 덜 짓는 사회를 만들 수는 있 습니다. 그러나 죄문제는 본질적으 로 해결 될 수는 없습니다. 죄에서 파생된 질병의 문제 우리는 좀더 병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병이 없는 사회, 병이 없는 환경이 란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 간의 삶에 존재하는 어떤 불가능을 인정해야 합니다. 불가능을 끝까지 거절해 버리면 그것은 우리가 신이 되려는 행위라고 밖에는 우리가 말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한계때문에 사람은 사람됨을 고백할 수 밖에 없 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점을 무시하고 불가능은 없다라는 신념만 을 밀고나가는 사람들이 때때로 도 저히 극복하지 못할 마지막 불가능 앞에서 주져 앉아 버릴 때 그 좌절 은 더 비참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실제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말고 정 반 대의 자세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조그만 어려움이 생겨도 도전하지도 않고 포기해 버 리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 신의 한계를 너무 쉽게 수용해 버리 고 한계를 낮추어 버리고 인간의 역 경 앞에서 스스로 삶을 쉽게 포기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한 심리학자가 이런 실험을 했 다고 해요. 벼룩 가지고 실험을 했 는데 우리가 벼룩 그러면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들려지지만, 제가 자라 날 때만 해도 이와 벼룩들과 더불어 함께 살았습니다. 아주 사이좋게 살 았습니다. 이따금씩 이와 벼룩을 잡 는 것이 취미 중에 하나였습니다. 생각나시죠? 여기. 나이가 좀 드신 분들은 다 그 세월이 생생하게 기억 이 될 것입니다. 어떤 심리학자가 여러개의 벼룩을 가지고 벼룩이 얼 마나 높이 뛸 수 있나 실험을 해보 았어요. 한 20 센티는 대부분 다 뛸 수가 있고, 어떤 벼룩들은 30 센티 를 무려 뛸 수가 있는 것을 발견을 했어요. 벼룩들을 모어 놓고 그 벼룩 위에다 유리 컵을 덮었습니 다. 그러니까 벼룩들이 계속 뛰죠. 그러나 유리 컵의 한계 때문에 이제 부딪칩니다. 10 센티미터도 이제 못뛰죠. 7-8 센티. 유리켭이 딱 제 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상 벼 룩들이 뛰지 못합니다. 한 두 시간 이 지난 후에 유리 컵을 이렇게 벗 겨나 보십시오. 그 이상 뛸 수 있음 에도 불구하고 벼룩들은 이제 나는 그 이상 뒬 수가 없다. 이 7-8 센 티, 10 센티 유리컵의 한계가 내 한 계다라고 생각하고,더 이상 뛰지 못 하고 그 자리에서만 뛰고 있는 모습 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러한 상황이 만들어 낸 유명한 우리 말이 있쟎아요? 벼룩이 뛰어 봤자. 얼마나 뛰겠느냐 말이죠. 이 벼룩같 은 자세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적 지 않게 있습니다. 자기의 한계를 너무 낮게 낮추어 버리고 쉽게 인생 의 어떤 난제 앞에서 인생의 어려움 앞에서 삶을 포기 하는 사람들이 적 지 않게 우리 주변에 있는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자 이러한 소위 불가능성의 한 계 앞에 도전하는 그리스도 인들 그들의 삶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요? 우리는 어떤 인간됨의 불가능성 을 받아 들이고 인정하는 사람들입 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이죠. 그러나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뢰했을 때 우리는 그 하나님과 더 불어 이 불가능을 극복할 수가 있다 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자, 내가 삶 의 장에서 부딪쳐 오는 이러한 불가 능의 난제와 그리고 사건들 앞에 서 서 불가능을 넘어서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것이 오 늘 본문 앞에서 우리가 던지고 있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이 간질병 에 들린 어린아이를 어떤 아버지가 데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찾아옵니 다. 그리고 치유를 부탁했습니다. 제 자들이 물론 열심히 노력을 했겠지 요. 그러나 이 아이의 병이 도무지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때 바로 그때 예수님 이 나타나셨습니다. 산 위에 제자들 과 함께 계시다가 내려 오신 거예 요. 세 제자와 함께 올라 가셨다가 내려오신 거예요. 예수님을 발견한 순간 이 아버지나 무리들에게는 새 로운 소망, 어쩌면 마지막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 엎 드려서 도와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자, 예수님이 이 불가능의 병, 간질 병은 지금도 치유하기 힘든 병입니 다마는 그 당시에는 더욱 난치의 병 이 아니었겠습니까? 자, 이 병을 예수께서 치유하시는 과정에 있어서 우리는 불가능을 넘어서는 인생의 상당한 불가능의 한계들을 돌파할 수 있는 그 삶의 비밀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자, 불가능을 넘어서려면 우리 가 배워야할 삶의 비밀이 무엇일까 요?
첫째로 우리는 예수님 앞에 문제 를 가지고 나오는 것을 배울 수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1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믿음이 없는 세 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 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 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여기 19절 의 마지막 부분에 보시면 예수님께 서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이렇게 말씀을 하 십니다. 이 말씀에서 강조된 단어는 내게로라는 단어예요. 내게로, 내게 로 데려오라. 한번 따라서 하십시다.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자, 이 아 버지는 먼저 자기의 아이를 이끌고 이 난치의 질병을 앓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누구를 찾아 왔습니까? 예수 님의 제자들을 찾아 왔습니다. 아 마 예수님을 찾다가 예수님이 없으 니까 제자들에게 왔을 거예요. 그 때 예수님이 어디에 올라 가셨습니 까? 이것이 연속 시리즈입니다. 지 금. 예수님이 어디에 올라가 계셨어 요? 변화산상에 계셨단 말이죠. 그 러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아마도 부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님의 제자들이 못 고친단 말이죠. 우리가 종종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 게 전도할 때 이런 접근 방법을 사 용을 합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 빠 진 사람 들, 고통 당하고 있는 사람 들에게 우리 교회에 한번 나와 보세 요. 하나님 의지하시면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저는 전혀 잘못이 아니라고 생 각을 합니다. 우리가 마땅히 그렇 게 말해야 할 줄로 생각을 합니다. 자,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 문제에 대한 해결의 희망을 안고 초청 받 은대로, 전도 받은대로 교회에 나옵 니다. 그들이 교회에 나왔다는 사 실 만으로 문제가 해결이 됩니까? 그렇지 않죠. 그것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잘 압니다. 저는 그들이 물 론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 다. 교회에 나와서 그들이 참 하나 님을 만날 수가 있다면 그리고 하나 님을 경험할 수 있다면 그들의 문제 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러나 제가 강조하는 것은 교회 나왔 다는 사실 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어떤 부모님 한 분 이 자기 어린 자녀를 데리고 교회에 나올때 교회가자 이렇게 말씀을 안 하고 항상 이렇게 말씀을 했대요. ' 야, 우리 하나님 집에 가자.' 그래서 그날도 주일이 되어서 우리 하나님 집에 가자. 그랬더니 그날 따라 그 집 꼬마들이 ,꼬마 중에 하나가 이 런 대답을 하더래요. '나 안가요. 그 래서 왜 안가니? 그랬더니 밤나 가 봐야 집에 안계시데요. 하나님, 이 꼬마는 당연히 하나님을 찾을 것을 기대하고 둘러 보았지만 하나님이 안보인단 말이예요. 아주 솔직한 말 이죠. 저는 교회의 책임이 하나님을 보여주는 책임이라고 믿습니다. 예 배를 왜 드립니까? 성경 공부의 목 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 험케 하는 것이예요. 우리가 말씀 공부의 중요한 목적이 어떤 단순한 지식을 취득한다가 아닙니다. 성경 공부의 촛점을 단순한 지식의 획득, 정보의 획득에 두는 것은 성경 공부 를 가장 나쁜 방법으로 하는 것입니 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 험하는거예요. 주님 만나는 거예요. 예수님을 만나는 거예요. 여러분, 교 회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교회의 주 인은 예수님이시죠. 성경은 예수 그 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교회의 본질 은 단순한 빌딩이 아니예요. 이 빌 딩이 어떤 마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 다. 이 빌딩 안에 들어 왔다고 해 서 특별한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닙 니다. 그러나 교회를 구성하는 하 나님의 백성들이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배 드리는 그 곳에 두 세사람 이상이 내 이름으로 모인 그곳, 그리고 주의 이름을 높 이는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실 줄 믿습니다. 그러면 거기서 하나님을 경험하거든요. 예수님을 만나는 거 에요. 예수님을 만나면 해결되요. 그 런데 빌딩만 보고 가면 빌딩 안에 들어 왔다 나간다 해서 무슨 특별한 일이 생기는 것 아닙니다. 정말 중 요한 것, 하나님을 만나는 것, 하나 님을 경험하는 것, 예수님을 만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란 말이 죠. 그러니까 교회로 인도한다. 거기 서 끝나면 안되요. 교회에 나왔다. 이것은 좋은 스탭입니다. 중요한 스 탭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 에 나오셨다 이것은 굉장히 참 중요 한 것입니다. 사실 교회 문턱 하나 넘어 들어오는 것도 쉽지는 않아요. 아주 중요한 일을 하셨어요. 큰 단 계를 밟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 무엇이 중요해요? 하나님을 만나는 것. 이것이 참 중 요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 어떤 문제의 해결을 기도할 때 또 흔히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갖는 기 대 가운데 하나는 영적 지도자들의 도움을 기대합니다. 저는 그것도 나쁜 것이 아니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종조 우리 교인들 에게 부탁을 받습니다. '목사님, 기 도해 주세요.' 그러면 교인들 붙들 고 기도합니다. 그것은 잘하는 일이 고 해야 될 일이고 그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 병든 자들아 교회의 장로들을 즉 교회의 지도자들을 청 하라 그리고 지도자들은 주의 이름 으로 기름을 바르면서 위해서 기도 하라 ' 이것은 당연한 일이예요.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라도 우리가 주의할 것이 있 습니다. 지도자가 병을 고칠까요? 아닙니다. 지도자는 도구에 불과하 고 매체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 는 우리를 치유하시는 궁극적인 치 유자가 하나님이라고 믿습니다. 하 나님이 사람들을 통해서 고치실 수 가 있어요. 그러나 고치신 분은 궁 극적으로 본질적으로 하나님이십니 다. 사람이 아니거든요. 근데 마치 사람이 고치는것 처럼 그렇게 설명 을 한다든지 그렇게 제시를 한다면 그것은 이미 신앙의 정도에서 빗나 간 것입니다. 제가 어제 황당한 일 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어제 교우 집을 불시에 심방을 했습니다. 어제 오후에 잠시 그냥 지나가다가 그 집 에서 깜짝 놀랬지요. 근데 거기에 어떤 한 네살, 다섯살 먹은 꼬마가 저를 딱 보자마자 우리 교회에 나와 서 저를 봤으니까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하나님 오셨다.' 그러는거 예요. 얼마나 황당해요? 제가 뭐라 고 그랬을까요? 웃었죠, 물론. 제 가 그러나 좋아했다면 제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예요. 제가 그랬습니다 ' 야, 네 엄마 불러와라' '네 엄마 불러와.' 그리고 그 엄마 보고 그랬 습니다. 나를 이단의 교주로 만들기 로 작정을 했습니까? 어떻게 자식 교육을 그렇게 시켰습니까? 그리고 그 꼬마한테 제가 연습을 시켰어요. 하나님 오셨다가 아니야, 하나님의 종이 오셨다. 따라서 해봐. 하나님의 종. 그러니까 하나님의 쫑. 따라서 하더라구

요즘 우리 신문 지상에 보면 1999년이 되니까 그 이단들이, 사이 비 종교들이 다시 부활하고 부흥되 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것이 금년에 달을 거듭할 수록 더 심해질 거예요. 보세요. 영락없이 11월, 12월 달은 아마 클라이막스예 요. 이단들의 활동에 클라이 막스에 도달할 것입니다. 벌써 우리 주변에 건강한 기독교를 가장한 어떤 단체 에서도 벌써 잘못되어가는 그런 소 문들이 무성하게 우리의 귓전에 들 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어떻게 우리가 사이비 교 주와 건강한 영적 지도자를 구분 할 수 있습니까? 그 구분이 뭐예요? 만약 어떤 지도자가 계속해서 촛점 을 자기에게 맞춘다면 내가 메시아 라고 말을 한다든지 혹은 그렇게 말 하진 않아도 그런 암시를 한다든지 자기가 메시아라든지 자기가 하나님 이라는. 자기가 그리스도라는, 자기 가 구세주라는 선포를하든지 암시를 하든지 그리고계솟해서 촛점을 자 기에게 모은다면 이것은매우 잘못된 집단이다. 그런 집단은 불건전한 집 단이다 여러분이 쉽게 이렇게 구별 하면되는 것이예요. 어떤 사람이 설교를 들었을 때 그 설교의 촛점이 뭐냐? 자기를 높이느냐? 어떤 사 람은 계속해서 설교처음 부터 끝까 지 자기에게 임한 신비체험만 간증 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것은 매우 위험한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정말 높임을 받느냐? 하나님이 정말 선포 가 되느냐?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 님 바라보십시오.해결자가 하나님이 라면 성도들을 데리고 하나님 앞으 로 인도하는 거예요. 하나님 바라보 십시오. 주님을 보십시오. 저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영적 지도자를 목 자라고 부르는것,괜챦지만, 그렇게 불러도 괜챦지만, 때때로는 그 목 자가 양들을 인도할 때 그 목자들 자신이 인도할 수도 있지만 그 개들 을 데리고 같이 인도하는 때도 있 습니다. 나는 때때로 이렇게 생각을 해요. 내 역할은 단순히 개의 역할 에 불과하다.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정말 진정한 목자되신 주님 앞으로 달려가도록, 그 주님을 볼 수 있도 록, 주님을 의존할 수 있도록 주님 을 가르치고 주님을 지향하는 것이 지, 우리가 어떤 특별한 그런 촛점 을 가지고 자기 자신에게 모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영적 지도자의 책 임은 끊임없이 사람들이 주님을바라 보도록,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메시 지로, 교육으로 , 훈련으로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바라보 십시오.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 다. 예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길 이요, 그가 진리요, 그가 생명이십니 다. 그분이 홀로 선한 목자되십니다. 그 분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렇 다면 여러분의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오세요. 내가 지도자들의 도 움을 받는 순간까지도 하나님, 하나 님이 이 종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 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대해야지, 그 종이 어떤 능력을 가진 것처럼 착 각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 앞에 문 제를 가지고 나오십시오. 그때에만 우리는 문제를 넘어서서 불가능을 넘어서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놀 라움의 삶을 경험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나올줄 을 아십시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 님앞에 문제를 가지고 나아올 때 예 수님을 믿으셔야 합니다. 정말 예수 님이 나를 고칠 수가 있다. 예수님 을 신뢰하셔야 합니다. 자, 제자들이 축사에 실패한 이후에, 귀신쫓아내 고 병 고치는 일에 실패한 이후에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본문의 28절 에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 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여기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 조용히 물었어요. 크게 묻기에 챙피 했을지도 모르지요. 실패한후이니까. 어떤 자존심 때문에 주님께 조용히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 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우리는 어 찌하여 실패했습니까? 라고 묻습니 다. 그 때 예수님이 그 실패의 원인 을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이 아이가 고쳐지지 않은 이유, 기적이 일어나 지 않은 이유, 제자들의 기도가 실 패한 이유, 도대체 그 원인이 어디 에 있었을까요? 자, 우리가 다시 19 절을 읽어보시면
"대답하여 가라사 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분명 한 원인을 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간접적으로 지금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 이 아이의 병 이 고쳐지지 않은 이유가 어디에 있 다고 말씀하십니까?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었 기 때문에... '믿음이 없는 세대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 그리고 본 문과 똑같은 기사를 취급하고 있는 마태복음 17장 20절에 보면 이번에 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 다. 그러니까 그 아이 주변에 있던 무리들에게 먼저 말씀하시면서 이렇 게 말씀하신 거예요.
"믿음이 없는 세대여!"
그러나 그 다음에는 제자 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믿음이 적 은자들아!' 좀 달라요. 자, 지금 그 아이가 아파있는 현장, 아직도 고침 받지 못하고 있었던, 누워있던 그 현장에 둘러싸고 있는 막연한 구경 꾼, 그 무리들 전체를 향해서는 이 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오늘 이 세상이, 이 세대가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믿음 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 님을 신뢰하는 곳에서 당신의 영광 을 나타내시고, 당신의 임재를 계시 하시고, 당신의 손길을 나타내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에 게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없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믿음이 적 은 자여!' 자, 이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나섰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예수님 을 향한 어느 정도의 믿음이 없었겠 습니까? 어느 정도의 믿음? 있었겠 지요. 믿음이 없는 사람은 아니예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어떤 정도의 믿 음은 다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이는 있지만, 우리 가운데. 그래서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그 리고 주님앞에 가까이 나와서 봉사 도 하고, 섬기는 것이 아니겠어요? 여러분들에게 당신은 왜 그렇게 믿 음이 없으십니까? 하면 과히 좋지는 않을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말 씀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 여! 그대들이 실패한 이유,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 그것은 믿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들에 게 믿음이 적었다. 다시 말하면 그 들은 이 현장에서만은 주님을 향한 그들의 믿음을 온전히 엑서사이즈하 지 못한 것입니다. 믿음을 충분히 나타내지 못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 까요? 자, 우리가 믿음, 믿는다고 말 할 때 중요한 것은 '믿음'이란 그 단어 자체가 아닙니다. 믿음의 대상 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크리스 챤 사이언스라는 기독교 이단이 있 습니다. 한국에는 별로 시원치 않지 만 외국에는 맹렬한 활동을 하고 있 는 크리스챤 사이언스라는 것이 있 습니다. 이따금씩 여행을 하다 보면 국제 공항 같은 데에 크리스챤 사이 언스라는 리딩 룸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기독교같아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기독교가 아니 예요. 이 사람들이 믿음을 강조하지 만 '믿음'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예요. 자기 자신을 믿으 라 이 말이예요. 우리가 자신을 믿 으면 안되는 일이 없다. 얼마나 많 은 오늘날 이런 운동들이 우리 주변 에 다가오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 나 성경은 그런 단순한 믿음만을 강 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아닙니다. 기독교에서 믿음 은 항상 믿음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그리고 예수 그리 스도를 우리의 믿음의 대상으로 삼 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믿을 수가 있다면 예수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나의 한계를 압니다. 나의 좌절을 압니다. 나의 절망을 압니다. 나의 죄를 압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구 세주요, 나의 주님이신 그리스도앞 에 나와 엎드렸고, 그 분을 나의 주 님으로 믿었고, 신뢰했고, 그 분을 따라가는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휴머니즘, 인본주의와 기독 교와 결정적이고도 본질적인 차이라 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런 데 정말 주님을 신뢰하십니까? 우리 는 주님을 신뢰한다고 말하면서도 기독교인들조차도 은근히 사실은 나 를 믿고 있는 경우들이 더 많이 있 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믿는다는 단어를 전세계의 기독교인들 가운데 서 한국 교인들처럼 대표적으로 강 조를 잘 하는 민족이 없다고 생각해 요. 우리는 그저 주님 믿습니다. 이 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말합 니까? 잘 아시네요. 믿씁니다. 시옷 자에 강조해서 말하지요. 그런데 그 렇게 말해놓고 사실은 주님 믿는 것 이 아니라 자기를 믿을수 있는 가능 성이 충분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 는 오늘 제자들의 경험이 그랬을거 라고 생각합니다. 자, 지금 제자들이 왜 이 축사에 실패하고, 이 아이의 병을 고치는데 왜 실패를 했을까요? 저는 제자들이 과거에는 성공을 했 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열 두 제자, 70명의 제자들에게 전도하러 내 보낼 때 권세를 주어서 내 보냅 니다.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 귀신 을 내어 쫓을 수 있는 능려과 권세 를 주어서 그들을 내어 보냈습니다. 자, 돌아와서 보고할 때 어떤 보고 를 했습니다. 선생님, 굉장하데요. 우리가 기도해 보니까 병자가 낫고 그리고 귀신들도 항복하더이다. 이 렇게 보고했습니다. 그러니까 과거 에 성공했단 말이지요? 그러니까 이 번에도 또 성공할 줄 알았어요. 더 욱이 저는 이 본문의 상황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이 제자들의 아주 미묘 한 심리적 상태를 읽어낼 수가 있습 니다. 자, 지금 여기 이 병든 아이와 씨름하고 있는 제자들은 아홉명입니 다. 자, 제자들이 모두 몇 명이에요? 열 두명. 세 명은 어디 갔습니까? 지금 산에 올라 간 거에요. 예수님 과 함께. 그런데 세 명의 제자이름 이 누구입니까? 베드로, 야고보, 요 한 - 다시 말해서 제자들 중에서 대표적인 제자, 그 중에서도 제일 두목 제자는 누구였습니까? 수제자 는 베드로였지요? 그런데 세 명의 대표적인 제자가 없어진거예요. 아 홉명만 남아 있었을 때 그 아이를 데리고 그 아버지가 나타난 것입니 다. 그러니까 아홉명의 제자가 다른 세 명의 제자가 없는 것을 잘 됐다 고 생각했을까요? 잘 못 됐다고 생 각했을까요? 물론 정답은 없어요. 본문에 없으니까. 그런데 제 추측에 는 이 아홉명이 아주 신이 났을 것 같아요. 항상 대표 제자들이 있으면 틀림없이 대표로 누가 기도했습니 까? 베드로가 기도할 것이 뻔하지 요? 야고보가 하던지, 요한이 하던 지. 그러니까 세 명이 없으니까 우 리도 한 번 뭔가를 보여주자. 베드 로 너만 병고칠 수 있느냐? 나도 할 수가 있다. 딱 폼을 잡고 염려없다 고 데려 오라고 우리가 고쳐 주겠다 고...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귀신아 나갈지어다. 귀신이 안 나가! 이렇 게 대답했을지도 모릅니다. 이것 안 고쳐지는 거예요. 실패한 거란 말이 지요. 그런데 왜 실패했느냐? 저는 다분히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고, 기 도한다고 말하고, 신앙적인 내용과 틀을 사용하면서도 그러나 이 아홉 제자의 마음의 밑바탕에서는 자기 과시, 우리도 뭔가를 할 수 있다. 그 순간이 크리스챤들이 실패하는 순간 입니다. 내가 가장 강하고 생각할 때 사실은 실패합니다. 신앙의 역설 은 이것입니다. 내가 약함을 느끼는 순간, 그래서 주님을 의지하는 순간,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가 약할 때가 내가 강한 순간입니 다. 나의 무력을 느끼고 나의 좌절 을 느끼고, 그래서 하나님, 정말 하 나님 없이는 못 살구요, 주님 없이 는 할 수가 없구요. 전적으로 주님 을 신뢰하는 그 순간이 바로 하나님 이 임하시고 우리를 사용하시는 순 간인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 실 패의 원인이 거기에 있어요. 자기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이면서도, 제자들이면서도 순간적으로 그 주님 을 신뢰하기 보다도, 하나님을 신뢰 하기 보다도 자기 자신을 신뢰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 그 순간 제자들은 보기좋은 실패를 경험한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 한해에 우리 인생의 길을 살아갈 때 우리 앞에 수다한 문제들이 그리고 난제들이 우리를 괴롭힐 때 기억하십시오. 문 제를 주 앞에 가져 나오시길 바랍니 다. 나는 도울 수가 없어요. 나는 형 제와 자매를 도울 수가 없어요. 그 러나 나의 하나님은 형제를 도와주 시기를 믿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 게 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 하십시오. 주님을 신뢰하시기 바랍 니다. 주님이 우리의 도움이 되실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말 중요한 것은 기 도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기도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을 우리는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자. 이제는 문제를 어디로 가지고 나와요? 예수님 앞으로. 그리고 그 다음에 할 일이 뭐예요? 그 예수 그 리스도를 신뢰하셔야 합니다. 믿어 야 합니다. 근데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신뢰합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을 어떻게 증가 시킬 수가 있어 요?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방 법. 저는 그것이 기도의 방법이라 생각해요. 기도는 우리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방편입니다. 우리가 기도할수록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돼요. 기도 안 할수록 자기 생각, 자 기 의지 그리고 자기의 계획, 자기 의 잔꾀 그리고 자기만 의지 할 수 밖에 없어요.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 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자. 기도할 때 우리 입술에서 나오는 첫 번째 말이 뭐예요. 하나님 아버지. 자비로 우신 나의 주님. 자. 우리는 기도하 면서 주님을 바라봅니다. 이런 사람 들은 주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죠. 우리 이번 청지기 세미나를 할 때 첫 번째 오신 강사님이 되게 강조한 것 중에 하나가, 왜 기도하지 않는 가. 교만하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다. 전적으로 저는 동감합니다. 왜 기도 안 합니까. 교만하기 때문에. 내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도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거예요. 그러나 자기 절망을 느낄 때, 자기 의 한계를 느낄 때. 오 하나님. 아니 자기 절망을 느끼지 않을 때에라도 주님이 나보다 더 잘 아신다. 주님 의 방법이 최선의 방법이다. 주님의 지혜만이 최선의 지혜다. 이것을 참 으로 믿는 다면 우리는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서 그리고 어떤 난제의 일이 내 앞에 버티고 있다고 할지라 도 우리는 무릎을 꿇어 기도할 줄로 믿습니다. 교만하면 기도하지 못하 거든요. 자. 왜 이 제자들은 쫓아 낼 수가 없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주님의 대답이 어떤 대답이었어요? 마지막 절에 대답을 읽어 보세요. 자. 마지막 29절입니다. 29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29절 시작. 이르시 되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가 없느니라 그랬습니 다. 기도가 방법이다. 기도가 바로 이런 문제를 돌파 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다. 그런데 이 것을 비교하면 재미있어요. 똑같은 기사 가 마태복음에도 취급되어 있는데, 마태복음 17장 21절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한번 찾아보세요. 마태복 음 17장 21절입니다. 웃는 사람은 빨리 찾은 사람이에요. 왜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 마태복음 17장 21절 을 딱 찾아보면 뭐가 나왔습니까. ' 없음' 이렇게 되어 있어요. '없음' 하하. 그러나 어떤 성경에 보면 우 리가 쓰고 있는 성경은 다 사본인데 카피한 것인데, 어떤 사본에 보면 마태복음 17장 21절 없음 그러고 난 외 주로 바깥에다 코멘트를 해 놨어 요. 뭐라고 썼습니까. 기도가, 어떤 사본에 의하면, 기도와 금식이 아니 고서는 이런 유가 나갈 수가 없느니 라. 기도와 함께 뭘 강조했습니까. 금식. 기도만 강조하신 것이 아니라 금식까지 강조하신 것으로 되어 있 어요. 금식은 무엇입니까. 기도의 가 장 강렬한 형태가 금식입니다. 사람 들이 집착하는 것, 하루를 살면서 절대로 빼놓지 않는 것, 그것은 먹 는 일이죠. 그러나 그 식사 시간까 지 단절하고 하나님께 매달린다. 기 도의 가장 강렬한 형태가 바로 금식 입니다. 기도와 금식은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한다. 어떤 사람들이 종종 '목사님 저도 어려운 많아서 기도해 봤어요. 그런데 안돼데요' 제가 가 끔 반문 합니다. 금식까지 해 보셨 습니까. 한 두 번의 기도가 아니라 정말 간절히 매달리는 기도. 기도의 가장 간절한 형태가 있다면 그것을 우리는 금식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 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보면 바울 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아무것 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구하라. 거기에서 너희는 아무것,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 든 것에,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아무것과 모든 것이란 단어가 비교 되고 있어요. 영어로 읽어 보면 더 재밌는데 anything, anything 염려 하지 말고, everything 기도와 간구 라. 이 두 단어가 재미있죠? anything, everything 하는 두 개의 단어가 대조적으로 등장합니다. 아 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일에 기 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 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염려처럼 비생산적 인 것은 없습니다. 염려해 보세요. 그러면 여러분은 더 깊은 염려 속에 빠질 것입니다. 염려를 중단하라. 그 리고 염려를 기도로 바꾸어라. 그렇 습니다. 염려할 일이 생기셨습니까.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이 나 에게 기도의 제목을 주셨다. 염려를 붙들고 기도의 제목으로 바꾸시길 바랍니다. 염려할 모든 것을 기도할 모든 것으로 바꾸어라. 그런데 기도 만 강조된 것이 아니예요. 거기에 잘 보면 뭐라고 그랬습니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그 다음에 나 오는 말이 간구예요. 기도만 강조한 것이 아니라 간구하라. 더 간절히 기도하라.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은 결국에 여기에 도달할 수밖에 없어 요. 금식까지 하게 됩니다. 정말 간 절히 기도하다 보면 어떤 때 우리는 금식까지 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금년 연말 연초를 보내면서 특별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가운데 금식 의 도전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금년 한해 내 개인적인 내 영성 계 발의 목표중의 하나가, 금년에는 금 식을 좀 많이 하자. 그래서 한달에 적어도 하루 온전히 하루 이상을 금 식하는데 바치자 이렇게 결심했어 요. 저는 저와 함께 우리 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금식의 체험과 금식의 경험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에게 너무나 많은 불가능의 문제들 이 있어요. 우리의 힘, 우리의 지혜, 우리의 생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이 런 난제들을 뚫고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놀라우심을 경험하기 위해 서 주 앞에 엎드리는 교회. 주 앞에 엎드리는 사람들. 초대 교회의 능력 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초대 교회 의 능력. 기도의 능력입니다. 사도 행전에 나타난 초대 교회는, 초대 교회가 굉장히 이상적이 교회라 지 금 현대 교회 보다 굉장히 우수한 어떤 교회라는 상상을 하지 마십시 오. 우리와 똑같은 문제들이 있었습 니다. 우리 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교인 숫자도 적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 교회는 당대의 세계 에 그 세계를 흔들 수 있는 영향력 과 충격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그 원인 어디에 있었느냐. 금식에 있었 어요. 금식에. 사도 행전에 페이지마 다 우리는 기도와 금식의 장이 없이 사도 행전의 페이지를 넘기지 못할 것입니다.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들 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기 도가 세계를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 니다. 제가 최근에 글랙 롤이라는 미국에서 떠오르고 있는 젊은 전도 자의 책을 읽고 있는데 사도 행전 강해를 최근에 읽었습니다. 몇일 전 에 책을 읽고 있다가 아주 충격적인 도전 한가지를 받았어요. 사도 행전 에 교회에 대한 설명을 하다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사도 행전에 교 회들은 회의 보다 기도를 더 많이 했다. 회의 보다 기도를 더 많이 했 다. 그들은 만약 한 시간 회의를 한 다면 초대 교회는 틀림없이 두 시간 기도를 했을 것이다. 그 다음에 이 런 얘기가 나오더라구요. 그러나 오 늘날의 교회는 어떠한가. 오늘날의 대부분의 교회들은 아마 두 시간 회 의를 했다면 한 시간 정도 밖에는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그 다음에 아니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는 두 시 간 회의를 했다면 한 시간이 아니라 단10분도 기도하지 못하는 것이 오 늘날의 교회의 형편이 아닐까. 제가 찔렸어요. 우리 교회 보고하는 이야 기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보 고 하는 얘기로구나. 제가 이런 찔 림을 받았습니다. 아. 내가 정말 기 도하지 못했구나. 우리가, 우리 교회 회의부터 좀 회의 구조를 바꿔야겠 구나. 정말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임재와 하나님의 놀라우심을 경험하기 위해 서는, 우리가 30분 회의를 했다면 적어도 30분 이상 기도하고, 우리가 1시간 회의를 했다면 1시간 이상 그 보다 훨씬 더 엎드려서 하나님 우리 가 의논한 이 문제들 가운데 하나님 이 도와 주시구요,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구요,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구 요,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구요. 이런 엎드림이 있다면 얼마나 달라질 것 인가. 그리고 제 생각은 오래 전 제 가 영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보았던 한 교회의 생각이 갑자기 났어요. 오래 전에 처음으로 영국을 방문하 게 되었을때에 소원이 있었습니다. 하나 꼭 보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 다. 물론 영국에 많이 보고 싶은 것 이 있었지만은 제 마음속에 제일 보 고 싶은 것이 있었어요. 뭐 같아요? 여러분. 비행장에 어떤 선교사님이 저를 pick up하러 나왔는데,
"이 목 사님 런던에서 뭘 보고 싶으세요?"
그랬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일 먼저 한 대답은 이런 대답이었습니다.
"
나 스펄젼 목사님 교회를 보고 싶어 요"
제가 설교자라 그런지, 설교의 prince, 왕자라고 일컬어지는 이 스 펄젼 목사님이 사역하던 교회는 어 떤 형태일까 궁금해서 그리로 가자 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 봤어요. 주 일날 가봤습니다. 한 200명도 안 모 여요. 찬양도 힘이 없었고 무력해진 회중. 설교도 큰 감동이 되지 못했 어요. 저는 슬폈습니다. 저는 뒤에 앉아 계속 울었습니다. 어째서 스펄 젼 목사님의 교회가 이렇게 되었을 까. 한때 6,000명 이상의 회중들이 꽉꽉 자리를 채우던 이 교회. 아니 많이 모일 때는 10,000명 이상씩, 어 떤 때는 20,000명까지 모여서 성령 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 과 영광으로 불타오르던 이 교회. 스펄젼의 전기에 보면 이런 이야기 가 나옵니다. 사람들이 스펼전 교회 와 목사님을 방문하면 목사님은 항 상 이 방문객을 데리고 교회 본당이 아니라 교회 아래층으로 데리고 갔 데요. 그 아래층에는 기도하는 성도 들이 많았습니다. 그 기도하는 성도 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랑스럽 게 보여주면서 스펄젼 목사님은 이 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제 목회의 비밀은 바로 여기 기도하는 이 성도 들입니다. 그들이 나의 힘입니다. 그 들이 바로 우리 교회의 발전소입니 다. 저들의 기도 때문에 오늘 우리 의 교회는 존재할 수가 있습니다. 단순히 스펄젼 목사님의 탁월한 설 교만을 하나님이 쓰신 것이 아니라, 그 기도하는 성도들을 통해서 그들 은 한때 그 교회의 황금기를 누리고 영국을 변형시키는 변혁의 초점이었 습니다. 그런데 스펄젼 목사님이 돌 아가신 이후에 어떤 전기 하나를 읽 어보니까 제 눈에 갑자기 최근에 그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다시 그 전 기를 읽어 보았어요. 스펄젼 목사님 이 떠나간 후에 교회는 비틀거리기 시작합니다. 제일 먼저 심상치 않은 변화중의 하나가 기도하는 운동들이 없어지기 시작했어요. 기도하는 그 룹이 없어졌어요. 저는 만약 기도하 는 성도들이 기도로 지켰더라면 그 교회는 지금도 능력있는 사역을 계 속 하리라고 믿습니다. 기도가 사라 질 때 하나님은 영광을 그 교회에서 거두신 것입니다. 저는 금년 한해 동안 저와 더불어 함께 사역할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 그리고 특별히 제 직들이 먼저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 시길 바랍니다. 저와 함께 엎드려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때때로 자주 엎드려 금식도 하십니다. 우리 앞에 주어진 중요한 문제에 관해서 우리 식사를 단절하고 주 앞에 엎드려 하 나님의 인도를 구하기 시작할 때 저 는 믿습니다. 하늘의 문이 열릴 것 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부어질 것 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위대 한 교회의 능력을 보기 시작할 것입 니다. 여러분의 가정의 문제도 떠나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 이 나타날 것입니다. 주께서 여러분 에게 기도의 능력과 엎드리는 금식 의 능력을 가르쳐 주시는 한해가 되 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다 일어나시기 바랍 니다. 우리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 이 이 한해를 정말 주님 신뢰하고 걸어가게 도와주세요. 많은 문제가 우리 가정 앞에 우리 민족 앞에 놓 여 있지만 하나님 기도하며 살겠어 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겠어요. 하 나님 특별히 이 한해동안 기도를 가 르쳐 주시고 정말 엎드려 기도하는 자들이 되게 하시고 우리 앞에 주어 진 모든 문제들을 정말 주님을 붙들 고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 주 시옵소서. 때로 인생의 절박한 순간 에 정말 식사까지 단절하면서 기도 하는 기도의 용사들. 우리가 기도하 기 시작할 때 우리 민족이 바뀌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우리 민족은 새로워 질 것입니다. 우리가 잠들면 우리 민족은 어두워 질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우리 가운 데 기도를 가르치시고 성령의 놀라 운 능력을 부어 주시옵소서.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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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 목사